제 825화
231. 생명력을 채우기 위해서
투웅!!! 데이비의 몸에서 무형의 힘이 빠져나온다.
마치 그동안 마구잡이로 먹어치운 것을 모조리 배출해내듯 데이비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쿨럭…… 쿨럭…… 많이도 처먹었네. 진짜.”
반쯤은 의아했었다. 광기에 미쳐버린 내가 대체 어디까지 먹어치울까 하고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다.
타나토스를 극한까지 몰아넣었고, 그녀의 신격마저 부숴 버렸다.
쓰러진 그녀를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 그녀가 이를 악물고 나를 밀어낸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힘은 없었다.
“아직도 저항하네.”
“괴물 같은 놈! 대체 어떻게!”
그녀의 외침에 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무리 정신 줄 놓고 날뛰어도 괜찮은 곳이라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릴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어느 정도 세워 놓고 있었다.
“뭐긴. 브레이크지.”
브레이크.
그 한마디에 타나토스는 데이비가 싸우는 중간 중간에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휘청거리던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미쳐버린다는 건 내 의지를 벗어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일정 시간 후 금기의 힘이 폭주하도록 만들었다.
[내 힘이 네게 먹혀서 널 제압하긴 했다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지속되면 슬슬 면역이 생길 거다.]
과거 회랑에서 내가 광기에 잠식되었을 때 나를 구한 것은 헤라클레스였다.
그는 금기의 힘이 가진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나의 광기와 충돌시켰고, 나를 완전히 제압했다.
물론 완전히 물들어버린 나를 완전히 깨우진 못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두 번에 안 되면 될 때 까지!
나는 수차례 폭주시킨 두 힘을 내 안에서 충돌하게 만들고, 이성을 깨워냈다.
아주 잠깐의 틈이지만 몸 안에 먹어치운 힘을 깡그리 털어내고 금기의 힘을 다시 재워버린다면 공복의 광기는 사라지리라.
소멸해가면서도 나를 묵묵히 바라보는 타나토스를 내려다보며 나는 비명을 지르는 육신을 천천히 회복시켜 나갔다.
타나토스는 소멸해 가고 있다.
어렴풋이 그 기억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죽이기 위해 별의 근원을 먹어치우는 짓까지 저지른 타나토스에게 남은 미래는 소멸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상태에 영향을 받듯 주변의 검은 안개들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공간은 우주와 흡사하면서도 우주가 아닌 공간이다.
우주는 모든 차원과 별의 근원인 만큼 그 형태를 빌려온 것일 뿐 바닥도 실제로 존재했으니까.
“고작 1년 조금 넘더라.”
내 한마디에 쓰러진 채 바스러져가던 타나토스의 황색 시선이 내게 닿았다.
“이렇게 죽자고 치고받고 싸운 게.”
대답을 바라진 않았다.
공간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변하며 본래대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나는 부서져 가는 타나토스의 남은 신격을 이클립스의 육신에서 완전히 적출해 냈다.
지금 타나토스의 신격은 이토록 쉽게 적출이 될 만큼 미약하기 그지없다.
타나토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해방된 이클립스는 본래의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피가 묻은 채 쓰러져 있는 그녀는 도저히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보기 힘들 만큼 고요했다.
어차피 한 번 먹힌 시점에서 그녀의 영혼은 소멸 이외엔 구원이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점은…….
사라지기 전 헤라클래스와 재회를 시켜주고 싶었던 것.
“뭘 하는 거지?”
그는 사라져 가면서도 나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뭘 하긴. 네 신격을 회수하는 거다.”
타나토스의 신격을 회수하는 건 반쯤은 도박이었다.
사실 가능할지도 의문이었지만 타이밍 좋게 이렇게 얻었으면 된 것이리라.
“타나토스.”
“…….”
“고작 3년 남았다.”
내 말에 그가 침묵한다.
