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9화
이상할 정도로 페스리사 대륙은 생명력이 풍부했다.
올바르게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기보다는 다른 무언가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유스트가 완전히 고깃덩어리가 되고 나서야 나는 녀석이 말한 비취탑의 지하 비밀 서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먹을 식량을 찾다가 이곳에서 인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마법 서적이 들어있다.
나름대로 비밀의 서고에 있던 책들이니 비취탑이라는 이곳의 비전이나 다름없을 터인데.
“끄윽…… 끅…….”
고통에 신음하는 유스트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염동 마법을 일으켜 낡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사령 마나 그 심도 있는 분석에 관한 고찰.]
“흐음…….”
한번 본 것은 모조리 기억한다는 건 좋든 싫든 큰 영향을 미친다.
이곳에 남아있는 서적은 약 수백 권.
하지만 내가 원하는 연구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물론 아예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재 페스리사 대륙에 창궐해있는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조사해둔 수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원초적인 내 목적에 어쩌면 부합할지 모를 그런 수기를.
변이체.
괴인.
그리고.
“추락자라…….”
페스리사 대륙에 나타난 붉은 공허의 에너지가 사령 마나와 뒤섞이며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고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변화시켰다.
첫 번째가 변이체.
인간의 이성을 지니고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륀느의 원고리나 날개처럼 조금 특수한 변화를 겪은 이들이 변이체였다.
그리고, 괴인이라 칭하는 건 내가 처음 봤던 그 괴물들을 일컫고 있었다.
붉은 안광에 검은 덩치를 지닌 2~3미터에 달하는 존재들. 유스트가 나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것들도 괴인 중 하나였었다.
인간의 혼을 지니고 있으나 이성이 날아가 버린 존재들이다.
마지막으로 추락자.
변이체중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사람이나 변이체를 잡아먹어야 하게끔 변해버린 괴물.
유스트가 바로 그 해당사항이었다.
물론 페스리사 대륙의 꼴이 이 지경인 건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유스트라는 저 추락자도, 내가 만난 괴인도 모두가 상당히 방대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보통 일개 생명체가 품기엔 그 양이 너무 많았지?”
어쩌면 이 변화에 생명력의 증폭에 관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서 건질 건 더 없네.”
딱 한 가지.
세종류의 변이체에 대해 연구를 했다는 사파이어 마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어이, 사파이어 마탑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나?”
내 물음에 유스트가 바짝 얼어붙은 채 대답했다.
“이…… 이곳에서 서쪽입니다! 서쪽에 마탑이 하…… 하나 있…….”
“발포!!!”
그때였다.
갑작스런 외침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흑마법 폭격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반사적으로 장막을 펼친 륀느와 다르게 나와 유스트는 그대로 마법에 휘말렸고 이내 비취 마탑이 박살 날 정도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쾅!! 쾅!!
마치 절대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마법을 쏟아붓길 한참.
“발포 중지!”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마법이 멎어 든다.
“해치웠나?”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들을 향해 나는 손짓을 연기를 걷어냈다.
장막을 펼친 륀느가 내 앞을 막아섰다.
“변이체?!”
놀란 얼굴로 장막을 펼치고 있는 륀느를 바라본 이들이 소리쳤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죽은 놈도 되살리는 민간신앙인데.”
“너…… 넌…….”
나를 향해 소리치는 건 검은 로브를 입은 이들이었다.
괴인도, 유스트처럼 추락자와도 다르다. 독특한 유전자 변이.
아, 저놈들이 유스트같은 추락자와 대치 중이면서 괴인이 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인류, 변이체구나.
“세상에 그 포격을 버텨냈다고?”
저들끼리 경악하는 모습에 나는 조용히 륀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스트는 방금의 마법에 휩쓸려 소멸한 게 보였다.
하나같이 4서클에서 5서클 급 마법의 위력이다.
이윽고 나와 륀느를 포위하듯 모여든 로브의 인영들이 내게 스태프를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라. 추락자, 섣불리 행동했다간 마탄을 꽂아 넣을 테니.”
위협하듯 다가온 이들은 곧 유스트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나와 륀느의 팔에 구속구를 채웠다.
“저…… 분대장님, 저, 이 아이는…… 저희와 같은 변이체 같은데요.”
“그건 조사해보면 알겠지. 다만 이자는 추락자가 분명하다.”
단언하는 꼴을 보고 다시 로브의 인영들을 바라본다.
인간과 매우 흡사하지만, 모두가 특징이 달랐다.
인간과 다른 무언가라는 소리였다.
반대로 유스트는 겉보기엔 인간과 매우 흡사했던 만큼 저들의 입장에선 내가 추락자로 보일 수밖에.
“생존자는 없다고 했는데.”
“닥쳐라!”
내 외침에 씩씩거리며 다가온 한 명이 내 멱살을 틀어잡았다.
