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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48화 (847/1,559)

제 848화

우우우우우우…….

옅은 공명음이 울린다.

이윽고 거대한 행성은 막대한 에너지에 의해 그대로 폭발하듯 거대한 원고리를 만들며 연녹색의 빛을 강하게 뿜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그의 맹주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아비트의 입장에서 데이비의 정신이 붕괴되는 건 그리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저 내 힘을 다루는 것뿐이다.”

데이비는 프리아 여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를 이용해 공허와 티오니스의 시간을 격리 왜곡시키는 정도에 그쳤지만, 지금의 그는 너무도 지친 터라 그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아비트는 자신의 힘을 또 한 번 사용했다.

이미 그에게 자신의 드래곤 하트를 건네준 바 있기에 그에게 남은 건 이곳에서 오랫동안 존재하며 쌓여온 힘이 전부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처음엔 오기로 지배하던 데이비의 말수가 사라진다.

거대한 세상 전체를 장악하듯 먹어치운 데이비는 확실히 초대 맹주인 헤라클래스와 달랐다.

그의 지배 속도는 아비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결정적인 무언가가.

그동안 데이비는 수많은 세계를 장악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한 공간의 지배가 끝나면 다음 공간을 빠르게 지배해나갔다.

그의 속도는 경이적이다.

하지만 아직 지배해야 할 공간은 많이 남아있는 데 반해 데이비의 정신력은 점차 지쳐간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의 육신은 경이로운 수준이라는 점이겠지.”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자신의 2대 맹주인 데이비가 이 공간을 완전히 지배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비트에게 있어서 이공간은 3만 년 동안 살아온 곳이기도 했지만 죽기만을 바라는 그에게 있어서 사실 이 공간이 데이비의 말대로 생명력 회귀를 하건 새로운 세상이 되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페르세르크…….”

완전히 지배된 공간 속에서 데이비가 웅얼거렸다.

“일리나…….”

“에이리아.”

바짝 마른 입술로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일 텐데 그의 눈빛만큼은 죽지 않고 있다.

어지간한 반신도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내달렸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까.

만약 일이 잘못되어 그가 돌아갔을 때 그가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지배하고 그의 사람을 만나겠다는 일념.

그것이 그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이대로 가다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붉은 공허에 있으면서 데이비의 힘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코오나.”

이윽고 아비트는 자신의 사역인을 불러들였다.

“예.”

“맹주께서 지배를 하던 중에 공허의 에너지가 뭉쳐졌다. 한번 조사해 보거라.”

“무슨 뜻인가요?”

“무한한 가능성. 그렇기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는 알 수 없다. 무언가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르겠구나.”

“알겠습니다.”

* * *

데이비가 붉은 공허에서의 강행군을 지속하고 있을 때.

티오니스에 있던 가짜 데이비는 상념에 빠져있었다.

그로서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기억이 있는데. 인격이 같은데. 살아온 경험도 같은데.

갑자기 자신이 가짜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

말없이 자신의 손을 폈다가 오므렸다가를 반복하던 데이비가 눈을 감았다.

페르세르크는 성급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듯 보였다.

웃긴 점은 화가 나도 모자랄 판국에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가짜라도 데이비라는 존재가 그녀를 얼마나 아꼈는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저하.”

아직 진상을 아는 이는 없다.

페르세르크의 말에 따르면 가짜 데이비의 원본, 즉 진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극도로 신호가 미약해져 있는 상황.

어쩌면.

그가 정말로 죽어버리면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 내가 그딴 걸 보자고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닌데.”

솔직히 말해서 죽 쒀서 개 준 꼴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가짜라고 본인도 느낀다지만 그동안 고생해온 모든 것을 생판 본 적도 없는 놈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빼앗기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담담하게 말하며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저하. 거래 관련 일로 타국에서 상단이 찾아와서요. 제가 판단하기엔 거래가 좀 큰 건 같아서.”

본래라면 그녀가 해결할 테지만 데이비가 있는 이상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말에 데이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말없이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에이미.”

“예?”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그 후로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하인스 영지는 그동안의 문제로 인해 쌓인 게 많았다고 말하듯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가짜 데이비는 그런 영지의 평화를 위해 최대한 신경 썼다.

“저하!”

“다들 고생이 많아.”

거대한 논밭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보며 데이비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이구 오늘 날씨가 참 덥지유? 귀한 분이 이런 곳까지 손수 찾아오시고 살갗 타니 어여 들어가셔유.”

한 노파의 만류에 데이비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뙤약볕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에구머니나!”

“어이구 신기해라!”

그동안의 땀을 날려주듯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보며 데이비가 몸을 돌렸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전부 말해. 가능한 전부 들어줄 테니까.”

“어이구야. 저희 상놈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 없지라요.”

“없긴. 이렇게 힘들게 일해주는 덕분에 이 영지가 굴러가고 있는데. 몬미더.”

“예! 저하!”

“다들 피곤해 보이는데 중앙 장터로 가서 시원한 것들과 씹을 거리 좀 사 와서 나눠줘.”

“하…… 하지만 저하. 그래도 규칙이 있는데. 그렇게 막 쓰면…….”

“내 사비에서 털어가. 거 얼마나 한다고.”

“아이고! 저하! 감사합니다!”

“평생 따르겠습니다!”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인간에게 있어서 이런 민심 확인은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몬미더.”

“예?”

“자경단 본부를 좀 방문해봐야겠다.”

“헉!!”

기겁하는 몬미더를 보며 데이비가 씨익 웃었다.

