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1화
244. 달이 만들어낸 것들
“움직여!!!”
퍼석!!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검은 피부를 지닌 거대한 털북숭이 거인이 각성자 중 한 명을 처참하게 짓이겼다.
콰앙!!!
[이. 리. 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몬스터는 그 겉보기만큼이나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기존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오우거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전신에 두꺼운 털이 돋아있고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는 정체 모를 거대한 눈동자가 박힌 살덩어리가 꽂혀있다.
특A급 몬스터, 헤들리스 자이언트.
실제로 과거 이곳에서 나타났던, 알을 지키던 괴물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조금 바뀌어있었다.
“우욱…… 대체 뭐야…….”
겉보기에도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그 끔찍한 형태에 윤석이 피를 울컥 토하며 무너져 내렸다.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그르르르]
대화가 통하는 몬스터는 처음이다.
게다가 주변을 짓누르는 섬뜩한 압박감까지.
이 일의 발단은 간단했다.
몬스터의 출현을 조사하기 위해 파장을 건드린 게 오히려 도화선에 불을 붙여버린 꼴이었다.
파장은 길어도 몇 달은 안전할 파장이었다.
하지만 자극을 받은 파장은 그 자리에서 문을 열어버렸고.
저 괴물을 만들어냈다.
뭔가 잘못되었는지 괴물은 격하게 날뛰며 닥치는 대로 그곳에 있던 각성자들을 참혹하게 도살했다.
싸움이 될 리가 있나.
상위 각성자 다수가 모여 준비에 준비를 마치고 일제히 공격해야 겨우 몰아낼 수 있는 괴물이다.
지금 상위 각성자라고 해봐야 보조 계열인 서윤과 근접 계통인 윤석이 전부.
나머지는 사실상 큰 전력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윤석은 홀로 놈과 맞서다가 전신에 큰 치명상을 입지 않았던가.
심각한 건 그 괴물이 제 부하를 마구잡이로 불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서윤아!!!!”
그때 격하게 날뛰던 괴물이 허겁지겁 거리를 벌려 도망치던 서윤을 한 손으로 낚아챘다.
“꺄아아아아악!!”
끔찍한 악력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각성자가 되어 차에 치여도 멀쩡한 육신을 지닌 서윤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울컥 토해내자 윤석이 핏발이 선 얼굴로 소리 지르며 검을 빼 들고 덤벼들었다.
퍼어엉!!
하지만 헤들리스 자이언트는 그 자리에서 윤석을 후려쳐 날려버린 뒤 거대한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눈동자의 동공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돌기가 잔뜩 돋아난 촉수들이 그녀를 휘감기 시작했다.
“시…… 싫어! 싫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팔다리뼈가 부러진 상태라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때 촉수 중 하나가 끝을 침처럼 만들더니 그대로 그녀의 복부를 찔렀고 기이한 무언가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피부가 환부로부터 서서히 검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젠장!! 감염이라고?!”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그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키려 든다.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들의 행동은 어떤 입장에서건 정당화 될 수 없었다.
멋대로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을 들어간 것은 둘째치고 가만히 있는 벌집을 들쑤신 꼴이니까.
아무리 위험요소가 남아있다 해도 이렇게 개별적으로 움직여선 곤란했다.
실제로 국재원에선 괜한 짓 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지시사항이 내려져 있었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서윤이를 살려야 해!’
지원을 부르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방해되니까 좀 비켜.”
퍼엉!!!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갑작스런 충격에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튕겨 나갔다.
마치 덤프트럭에 치인 것 같은 충격에 그가 피를 울컥 토한다.
“걱정 마라, 사람 쉽게 안 죽는다.”
그 말과 함께 윤석은 자신이 본적이 있는 이가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알프랜드의 회장이라던 젊은 청년.
하지만 지금 그의 주변엔 무심코 두려움에 몸서리를 칠 정도로 검붉은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니들은 일단 이따 보자.”
따악!!
그 말과 함께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의 색이 일순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저질러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긁어 부스럼이라 한다.
쩌적!! 쩌저적!!
사방에서 갈라지는 균열은 척 보기에도 마나의 흐름이 불안정해 정상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려준다.
“어느 별에서 왔니~”
콰직!!! 으드득!!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몬스터들을 잡아 비틀고 꺾어버리는 그 모습은 누가 봐도 기괴해 보인 모양이다.
-그르륵…… 그륵…….
트루 오우거부터 단순히 재생능력만 따지면 트롤 중 최상위라 불리는 블루 트롤까지.
그 수는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내 예상과는 별개로 이곳에 무언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만히 두면 별일 없는 걸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망쳐놨으면 혼이 나야지.”
콰득!!
-크르르르륵…….
내 손에 붙잡힌 채 바들바들 떠는 오우거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본다.
생명력을 먹어치운 이후 간혹 대화가 통하지 않는 존재조차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으로 그 대상의 의지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불합리에 대한 원망.
몬스터가 이런 확고한 의지를 가진 건 조금 의외이긴 하다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생명체가 어떤지는 새삼 놀랄 것도 없다.
콰득!!
오우거의 사체를 한 손으로 집어 던져버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몬스터와 그 몬스터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서윤아!!”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움직이려는 사내.
윤석이라는 이름이었다.
그가 소리 지르는 대상은 괴물에게 잡힌 채 기이한 액체를 주입 당하고 감염당한 서윤이라는 여성이었다.
척 봐도 피부 내부로 침투하여 혈관을 타고 급속도로 감염되는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변종 같은데.
“방해되니까 좀 비켜.”
퍼엉!!!
순식간에 윤석을 걷어차 날려버린 나는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만끽하며 걸어 나갔다.
“컥…… 뭐, 뭐 하는…….”
“니들은 잠시 후에 보자고.”