“문명을 리셋 시켜 본들 1000년. 넌 그런데도 네 사상을 만들고 싶냐?”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서로 입 아프게 이야기해서 뭐 하냐.”
어느덧 주변의 공간은 처음 타나토스와 직면했던 살점 덩어리의 동굴로 도착해 있었다.
“데이비.”
언제 온 것일까.
나를 향해 다가오는 이실디와 베르단데, 그리고 스쿨드의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
쓰러진 이클립스의 육신을 발견한 베르단데가 뛰어오려 하자 이실디가 피가 묻은 검으로 그녀를 막아섰다.
“물러나. 아직 타나토스 신이 남아 있잖아.”
“…….”
싸늘한 한마디에 베르단데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타나토스의 신격을 완전히 빼낸 내가 아공간에서 카드첩을 꺼내들었다.
신격을 봉인하는 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영혼의 힘으로 만들어진 카드라면, 신격도 봉인할 수 있지 않을까.
애석하지만 그를 구원해 줄 생각은 없었다.
한때 신이었던 존재의 혼마저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황금색 사슬이 이클립스로부터 빠져나온 타나토스의 혼을 봉인한다.
“너 대체 뭘 하려고…….”
“신격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생명력을 품고 있으니까.
“잔인하네.”
내 대답에 이실디는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타나토스의 신격은 사슬에 묶여 봉인되는 와중에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저 빛의 사슬에 의해 서서히 끌려올 뿐.
그때였다.
쩌저저적!! 짜드득!!
갑작스레 주변 동굴을 가득 메운 살점들이 갈라지기 시작하며 막대한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당황한 이실디와 베르단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만 나는 카드에 신격을 봉인하는 데에 집중했다.
사실 나도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말이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싸움의 여파로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지금 한 대만 맞으면 죽는다!
우스갯소리를 속으로 던지며 내가 타나토스를 노려본다.
“뭔 짓을 한 거야.”
“계획은 실패했다. 내 신격은 바스러져 이제는 초월적인 의지에 닿지도 못하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사라져야 한다면. 차라리 네놈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겠다.”
타나토스의 단호한 대답과 함께 막대한 에너지가 일그러지듯 충돌하며 주변을 감싼다.
“어머니!!!!”
그리고 갑작스레 바닥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검은 균열에서 촉수가 뻗어져 나와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이클립스를 포박해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당황한 이실디와 베르단데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무형의 장막이 그들을 막아 낸다.
신격이 없는 둘은 타나토스의 최후의 저항을 저지할 수 없다.
타나토스의 혼도 그렇지만 나 또한 움직일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이를 악물고 이클립스의 육체가 끌려들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가 심연의 공간을 파괴했다. 아마 붕괴하고 있을 테지. 고대룡의 육신을 그곳으로 내던질 것이다. 붕괴하는 공간과 함께 영원히 뒤틀리고 찢겨 나가리라!”
타나토스의 목소리에 광기가 서렸다.
“선택해라. 프리아의 성자여. 내 영혼을 계속해서 봉인하고 그녀를 잃을 것이냐. 아니면, 봉인을 포기할 것이냐.”
신격을 여기서 풀어줬다간 타나토스는 신격을 완전히 잃고 소멸할 것이다.
신이 품고 있는 막대한 생명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건 나로서도 달갑지 않은 상황.
“안 돼!! 안 돼!!!”
빨려 들어가는 이클립스를 향해 다급하게 베르단데가 소리치지만 나는 도저히 그녀를 구할 수가 없었다.
“망할! 끝까지 애먹이네 진짜!”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더욱 빨리 신격을 봉인해 보지만 속도는 상당히 더뎠다.
본래 타나토스는 회색 기사가 빨아들이는 생명력을 이 살점 덩어리로 가득한 동굴에 모아 무언가를 하려 했다.
아마 타나토스가 내게 했던 말처럼 일출을 막으려는 것일 터.
태양은 프리아 여신의 힘이 직접적으로 닿는 통로라 할 수 있다.