“왜.”

“아…… 아닙니다! 준비하겠습니다!”

크게 대답한 그가 후다닥 뛰어간다.

그리고는 딴에는 들리지 않게 소리친다고 하는데 다 들린다.

“비상이다!! 비사아아아앙!”

비명 섞인 외침을 하며 뛰쳐 가는 몬미더의 뒤를 보며 데이비가 피식 웃어 보였다.

“아이고, 속 시원해.”

“데이비.”

“왔어? 페르세르크.”

“…….”

페르세르크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하다는 표정 짓지 마. 넌 잘못한 거 없어.”

“그래도.”

“네가 말해주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알게 되었을 거야.”

씁쓸하게 웃어 보인 그가 걸어간다.

“데이비. 막사는?”

“그냥 분풀이야. 지금쯤이면 한참 늘어졌을 테니 군기 한번 잡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데이비의 말에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똑같은데.”

“그렇지. 가짜라고 해도 나는 데이비 올 라운이니까.”

쓰게 중얼거린 그가 조용히 말했다.

“페르세르크.”

애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가짜 데이비를 보며 페르세르크는 속에서 죄책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건 그의 행동에 거짓은 없다.

그가 하인스 영지민을 사랑하고,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흑…… 미안해 데이비.”

“괜찮아. 그렇지만 좀 억울하긴 해. 그동안 내가 해온 걸 전부 빼앗기는 기분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페르세르크.

그가 쓰게 웃어 보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쓰게 웃어 보인 그의 붉은 눈동자 중 하나가 검게 변했다.

“아…….”

“데이비?!”

“괜찮아. 이제 슬슬 문제가 생겨나는 모양이야.”

“일단 치료를!”

“아니 됐어.”

담담하게 말하며 페르세르크를 끌어안은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대체 뭘까…….”

“그대는…….”

데이비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데이비가 아니라는 건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페르세르크는 그를 데이비라 부르면서도 데이비라 확정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그저 미안하다 할 뿐.“

“저기 말이야. 페르세르크.”

“…….”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전날 밤 그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페르세르크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원하는 거라면 본녀가 들어줄게.”

“키스해줄래?”

그 물음에 페르세르크가 움찔거렸다.

“장난이야. 내 손이 닿았던 곳, 한 번씩 가보고 싶네.”

그 말에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데이비는 곧바로 영지를 떠날 채비를 했고, 데이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근위대 막사에선 자신들이 속았음을 깨닫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 * *

가짜 데이비는 특수한 변화를 제외하면 정말 데이비와 구분하기가 힘들다.

페르세르크는 그런 가짜 데이비를 데리고 그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직후 했던 모든 것들을 돌아보았다.

유리아 헬리샤나가 있는 달의 숲도 가고 그곳에서 만난 인연인 유리아와 아카데미의 방학으로 숲에서 머무르고 있는 뮤우도 만났다.

이후 펠리스티 공국이나 각 제국, 그리고 그의 발길이 닿았던 모든 곳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데이비와 페르세르크는 가짜와 진짜에 관해선 정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지금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가짜 데이비는 그 소소한 행복이 기쁜지 즐거워했고, 날이 저물어서 하인스 영지의 축제를 즐기고 불꽃놀이가 쏘아져 올라가는 걸 보며 미소지었다.

페르세르크와 요시아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데이비의 이상 현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온전히 데이비 올 라운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인생을 막살진 않았나 봐.”

가는 곳마다 그에게 호의적인 존재들을 보며 그는 만족스레 웃어 보였다.

“참…… 억울하다.”

씁쓸하게 중얼거린 그가 벤치에 편하게 앉아 등을 기댄 채 불꽃놀이가 터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이 없는 개인 정원 그곳에서 데이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늘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행복해?”

“행복하지, 이 소소한 행복도 내가 원하던 것 중에 하나였으니까. 이걸 얻기 위해서 참 많이도 돌아왔네.”

참, 평범하게 살기 어렵다라며 시시덕거린 데이비가 미소를 거두었다.

“덕분에 결정이 섰어.”

“결정이라고?”

“그래.”

담담하게 말한 그가 슬프게 웃어 보였다.

“원본도 나도, 더 이상 이 거지 같은 장난질에 놀아날 생각은 없으니까.”

담담하게 말한 그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동시에 그의 몸 안에서 새하얀 깃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리아 여신이 그에게 건넸던 빛의 깃털,

그것이었다. 본래라면 원본인 진짜 데이비의 몸 안에 있어야 할 깃털이지만 어째서인지 가짜 데이비의 몸 안에서도 똑같은 깃털이 존재했다.

아니 그것조차 복사한 것이리라.

“그래, 그런 거였구나. 여신님. 처음부터 이때를 위해서 이 깃털을 원본에게 건넨 거였습니까. 그게 아니면, 내가 태어난 이유가 당신 때문입니까.”

그제야 듬성듬성 빠져있던 기억이 메꾸어진다.

그리고, 진상을 알아낸 가짜 데이비가 깃털과 공명하며 피식 웃어 보였다.

마치 이런 때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공명하는 가짜 프리아 여신의 깃털을 손에 꽉 쥔 채 데이비의 눈에 확고한 결심이 선다.

“네 인생에 감사해라. 저렇게 예쁘고 착하고 매력적인 부인을 둔 걸 감사해라 원본.”

쿠웅!!!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막대한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안 페르세르크. 정말 미안한데. 하나만 부탁하자.”

“데이비?”

“한 번만 꼭 안아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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