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47화 (846/1,559)

제 847화

“약속?”

“그래. 약속.”

“기억하지.”

뭘 새삼스레 묻냐는 듯 데이비가 손을 휘저으며 가버리자 페르세르크는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신뢰를 시험받는 상황이라. 그리 유쾌하진 않구나.”

그녀의 표정엔 드물게 화가 서려 있었다.

그 어떤 면을 짚어도 데이비가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확증을 내세울 순 없다.

하지만 좀 전의 대화로 이상하리만치 위화감이 드는 그녀였다.

“그럼…….”

“겉보기엔 데이비와 다를 게 없어. 다만, 조금 지켜봐야겠구나.”

페르세르크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데이비는 왕성으로 떠날 준비로 한창이었다.

“왕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어서 오너라 데이비.”

옥좌에 앉아 데이비를 맞이하는 크리아네스 국왕의 곁으로 바리스가 다가왔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왕묘가 도굴당했다고 들었습니다. 폐하.”

“부끄럽게도 사실이다.”

그가 쓴 표정을 지으며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제 어머니의 묘는…….”

“미안하구나.”

리네스 왕비의 사망 이후 크리아네스 국왕은 그녀의 묘를 왕의 묘에 다시금 정중하게 안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굴당한 것이다.

“워낙에 크게 일을 벌인 탓에 여기저기서 파리가 꼬인 것일 테지.”

“바리스, 범인은?”

“네. 페일트리스 후작이 직접 잡아 들였습니다. 현재 지하감옥에 수감시켜놓았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진상을 확인한 뒤 처형할 겁니다.”

그의 말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도 잡혔다.

하지만 아직 잡히지 않고 숨어든 놈이 있다.

“그들을 고문해봤지만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했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배후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바리스의 말에 데이비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는 이내 크리아네스 국왕에게 예를 표하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페르세르크는 크리아네스 국왕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그를 뒤 따라가려 했다.

“새아가.”

“예 폐하.”

“데이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예?”

의외의 물음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아바마마?”

바리스도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를 바라보지만,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던 크리아네스 국왕은 조용히 대답했다.

“짐의 착각이면 좋으련만…….”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은 페르세르크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다.

* * *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저는 그저! 으아아아악!!

촤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홍단이의 검신이 사내의 목을 베어 가른다.

가차 없는 손속이지만 데이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얼굴이었다.

“보통 도굴꾼 놈들도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게 왕권이 강한 국가의 왕묘를 건드리는 거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바닥을 기며 덜덜 떠는 사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데이비가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

“어딨어.”

“예…… 예?”

“선 왕비 레니 알리샤드의 유품. 니들이 빼돌렸잖아. 어딨냐고.”

“그, 그것이, 블랙마켓에…….”

겁에 질려 모든 말을 털어놓는 그들의 행동에 데이비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뭐? 블랙마켓은 지난번에 한번 털었을 텐데?”

“그때 한번 무너진 뒤로 다시 생겨난 곳입니다! 아마 린디스 제국의 유명한 왈패 조직인 카이샤 조직이…….”

카이샤 조직. 데오르트 황제에게 들은 바 있다.

정계에 상당히 연줄을 많이 대고 있는 조직으로 단순 조직이라고 하기엔 빠져나가는 구멍이 굉장히 많은 곳.

사실상 그들이 존재하기에 왈패조직의 규모가 조절되고 있는 터라 필요악으로써 그냥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놈들이 의뢰한 건가?”

“아…… 아닙니다! 그…… 그저 저희는 돈이 될까 싶어서…….”

그냥 돈이 될까 싶어서 털어버린 멍청이들.

운이 좋은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평소라면 성공도 하기 전에 기사들에게 붙잡혀 죽었을 테니까.

물론, 이제 와서 죽는 건 변함이 없지만.

“좋아.”

“커헉! 컥!”

대답을 마치기가 무섭게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사내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동시에 그의 몸에 스며들었던 검은 마나가 빠져나온다.

“살려주십시오. 살려…… 살려.”

계속해서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그들을 보며 데이비는 말없이 그들을 보다 손가락 끝 마디마다 검은 불을 피워올렸다.

“2시간만 버텨라. 그럼 용서해주마.”

“저…… 정말이십니까?!”

데이비의 말에 그들이 생존의 동아줄을 잡은 것마냥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곧 데이비의 이어지는 말에 표정이 검게 죽기 시작했다.

