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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52화 (851/1,559)

제 852화

239. 후일담(1)

세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몇 달이 흘렀다.

“형님…….”

잔뜩 지친 얼굴로 자신을 어필하는 바리스 녀석의 몰골은 척 봐도 상당히 피골이 상접해있다.

“아주 잡아먹혔네, 잡아먹혔어.”

“살려주세요…… 죽을 거 같아요.”

바리스 올 라운.

라운 왕국의 제 4왕자인 쌍둥이 남매 중 오빠인 바리스는 정확히 말해서 펠리스티 공국의 공녀와 혼약을 맺었고, 늦지 않게 혼인을 치렀다.

단순한 정략혼이라면, 또 녀석이 원치 않는다면 이쪽에서 조금 손을 써볼까도 했지만 놀랍게도 둘의 금슬은 나쁘지 않은 편에 속했다.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바리스는 숙맥 기질을 지니고 있었지만 반대로 펠리스티 공국의 공녀는 바리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서 그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귀엽잖아요?’

모든 정치적인 문제를 던져놓고 그 한마디를 던지는 공녀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자 나는 녀석이 밤마다 얼마나 기를 빨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덕분에 펠리스티 공녀는 국혼 이후 고작 3달 만에 아이를 얻는 쾌거를 이루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애 아빠가 될 놈이 그렇게 빌빌거려서야 쓰나.”

“형님, 저는 정말 죽을 거 같습니다. 서큐버스가 틀림없어요!”

“어머나?”

“히익!?”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바리스의 뒤편으로 상당히 발랄한 인상의 미녀가 키득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어서 오세요. 데이비 왕자님.”

“금실이 좋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어머나. 우리 남편이 정말 멋지긴 하죠.”

키득거리는 그녀가 바리스의 뺨을 이리저리 꼬집으며 헤실거렸다.

“전 전생에 복을 받았나 봐요. 이렇게 귀여운 남편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니.”

“저…… 저 일단 형님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머나. 죄송해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매혹적으로 웃어 보이는 펠리스티 공녀, 아니 이제는 왕태자비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잠시 물러나기가 무섭게 바리스가 격하게 떨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며 내게 매달렸다.

“형님! 살려주세요! 이대로 가다간 저 정말로 죽어요!”

바리스는 익스퍼터에 이른 인물이다.

“왕자비님, 제 동생 적당히 괴롭히세요.”

“헤헤. 그건 왕자님이 못 보셔서 하는 말씀이신걸요. 밤에 제 부군께서 얼마나 귀여…….”

“그…… 그만 하세요!!”

당황한 바리스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치자 그녀가 키득거렸다.

“봤죠?”

“예. 충분히 보이네요.”

“형님!!”

“됐고, 어쩔 수 없다. 이거나 받아라.”

물론, 동생이 복상사라는 끔찍하고 쪽팔린 죽음을 당하게 할 순 없는 만큼 손을 쓰긴 해야 할 듯싶었다.

그의 필사적인 외침에 나는 아공간에서 필요한 게 있나 싶어 뒤적거리다 작은 병을 하나 꺼냈다.

“뭡니까 이건?”

“좋은 거야, 좋은 거.”

남자들이 꼭 찾는 건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어머나! 이건!”

왕태자비의 체통이고 뭐고 굉장히 왈가닥 기질이 강한 그녀는 내가 건넨 약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생각해보니까 데이비 왕자님은 의학에도 정통하시죠?! 설마 이건 제가 생각하는 그건가요?!”

“아마 평생 걱정 없을 겁니다.”

무려 신의 눈물방울 희석액이 섞인 거니까.

이미 한차례 전부 사용한 신의 눈물방울을 어디서 구했는가.

그건 회랑, 아니 신의 영역에서 한참 나를 씹어대고 있을 [백신]이자 초대 성녀인 다프네가 숨겨놓은 걸 받아온 결과였다.

“들었어요?! 이제 괜찮대요!”

“크으…….”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든 바리스가 묻는다.

“형님! 이거면, 저 살 수 있는 겁니까?”

동아줄을 붙잡는 그 눈빛이 부담스럽지만 나는 녀석에게 사실 그대로 전해주었다.

“역전도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형님!”

비명을 지르며 좋아하는 바리스와 그런 그를 보며 혀를 날름거리는 공녀.

상당히 궁합이 잘 맞는 부부였다.

* * *

티오니스에는 본래 두 개의 달만이 존재했다.

태양신이라 불리는 사일러스.

그리고 달의 신이라 불리는 크리아스.

물론, 실존하는 신이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한 존재이기도 하고 그 두 신을 믿는 교단은 극소수인 터라 사실상 신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지만 두 개의 달이 티오니스에 풍요를 가져다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마치 다른 차원에서 비치는 듯한 거대한 달이 생겨났다.

세 번째 달 타나토스.

당연히 처음 타나토스가 떠올랐을 땐 티오니스 각지에서 말이 많았다.

두 개의 달 이외에 거대한 달이 갑자기 뿅하고 생겨난 꼴이니까.

