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62화 (861/1,559)

제 862화

피를 뿌리며 쓰러진 이들 중 겉으론 피투성이지만 실상 멀쩡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던 박웅철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윤을 압박하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나타났다.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태풍의 핵.

단일 국가 전력이라 불러도 될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존재.

‘이런, 골치 아프게 됐군…….’

기절한 척하며 그는 상황을 면밀하게 살폈다.

헤드리스 자이언트가 뒤틀린 것까진 감당이 가능한 범위였다.

본래라면 헤드리스 자이언트가 이곳의 각성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힘을 빨아들여야 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 또한 헤드리스 자이언트의 먹이가 지천에 널린 상황이다.

그래서 직접 다른 이들 몰래 파장을 자극해 이 상황을 유도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그의 계획은 단 한 명으로 인해 뒤틀려버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게 맞을 테지만.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닿는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잠시 침묵했을까.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리 태풍의 핵이니 뭐니해도 저 새로운 달의 힘을 사용하는 주를 어찌할 순 없다.

[주의 뜻대로…….]

그리고는 남들이 보지 못하게 조심스레 입을 달싹거리며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재앙을 깨우려는 주문을.

* * *

나는 서윤을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

“니들이 원하는 게 뭐야. 지금 이 상황에 책임 전가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 그건……”

“그럼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는 잘 알겠지?”

“저를…… 죽이실 건가요?”

“필요하면.”

“전…… 전 그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결과적으로 네가 다 죽일뻔했네.”

“…….”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기침을 했다.

그녀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간다.

“그만하십시오!!”

그때 누군가가 난입해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와 익숙한 인물이었다.

두 번째 제작 노예이자 물질변환사 마가 한유나와 포도맛캣타워였다.

“잠깐만요!”

“니들이 왜 여기 있어.”

“직장이니까 그렇죠! 일단 진정해요! 사람 죽겠네!”

“내가 없었으면 여기서 사람이 몇이나 죽었을까.”

내 물음에 그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죠, 이 바보들이 실수한 거 다 알죠! 하지만 오빠 일단 절 봐서라도 조금만 진정해줘요! 일단 이야기라도 한 후에…….”

내 성격을 아는지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도와준 게 있으니 봐준다.”

나는 서윤을 노려보다 그녀를 거칠게 던져버렸다.

“쿨럭…… 쿨럭.”

고통스런 기침을 흘리는 그녀를 향해 내가 싸늘하게 말했다.

“휴우…… 서윤 씨, 괜찮아? 나 알아보겠어?”

“으윽, 유나 언…… 니.”

“그래 유나야. 아이고 정말, 내가 하지 말라니까 진짜!”

“죄……송해요…….”

“사과는 나한테 하지 말고, 일단 쉬어. 그보다 감염됐다고 들…….”

마가는 곧 포도맛이 어깨를 툭툭 건드리자 인상을 썼다.

“뭐 왜 뭐.”

“저 인간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누나.”

“아 그러네?”

환자가 적이라면 치료 후에 쳐 죽이는 내 성격을 잘 아는 두 사람이었다.

안 봐도 비디오라는 듯 그들은 감염 여부에 대해선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후우…… 그보다 적은 처리 된 거예요?”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 조각들을 보며 그녀가 물어왔다.

“아니.”

“그럼?”

마가의 물음에 나는 헤드리스 자이언트가 나왔던 균열을 가리켰다.

동시에 그 안에서 주홍빛의 화염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촉수들이 뿜어져 나온다.

쩌어엉!!!

촉수들은 끝을 날카롭게 하여 공격해 들어왔지만 이내 내가 펼친 장막에 막혀 멈추고 말았다.

카앙!! 캉!!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히는 것처럼 맹렬하게 공격을 쏟아붓는 촉수가 알이 깨지며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짜득!!

“알이!? 깨지고 있어!”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알이 완전히 박살 나며 그 안에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홍빛의 형체로 이루어진 빛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모습. 눈코입은커녕 주홍빛으로 가득한 모습이지만 단 한 가지. 등 뒤로 날개처럼 돋아난 수십 가닥의 촉수 줄기들은 놈을 위험천만하게 느끼게끔 만들었다.

이윽고 알에서 깨어난 괴물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이내 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하늘에 뜬 지구의 두 번째 달. 타나토스가 크게 한번 진동했다.

전 차원을 비추는 이 세상을 유지시켜주는 거대한 힘의 순환.

