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8화
“저…… 왕자님.”
“왜 그럽니까 안토니오.”
방한 기간 동안 머무르던 호텔 방에 앉아 바깥을 내려다보던 알하자드는 안토니오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습니까. 그곳은 몬스터 출몰이 잦은 지역이라고 분명…….”
“그렇겠지요. 어쩌면 앞으로도 큰 손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지구에선 몬스터가 나타나는 지역이 주기적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부 지역은 그런 주기를 개 무시하듯 툭하면 몬스터가 출현하고 있다.
흉신의 멸절 이후에도 몬스터의 출현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니까.
“자금은 둘째치고 손해만 볼 수 있는…….”
“안토니오.”
“예 왕자님.”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구해준 은인이자 친구가 내게 바란 것은 단순한 제작 대행이었습니다.”
“…….”
“그런 그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 있는 그에게 예쁜 여인을 소개시켜줄까요? 아니면 구하기 힘든 선물을 쥐여줄까요.”
다 의미가 있는가.
“돈이 얼마나 들어도 괜찮습니다. 친구가 원합니다. 친구의 딸이 가고 싶어 합니다. 그가 바라는 것을 친구로서 은혜를 갚기 위해 해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알하자드도 마냥 퍼주는 인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데이비라는 인물로 인해 그가 받은 구원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그 말에 알하자드는 연신 즐거운 듯 킥킥 웃어 보였다.
* * *
알하자드의 막대한 자금이 쏟아 부어진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그의 행보를 주시하던 이들은 그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짓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반면 다 죽어가던 알프랜드가 순식간에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을 보이자 넷상에서는 중동의 기적, 석유의 기적 같은 우스갯소리도 나돌았다.
그런 와중에도 절대 나에 대한 이야기는 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가 정보 차단을 확실히 한 모양이었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더니…….
“괜찮아…… 괜찮아…….”
반짝 얼어붙은 얼굴로 롤러코스터에 올라앉은 에오니샤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티아라가 뭐가 그리 신났는지 적발을 흩날리며 즐거워했다.
덜커덩! 덜커덩!
이윽고 끝도 없이 올라가던 롤러코스터가 멈춘다.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본 에오니샤의 표정이 퍼렇게 질렸다.
“이…… 이건 잘못됐어! 난 여길 빠져나가야!”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어요! 왕녀님!”
티아라가 버둥거리는 에오니샤를 진정시키기가 무섭게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옥행 특급열차, 출발합니다. 안전띠 꽉 매시고, 앞자리 앉은 귀여운 꼬마 아가씨. 목청 높여 소리 지를 준비 됐습니까?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지금이라도 후진하면!”
덜컹!
“꺄악! 제가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안 죽어요! 안 죽어! 걱정 말아요!”
“제 심장이 지금 터져버릴 거 같아요!!”
버둥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다른 이들은 귀여운 아이를 보듯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 덜컹 소리와 함께 에오니샤가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리고,
엄청나게 높이 올라간 롤러코스터가 이내 순식간에 추락하듯 쏟아진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은 덤이었다.
“우욱…… 웁…….”
단 한 번, 알프랜드에서 유명한 롤러코스터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고 내린 그녀가 비틀거리며 구역질을 했다.
“왕녀로서의 체면이…….”
눈물을 흘리며 무너져 내리는 에오니샤와 별개로 티아라는 재미있었는지 한 번 더 타겠다고 야단을 부렸다.
돈 앞에 안 되는 일 없다고 했던가.
알하자드가 알프랜드를 그 자리에서 사들이고 대량의 자금을 붓기 시작하자 자금난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던 알프랜드 스태프 측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노를 저었다.
물들어올 땐 노를 저어야지.
그 덕분에 뉴스에서 한참 떠들어대면서 자연스레 알프랜드에 사람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들어있었다.
본래라면 다른 이들 없이 즐기는 걸 원했으나 초단이가 바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북적거리는 놀이공원이었다.
“꺄아아아악!!”
신이 난 듯 소리치며 놀이기구에 앉아 만세를 외치는 초단이를 보니 이번 행보가 손해 볼 짓은 아니었다는 게 확실해지는 느낌이었다.
“데이비.”
저 멀리서 동물 귀 머리띠를 머리에 쓰고, 즐거운 듯 걸어오는 페르세르크가 보인다.
그녀의 곁에는 내가 마나를 부여해줌으로 인해 육체가 형성된 초단이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외에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는 에이리아와 일리나가 잔뜩 치장한 모양새로
그녀는 아닌 척하면서도 이미 뺨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손에 헬륨풍선을 쥔 채 충분히 재미를 만끽하는 모양새였다.
“데이비, 자!”
일리나가 즐거운 표정으로 다가와 내 머리에 동물 귀 머리띠를 씌웠다.
“다 좋은데 왜 하필 토끼야.”
“제일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아, 초단아! 언니! 저거 타봐요. 이번엔!”
본래라면 나도 마음 놓고 즐길 생각이었다.
전생에선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 탓에 하인스 영지에도 이런 놀이공원을 만들까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즐기는 것보다 즐기는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한 번 더 가요! 억울해서 안 되겠어!”
“또 올라가서 아니라고 엉엉 울거잖아요? 괜찮아요. 안 지린 게 어디야.”
“이익!!”
악다구니를 쓰며 다시 한번 지옥행 롤러코스터를 가리키는 에오니샤와 그런 에오니샤를 비웃으며 놀리는 티아라.
페르세르크나 일리나, 그리고 에이리아와 함께 돌아다니며 맛난 것들을 먹고 꾸미며 재밌는 짓을 하는 이들까지.
