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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26화 (825/1,559)

제 826화

광기의 폭주 여파로 무언가 내 몸 안에서 변화가 생긴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타나토스가 열었다가 닫아버린 균열 너머의 모습이 보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틈을 통해 나는 볼 수 있었다.

붕괴되는 심연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이클립스의 육신이 입자단위로 흩어지고.

그런 그녀의 육신에 갇혀있던 이클립스의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이 영원히 공간과 함께 붕괴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건 그리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두 번이나 목숨의 빚을 졌다.

그렇기에 그녀가 그렇게 끝없는 붕괴에 휩쓸리는 것은 반드시 막고 싶었다.

타나토스의 신격이 가진 남은 생명력을 모조리 이용하면 아주 잠깐 붕괴하는 심연을 지연시킬 수 있고, 그 틈을 이용해 차원을 찢어 그녀를 데려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재 생명력이 부족한 이 모든 차원의 수명을 늘릴 방법이 없게 된다.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포기하는 것이 맞지만, 그녀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응어리진 상태로 그녀를 포기하는 게 과연 내게 옳은 판단인가.

고민에 대한 해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영혼은 서서히 잠식되어가고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결국, 카드를 꺼내 손에 쥐어 힘을 방출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나의 행동은 카드를 집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멈춰졌다.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거구의 사내.

그를 보고 처음 느낀 감정은 놀라움과 안도, 그리고 의문이었다.

형이 거기서 왜 나와?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면 저 망할 배에 죽창을 꽂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친 얼굴로 헤라클래스의 품에 안겨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눈물을 흘리는 이클립스와.

씁쓸한 표정으로 소중한 듯 그녀를 품에 안아주는 헤라클래스의 모습에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이거면 됐습니다.”

그때 그가 누군가를 향해 말한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내 곁으로 내려선 존재가 천천히 나를 지나친다.

륀느와 흡사하지만, 륀느가 아닌 존재.

이 세상의 근원, 프리아 여신이었다.

그녀의 강림 이후 세상은 멈췄다.

그제야 나는 주변의 시간이 완전히 멈춰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신격을 얻었기 때문이리라.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침묵하는 그를 향해 다가간 프리아 여신은 곧 그녀의 등 뒤로 돋아난 날개를 이용해 두 사람을 감싸고는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헤라클래스와 이클립스의 영혼이 서서히 흩어지며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약속,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프리아 여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사라진 직후 그녀는 완전히 붕괴하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와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 둘은 소멸한 겁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츠츳!!!

[너 뭔데 남이 멱감는 걸 쳐보고 x랄이야 안 꺼져?]

[누가 보고 싶어서 봤댔나. 급한 회의가 있으니 농땡이 피우는 빌어먹을 도마뱀을 잡으러 온 것뿐이다.]

[숨지고 싶어? 명줄 끊어줘?]

[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망할 파충류 년이.]

[하…… 됐다. 약해빠진 홀른과 내가 뭐 하는 짓인지.]

아주 잠깐이었다.

달빛을 받는 호수의 중앙에서 몸을 씻던 작은 소녀와 그런 소녀를 향해 대놓고 짜증을 부리던 거구의 사내의 모습이 환각으로 보이는 듯했다.

[이쪽이야.]

[이쪽이다.]

[넌 사사건건 내가 말하는 건 반대로 외치더라?]

[내가 할 말이다. 이년아!]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클립스와 헤라클래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아득바득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가만히 있어!! 부상이 큰 거 안 보여?! 내가 분명 말했지! 절대 가지 말라고!]

[하하하하하 쿨럭, 살았으면 된 거지. 넌 평생 내게 고마워해야 할 거다!]

피투성이가 된 헤라클래스와 그런 그를 부둥켜안고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 이클립스의 모습이 보였다.

환각은 계속되었다.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보는 것들, 처음 보는 종족까지.

아마 오래전 존재했던 고대문명의 인간일 것이다.

[혼인? 돌았어요?]

[저 성질 더러운 쥐방울이랑 결혼을 하라고? 미쳤습니까?]

[누가 쥐방울이야! 숨지고 싶어?!]

[여기 쥐방울이 너 말고 누가 있냐! 나는 절대 못 합니다! 종족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차라리 다른 고대룡과…….]

[이 나쁜 새끼야!!]