천천히 말아쥔 주먹으로 내리치듯 허공을 때리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목재를 깎아 만든듯한 몽둥이가 나타난다.
“말 안 듣고 사고 치는 것들에겐 예로부터 이게 약이었다.”
한 손으로 몽둥이를 집어 든 나를 바라보는 괴물은 위험성을 느꼈는지 촉수로 포박하고 있던 서윤을 집어 던져버렸다.
감염 증상으로 인해 환부 주변이 검게 변한 그녀는 당장이라도 죽어갈 것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위, 위험!!”
필사적으로 나를 향해 위험하다며 말하려 드는 그녀를 무시한 채 내가 한걸음 내디딘다.
쿵!! 쿵!!
동시에 헤들리스 자이언트의 두 눈이 나를 직시하며 거체를 이용해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타박, 타박.
그리고, 놈을 향해 나 또한 한걸음, 또 한걸음 내디뎠다.
일순간 거리가 좁혀진다.
그런 놈의 형체는 흉측하기 그지없지만.
퉤.
한 손에서 양손으로 마치 야구 배트를 휘두르듯 자세를 잡은 내 눈에 놈의 움직임이 온전히 담긴다.
일순간 놈의 거대한 주먹이 바닥을 박살 내며 파고들자 가볍게 튕기듯 몸을 물린 내가 다시 한걸음 내디딘다.
그리고는 재차 공격하는 놈의 팔 아래로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그아아아…… 주, 죽, 인……!!
격한 분노가 서린 외침이었다.
자아가 명확한 헤들리스 자이언트다.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저놈의 몰골을 저 꼴로 만든 건…….
사실 나였다.
“낮에 한 번 짓밟혀서 쫓겨났으면, 숨죽이고 있었어야지 뭐 볼 게 있다고 다시 기어 나와. 내가 우습냐?”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한방에 주님 곁으로.]
치이이잉!!!
검붉은 기류가 순식간에 몽둥이에 스며들며 공기를 찢어발겼다.
터엉!!!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나가지만, 색을 잃어버린 주변 공간에 닿아 그대로 흩어지듯 사라진다.
나를 공격하던 괴물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세상이 멈춰버린 듯 굳었다.
쿵!!!
그대로 무너진 헤들리스 나이트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확장된다.
“어허!.”
-크아아아아아!!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 버둥거리는 놈의 다리를 짓밟아 고정시키며 몽둥이를 들어 올리자 녀석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쩌엉!!! 쩡!!
그 이후로 순식간에 난타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헤드리스 자이언트는 처음의 패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바닥에 쓰러져서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살아남기 위해 악을 써보지만 그럴수록 매질은 점차 거칠어질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살아남은 이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특A급 몬스터.
그것도 기이하게 뒤틀려 척 봐도 위험하다 판단되는 괴물.
그런 괴물의 출현이라면 한국의 상위 각성자들을 다수 모아야 하는 적이다.
그렇기에 절망했다. 수가 적은 국재원의 인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
그리고, 뒤늦게 홀로 나타난 이에 대해서도.
하지만 모든 예상을 뒤집고 의외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와야 할 때 숨죽이고 있어야 할 때 구분 못 하지. 어?”
퍼엉!! 펑!!
이제는 불쌍해 보일 정도로 처참하게 구타당하는 괴물의 저항이 점점 줄어든다.
국재원의 각성자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괴물이 침묵하는 데엔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추욱 늘어져 버린 괴물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그가 천천히 쓰러진 서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공간 속에서 주삿바늘과 메스를 꺼내 들더니 마나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흩뿌리고 환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옷을 찢어내고 검게 변질된 환부에 주사를 찌른 뒤 살을 가르고 내부에 썩은 것들을 도려냈다.
그리고, 중요부위는 새하얀 빛을 일으키며 치료한다.
의술과 회복능력을 병행한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치료방법.
겉보기보다 저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아는 이들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 도와줘서 고맙습니다만…… 당신은 대…… 커헉?!”
몸을 일으켜 다가온 윤석이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순간적으로 섬광이 번뜩이더니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동시에 서윤이 데이비에게 목을 틀어 잡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버둥거렸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만? 이것들이 돌았나.”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니들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지.”
“…….”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것 같은 서늘한 한기가 퍼져나가자 바닥에 쓰러진 윤석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헤드리스 자이언트의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묵직한 한방에 내장이 뒤틀려버린 것처럼 고통이 몰려왔다.
“너희들이 여기에 숨어들지만 않았어도, 결계를 치던 직원을 기절시키지만 않았어도, 여기 와서 쓸데없이 파장만 안 건드렸어도 이놈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난동 부릴 일도 없었어.”
결계만 완성되었다면 이곳에 생겨난 파장의 흔들림을 수정해서 이곳이 아닌 저 바다 깊숙한 곳으로 좌표를 돌려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그 말에 서윤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데?”
“설마…… 당신. 티오니스 성자…….”
“눈치는 빠르네.”
다수의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시점에서 애초에 숨길 요소가 없어진 꼴이다.
순식간에 인식 장애 마법이 해지되자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 아는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인물의 모습으로.
“왜…….”
그녀가 지친 얼굴로 물어왔다.
“왜…… 처음부터 당신이 티오니스 성자라고 말하지 않은 거죠?”
그 물음에 차가운 웃음으로 대꾸한다.
“그게 궁금해?”
“…….”
“그런데 전제가 틀리지 않았나? 내가 왜 그걸 굳이 보고해야 하지?”
그 한마디에 서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잘못은 너희들이 저질러놓고 책임을 내 쪽으로 전가하고 싶었나?”
“그…… 그런 건!”
“아니면 뭔데. 내 인내심이 저기 높으신 하늘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
부드러운 어조지만 극도로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