그 주체인 달이 지금 진동과 함께 마치 분열하는 것처럼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끔찍할 정도로 무거운 힘이다.

감히 헤드리스 자이언트와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의 등장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이들은 허망하게 하늘과 그 달을 뒤바꾸고 있는 주홍빛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주, 죽을 거야…… 정말로 죽을 거야…….”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굳어버린 이들 중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간다.

“아아. 아아 나의 주여.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웅철 씨? 무슨…….”

철컥! 타앙!!

휘적휘적 걸어 나가던 그가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그대로 쏘아버린 것이다.

“으아아악!!”

탄환을 다리에 맞은 윤석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단순 탄환이라고 보기엔 너무 강한 힘이 서려 있었다.

절대 웅철이라는 저 사내 본연의 힘이 아니었다.

“아아…… 정말 황홀한 힘이야…….”

그가 변태처럼 중얼거리다 양팔을 벌렸다.

“경배하라, 세상의 구원자시다. 경외하라! 세상을 이루는 새로운 신의 탄생이다. 두려움에 떨어라. 저 파괴의 달과 함께 떠오른 모든 존재의 지배자이자 신의 탄생이다.”

“웅철 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대체 왜!”

“신께서 나를 감응자로 택하셨다. 그 외에 이유가 필요한가?”

미쳤다라고 말해본들 이미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바보같이 넘어가 준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서윤.”

그 말에 서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웅철 씨…….”

“살살 분위기를 조정한 것만으로 당장 몬스터가 나타날 것처럼 움직였던 자신이 미운가?”

그 한마디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바보같이 속아서 괴물을 불러내 버린 것이다.

“티오니스 성자는 조금 의외였지만…… 그래 봐야 상정 범위 내의 일이지. 자! 신이시여! 신께서 원하시는 제물이 준비되었나이다!”

마치 광신도처럼 몸을 숙여 고개를 조아린 박웅철의 외침에 주홍빛 인영이 분열하는 것처럼 보이는 달에서 힘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화르륵!!

“우선 방해가 되는 건 치워야지.”

동시에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촉수들이 일순간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쩌어엉!!

막대한 힘이 내 전신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공격을 쳐내지만 한 번에 끝장나진 않는지 계속해서 나를 공격해 들어왔다.

쉬리릭!! 콰드드득!!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갈라지면서 주홍빛의 촉수들이 내 허리와 다리를 휘감아 움직임을 제약했다.

꽤 강한 완력이 느껴진다.

카앙!!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촉수를 손으로 낚아채 보지만 촉수는 계속해서 나를 노리고 힘을 가해왔다.

“하하하하하! 재앙의 달인 저 달 그 자체인 신께서 가하는 재앙을 너희 피조물 같은 인간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것으로도 여유가 넘치는지 이내 쓰러져 있던 서윤을 향해 촉수를 뻗었다.

“서윤아!!!”

피할 틈도 주지 않고 파고든 촉수의 속도에 모두가 비명을 지르던 찰나.

삐리릭…… 삐릭!

갑작스런 소리에 가열되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식어 들어갔다.

스마트폰의 벨소리였다.

동시에 힘겨루기하듯 촉수를 잡고 있던 내가 그대로 촉수를 놓은 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나를 향해 파고들던 촉수는 마치 처음부터 힘겨루기 따윈 없었다는 듯 허공에 멈춰서 홀로 부르르 떨고 있었고 서윤을 향해 날아들던 촉수도 똑같이 멈춰버렸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다.

“어?”

“이게 무슨?”

움직이는 것 자체를 거부당한 것처럼 모두가 굳어있는 상황에서 내가 손을 든다.

“잠깐만, 전화 와서. 재밌는데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시 하자.”

내 한마디에 모두가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화가 온건 페르세르크였다.

스마트폰 너머로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비.

“어, 무슨 일이야?”

-초단이가 보고 싶어 해. 뭘 하는지는 묻지 않겠다만 얼른 해치우고 오는 게 어떨까 하는데.

“벌써? 지금 좀 바쁜…….”

-장난친다고 빨리 안 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게야.

그 한마디에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마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말에 양심이 찔려왔다.

이후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5분 내로 갈게.”

-그래. 무리하진 말아.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듯 내게 시선이 집중된다.

이윽고 전화를 끈 나는 촉수를 다시 잡으며 내 허리에 감고 힘을 주는 척 파르르 떨고 말했다.

