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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42화 (841/1,559)

제 842화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와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내가 건네준 영상석을 포함한 유리아나에 관련된 것들을 소중히 품에 간직한 알타이르가 물었다.

[나의 이름은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 네 이름을 말하라.]

“데이비 올 라운”

[요구를 상납하라.]

“내가 요구하는 건 총 네 가지다. 첫째. 내가 달을 만들 때 각 차원의 시간 축을 고정시켜,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할 것.”

[그리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 여기 있는 페르세르크의 육신에 시간이 흐르게 해줘.”

[시간이 흐르게 해달라?]

“가능성은 낮지만. 육신이 성장한다는 건 이 세상에 녹아든다는 소리니까.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될지도 몰라.”

그녀의 육신은 만들어진 육신이기에 실제로 육신의 시간은 고정되어있는 셈이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 불로는 사라지겠지만. 노화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러있는 페르세르크이기에 그 부분은 걱정할 게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로군, 그리하겠다. 다음 요구를 말하라. 계약자.]

“다음 거부턴 조금 힘을 많이 써야 해. 할 수 있지?”

이윽고 고민하던 내 입술이 뻐끔거렸다.

* * *

페르세르크는 눈치가 빠르다.

내가 시간의 정령과의 만남에 단순히 데이트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데려간 게 아니라는 것은 그녀가 가장 빨리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는 왜 자신을 데리고 갔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정령의 대행렬이 시작되자 정령계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봐 이봐. 인간, 정말 인간이야?]

[신기해! 정령계에 어떻게 인간이 정령계에 온 거야?]

[조금 무서워! 하지만 너무 깨끗한 힘도 느껴져!

재잘거리며 신나하는 작은 정령들이 나를 배회하며 말을 걸어왔다.

[신기해 신기해!]

“자연의 정령을 그대로 볼 수 있다니…… 놀라워.”

“아름다워요. 오라버니.”

꺄르륵 거리며 뛰노는 정령들과 아름다운 정령계의 모습에 시선을 뗄 수 없는지 일리나와 에이리아가 발그레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꺄르륵! 왕께서 말했어! 인간을 도와주라 그랬어!]

한 개체의 정령왕조차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정령들이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

비록 내게 정령들을 빌려준 정령왕들은 원치 않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별개로 작은 하위정령들에게 지금의 일은 그저 재미나고 신기한 놀이에 불과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정령들이 공명하며 거대한 대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나는 내가 계약한 정령들로부터 의도하지 않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사라졌다고.”

[계약자. 네가 계약한 뇌전의 정령왕 인드라를 기억하는가.]

“기억 못 할 것도 없지.”

[그 아이는 본래 유리아나의 계약 정령이었던 인드라가 소멸하면서 태어난 아이다. 비록 정령왕 태생으로 태어났다지만 아직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

태생부터 귀족.

후임 정령이라는 소리였다.

[정령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파생 정령, 자연 정령, 후임 정령]

파생 정령은 고위정령의 손에서 태어나 성장한 정령.

자연 정령은 하위정령부터 정령왕급 까지 성장한 대기만성형 정령이다.

그리고. 후임 정령은 막대한 힘을 지닌 정령왕이 시간이 흘러 소멸할 때 그 힘을 남겨놓는 데 그 힘에서 태어난 정령이 후임 정령이다.

[인드라는 그렇게 태어난 녀석이다. 그 외에도 빛의 정령, 어둠의 정령, 대부분이 후임 정령도 만들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인드라만큼은 남겼지. 이것도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이유는?”

유리아나의 정령은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이렇게 단시간에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당신도 봤겠지만, 정령계에 붕괴가 일어나고 있어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꽤 오래전부터였죠. 많은 정령들이 희생됐어요.]

생명력 부족 현상으로 생긴 붕괴 전조가 정령계에도 나타났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유리아나와 연이 닿은 정령은 내가 계약한 4대 정령과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가 전부라는 소리였다.

“씁쓸하네…….”

[조금만 기다리면 하위 정령들의 힘을 이용해서 이곳에 존재하는 흙과 바위를 티오니스로 옮길 수 있다. 이미 명령은 해두었으니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본래의 목적을 이루었다면 이제는 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게 전부다.

하위 정령들을 확인하기 위해 떠난 정령왕들을 두고 나는 페르세르크의 다리에 머리를 벤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령계는 전부 이런 곳이야?”