그런 태양의 빛이 사라진다는 건 티오니스의 미래가 뒤틀린다는 뜻과 같다.
본래는 그렇게 프리아 여신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들고자 모았던 힘을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데에 사용해버린 것이다.
이미 망해버린 것, 이판사판이라는 뜻일까.
타나토스의 검은 안개가 나를 비웃었다.
“너와 나는 평행선이다. 절대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터. 보아라. 결국 파국이구나.”
타나토스의 이죽거림에 내 인상이 더욱 찡그려졌다.
이클립스의 영혼이 아직 남아 있는 육신을 이렇게 놓쳐버린다면…….
눈물을 흘리며 무형의 장막을 두드리는 베르단데의 모습에 쓴 맛이 목구멍 속에서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촤르르르르륵!!
더 많은 사슬이 타나토스의 신격을 붙잡아 카드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시간 안에 녀석을 봉인하는 건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신격이 가지는 최후의 발악은 너무도 질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타나토스와의 힘 싸움을 결국 포기 못 한 나는, 검은 균열 속으로 이클립스의 육신이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너, 곱게 뒤질 생각하지 마라.”
내가 싸늘하게 타나토스의 신격을 노려보았다.
이클립스의 육신은 결국 사라져버렸다.
붕괴하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을 테니까.
그녀의 영혼은 어쩌면 타나토스의 말처럼 영원히 고통받고 갈갈이 찢겨져 나갈 지도 모를 일이다.
눈앞에서 이클립스를 놓쳐버린 베르단데는 허망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아아아…… 안 돼…….”
“언니…….”
“안 돼…… 안 돼…… 아아아악!! 안 돼!!”
무형의 장막을 두들기며 절규하는 베르단데를 보며 타나토스의 저주가 쏟아진다.
“절규해라! 절망해라! 그것이 내가 느낀 절망과 분노, 증오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도록 더욱 더 고통스러워해라!”
“그 입 좀 닥쳐 개자식아.”
싸늘하게 노려보며 더욱더 힘을 가하자 사슬이 타나토스의 혼을 절반 이상 잠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오며 사슬이 끝내 타나토스의 신격을 완전히 먹어치워 카드에 봉인했다.
“절망의 끝에서 널 기다리마.”
끝까지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는 사라져버린 타나토스의 신격이 저항을 멈춘다.
타나토스의 신격을 회수한 카드위로 검은 낫의 그림이 새겨졌다.
약해질 대로 약해져 간섭의 힘은 완전히 잃고 그저 막대한 생명력에 불과한 신격이지만, 카드 속에 봉인된 타나토스는 나를 끝까지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붕괴하는 심연의 공간으로 끌려들어간 이클립스를 찾을 수는 있을까.
“아아아악!!! 흐아아앙!”
베르단데가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엉엉 우는 소리는 너무도 구슬프게 들렸다.
그그극…… 짜득!
“동굴이 무너질 거야. 저 살점 덩어리에 잡아먹히기 싫으면 당장 여기서 나가!”
그렇게 말하며 이실디가 베르단데를 끌어내려 하지만.
“놔!!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직!”
“일단 나가라고 이 멍청한 년아!!”
힘을 모두 소모해버린 것들은 스스로 사라진다.
더 이상 회색 기사와 이 살점 덩어리 동굴은 쓸모가 없었고 스스로 붕괴하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드린 채 절규하는 베르단데와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는 스쿨드, 그리고 곤란한 표정으로 갈라지는 동굴을 올려다보는 이실디까지.
카드를 멍하니 노려보던 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클립스를 구하는 건 결국 실패했다.
헤라클래스를 바라볼 면목이 없다는 느낌에 속이 쓰려왔다.
그가 신의 공간에서 보여준 모습은 사실 너무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오랜 시간 회랑에서 보낸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붕괴하는 심연의 공간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고 설사 그곳으로 간다고 해도 이클립스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미안하다.”
