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1화
236. 떠오르는 달 절망의 끝에서
태초 정령.
정령계 그 자체이며, 정령왕을 유지하는 자연 에너지를 구성하는 원자.
본래라면 태초 정령은 저런 거대한 육신을 가지지 않았다.
의지가 없는 아주 미세한 빛의 입자.
그것이 태초 정령이다.
하지만 폭주한 정령은 그런 미세 빛의 입자가 모여들어 거대한 흙의 거인을 만들어냈다.
정령왕들이 힘을 제대로 못 쓰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정령의 힘을 이루는 입자이기에.
죽일 수 없다.
소멸은 즉 자신들의 죽음과 같으니까.
그렇다면 죽이지 않고 저 거대한 정령의 덩어리를 제압해야 하는 데 정령의 힘조차 제대로 먹히지 않는 적을 상대로 정령왕이라고 다를까.
그렇게 상황이 심각해져 가던 찰나, 나타난 것이 바로 데이비 올 라운이었다.
쿠웅!!!
거체를 자랑하는 태초 정령의 육신이 무너지며 서서히 입자화하듯 흩어진다.
다수의 정령왕과 상위 정령들이 어찌하지 못하던 그 거대한 정령이, 고작 5분도 채 되지 않아 인간에게 무너진 것이다.
“후우…… 속이 시원하네.”
손을 툭툭 털며 쓰러지는 태초 정령에게서 뛰어내린 데이비가 정령들을 향해 다가간다.
단순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태초 정령과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내뿜은 힘은 단순히 평범한 인간이 내뿜기엔 너무도 고귀하고 무거우며, 신성한 무언가였다.
마치 신의 기적처럼, 혹은 태초 정령의 승천을 보는 것처럼.
그제야 뭔가 자신들이 알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정령왕들 중 일부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좀 전 저 인간을 매도했는데.
무시했는데.
괜한 앙심을 품으면 어떻게 하지?
이제 와서 잘 대해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오가는 가운데 데이비가 물었다.
“노아스. 부탁한 문제는 해결됐어?”
[정령왕들의 반대로 인해 시간이 좀 걸린다.]
그 한마디에 정령왕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최근 노아스와 엘라임이 미치광이 계약자를 만났다며 한탄하던데…….
설마 정령왕을 두들겨 패겠는가.
“그래? 반대를 해?”
싱긋 웃는 데이비를 보며 정령왕들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다.
* * *
거대한 정령의 회랑.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령의 숲에 둘러싸인 이 궁전은 오로지 정령왕만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정령계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쁜지 페르세르크는 일리나와 에이리아를 데리고 정령계를 구경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당연히 워낙에 넓은 곳이라 그냥 돌아다녔다간 길을 잃기에 십상이라 노아스는 하위정령인 멀든을 붙여주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필요하니까 협조해달라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협조고 나발이고, 그거 내주면 우리가 몇 년 동안 잃어야 할 힘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말하는 거지?]
[그러니 부탁하는 게 아닌가. 큰 영향이 없게 하위 정령들을 좀 파견해달라는 것뿐이다.]
[허허…….]
노인의 모습을 한 땅의 정령왕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것이 조금 곤란하구만.]
[우린 그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것을 조금 보답하는데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그거야 계약상의 일일 뿐이지. 사실상 저기 인드라가 계약했으니 힘을 쓴 것뿐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일이 어디 우덜 일인가? 너희 자연 정령 일이제?]
[여기 있는 파생 정령이나 이 구역을 담당하지 않는 정령에겐 별로 의미 없다 이 말이야.]
[이봐요들! 정령계는 그가 없었으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했어요! 게다가 그가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진 않았지만, 단순히 가벼운 문제의 일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럼 너희들이 지닌 정령 에너지를 우리에게 분배해주면. 우리도 생각해보지. 그리고, 거짓을 밥 먹듯이 내뱉는 인간을 나는 쉽게 믿기가 힘든데.]
[게다가 인간이 시간의 정령을 만나게 해달라니.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큭…….]