“그래. 용서하고 깔끔하게 죽게 해주마.”

화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악!!”

두시간을 버티는 게 불타오른다는 것도 몰랐고 그 후 받을 용서가 죽음이라는 것도 몰랐던 이들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데이비……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미안하다. 조금 제어가 안 되네.”

싸늘하게 대답하며 일리나를 지나쳐 간다.

“데이비 오라버니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엄청 따랐으니까요.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이라 아마 죄책감을 깊게 가지고 계실 거에요.”

뒤늦게 따라온 윈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데이비…….”

그런 데이비의 뒷모습을 보며 일리나는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린디스 제국의 수도, 거대 폭력조직인 카이샤의 두목인 안드랑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하…… 하지만 저희도 정당하게 구입한 물건으로…….”

“장물 함부로 사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어지간한 귀족, 왕족이라면 이렇게 절절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다르다.

잘 모르는 이들은 그를 현 대륙의 성인 중 하나라 부른다.

대륙을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존재. 상당히 자비롭고 공정하기로 유명한 인물.

그래. 흠잡을 곳이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그건 겉으로 드러난 소문일 뿐, 실제 암흑가를 상대로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이들은 다 알 수밖에 없다.

‘하인스 영지엔 왈패조직이 없다!’

돈이 되면 뭐든 하는 작자들이 왈패라지만 그는 적당 선이라는 게 없다.

과거 본래 있던 블랙마켓이 어쩌다가 그 꼴이 났던가.

하인스 영지민을 납치해 블랙마켓에서 노예로 팔았다가 걸리고 아작이 난 것이다.

특별한 지위도 없는 고작 영지민 한 명을 위해 그 거대한 조직을 단신으로 개 박살 내버린 인물.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

차라리 그에게 협조함으로써 그의 눈에 드는 게 더 나으리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하지만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땐 뒷감당 책임지지 않는다는 거로 받아들이겠다. 장인어른의 얼굴을 봐서 개박살 내버리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거니까 잘 판단하는 게 좋을 거야.”

“부트! 가져와! 어서!”

그의 살기에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보스 안드랑은 급히 라운 왕국에서 온 장물 목록을 빠르게 뒤졌다.

“라운 왕국에서 온 게 딱 하나 있습니다. 무슨…… 보석함 같군요.”

“가져와.”

“알겠습니다. 하지…… 아니 아닙니다! 말버릇처럼 나온 겁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반사적으로 하지만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려던 그는 데이비의 손이 그의 목 언저리까지 다가온 것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데이비의 손날은 그의 목 바로 근처까지 와있었다.

순식간에 변명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갔으리라.

“…….”

“우선 약속해주십시오. 저희도 보물이라는 이유로 상당히 비싼 값을 치렀습니다. 이 대금을 받진 않겠습니다만. 이번 일에서 저희는 빼주시면.”

“마음 바뀌기 전에 가져와.”

데오르트 황제가 일부로 두고 보고 있는 조직이다.

그도 생각이 있을 터.

데이비는 안드랑의 부하가 가져온 작은 보석함을 받아들고는 조용히 말했다.

“가짜는 아니겠지.”

“감히 누굴 상대로 사기를 치겠습니까. 저희도 위아래 구분은 할 줄 압니다.”

데이비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후우…….”

안드랑은 몇십 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주저앉았다.

“앞으로 라운 왕국에서 오는 물건은 받지 마.”

“예?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희 신용이…….”

“신용이 목을 붙여놓진 않는다.”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그였다.

* * *

데이비는 제 어머니가 남겨놓은 보석함을 보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

어머니의 관이 안치된 묘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그저 멍하니 상자를 바라본다.

“어때?”

“……가짜네요.”

요시아가 대번에 단언했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반지. 제가 만든 것과 흡사하지만 달라요.”

요시아 프랑소스는 인간으로 자랐으나 그녀의 본질은 뱀파이어.

그것도 밀피유와 전대 뱀파이어가 말하길 역대 뱀파이어 로드 중에서도 최상위 재능을 지닌 존재라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피의 계약은

그녀의 권능은 오로지 그녀의 것이다.

“솔직히 모르고 봤으면 정말 몰랐을 거예요.”