혹자는 저것을 신의 영향이라 말하는 이도 있고, 혹자는 저것이 종말의 전조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저 달을 만든 입장에선 퍽 우스운 일이었다.

물론 그 의문을 굳이 내가 풀어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생명력이 가득하니까. 곧 태어날 우리 달님이는 축복받은 거야.”

달님이.

에이리아가 가진 아이의 태명이다.

태몽이라는 게 참 웃긴 요소라 할 수 있다.

꿈속에서 아이가 초승달에 앉아 해맑게 웃으며 에이리아의 품에 안겼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게 달님이다.

“아빠! 아빠! 그럼 우리 달님이 언제 태어나는 거야?”

아주 작은 아이에서 이제는 6~7살 정도 된 소녀의 모습으로 바뀐 청단이와 홍단이였다.

본래 청단이와 홍단이의 정신체는 성장이 굉장히 더디다.

그렇기에 성년의 모습을 하려면 못해도 백 년 단위의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놀랍게도 두 아이는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성장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붉은 공허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

중간부터는 지칠 대로 지쳐 의지가 잠든 탓에 크지 못했지만 처음 홍단이와 청단이가 잠들기 전만 해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비트의 드래곤 하트를 먹고 진화한 청단이와 홍단이의 성장이 가속화된 것이 지금의 모습이었다.

“달님이 빨리 보고 싶어?”

“응! 홍단이는 달님이 빨리 보고 싶어! 청단이도 매일 기도하는걸! 그렇지?”

“청단이도 달님이 빨리 보고 싶어요. 태어나면 막막 매일 손잡고 놀러 다닐 거에요!”

갓 태어난 아이는 눈도 못 뜨는 법이다.

당연히 그것을 모르니 청단이는 달님이가 태어나자마자 청단이 홍단이처럼 말하고 뛰어다닐 수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어린 동심을 굳이 파괴할 이유는 내게 없었다.

“그래. 홍단이랑 청단이랑. 달님이하고 뮤우도 데리고 아빠가 좋은데 구경시켜줄게.”

“와아!”

꺄르륵 웃으며 두 아이가 내 품에 안겼다.

“뮤우한데 막막 자랑했다? 홍단이 동생 생긴다니까 막 엄청 부러워했어!”

“저런. 뮤우는 외동이니까 그걸로 많이 슬퍼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우웅…… 네에.”

하프 엘프 뮤우의 양육권을 지닌 유리아가 아이를 가진다면야 모르겠지만 유리아 헬리샤나의 머릿속은 오랫동안 봐온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4차원의 무언가였다.

‘애초에 기괴한 재료를 이용해서 괴식을 만들어내는 발상부터가 정상은 아니겠지만.

“저하!”

두 아이와 한껏 놀아주고 뻗어버린 륀느를 대신해 달밤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하던 나는 다급히 뛰쳐 들어온 에이미를 보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이 늦은 시각에.”

“에이리아 왕자비 마마께서!”

“에이리아가?”

“지…… 진통이 오셨어요!”

쿠당탕!!

그 말에 내가 벌떡 일어났다.

“우우…… 아빠?”

“달님이가 태어나려다 보다, 가보자!”

“홍단이 갈래! 달님이 보러 갈래!”

두 아이를 안아 들고 후다닥 뛰어가자 멀리서 에이리아가 끙끙대며 아파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읏…… 하…… 하악…… 하악!”

상상 이상의 격통에 정신을 못 차리는지 그녀가 몸을 버둥거린다.

드디어 달님이가 태어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아아아악!!”

결국, 진통이 세게 오기 시작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에이리아가 침대에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양수가 터지고 아이가 나오려는 징조를 모두가 지켜본다.

“에이리아!”

“데이비.”

내 등장에 페르세르크가 키득거리며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어딜 들어오는 게야. 나가서 기다려.”

“무슨 헛소리야! 내가 받아내야지!”

내 말에 일리나가 손수건으로 에이리아의 땀을 닦아주며 말한다.

“아 그건 걱정 마.”

그 말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파앙!!!

아주 작은 파장이 퍼져나갔다.

내 기감을 속이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기습을 해?

이윽고 고개를 돌린 내가 눈을 크게 뜬다.

“할머니가 거기서 왜 나와?”

“할머니라고 부르지 마, 이 개 x놈아!”

내 뒤에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독특한 의복을 입고 있는 다프네와.

“데이비. 건강해 보이는구나.”

“누님?”

“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흐름도 잠시 멈춰놓고 강림했단다.”

신의 히포크리아 누님이었다.

“아니…… 신격을 개방해놓고 강림을 했다고요?”

“누가 신격의 규칙을 엉망으로 비틀어놔서 말이야. 네가 우리를 변수 가득한 신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강림이 참 쉽다 그치?”

거짓말하고 있네. 아무리 간섭이 쉬운 신으로 구현했다고 해도 신적인 존재가 된 그녀들이 내려오는 데엔 상당한 힘을 소모했을 것이다.