“영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그렇겠지?”

“너도 잘 모르는 게 있구나?”

일리나가 샐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넌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솔직히 조금 신기하네.”

“나도 정령계에 와볼 일이 있겠냐.”

정령여제 유리아나도 정령계는 와본 적이 없을 거다.

[계약자. 시간이 되었다.]

“벌써?”

내 곁으로 날아온 작은 빛덩어리의 목소리에 페르세르크와 일리나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

“시간의 정령의 힘이 가장 강한 이곳에서 할 일이 좀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명상을 취하듯 숨을 짧게 골랐다.

[칭호 별부수미 장착.]

칭호 별부수미. 일정 힘을 계속해서 보관한다.

모든 차원에 보일 달을 만드는 데엔 어마어마한 마나가 들어간다.

당연히 지금 내 마나만으론 어림도 없는 양이기에 어딘가에 그것을 많이 저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내게 주어진 프리아 여신의 축복.

칭호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별부수미는 일정 시간을 주기로 내 힘을 강제 탈취하여 보관하고 그것을 축적시킨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만큼 완벽한 마나 수납공간이 따로 없다는 소리였다.

치이이잉…….

이윽고 내 주변으로 알타이르의 힘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시간이 괴리된다.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는 일리나와 페르세르크가 멈추고 정령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에이리아도 멈췄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나와 알타이르가 전부였다.

[기간은?]

“약 반년. 그전에 모이면 금방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리하겠다.]

그 말과 함께 멈춰있던 페르세르크와 일리나가 다시 움직인다.

“방금…….”

좀전의 멈춰버린 시간의 괴리를 느낀 듯 일리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

“반년.”

“응?”

“지금부터 마나를 모아야 해. 반년 정도 숨만 쉬고 마나만 모을 거야.”

내 말뜻을 이해한 것일까. 일리나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 페르세르크와 눈을 맞췄다.

“나는 기다릴래. 뭐 때문에 네가 달을 만들고 마나를 모으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단순한 일은 아닐 거야. 맞지?”

“그래.”

“그럼 기다릴래. 네 곁에서. 네가 쓸쓸해 하지 않게.”

“본녀도 마찬가지. 그대 혼자 전부 뒤집어쓰는 건 원치 않아.”

“저, 저도 그럴게요. 오라버니!”

세 소녀의 대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알타이르에게 시선을 보냈다.

“시작하자.”

우우우웅!!!!

동시에 알타이르의 몸에서 막대한 힘이 쏟아져 나오며 주변의 시간이.

완전히 격리된다.

내가 있는 공간은 앞으로 반년 동안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반년이라는 시간은 바깥에서의 1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이 무너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걸 실감하는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본래는 6개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시간 격리는 그보다 짧은 4개월 만에 해제되었다.

“뭐야…… 여기 왜 이래?!”

격리공간에서 나를 따라 빠져나온 일리나는 완전히 시들어버린 거대한 꽃의 정원을 보며 놀란 듯 중얼거렸다.

경악스럽게도 그 아름답던 꽃의 정원이 완전히 죽음의 땅이 되어있었다.

재잘거리며 날아다니던 수많은 정령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대지는 갈라져 죽음의 땅처럼 풍화되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게 대체…….”

에이리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어둑어둑해진 주변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여기 문제가 심각했던 모양이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아야 한다.

“페르세르크.”

“듣지 않는다 하여도 보낼 테지.”

“너희들의 안전이 지금 내겐 최우선이야.”

“언니?”

“돌아가자.”

나와 시선을 마주한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다가와 내 품에 안겼다.

“그대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어.”

“…….”

“그러니 절대…… 다치지 말아.”

그렇게 말하며 물러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신마의 카드첩에서 내가 엘라임에게 맡겼던 인과허구를 발동시켰다.

그리고는 이곳으로 올 때 열었던 균열을 열었다.

소환은 나와 계약한 정령왕인 인드라가 하는 것이지만 역소환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다.

“다치지 마. 다쳐서 오면 진짜 화낼 거야.”

페르세르크를 뒤로하고 일리나도 마뜩잖은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제 와서 널 위협할 적이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새색시 과부 만들 생각하지 말라고.”

“죽고 싶어도 쉽게 못 죽는 몸이다. 걱정 마.”

“…….”