요시아의 대답에 페르세르크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언 듯 보면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가짜. 하지만 둘의 연결점은 달라요. 마치 반지 자체를 그대로 복사한 느낌이에요.”

“그래.”

“선생님은…… 대체 어딜 간 거죠?”

“멀리…… 아주 멀리.”

씁쓸하게 말한 페르세르크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요. 페르 언니.”

“음?”

“가짜라곤 해도…… 저 사람은 정말 선생님이 아닌 걸까요?”

기억, 힘, 그가 가진 모든 물건. 심지어 홍단이 청단이까지.

모든 게 진짜와 똑같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과연 데이비가 아닌가.

그때. 말없이 상자를 쓰다듬던 데이비가 상자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그가. 조용히 제 어머니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손에 쥔 작은 물건을 꽉 쥐고 눈물을 보이는 그를 보며 페르세르크는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 * *

시간이 늦어 하인스 영지로 돌아온 데이비는 늦은 시각까지 영지민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고 직접 영지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돌봐주었다.

그리고, 페르세르크의 방으로 찾아왔다.

“안 자고 있었어?”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지.”

“내가 올 줄 알고?”

“안 그랬다면 본녀가 찾아갔을 게야.”

담담하게 말하며 읽고 있던 소설책을 덮은 그녀가 물었다.

“데이비.”

“이리와.”

양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는 데이비를 보며 그녀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대. 신격을 한번 꺼내봐.”

그 말에 데이비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뭐, 좋아.”

동시에 그의 힘을 타고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지만.

역시 가짜.

그가 내뿜는 신격은 데이비의 것과 흡사했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데이비.”

“안 안아줄 거야?”

“그대는 누구야.”

그 물음에 데이비가 멈칫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페르.”

“처음엔 그저 의심이었어. 솔직히 신뢰를 시험받는 기분이라 그리 좋지 않아.”

“…….”

“그래서 믿어보려 했건만. 너무 많은 것이 달라.”

“다르다고?”

“그대. 이곳을 떠나기 전 본녀와 한 약속을 기억해?”

“기억하지.”

“무슨 약속을 했지?”

“돌아오면 하고 싶은 거 다 하자고.”

“그전에.”

“그, 전에?”

의아한 듯 생각하던 그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기억이…… 안 나.”

“데이비.”

그리고 그녀가 한발 물러났다.

“본녀가 아는 데이비는 저주와 같은 완전 기억능력을 지니고 있어.”

“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없었던 게야.”

아무리 완전 기억능력자라도 기억이 없는 것까지 떠올릴 순 없다.

“한 가지 더.”

“한 가지 더?”

“그대가 낀 반지.”

반지를 내려다본다.

“반지를 만든 요시아는 그대가 낀 반지가 매우 흡사하지만, 자신을 통해 본녀의 반지와 연결된 게 아니라고 했지.”

“그건…….”

“메가로드리아는 계약이 약해졌다고 했고.”

그건 데이비의 신변이 상당히 안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베르단데는 그대의 몸에 빌려주었던 힘이 끊어졌다 말했지.”

“잠깐만. 정말로 기억이 안 나. 대체…… 내가 뭐 때문에 그곳까지 간 건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

“안 나. 솔직히 당황스럽고. 갑자기 사랑하는 부인이 나를 가짜라 말하면 누가 안 당황스럽겠냐.”

“미안해.”

담담하게 말하며 물러났다.

그가 가짜라곤 하지만 그의 인격이 데이비와 완벽하게 똑같은 무언가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그대를 믿고 싶지만, 의혹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마지막 증거.”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가 데이비를 올려다본다.

페르세르크가 그의 손을 잡아챘다.

그리고 그의 팔뚝을 걷었다.

그의 팔뚝은 마치 사람이 아닌 무언가의 팔처럼 변해있었다. 피부가 약간 벗겨져 빛으로 된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치 에너지 체처럼.

“이게 뭐야.”

“그대가 만들어진 존재라는 마지막 증거. 그대가 이곳에 오고 눈치챘어.”

그녀의 말에 데이비는 근처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내가 가짜라고?”

“…….”

“기억도, 힘도, 전부 가지고 있는데. 널 사랑하는 마음도 그대론데 가짜라고…….”

“데이비.”

“데이비라고 부르지 마. 네가 말한 대로 내가 정말 가짜라면. 나는 그 이름으로 불리면 안 되니까. 그런데 말이야. 페르.”