그들은 신의 영역에 묶인 존재이니까.

나를 퍽 하고 밀어내며 다프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버틸 수 있지?”

“네.”

“통각 감화를 사용하면 편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의 마나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하아, 하아, 괘, 괜찮아요. 이미 각오하고, 으읏…… 있었어요.”

“걱정 마. 여기 이 언니는 데이비보다 더 대단한 의사니까.”

“일단 호흡부터 진정하는 게 좋겠어. 다프네.”

“알고 있어.”

화아아아악!!!

순식간에 방대한 신성력이 주변을 감싼다.

본래 다프네가 가지고 있던 신성력이 더욱 신성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 지금…….”

“넌 좀 나가!”

다혈질의 다프네가 나를 무작정 밀어내버리자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못 한 채 밀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빠…… 홍단이 달님이 태어나는 거 못 봐?”

“청단이도 보고 싶은데…….”

“조금만 기다릴까? 아빠랑 여기서 달님이 태어나는 거 기다리는 거야.”

내 말에 두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 님! 막대한 에너지 파장을 감지! 륀느가 호위능력을 높게 평…….”

“너도 여기 와서 앉아.”

내 말에 지구에서 샀던 동물잠옷을 입고 부리나케 달려온 륀느가 맹한 얼굴로 나를 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이비 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의문스럽게 판단해.”

“나도 쫓겨났다.”

내 말에 륀느는 조용히 문 너머를 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 * *

어슬렁 어슬렁.

“우웅…… 아빠 홍단이 어지러워…….”

팔짱을 낀 채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다 참지 못한 홍단이가 불만을 터뜨린다.

“청단이 속이 메스꺼워…….”

아이를 낳는 건 에이리아인데 왜 이쪽이 더 긴장하는 것인가.

“긴장하지 마.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야.”

“아아아아아아악!!”

에이리아의 비명이 다시 울려 퍼지자 내가 멈칫하며 당장이라도 문을 열 것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은 곧 륀느와 베르닐 시종장에 의해 저지되었다.

“데이비 님.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륀느가 분석해.”

“저하. 이럴 땐 그저 기다리시면 됩니다.”

“시종장.”

“믿고 기다려보시지요.”

“후우……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구만!”

“바짝바짝 타들어 가면 물을 뿌려드리겠습니다.”

“…….”

그의 기괴한 유머에 내가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륀느도 무표정으로 그를 직시한다.

입매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아주 경악한 듯하다.

“흐음…… 별로 효과가 없었나 보군요.”

“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거야 시종장.”

“아스가르드의 함장이신 티아라 영애가 지구라는 곳에서 배워왔다더군요.”

“…….”

이 기지배를 어이할까.

한숨을 포옥 내쉬던 그 순간이었다.

“으우아앙!! 으우아앙!”

에이리아의 비명이 일순간 끊어지더니 곧이어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나는 륀느의 제지도 무시한 채 대뜸 문을 열어젖히며 뛰어들어갔다.

“에이리아!”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건으로 땀과 피를 닦아내고 있는 히포크리아 누님과 에이리아에게 성마법을 걸어주고 있는 다프네가 보였다.

“휴우…… 고생했어. 하지만 좀 더 먹어두는 게 좋을 거야. 몸이 너무 약해서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으니까.”

그녀의 말에 에이리아는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포대기에 싸인 아주 작은 아이를 에이리아의 품에 안겨주었다.

“축하해. 아들인 게야.”

“아아…….”

촉촉해진 눈망울을 보이며 그녀의 청록빛 머리칼 위의 귀가 쫑긋거렸다.

“내 아이…….”

아이의 머리 위엔 수인족의 특징인 귀가 돋아나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머리카락의 색도, 눈 색도 구분할 수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축하해 데이비. 그대를 꼭 닮은 아들이니.”

“아들이라.”

아들이든 딸이든 사실 그건 상관없었다. 누가 됐건 소중한 아이였으니까.

“달님아…… 반가워.”

힘없이 웃으며 아이를 향해 울음을 터뜨리는 에이리아에게 다가간 나는 말 없이 에이리아가 누운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 많았어.”

“태어났어요…….”

“…….”

“정말로…… 이번엔 건강하게 태어나줬어요.”

그녀의 눈물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한 차례 자신의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처녀 수태이긴 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첫아이는 유산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두 번째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이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달님이, 한번 안아주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괜히 먹먹해진 기분이 들어 아이를 안아 들었다.

“달님아. 아빠야…….”

한참을 울던 아이가 잠잠해진다. 팔뚝보다 작을 정도로 작은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우와! 달님이 엄청 쪼그매!”

“맞아 맞아!”

홍단이 청단이는 그런 달님이의 모습이 신기한 듯 보였다.

“그나저나 이름은 어떻게 할 거야?”

일리나의 물음에 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들 이름은 달님이니까. 문…….”

“안돼. 네 작명 센스는 끔찍한 수준이야. 당분간 달님이라고 부르고 이름은 같이 고민해보자.”

한순간에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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