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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27화 (826/1,559)

제 827화

아직 환해야 할 시기임에도 노을이 진다.

티오니스 대륙에선 태양신 사일러스가 빛을 잃었을 때. 프리아 여신의 축복에 문제가 생겼다고들 말한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데이비 왕자의 말에 따라 도망치고 또 도망쳤습니다! 그로 인해 생긴 피해는 말 못 할 수준이지만 그가 해온 업적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빛을 잃고 있어요!”

적이 사라짐과 동시에 태양이 빛을 잃는다.

그 말인즉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일맥상통한다.

예로부터 태양이 빛을 잃는 건 상당히 안 좋은 징후로 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 상황에 대해 언급을 해주어야 할 데이비는 며칠째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성자 데이비 올 라운 왕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받아야…….”

“그만 진정들 하세요.”

가만히 있던 살리반 황태자가 빙그레 웃으며 좌중의 시선을 모았다.

“그렇지 않아도 성자 데이비 왕자에게서 이번 사태에 관한 서신을 전해 받았습니다.”

“아니 그의 자리는 공석입니다! 이 중요한 상황에 그는 참석조차 하지 않고 대체 무엇을 한답니까!”

“진정들 하시고. 들라 해라.”

살리반의 말에 곧 시종과 시녀들이 들어오며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가져와 각국의 국왕 혹은 국왕 대리인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이게 무엇이오?”

“하인스 영지의 근처에 있는 엘프숲인 달의 숲에서 직접 만든 간식이라 하오. 이번 사태에 직접 참가하지 못하여 미안하다며 물건을 보내왔습니다.”

“흥! 그런 뇌물 따위…….”

“뇌물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곧 서신에 적힌 시간이 될 때가 되었군요.”

“시간 말입니까?”

“예.”

그렇게 말한 살리반이 창밖을 본다.

대낮의 시각에도 노을이 져 있던 하늘이 보였다.

“대체 뭘 말하는 건지…….”

“헙! 하…… 하늘이!”

그때 놀란 듯한 국왕이 소리치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노을이 져 있던 하늘이 본래대로 되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무슨…… 황태자,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나 또한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성자가 빛의 용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군요.”

“크흠!”

가장 큰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돼 버린 것이다.

“참 웃긴 일이로군.”

“무…… 무엇이 말입니까.”

“정작 당신들이 이 탁상에 앉아 공론만 펼치고 있는 와중에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공헌을 내세운 이는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고 있지 않나.”

“그…… 그것은…….”

“그런 마당에 직접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그저 그를 닦달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 이전에도 대륙의 성자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데. 그가 그리 아니꼬운가?”

“그…… 그건 아니오만…….”

“그럼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봐서라도 믿고 기다려야지.”

“큭…….”

그렇게 말하며 콘타스 대제는 심드렁하게 시녀가 가져다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꽃잎 모양의 독특하게 생긴 간식이 들어있었다.

“호오…… 맛이 기가 막히는군.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들은 바 없소?”

“저도 잘 모르겠군요. 다만, 달의 숲의 수장이 직접 만든 것이라 합니다.”

“호오…….”

그 말을 들은 콘타스 대제는 마음에 든다는 듯 그것을 주섬주섬 집어먹었다.

이에 분위기에 편승하듯 몇몇 국가의 수장 또한 그것을 천천히 집어먹었고 하나같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호오…… 맛이 정말 좋군요. 향이 그윽하고 깊은 맛이 납니다. 대체 무엇을 재료로 쓴 건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감탄사를 보며 살리반 황태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린디스 황제를 바라보았다.

데오르트 황제 또한 눈을 감은 채 손조차 대지 않고 있다.

그 모습이 위엄을 높여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 진실은 달랐다.

저 늙은이…… 이게 뭔지 아는구나…….

흥, 아직 10년은 멀었다. 애송이 놈.

데오르트 황제와 살리반 황태자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달의 숲이라는 엘프숲에서 온 간식이라면…… 이것은 분명…….

괴식이다!

실제로 유리아 헬리샤나라는 달의 숲 수장은 맛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기괴한 재료를 죄다 사용하기로 유명하니 말이다.