나를 노려보던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황이 뭔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에이리아는 품 안에서 작은 목걸이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몸 조심히 돌아오셔야 해요. 아바마마께서 주신 부적이에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돌려줄게.”

“부서져도 괜찮으니 다치지만 말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제법 용기를 냈다.

발뒤꿈치를 들어 내 뺨에 제 입술을 맞추고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러난다.

“오라버니. 꼭 힘내세요.”

그렇게 내가 열어준 균열 너머로 세 사람을 돌려보낸 나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완전히 뒤틀려버린 이 정령계의 상황을 알기 위해 가장 가까이 있을 정령을 불렀다.

“알타이르.”

[미안하게 되었군. 계약자.]

이윽고 내 부름에 소환된 알타이르는 상상 이상으로 힘이 미약해져 있었다.

녀석을 구성하던 빛의 형상은 이미 대부분이 흩어져 거의 반쯤 안개로 변해있었다.

[정…… 령계에서의 내 힘은 정령계의 상태에 비례한다…….]

“그런 네가 이 꼴이라는 건 정령계 상태가 엉망이라는 거지.”

[정령계가…… 붕괴하고 있다.]

“고작 몇 초 만에?”

내가 격리된 시간 속에서 4개월을 보냈다곤 하지만 바깥에선 1초도 되지 않을 시간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1초 만에 이런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믿을 수 있을 리가 있나.

[몇 초가 아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30일이 흘렀다.]

“뭐?”

[정령계가 붕괴하면서 내 힘이 약해졌다. 계약자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당장 시간격리를 최대한 유지해봤지만, 한계에 부딪혀서 지금에 와서 격리가 깨진 것이다.]

결국, 알타이르가 독자적으로 시간격리를 최대한 이루어줬지만, 정령계의 붕괴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다른 정령들은?”

[모든 태초 정령들이 폭주했다. 현재 정령왕들과 상위 정령들이 그들을 막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터. 계약자. 이곳을 떠나라.]

“…….”

[정령계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

달을 만들 거대한 흙과 바위를 끌어낼 수 있는 곳은 정령계가 유일하다.

그런데 정령계가 지금 가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끝으로 알타이르는 다시 폭주하는 태초 정령을 제압하기 위해 떠났다.

알타이르가 사라지고 남은 무너져 가는 정령계의 화원을 보던 중 내 시선에 작은 하급 정령들이 신음하는 게 보였다.

[아파…….]

[너무 아파…… 인간…… 도와줘…….]

엉엉 울며 괴로워하는 하급 노움이나 나이아스 같은 작은 정령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 내가 손을 뻗었다.

“친구들은 전부 어디 갔어.”

[전부 사라졌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엉엉 울며 그들이 내게 매달려왔다.

[인간 도와줘…… 너무 아파…….]

[친구들이 사라지고 있어. 우리도 곧 사라질 거야.]

그렇게 말하는 정령들이다.

주변에 느껴지는 하급정령은 처음 다른 정령왕들에게 지원받은 수만의 정령들이 아닌 고작 몇천이 전부였다.

시간이 흐르면 점차 이들까지 사라지리라.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너희 전부. 날 도와줄 수 있어?”

[도와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해?]

“친구들을 불러줘. 태초 정령도, 자연 정령도. 가리지 말고 괴로워하고 있는 네 친구 전부.”

[불러오면 돼? 우리가 부르면 돼?]

“그래. 정령계의 자연을 이용하는 것인 만큼 정령의 의지가 가장 필요하니까.”

내 말에 괴로워하던 하위 정령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반딧불이처럼 빠르게 날아오른 빛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하나. 둘. 그리고 수십. 수백 수천.

이어서 수만을 넘어 수를 헤아리기 힘든 정령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령왕들이 다스리는 하위정령의 수를 아득히 넘어선 수의 자연 정령들과 아직 폭주하지 않은 태초 정령들이. 단 한 명, 인간인 나의 말을 믿고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적은 직접 쟁취하는 거다. 바란다고 뚝 떨어지는 게 아니야.”

절경을 이룰 정도로 많은 빛의 알갱이들이 부서져 가는 정령계 전체를 넘어 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티오니스에서 시작하려 했건만.

이렇게 된 이상 각 차원에서 가장 가까운 정령계에서 띄워 올리는 수밖에.

* * *

정령계가 붕괴한다.

가망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정령계를 이루는 태초 정령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다수의 정령들이 소멸하고 남은 상위 정령과 정령왕들은 필사적으로 폭주하는 태초 정령들을 제압해 나갔다.