빠악!!

헤라클래스의 뺨을 쳐올리며 도망쳐버리는 이클립스의 모습.

그 후로도 많은 장면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하는 모습까지 말이다.

[기다릴게. 네가 만들어낸 평화는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 그러니까 너무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게 하지 말아줘…….]

슬픈 목소리로 파괴된 평야를 바라보는 이클립스의 모습을 끝으로 환각은 끝이 났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헤라클래스의 생전 모습이었다.

내 손을 잡아주었던 프리아 여신의 얼굴은 차가울 정도로 무표정이다.

무표정이되 감정이 읽히는 륀느와 다르게 그녀는 정말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깊은 눈동자에 나를 담은 그녀가 이내 조용히 손을 떼어낸다.

그리고는 천천히 날아오르듯 사라졌다.

멈춘 시간은 본래대로 돌아갔고 멍하니 프리아 여신의 등장을 지켜보았던 나는 절규하며 울고 있던 베르단데에게 다가갔다.

“준비해. 의식을 치를 거다. 이번엔 너도 도와.”

“흑…… 흐흑…….”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엉엉 우는 그 모습에 이실디가 눈치를 준다.

“넌 눈치도 없냐? 아무리 그래도 슬퍼할 시간은 줘야…….”

“천수 다 누리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죽은 영혼을 두고 슬퍼하지 마.”

“웃기지 마!!”

내 대답에 엎드려서 엉엉 울던 베르단데가 막대한 힘을 담아 내게 소리쳤다.

“천수를 다 누려?! 어머니는 1만 년 동안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갇혀있었어! 그렇게 고통만 받고 끝내 영혼조차 구원받지 못…… 뭐라고?”

악에 받쳐 소리치던 그녀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본다.

“방금…….”

“헤라클래스가 그녀의 영혼을 구했다고.”

내 대답에 그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빠는 분명……”

“죽었지만 이클립스를 두고 그냥 떠나갈 순 없었겠지.”

이클립스가 1만 년 동안 심연을 감시하며 기다렸다면.

헤라클래스는 그 시간 동안 그녀를 구할 방법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어쩌면, 그 또한 세상의 구원 따위보다 이클립스의 구원을 위해 움직였던 것이 아닐까.

프리아 여신이 내게 그런 환각을 보여준 것은 그와 내가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와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

결국은 비슷한 결정.

비슷한 결말.

달라질 수 있을까.

복잡한 상념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마치 세상 전체에 목소리를 내리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틀림의 조율을 마친 태초의 성자에게 신의 뜻으로 축복을.]

비단 나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들리는 목소리.

계시는 다름 아닌 프리아 여신의 계시였다.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지독하게도 오랫동안 충돌해온 심연이 끝을 고했다는 것을 말이다.

털썩 주저앉은 채 내가 이실디를 향해 말했다.

“나 좀 옮겨주라…… 몸이 안 움직인다.”

빈말이 아닌 사실이었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현재의 나는 만신창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결혼식을 올린 주제에 아직 초야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고, 처음부터 계속해서 나를 믿어주었던 페르세르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본래의 내 자리를 되찾아야 했다.

그런 내 말에 이실디는 짜증스레 나를 보더니 이내 나를 어깨에 둘러메고는 들어 올렸다.

“거…… 참 모양 빠지네.”

“조용히 해. 나도 기분이 좋진 않거든?”

쿠웅!!!!!

무너지는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볼 수 있었다.

자욱하던 안개를 모조리 밀어내며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 것처럼 높게 솟아오르는 거대한 에너지의 기둥이 이 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말이다.

그 힘은 너무도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빛이었다.

* * *

쿠웅!!!!

땅에서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회색의 기사들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어지간한 크기여야 소드마스터나 마법사들도 유효타를 먹이지 이 정도로 거대한 사이즈라면 사실상 처리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큰 갑옷기사든 작은 갑옷기사든 죽이는 족족 그 일대를 죽음의 늪지대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은 제대로 대응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갑옷의 기사들이.

쿠웅!! 쿵!!

무너지기 시작한다.

마치 그들을 구성하고 있던 에너지가 모조리 소실된 것처럼 바스러진다.