“아버지! 같이 놀아요!”
“난 여기서 구경하면…….”
이상하게 지치는 느낌이다.
“안 돼요! 어서 가요!!”
그 외침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우우우웅!! 쿠웅!!
“쿡쿡. 어서 오너라. 본녀가 지옥행 편도 익스프레스를 태워줄 터이니.”
“이것만큼은 질 수 없다!”
속도에 환장하는 두 소녀의 범퍼카 혈전이 펼쳐진다.
초단이는 익숙하지 않은 운전에 이리저리 허둥지둥거렸고 그런 그녀를 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아니 정확히는 모두가 시선을 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색적인 머리색도 머리색이지만 미모들이 어디 보통이던가.
실제로 티아라는 에오니샤와 함께 다니다가 헌팅을 당했다는 모양이더라.
쿵!!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운전대를 돌리던 도중 누군가가 내 옆에서 추돌사고를 냈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륀느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륀느, 옆치기 성공을 높게 평가.”
“이 자식이?”
“륀느, 데이비 님보다 빠른 기습공격 능력을 높게 평가해.”
쿵! 쿵!
뒤로 빠졌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며 계속해서 내가 탄 범퍼카를 처박는 륀느를 보며 내가 환하게 웃는다.
“륀느야. 나도 운전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니가 자꾸 이렇게 교통법규를 무시하면.”
우우우웅!
“마 그땐 폭주족이 되는 거야!”
[6서클 라이트닝 오버 드라이브.]
콰지지직!!!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출력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는 범퍼카가 순식간에 움직인다.
동시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륀느가 급히 자신의 범퍼카를 간섭해 속도를 올려보지만.
쾅!! 쾅!!
결국은 구석에 몰려 내게 수차례 박히는 꼴이 되었다.
“어? 어? 니가. 어? 아주 겁을 상실해서. 으이?”
쿵!! 쿵!
덕분에 주변의 시선을 모아버리고 있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 와중에도 누군가가 알아보지 못하는 건 안면인식에 대한 방해 마법을 걸어둔 탓이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나와 페르세르크니까.
얼굴은 그대로 보되 나를 티오니스의 성자와 동일시할 수 없는 고도의 인식 장애 마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데이비 님 악랄한 운전수법을 륀느가 낮게 평가.”
한참 동안 죽음의 추돌사고를 내가 속이 시원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후로도 잔뜩 흥미가 생긴 초단이가 귀신의 집을 가리켰고, 동시에 일리나와 에이리아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뒤따라온 에오니샤 또한 눈을 부릅떴다.
“저…… 저는 잠시 쉬어야 할 거 같아요.”
“나도 마찬가지야. 좀 쉴래.”
순식간에 자제하고 있던 사디스틱한 마음이 내 정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미소를 본 페르세르크가 쓰게 웃어 보였다.
* * *
알프랜드가 아무리 몽환적인 요정의 왕국 컨셉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귀신의 집은 빠질 수 없는 어트랙션이다.
그리고,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알프랜드의 귀신의 집은 그중에서도 유명했다.
어트랙션 [지옥 밑바닥.]
커다란 폐호텔을 가져다 놓은듯한 모습으로 그 내부의 분위기가 유명한 공포제작팀의 손을 탄 것처럼 느낌이 있다.
대체 몽환적인 요정의 세상 컨셉의 놀이공원에 왜 이런 이름들이 붙어있는가.
“지옥행 뭐시기도 그렇고, 좀전의 범퍼카들은 디자인이 무슨 세기말 범퍼카들이고…… 이거 완전 갭으로 장사하나…….”
입장은 둘.
우연찮게 륀느와 함께 입장하게 된 나는 비명을 지를 다른 이들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씁쓸한 감정을 내비쳤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 나와 함께 가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걸 보면 나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낮다.
꺄아아아악!!
저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린다.
“가자.”
어두운 복도를 향해 걸어가며 내가 조용히 말하자 륀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걸음 내딛으려던 찰나였다.
스윽.
륀느의 앞에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럽게 생긴 무언가가 아주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됐건 비명을 지를만한 비주얼.
하지만 륀느는 무표정한 얼굴로 괴물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따라왔다.
“참…… 리액션 재미없다.”
“륀느, 심장부가 상당히 빠르게 뛴다고 판단해.”
“놀란 녀석이 표정이 그러면 놀래키는 사람도 재미없을 거다.”
담담하게 말하며 걸어 나간다.
초입부에 불과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나 륀느나 이런 곳에서 큰 반응을 보이는 타입은 아니었다.
“음?”
그런 그때였다.
혹시나 싶어 퍼뜨려놓은 사령 마나의 일부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뭐지?”
“데이비 님? 앞에 귀신.”
“아 그래 잠깐만요.”
손짓을 하며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내가 뿌려놓은 사령 마나의 가닥 중 하나가 끊겼던 거 같은데.
내 반응이 어처구니없는지 어트랙션 직원이 멍하니 나를 보다 슬금슬금 지나간다.
“아. 그쪽으로 가면 사람 있어요. 괜한 짓 해서 사람 다치면 좋은 꼴 못 볼 테니까 저쪽으로 가요.”
이윽고 내가 슬금슬금 지나가는 귀신에게 말했다.
그러자 귀신이 나를 돌아보더니 그대로 스윽 하며 흩어져버렸다.
“……데이비 님? 방금…….”
“귀신이지, 뭐긴 뭐야.”
내 말에 륀느가 눈을 가늘게 뜨고 괴형체가 사라진 곳을 보다가 그대로 털썩 넘어졌다.
“륀느, 작동오류.”
리액션 참 재미없는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