엘라임과 노아스의 분노에 제비 실피드는 손장난을 치고 방화광 이프리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프리트?]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이쪽도 생각이 있다.]
이프리트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 * *
쿠당탕!!
상위정령과 정령왕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와들와들 떨며 구석으로 몰렸다.
나는 조용히 화검 레바테인을 한 손에 든 채 검 끝을 그들에게 겨누며 천천히 다가갔다.
껄렁한 자세지만 내 눈을 마주친 정령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린다.
저벅……
[아하하하 왜 이러시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뭔데.”
저벅저벅.
[일단 그 화검 내려놓고 이야기하자고, 응? 레바테인은 우리도 소멸시켜버릴 정도로 위험한 무기란 말이네!]
“알아, 아니까 빌린 거야.”
저벅저벅 저벅.
내 말에 구석 한쪽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화염의 인간인 이프리트가 딴청을 피웠다.
양손으로 나를 진정시키듯 말하면서도 벌벌 떠는 정령들의 모습이 황당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내밀고 있는 화검 레바테인은 말 그대로 정령들에게 있어서 힘의 상징이며 공포의 상징이다.
태초 정령을 어떻게 흩어버렸건 내가 밖에서 반신급의 존재이며 신격까지 개방한 존재이건 그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쥔 검.
마치 장난감 총 사이에서 진짜 실탄이 든 총을 들고 참전하는 것만큼이나 파급력이 클 수밖에.
노아스가 말한 정령계의 땅을 내가 사용하기 위해선 그만한 정령의 동원이 필요하다.
내가 계약한 노아스의 하위정령으론 턱도 없을 정도로 많은 정령이 말이다.
“시방 두당 정령 5천 명씩 지원할래. 아니면 내 손에 뒤질래.”
내 미소에 그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누가 저 자식 좀 말려봐!]
[누가 미친놈들 계약자 아니랄까 봐 정령왕을 협박하는 인간이라니!]
[난 저 칼 맞고 뒈져버리기 싫으니까 니들이 어떻게 좀…….]
저벅저벅 저벅저벅.
[자…… 잠깐! 우리 협상을 하자! 인간!]
“협상? 협상은 지금 하고 있잖아. 순순히 정령을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거다.”
[가…… 감히 인간이 정령을, 그것도 상위 정령을 헤치겠다는 거냐?!]
“못할 거 같지? 내가 지금 이걸 못하면 정령계를 다 때려 부수는 한이 있어도 해내야 하거든.”
[저…… 정령계가 부서지면…… 너 또한 무사하지 못해!]
“글쎄다. 이참에 싹 부숴버리고 새로 만들어볼까?”
뻥카지만 내 몸에서 신력이 쏟아져 나오자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리고, 그들은 곧 결정을 내렸다.
[아하하하 우리 사이에 왜 이러실까.]
[빌려줄게. 빌려줄 테니까 일단 그 흉악한 것 좀 저리…….]
[대체 인간이 어떻게 정령왕의 검을 사용하는 거야!]
“마음이 바뀌었다. 일만.”
[이…… 일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일만 오천.”
[끄억…… 끅.]
[이봐. 우린 뭘 먹고 살라고!]
“하위정령 잠시 빌려주는 거로 니들 굶어 죽지 않는 거 안다. 2만.”
[제…… 젠장! 더 올리기 전에 줘버려! 일만! 일만까지는 되지만 그 이상은 때려죽여도 안 돼! 우리가 곱게 키워온 정령들이니까!]
결국, 그들은 백기를 들었다.
“뭐 좋아.”
주먹은 가깝고.
자존심은 생각보다 멀었다.
* * *
결국, 정령들을 대량으로 지원받은 뒤 정령들 중에서도 상위 정령인 시간의 정령이 머무는 시간의 계곡으로 향했다.
마치 시공간 축이 뒤틀린 것처럼 주변이 꿀렁거리는 모습이라 제법 신기한 형태였다.
시간의 정령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정령 여제 유리아나도 시간의 정령과 계약한 바 있다.