작은 갑옷기사들은 물처럼 녹아내려 사라져버렸고 거대한 갑옷기사들은 각각의 갑옷 부품들이 분해되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티오니스 대부분 국가들이 이번 사태에 싸움보다는 영토를 포기하고 도망을 택하고 있다.

몰릴 대로 몰려있던 이들은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건만 최후의 순간에 기사들이 자멸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리나가 이끄는 화이트 버드. 삼 제국을 비롯한 각 국가의 병사들.

알게 모르게 대륙 각지를 누비며 이번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한 라스트 위스프 비밀기사단.

수많은 마탑과 각 학파. 성국의 파견 신관들까지.

마치 대륙의 종말을 앞둔 것처럼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은 셀리샤 호수로부터 쏘아져 올라가는 거대한 빛의 줄기와.

세상 전체에 퍼져 나가는 거대한 무지갯빛 파장.

그리고, 그 파장에 노출된 모든 회색의 갑옷기사들이 죽음의 늪지대조차 만들지 못하고 바스러져 사라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것은 마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른 종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고립되어있던 마족들을 구한 것은 놀랍게도 고대마수 중 하나인 보팔레빗.

그 근육에 미친 토끼들의 난입으로 공격을 저지하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는 충분히 존재했다.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닌 고대 마수라도 갑옷기사들을 죽이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걸리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대한 산맥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고.

그 빛의 파장과 함께 마족들을 시시각각 압박하며 위협하던 갑옷기사들이 바스러져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족들도 멍하니 그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신성한 계시와 함께 이 모든 사건이 종식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알리타 님…… 방금 그 계시는…….”

“아마 인간들이 모시던 프리아 여신이겠지.”

알리타도 진실은 알고 있다. 마족이 모시는 마신이 사실은 인간이 따르는 신인 프리아 여신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하…… 산 거야?”

무기를 지팡이 삼아 서 있던 마족의 중얼거림에 알리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산 건 확실한 것 같네…….”

이날을 기준으로 대륙 모든 곳에서 심연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어머니!!!”

일리나를 향해 허겁지겁 달려온 케인이 그녀의 품에 그대로 안겨든다.

“타나토스가!! 타나토스가 소멸했어요!”

케인은 두 개의 인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인격은 데이비와 함께 작업을 하던 인격이 아닌 일리나를 어머니로 모시는 지극히 철없으면서도 아이 같은 성정을 가진 인격이었다.

내면의 다른 인격과 다르게 상당히 능력이 부족한 케인의 호들갑에 일리나는 검지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알고 있어. 케인.”

“네?”

놀란 케인의 물음에 그녀는 말없이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잠들어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데이비 올 라운. 라운 왕국 1왕자이자 계승권을 포기하고 대공이 된 그였다.

“지금은 데이비가 잘 수 있게 조용히 해주겠니?”

그 말에 우물쭈물하던 케인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다가간 홍단이와 청단이가 동시에 검지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쉬이…….”

“쉬이…….”

두 아이의 그런 앙증맞은 행동에 멍하니 있던 케인은 두 눈을 껌뻑거렸다.

“신격을 얻은 존재도 꿈을 꿀까요.”

그때 너무도 평온하게 잠든 데이비를 보며 에이리아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렇지 않을까.”

“그럼 데이비 오라버니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계실까요?”

그 물음에 세 명의 소녀는 모두 침묵한 채 잠든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악몽은 아닌 게지.”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데이비의 잠든 표정은 짐을 덜어낸 것처럼 너무도 편안하게 잠들어있었다.

“저토록 편안하게 잠든 적이 잘 없었나 봐요.”

“아마 데이비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페르세르크의 대답에 일리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그런데…… 벌써 해가 지는 시간인가요?”

“응?”

“왜 바깥이…….”

아직 하늘이 환해야 할 시간이건만.

어째서 노을이 지고 있는 것인가.

에이리아의 질문에 세 소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태양이 힘을 잃고 약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바깥의 하늘은 주홍빛으로 가득했다.

“분명 데이비가 돌아왔을 때…….”

타나토스가 일출을 막으려 했지만, 그것도 저지하기는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벌써 해가 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그녀들이었다.

“뭔가…… 뭔가 빠진 건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지.”

진실은 후자에 가까웠다.

3년 남은 세상의 붕괴 전조.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겐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붕괴되는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데이비가 본래 신격을 해방하여 세상의 모든 문명을 리셋시켜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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