“가증스러운 추락자 새끼들! 너희 추락자 새끼들 때문에 죽어 나간 사람이 몇인 줄은 알고 있냐!”
“그거야 나는 모르지.”
내 대답에 그가 더욱 역정을 내려 했다.
“그만! 고쉬! 이자는 추포하고 저 소녀도 데려간다. 확인하고 추락자라는 게 확실해지면 처형해도 늦지 않아.”
“그래서. 어디서들 오셨나.”
내 물음에 리더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조용히 답했다.
“네가 알 거 없다.”
“사파이어 브로치를 달고 있는 걸 보니 사파이어 마탑 출신인가?”
내 물음에 리더가 흠칫한다.
그럴 수밖에 내가 보고 있는 건 저들의 로브 안쪽의 옷이었다.
그리고 그 옷에는 하나같이 푸른색의 보석이 박혀있다.
“네놈…….”
경계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시선이다.
이에 륀느가 손에 채워진 구속구를 그대로 비틀어 부수며 내 앞을 막아서고는 그들을 향해 크로우바를 겨누었다.
“륀느, 됐어.”
녀석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사파이어 마탑 생존자? 아니지 생존자라고 하긴 좀 애매하네. 이미 변해버렸으니.”
애초에 이 땅에 인간이 남아있는가.
“네놈…… 정체가 뭐지?”
“여행자다. 마침 사파이어 마탑에 볼일이 좀 있었는데.”
“뭐라고?”
“안내 좀 해주겠나?”
빙그레 웃으며 요구하자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한다.
변이체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해둔 게 있다면 내가 직접 조사할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페스리사 대륙은 티오니스나 다른 대륙과 다르게 생명력이 부족해진 땅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곳을 이렇게 변이하게 만든 것들이 관련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아비트에게 물어본들, 그는 문을 지키는 중재자일 뿐 공허 내부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니까.
“웃기는 소리 마라 추락자!! 분대장! 위험한 자입니다 여기서 처리하고 가심이!”
다들 당황하여 소리치지만, 분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나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행자? 그런 속 편한 직업이 아직 남아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네가 추락자가 아니라면 인간이라는 소리인데, 이 땅에서 인간은 이제 없다.”
그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에 채워진 구속구를 짤랑짤랑 흔들었다.
“내가 추락자였으면 당장 당신들 전부 죽었어. 저거 보면 답이 안 나오나?”
륀느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우리 륀느가 좀 많이 난폭하니까 빨리 선택해줄래? 이쪽도 시간이 별로 없는데.”
고작 3년.
길어 보이지만, 절대 길지 않다.
만약 여기서 내가 원하는 해답을 찾지 못하면.
그땐 다른 수가 없게 된다.
방해되는 이들을 전부 처리하고, 직접 찾아간다.
가급적이면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상 도와주고 싶은 심정도 없는 건 아니었다.
“나쁜 거래는 아닐 거야. 이래 봬도 제법 마법 실력이 있거든.”
“흥! 네깟놈이 마법을 부려봤자지! 마나 한 줌 없는 놈이 마법은 무슨 마법을 부린다는 것이냐!”
“분대장님! 이자의 말을 믿으실 겁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자를 데려간다.”
* * *
“받아라.”
내게 검은 로브를 건네준 중년 사내가 말했다.
“대기 중에 퍼진 바이러스는 주기적으로 인체에 침입하고 변이를 일으킨다. 막대한 힘을 주지만 과거 인간의 모습을 점점 잃게 만들지.”
“이렇게 된 게 언제부터지?”
내 물음에 그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걸 모를 수가 있는 건가?”
“우리가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10년 조금 안 되었다.”
10년이라…….
10년 만에 모든 생명체가 변해버릴 정도의 바이러스가 퍼졌다.
륀느와 함께 검은 로브를 걸쳐 입자 그는 나를 조금 독특한 비공정에 태웠고 이내 빠르게 날아올랐다.
결국, 그들이 비취 마탑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곳에 보관된 마법 학술서들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는 모양이었다.
내가 방어 마법진을 전부 해제시켜버린 탓에 쉽게 들어온 것이고.
“신원을 밝히시오.”
“제7 유격 마법 병대 분대장 홀리곤이다. 임무 복귀 및 거수자 둘을 체포해 왔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 도착한 곳은 거대한 탑을 기준으로 펼쳐진 작은 촌락이었다.
마탑에 도착하기 전 주변을 감싸는 도시가 있었지만, 그곳의 상태 또한 내가 처음 도착한 곳과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제법 많은가 보네.”
“추락자와 괴인을 제외한 생존자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있으니까.”
그 수는 약 2천여 명 겉보기엔 인간과 큰 차이가 없지만, 책에서 나온 대로 변이체가 된 인간들은 하나같이 보통 인간과 다른 특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날개, 혹은 꼬리. 그 외에 뿔 같은 점을 말이다.
딱히 특별해 보이진 않지만 내 흥미를 끄는 요소도 분명 존재했다.