실제로 이것의 재료가 뭔지 두려워 묻진 않았지만. 과거 데이비가 선물이라며 가져온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던 빵은 숲의 요정용들의 타액을 이용해서 만든 음식도 있었다.

쉽게 손이 갈 수 없다.

그래도 멀쩡한 사람 하나 갈아 넣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그래도, 귀뚜라미 날개를 우린 차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그들이었다.

“왜 드시지 않는가. 먹어보시게 맛은 좋네.”

상황이 해결되어버리자 콘타스 대제는 한껏 느긋한 태도로 일관하며 살리반 황태자에게 권해왔다.

하지만 살리반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나중에 따로 들지요.”

“늙은이도 그럴 생각이오?”

“흥. 늙으면 단것보단 신 것이 끌리는 법이다.”

“웃기는 소리.”

킥킥거리던 그가 입을 우물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잠깐…… 이거 내용물이…….”

그의 행동에 데오르트 황제의 표정이 굳는다.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군! 하하하하하하!”

아무래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 * *

대량의 생명력이 소모되며 뒤틀린 세계의 흐름이 본래대로 되돌아온다.

홀로 거대한 산맥의 용혈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감았다.

3년.

앞으로 이 세상이 남은 수명이다.

세상이 심연처럼 완전히 붕괴하고 신도, 생명체도, 개념도 남지 않는 완전한 허무로 변하는 데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타나토스 신격의 존재와. 대량의 생명력 고갈.

이미 티오니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세계는 생명력이 고갈되기 직전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고갈되어 가시적인 문제가 발생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3년.

그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기에 완전히 3년이라 칠 순 없지만 적어도 회랑의 영웅들이 만들어준 소중한 3년의 시간은 내게 중요한 시기였다.

우선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태양 빛의 약화는 타나토스 신격을 이용해 어느 정도 채웠지만, 타나토스가 가지고 있던 생명력만으로 시간을 늘린다는 건 사실상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도 가진 힘은 한계가 존재하는 법. 생명력이 순환하며 다시 생산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끝은 확실했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 봐야 하는데.”

타나토스와의 싸움이 끝난 이후 며칠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던 나는 약속한 대로 일리나와 에이리아 두 사람과 초야를 치렀다.

허둥지둥거리던 두 사람이었지만 도중에 에이리아가 나인테일의 본능을 각성시켜버린 것 때문에 상당히 곤혹을 치른 것도 사실이었다.

요망함의 상징이라 불러도 될 만큼 스펙터클한 경험이지만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물론 공식적인 국혼인 만큼 겉치레에 불과한 결혼식을 치러야 하지만 그건 과정일 뿐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 뻗어버린 두 사람을 뒤로한 채 페르세르크가 직접 싸준 도시락을 들고 나섰다.

현재 대륙에 생명력이 극도로 부족해지기 시작한 장소가 여럿 존재한다.

본래라면 이런 규약적인 문제는 신적인 존재에게 직접 묻는 게 맞지만, 현재 넬타리드는 지구의 복구에 여념이 없다.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뒤바뀌어있으니 말이다.

결국, 꿩대신 닭이라고, 세계수 알을 통해 티오니스 내부에 생명력이 부족한 부분을 찾아 타나토스의 신격 중 타락하지 않은 생명력만 뽑아내 쏟아부어 복구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여긴 됐고.”

일찍 들어오라며 나를 보내준 페르세르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얼른 끝을 내야 하건만, 대륙 각지엔 현재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티오니스뿐만 아니라 생명력 고갈 현상은 타 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유르기안이나 천중원, 지구는 물론, 아직 살아있는 베르델이나 마법 대륙 아트렐리아 까지 말이다.

물론 타 차원까지 마음대로 넘나들며 생명력까지 쏟아붓기엔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터라 케인에게 절대보옥을 이용해야 했다.

[의식 준비됐는데…… 정말로 이렇게 합니까?]

의문이 서린 질문에 나는 손을 귀에 가져다 대고 긍정했다.

“까라면 까.”

[후우…… 정말 이제 와서 절대보옥을 이런 곳에다 쓴다니 알다가도 모스겠습니다. 다만, 이번 일을 끝내면 프레이아는 지구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저 또한.]

케인과 프레이아는 발키리아 종족으로 넬타리드의 피조물이다.