내가 베르단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구할 수 있었잖아!! 구해준다고 약속했잖아!”
“베르단데!!”
“불쌍한 우리 엄마……. 마지막엔 살려줄 수 있었잖아!”
진실을 모르는 베르단데는 마지막까지 내가 타나토스의 혼이 소멸하는 걸 막고, 봉인을 위해 이클립스를 포기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베르단데는 평소의 모습도 잃어버린 채 절규하며 내게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이미 한차례 나를 배신했기에 이런 행동조차 용납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지금만큼은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해줄 수 없었다.
그녀가 내비치는 슬픔이 너무도 깊었기 때문이었다.
이실디조차 그녀의 눈물과 절망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통곡을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베르단데의 눈물에 내 속마음까지 먹먹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진실을 알릴 수 없는 상황에선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의미는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나는 문득 이클립스가 끌려들어간 틈 사이 약해진 공간 너머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인상을 찡그렸다.
형이 거기서 왜 나와?
* * *
붕괴하는 검은 공간.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 이클립스는 타나토스의 영향에서 벗어났으나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끝이구나.
이미 육신은 죽은 이의 몸이 되었고, 그녀의 정신력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힘을 모조리 방출해내 지칠 대로 지쳐 부서져 내린다.
아주 미약한 움직임이 전부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자신의 상황을 알면서도 이클립스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붕괴하는 공간은 막대한 힘의 격류로 그녀의 육신을 시시각각 침식하여 부숴 나갔다.
영원히 고통받는 건 그녀로서도 두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데이비를 원망하진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결국 이클립스가 지키고 싶어 했던 그녀의 아이를 지켜내지 않았던가.
울드와 베르단데, 그리고 스쿨드까지.
‘그래도, 좀 무섭네.’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윽고 그녀의 육신이 완전히 입자화하듯 바스러지고 영혼만이 남았다.
반투명한 영체가 된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미 멈춰버린 육신에는 미련이 없었다.
설마 데이비가 정말로 이클립스 그녀와 타나토스를 분리해낼 거라곤 생각지 않았었기에 최소 육신을 가루로 만드는 것 까지도 예정하고 있었다.
‘각오했던 일이다. 받아들이면 돼.’
생각은 그렇게 하는데, 본능은 그것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곧이어 육신이 부서지면 영혼을 보호하는 그릇도 사라진다.
붕괴하는 공간과 함께 고대룡의 혼이 완전히 해져버릴 때까지 영혼이 갈라지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윽고 이클립스의 육신이 완전히 입자화되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육신에서 해방된 그녀의 영혼이 전부였다.
그렇게 일그러져 가며 그녀가 밀려오는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억지로 삼키려던 찰나였다.
그녀의 영혼의 귓가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뚜벅뚜벅하는 누군가의 발소리.
거의 움직이지 않는 목을 겨우 움직여 눈동자를 고정시켰다.
부서지는 공간 속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발소리의 주인공은 영혼만 남은 이클립스를 천천히 안아 들었다.
포근하면서도 익숙한 감촉.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1만년.
미쳐버린 시간 속에서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던 남자가 이제야 그녀를 찾아왔다.
“보고 싶었다.”
담담한 한마디였지만 그 한마디에 서린 마음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
“왜 이제야 온 거야…… 왜 날 그렇게 힘들게 한 거야…….”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투정이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품에 안긴 채 내뱉었다.
“미안하다, 이클립스.”
그녀의 혼을 끌어안은 채 사내는 그렇게 말했다.
이에 이클립스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그에게 안기며 말했다.
1만년 동안 생각은 수십, 수백 번을 했으나 한 번도 전해주지 못했던 한마디를.
“보고 싶었어……. 사랑하는 헤라클래스.”
“비록 널 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떠나는 길만큼은 너와 함께 해주마.”
이미 죽은 그녀와 이미 죽은 영웅.
두 존재가 그렇게 부서지는 세상 속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