[젠장! 끝도 없이 날뛰는군!]

화검 레바테인을 휘두르며 이프리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를 제외한 다른 불의 정령들도 막대한 화염을 끌어내며 태초 정령들을 공격하지만, 효과는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막대한 힘을 지닌 정령왕이라도 이제는 한계였다. 제압해도 제압해도 끝도 없이 일어나 폭주하는 태초 정령이다.

한둘도 아니고 사실상 정령계 전체가 폭주하고 있는 상황이라 거기에 영향을 받은 정령왕들의 힘이 실시간으로 약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름다운 화원은 시들어가고 하늘은 어둡게 변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정령왕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희생하겠다. 내 힘을 폭주시켜 터뜨리면 아주 잠깐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동안 다른 방법을 찾아.]

[안돼! 한 명 한 명이 부족한 지금 상황에 너까지 소멸하면 상황은 악화될 거야!]

거대한 흙의 거인 노아스의 발언에 다른 정령왕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노아스의 결정은 확고했다.

콰아앙!! 쾅!!

이윽고 폭주하는 태초 정령의 주먹을 받아낸 노아스가 힘 싸움을 하듯 그 공격을 버텨낸다.

[크으으…… 빨리!! 이곳을 벗어나라!]

노아스의 외침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정령왕들이 눈물을 흘렸다. 사이가 좋건 안 좋건 같이 존재해온 가족이다.

그런 가족이 또 하나 희생당하고 있으니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아…… 정령 신이시여…… 태초 신이시여…… 이 절망을 헤쳐나갈 기적을…….]

눈물을 흘리며 프리아 여신을 향해 기도를 올려보지만, 기적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저 노아스가 희생함으로써 벌어들인 시간을 버는 것이 전부.

그렇게 정령왕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그곳을 도망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그극…….

쩌저저저저적!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태초 정령의 폭주로 인해 뒤틀린 것과는 완전히 다른.

파괴적인 힘이 서린 붕괴가 일어난다.

“무슨?!”

경악한 정령왕들이 갈라지는 땅을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 모두 볼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보일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흙과 바위가 떠오르며 거대한 원 형태로 뭉쳐지기 시작한 것을 말이다.

에너지의 집약체인 정령들은 볼 수 있었다.

저 거대한.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달이 그냥 달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정령의 힘으로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흐름 너머 어마어마한 수의 하급정령들이 모여들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게 보였다.

[대체 무슨?!]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어마어마하게 많은 하급정령들이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엄청난 속도로 희생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염원에 따라 엄청나게 거대한 달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달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지금까지는 느껴본 적 없던 막대한 생명력이 정령계 전체를 휘감으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린 정령왕들은 곧이어 거대한 달에서 마치 눈이 떠지듯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한 눈처럼 세상을 직시하는 달로 막대한 생명력이 주입되기 시작하며 빠르게 순환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태초 정령들의 거체가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붕괴하던 세상이. 다시 본래의 힘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붕괴하던 정령계가 다시…….]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제야 달의 용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달은 노아스와 엘라임은 그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리고 보고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정령계를 빠르게 조율하기 시작하는 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모든 차원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달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붕괴하던 세상이 천천히 회복되는 듯 보였다.

[불가능해. 저렇게 많은 정령을 단숨에 제어하고 부리는 건 정령왕조차 불가능하다고!]

[뭐야…… 저건 그 인간이 벌인 짓이잖아! 어떻게?!]

문제는 저만큼 많은 정령을 단번에 제어하는 인간의 정체였다.

갑자기 달을 띄워 올리는 것도 기가 막힌 데 그 과정에서 인간은 정령왕들도 불가능한 막대한 수의 정령을 모조리 제어하여 부리고 있다.

그런 기적을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무시했던 인간의 손에 의해서.

[노아스…… 네 계약자…… 대체 뭐 하는 존재냐…….]

믿을 수 없다는 듯 다른 땅의 정령왕이 물어오자 노아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건 우리가 제일 궁금한 부분이다.]

[그동안 봐왔지만,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인간이니까요.]

엘라임이 거들자 사태를 지켜보던 정령왕들이 마치 넋이 나간 듯 하늘로 떠오르는 거대한 달과 그 달을 따라 마치 물줄기를 연상시키듯 모여드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어마어마한 정령들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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