그렇기에 시간의 정령에 대해 들은 바 있고, 그 예상이 맞다면,
째깍…… 째깍…….
이럴 줄 알았지.
“응?”
갑작스런 시계 소리와 함께 주변이 변동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와 함께 온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데이비?”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육신이 자라기 시작한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에서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여성으로 변한 그녀가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대체…….”
“시간의 정령의 공간에선 완전히 독립된 시간이 흘러가거든.”
그리고. 이 성격 나쁜 정령은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존재를 곱게 보내주지 않는다.
그때 내게 길을 안내해준 뇌전의 정령왕 인드라가 우물쭈물하며 소리쳤다.
[시…… 시간의 정령님! 이…… 인드라예요! 길을 열어주세요!]
그녀의 외침에 째깍거리던 시간이 일순간 멈춘다.
그리고는 페르세르크의 모습이 본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쉽구나.”
“의미 없는 짓이야. 가자.”
“한데. 왜 본녀만 데려온 게야. 두 사람이 섭섭해할 텐데.”
“그런 게 있어.”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그녀를 데리고 인드라를 따라 곧 비틀린 시공간 속에서 나타난 틈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인드라가 나를 안내한 곳은 거대한 넝쿨과 초목이 가득한 숲이었다.
청량함이 감도는 이 숲을 보며 인드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 여기에요. 나머지는.]
“가긴 어딜 가. 계약자면 끝까지 곁을 지켜야지.”
[그런 억지가!]
“어이, 보고 있으면 냉큼 나와.”
[시…… 시간의 정령은 다른 정령들보다 월등히 오래 존재해오신 분이에요 말씀을 삼가…….]
“튀어나오라 말했다. 시간의 정령. 아니면 이름이라도 불러주랴? 알타이르.”
쿠웅!!!!
동시에 주변의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하게 불던 바람이 멈추고 흩날리던 나뭇잎이 허공에서 멈췄다.
마치 완전히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굳어버린 주변의 모습에 페르세르크가 흥미롭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스스스슥…….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내 앞으로 신비로운 힘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세…… 세상에…… 어떻게 인간이 시간의 정령의 이름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의 정령의 힘은 놀랍게도 상위에 존재한다. 그런 만큼 시간의 정령이 가지는 이름 또한 본래라면 인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스승이 누구이던가.
정령 여제 유리아나.
13명의 정령왕과 계약한 역사에서 다시 없을 절대적인 정령사로 이미 눈앞에 있는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와 계약을 한 존재이기도 했다.
[…….]
이윽고 찬란한 빛이 모여들어 인간의 형상을 취한다.
빛으로 된 인간.
겉보기엔 빛의 정령과 흡사하지만, 그 내용물은 달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나와 계약하자.”
쩌엉!!
동시에 주변의 시간이 뒤틀린다.
내 몸의 오장육부에 가해지는 모든 시간들이 뒤죽박죽이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인간이라면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알타이르의 힘을 받아냈다.
[…….]
“계약해라.”
그리고 내 의사를 다시 한번 강하게 전달했다.
물론, 알타이르가 그렇게 쉽게 계약이 가능한 정령일 리가 없다.
실제로 내가 노아스와 계약할 때 나는 달의 숲의 수장인 유리아 헬리샤나의 염원을 미끼로 이용했고 그 외에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정령의 친화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는 그런 조건조차 하나 맞추지 않은 채 내가 이곳까지 찾아온 것에 흥미를 느낄 뿐 계약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계약해라 알타이르.”
[건방 떨지 마라. 인간.]
이윽고 알타이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 상위 정령들과 정령왕에게 하위정령을 지원받아 이미 정령계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흙과 바위를 모으고 있다.
당장 달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마나도 부족하거니와 그전에 알타이르의 힘을 이용하지 않으면 내게도 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계약해라. 알타이르.”
쩌저적…… 쩌적!
마치 분노를 토해내듯 알타이르의 전신에서 힘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 정령 여제 유리아나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 녀석과 계약할 일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만에 하나라도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땐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해.]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 그만 하세요! 시간의 정령님께 무슨 무례…….]