당연히 지구의 신인 넬타리드에게 돌아가는 게 맞다지만.

“일리나에겐 한마디도 안 했지.”

[…….]

“하고 가라.”

[그건…….]

고민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손을 좀 거들어줘야지.

“뒤지기 싫으면.”

[꼭 말하고 가겠습니다.]

그래. 처음부터 그랬으면 어디 좀 좋으냐.

일리나는 의외로 심성의 변덕이 심한 편이다. 그 정도는 해야 하리라.

[언제는 관심도 없는 척하더니…… 알겠습니다. 시작하지요.]

절대보옥의 의식을 치르는데 방해꾼은 없다.

이윽고 케인이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하는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격을 얻은 뒤로 세상의 에너지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 탓에 하인스 영지와 한참 떨어진 이곳에서도 그 격류가 확실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힘의 격류는 곧이어 티오니스를 포함한 다수 세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차원의 벽이 옅어지고 에너지가 순환하기 시작한다.

절대보옥이 가진 힘은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남은 건 이놈으로 최대한 해결을 봐야 한다는 건데.’

타나토스의 신격을 이루는 거대한 생명력은 수많은 차원의 수명을 강제로 늘려줄 수도 있는 수준의 방대한 양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촤라락…….

타나토스의 신격이 봉인된 카드의 면은 여전히 검은 낫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서 대량의 생명력을 뽑아내 이 세상을 이루는 근간인 거대한 에너지 혈맥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걸 왜 하는 겁니까?]

“몰라도 된다니까.”

[그냥 말해주면 어디 덧납니까. 타나토스 신도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뭐가 그리 바쁘다고.]

투덜거리는 케인과의 연락을 끊은 채 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생명력이 거대한 흐름에 완전히 녹아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좀 찾아야겠다.”

케인의 의식이 완성된다.

곧이어 대륙 전체를 넘어 전 차원에 어마어마한 무형의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신력을 끌어올려 공간을 찢어발겼다.

목적지는…….

이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붉은 공허에서 튀어나온 괴물로 인해 멸망해버린 세계.

음악의 영웅 뮤트와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고향인 페스리사 대륙이다.

그곳에.

아무도 모르는 땅에 숨겨진 데스 로드의 유산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마법 대륙 아트렐리아와 페스리사 대륙, 하다못해 과학적으로 발전한 유르기안 대륙의 정보까지 모조리 찾아 뒤져봐야 했다.

그중에서 현재 가장 문제가 생기지 않는 곳이.

바로 멸망한 페스리사 대륙이다.

“데이비 님.”

이윽고 나를 따라왔던 륀느가 조용히 걸어왔다.

륀느는 그저 내가 변덕에 무언가를 한다고 알고 있다.

“안 따라와도 돼.”

“륀느의 소유자 데이비 님. 데이비 님이 가는 곳은 륀느가 간다고 명시해.”

“그래.”

이제야 위험할 일도 없다지만 멸망한 세계에 뭐 볼 게 있다고 페르세르크나 다른 이들을 데려가겠는가.

이윽고 공간이 완전히 열리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고, 륀느는 그런 나를 따라 쪼르르 날아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파츠츠츠츠츳!!!

약해진 균열은 어떤 과부하도 걸리지 않았다.

폐허로 추정되는 수많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페스리사 대륙은 마법이 상당히 발전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기왕 페스리사 대륙에 온 김에 부족해진 생명력을 꽉꽉 채워 넣는 것도 잊을 순 없었다.

그때였다.

그르륵…… 그륵…….

갑작스레 들려온 기괴한 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폐허가 된 건물 사이로 붉은 안광을 지닌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먹잇감 보듯 바라보는 그 모습에 저놈들이 무엇인가 한참 동안 생각했을까.

그 인간도 괴물도 아닌 무언가가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앙!!! 푸쉬이이이이익!!!

그때였다.

내 앞으로 날아온 기이한 도구가 이내 회전하듯 열리더니 특유의 마법진을 출력하며 검은 안개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흑마법인 다크포그 마법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 나와 내 손을 낚아챘다.

“따라와! 여긴 위험해!”

다급한 목소리로 소년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저놈들에게 잡히면 산채로 온몸이 갈가리 찢겨나갈 거야!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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