그가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진짜의 기억을 지니고 그 힘을 전부 가지고 있는 나는 뭔데?”

그에게 악의는 없다. 그럴 수밖에.

그는 데이비 올 라운 그 자체였으니까. 진짜 데이비와 같이 하인스 영지민들을 지키고 싶어 하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소박한 재미를 찾아 이런저런 짓을 저지르는 존재.

오래전 죽은 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구에 남겨진 전생의 동생까지 그리워하는 인물.

하지만 그는 만들어진 가짜였다. 아무리 같으려 해도, 미세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99퍼센트의 동일인물, 하지만 1퍼센트가 다른 존재.

혹자는 그것이 무슨 차이냐 말할 수 있지만, 그 1퍼센트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차이를 유도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육신에 인격을 복사해 붙여넣기 한 것과 같다.

“나는 뭔데?”

그 물음에 페르세르크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대는…….”

여기서 가짜라고 쐐기를 박아야 할까. 그렇게 하기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드는 페르세르크였다.

“나는. 뭘까.”

“데이비.”

“그렇게 부르지 마. 네 말대로 내가 가짜라면. 내가 가진 이 마음이나 생각들도 전부 가짜라는 소리야. 빌려온 이름에 빌려온 인격에 빌려온 몸뚱어리. 전부…… 가짜라고.”

헛웃음을 흘린 그가 주춤거렸다.

“데이비, 아직 몰라, 그저 그대가 있었다던 그 붉은 공허인지 하는 공간에서 그대가 뒤틀려버린 것일 수도 있어! 만약 그대가 진짜고 이 모든 게 본녀의 단순한 착각일지도…….”

“됐어. 페르.”

“…….”

“됐다고. 널 원망하는 게 아니야. 나는 널 사랑하니까 원망하지도 않아.”

담담하게 말한 그가 돌아섰다.

“네 말대로 조금 이상한 부분이 없잖아 있어.”

그렇게 말하며 그가 쓰게 웃어 보였다.

“네가 말한 대로 완전 기억능력에 펑크가 났어.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 기억들도 다수 존재하고. 무엇보다. 아귀가 안 맞는 기억들도 존재해.”

마치 기억해선 안될 것과 기억해야 될 것이 뒤섞여 혼란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데이비.”

“솔직히 네 말이 맞아. 어쩌면 가짜일지도 모르겠다.”

“…….”

“무엇보다 큰 건 말이야.”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서렸다.

“내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홍단이 청단이도 말수가 거의 없어졌고. 내 생각이 맞다면 만들어진 가짜인 내 몸에 있는 힘은 진짜가 만들어낸 힘의 일부이기에 복사한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거겠지.”

그는 꽤 깔끔하게 자신의 상황을 인정했다.

하지만.

“근데 말이야, 네 말대로 이상한 점이 계속 나오니까 나도 할 말이 없네.”

사실 그걸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기억이 있으니까. 힘이 그대로니까. 원한 것은 그저 앞으로 있을 평화로운 삶뿐인데.

“생각 좀 정리할게.”

그렇게 말하며 떠난 데이비를 보며 페르세르크는 그대로 주저앉아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필연적인 일일지라도 이건 너무 잔인했다.

그냥 전부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모든 정황이 그가 가짜라 말한다.

함정이라면 정말 정교하기 짝이 없는 함정이 아닐 수 없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내가, 가짜라고.”

페르세르크를 뒤로 한 채 데이비는 조용히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서린 팔을 보며 그는 눈을 감았다.

페르세르크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본래라면 헛소리 말라며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건 그가 가장 잘 알았으니까.

자신이 진짜라면 있어선 안 될 변화들이 마치 억지로 똑같이 만들었다가 부작용이 생긴 것처럼 뒤틀린다.

“…….”

조용히 침묵하던 그가 눈을 감았다.

이대로 그냥 데이비인 척하면서 살아도 될 것이다.

아니, 자신은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변함없다.

하지만.

“내 자리가 아니야.”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내 자리가, 아니라고.”

빠드득…….

주먹이 부서져라 강하게 틀어쥔 데이비의 목소리가 슬픔과 분노로 잠겼다.

“x발 그럼 나는 뭔데!!”

콰앙!!!

그대로 벽면을 박살 내며 데이비가. 아니 가짜 데이비가 숨을 헐떡거렸다.

“나는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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