“좀 조용히 해줄래?”
[흐읍?!]
싸늘한 일갈에 인드라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녀도 정령왕이지만 지금의 나는 정령왕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의 인간이 아니니까.
제아무리 오래되고 잘난 정령이라도 그래 봐야 타나토스에 비견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말한다. 계약을 요구한다.”
[……유리아나의 냄새.]
소년의 목소리와 함께 빛의 형성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나와 계약할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라.]
“그럴 거 같더라.”
정령왕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시간의 정령.
급수가 없는 유일무이의 시간 정령이며, 그 힘은 자신의 영역 안에선 가히 신이라 불러도 될 정도의 수준이다.
“원하는 대로 말해봐.”
[나를 이겨봐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알타이르의 팔을 낚아챘다.
“네가 왜 그 말 안 하나 했지.”
[…….]
알타이르의 시간을 강제로 무시하며 내가 녀석의 팔을 낚아챈 탓에 녀석이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자신의 힘을 내뿜으며 나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녀석에게 파고들며 내 힘을 그대로 불어넣었다.
신격이 깨어난 힘. 신력이 스며든다.
내가 녀석에게 주입한 것은 신력도 있지만 또 한 가지 더 있었다.
나의 기억 일부.
백날 입 아프게 떠들어본들, 한번 보여주는 것만 못하다.
동시에 알타이르의 전신이 크게 요동치는 듯했다.
쉽게 말해 기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 싸움은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서로를 노려보듯 바라보던 중 알타이르가 천천히 움직였다.
[내게 보여준 것이 사실인가?]
“그래.”
3년 남은 세계의 수명.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찾아올 절대적인 허무.
나는 알타이르에게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굳이 캐묻지 않겠다. 하지만 네 안에는 내 힘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순수하지 않은 에너지를 품고 있다.]
금기의 힘? 아니면, 정령 마나가 아닌 다른 여러 마나들의 여부?
어느 쪽이건 유리아나와 나는 조건이 다른 축에 속한다.
순수한 시간의 정령이기에 순수한 마나를 지닌 자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지금 당장 널 소멸시킬 거다.”
시간의 정령이 소멸하면 다음 대의 정령이 태어난다.
그 기간이 1년 남짓한 시간이겠지만 말을 안 듣는 놈의 사정까지 봐줄 정도로 내가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미안한데. 삼고초려는 딴 데 가서 알아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손에 홍단이와 청단이가 합쳐지며 초단이의 형태로 변했다.
“선택해. 계약하던지. 여기서 공간 채로 소멸하던지.”
내 발언에 페르세르크는 한숨을 내쉬었고, 인드라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첫 번째로 계약한 인간이 저렇게 막무가내…….]
인드라의 목소리가 죽어간다. 정령왕이 되어 첫 계약한 인간. 아니 정확히는 역계약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역계약한 인간이 이토록 막무가내에 거친 존재라는 것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듯 보였다.
물론 인드라가 무슨 생각을 하건 나는 알타이르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타이르가 손을 튕긴다.
그러자 시간 축이 뒤틀리며 인드라와 페르세르크도 멈춰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의 입자로 된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가 내게 다가왔다.
“계약하자고. 그래. 이렇게 하자. 이번 계약을 성사시켜준다면 유리아나의 모습이 담긴 영상석을 10개 정도 건네줄게. 제법 양이 많아.”
흠칫하며 알타이르가 나를 바라본다.
[영상석…… 영상석이라……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저장하는 인간의 발명품인가?]
“그래. 그거야. 거기에 유리아나가 생전에 사용하던 로브도 줄게. 물론 영상석의 해상도는 제법 커서 보기도 좋을 거다.”
내 말에 알타이르가 침묵했다.
빛으로 된 인간의 형상이 내게 다가온다.
[잘 부탁한다. 계약자. 대금은 선불이다.]
“걱정 마라. 고화질로다가 최근에 찍은 거로 준비해줄 테니.”
단순한 x끼. 네가 이러는 걸 다른 정령들이 알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