생명력이 과할 정도로 많다.
과포화 상태라고 할까.
페스리사 대륙의 크기를 생각하면 2천여 명은 거의 멸종 수준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생존자가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들어가라. 추락자를 구분하는 시스템이다.”
“재밌네. 뭐로 판단하는 건지 물어도 되나?”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
그의 말에 나는 특이한 감지 장치를 스윽 둘러보았다.
마법진의 형태를 대충 분석해보면…….
“생명력 분포 감지라…….”
내 중얼거림에 몇몇이 흠칫거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추락자라는 판단이 내려질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삐익!
“정상…… 아니 이게 무슨?”
장치를 점검하던 자가 눈을 부릅떴다.
“무슨 일이지?”
“두…… 두 사람 다 정상 수치…… 입니다.”
“그게 이상한가?”
“정상 수치라구요! 저희와 다르게 완전히 본래의 인간 그대로의 생명력입니다!”
그 외침에 홀리곤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건…….”
“어쩌면 이 자들에게 저희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모릅니다! 놀랍군요! 대체 이들을 어디서…….”
“비취 마탑에서 찾았다. 추락자와 함께 있더군.”
“추락자와…….”
고민하던 마법사들이 꼬리를 휙휙 움직이더니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따라와라.”
그리고 그런 복잡함 속에서 홀리곤은 나를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네가 추락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왜 추락자와 함께 있던 거지?”
“당신네들이 죽인 그놈이 추락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이었으면 어쩔뻔했나.”
“이 세계에 너희 같은 인간은 없다. 우리도 오랜 시간 찾아 헤맸지만, 추락자를 제외하고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건 없었어.”
본래라면 날개와 원고리를 가진 륀느를 제외하고 나 또한 추락자로써 의심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치는 나를 인간이라고 말했다.
담담한 대답에 그는 나를 흘끗 보고는 물었다.
“알고 싶은 게 정확히 뭐라고 했지?”
“변이체와 괴인, 추락자에 대한 연구를 이곳에서 했다고 하던데.”
“그걸 왜 알고 싶은 거지?”
“나름대로 중요한 문제라. 그래서. 알려줄 수 있나?”
“거래를 하지. 네가 가진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나 또한 변이체와 괴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수석 마법사님께 널 소개해주겠다.”
“좋아. 다만 그전에 이쪽이 먼저 알아야겠어.”
“이봐 여긴 우리 생존지다. 네가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싫으면 그만두자고.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지만 그게 싫다면 직접 돌아다니면서 추락자와 괴인들을 연구하는 수밖에.”
그나마 이곳은 장비가 있어 보이지만 차원 이동은 내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내 대답에 그가 나를 한참 동안 노려본다.
“그만두게 홀리곤.”
“장로님.”
“그자인가? 생명력이 과다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인간.”
“예.”
“흐음…… 마나는 느껴지지 않는데…….”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노인은 대략 6서클 정도의 마법사로 보였다.
6서클 마법사는 티오니스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수준이지만 역시 마법 대륙 아트렐리아와 비슷한 대륙답게 상당히 실력이 있어 보였다.
“반갑네! 소식을 듣고 급히 연구실에서 뛰쳐나온 참이네. 나는 슈바이츠 라고 한다네. 자네는?”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이쪽은 륀느고요. 일단 제 호위입니다.”
“호위를 대동한다라…… 이름만 들으면 어디 고위귀족자제 같은데…… 맞는가?”
“비슷합니다.”
내 답변에 그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온전한 사람이라지.”
슈바이츠 또한 머리에 뿔이 돋아나 있는 편이었다.
“사실 오랜 시간 본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연구를 해왔네만. 진척이 없어서 말일세. 자네가 필요한 걸 내가 알려줌세. 대신 자네는 내 연구를 좀 도와줄 수 있겠는가.”
“슈바이츠 님! 아직 안전한지 확실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는 감을 믿네. 이자, 추락자와는 확연히 달라. 뭔가 신성하고…… 그런…….”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대답했다.
“어쨌든.”
“좋습니다. 가능하면 뭐라도 좀 건졌으면 싶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마탑의 내부로 들어서자 전문적인 마법사 로브를 입은 이들이 다수 보인다.
대부분이 흑마법사 계통의 인물들이었다.
“슈바이츠 장로님. 어디 계셨습니까! 한참 찾아다녔잖습니까.”
“호오 탄이로군. 미안허이. 그런데 무슨 일로?”
“아니! 학회가 한창인데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그의 외침에 슈바이츠가 깜짝했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허어, 깜빡하고 있었구먼. 미안하네. 조금 있다가 해도 되겠는가? 아니지 아니야. 자네가 조금 도와주었으면 하네.”
그리 말하며 그는 학회가 열리고 있는 커다란 실내로 나를 안내했다. 동시에 곱지 않은 수많은 시선들이 나와 슈바이츠 장로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추락자?!”
경악한 목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