“뭐해? 신께서 강림하셨다면서, 하던 거 마저 해.”

“…….”

너무 어처구니없는 상황인지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공격하던 주홍빛의 인간 형체를 지닌 빛도 굳어버린 모습 그대로였다.

재앙의 달?

그 달과 그 자체인 존재?

피조물 같은 필멸자?

“미안한데.”

내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저 달 타나토스는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재앙의 달이 아니야.”

저 달이 세상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또한, 저 달은 내가 만들었으며.

저 달에서 나오는 모든 힘은 내 제어 하에 놓여있다.

즉.

“네가 사용하는 힘은 말이야, 전부 주인이 있는 힘이야. 그게 누군지 알아?”

나야 나, 망할 놈아.

이해 못 할 소리라며 납득을 못하는 표정들이다.

내 말에 주홍빛 화염의 인영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시, 신이시여!! 보여주시옵소서!! 당신이 만들어낼 재앙…… 컥!!”

순식간에 주홍빛 촉수가 박웅철을 관통한다.

“나의 주여!! 어, 어째서! 그아아아아악!!”

동시에 그의 육신이 마치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쩌드드득 푸확!!

그리고 그렇게 빨아먹은 것이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 촉수가 다수 돋아나더니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 힘에 모두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무시한 채 한걸음 내디딘다.

“생각해보니 열 받네.”

세상을 유지하는 달인 타나토스를 정령계에서 띄워 올리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게 왜 니 꺼야. 저거 내 꺼야 임마.”

압도적인 힘을 풍기며 짓누르고 있는 건 주홍빛 형체지만 그는 자신의 힘을 모조리 쥐어 짜내며 나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다가간다.

녀석의 힘의 근원은 타나토스에서 순환하고 있는 생명력이다.

그런데.

그거 제어권 하며 모든 권한은 내게 있다.

자신의 힘을 모조리 끌어내려 하지만 녀석이 만들어낸 힘은 내 의지에 따라 모두 멈추고 흩어진다.

눈코입이 없어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상당히 당황한 낌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이 내게 전혀 닿지 않으니 당황할 수밖에.

그나저나 붉은 공허의 여파가 초단이에게만 영향을 미친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보고도 쉬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이 대부분.

녀석은 자신의 힘의 제어권이 전부 움직임을 멈춰버리자 당황한 듯 발버둥 쳐댔지만, 결과는 변치 않았다.

녀석이 새로운 달 타나토스의 힘의 여파로 만들어진 녀석이라면.

결과적으로 내 행동 하나에 놈의 생사가 좌우되는 꼴이다.

-끼이이이이익!!!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려 하지만 녀석의 촉수는 내게 닿기도 전에 멈춰버렸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강할 수 있는 거야?”

허탈한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천천히 놈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녀석의 발악은 내 손으로 생명력이 점차 빨려 들어가며 서서히 더뎌지기 시작했다.

“많이도 먹었네.”

마왕이나 위험한 마수가 태어나는 방식이 이런 게 아닐까.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오는 생명력과 함께 서서히 흩어지는 녀석은 결국 저항을 멈췄다.

그리고, 내 손을 타고 완전히 사라졌다.

힘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타나토스의 여파. 그렇기에 새로운 달, 타나토스가 안정화될 때까지, 이와 관련된 뒤처리는 내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맞았다.

지이이잉!!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알프랜드 전체에 무형무색의 결계가 펼쳐진다.

아무래도 돌아가라 말했던 그 유환이라는 이름의 스태프가 목함을 책임지고 묻은 모양이었다.

굳이 필요 없긴 하지만 어차피 설치해야 할 결계라면 상관없다.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무시한 채 나는 스마트폰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말했다.

“접니다. 준비해주세요. 저도 갈 테니.”

“형?”

“여기 정리하고 돌아가. 나중에 이야기하자. 따로 연락할 테니까 기다려.”

마치 와이프에게 바가지를 긁히고 허겁지겁 돌아가는 남편 같은 모습에 긴장감의 끈이 탁! 하고 끊어졌다.

* * *

황급히 자리를 비우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이들만 남게 되었다.

“저…… 유나 언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서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응?”

“저 사람, 대체 뭐에요?”

이야기는 들었지만, 너무 불합리의 극치라는 생각이 든 서윤이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강대한 무언가에 섬뜩함 마저 느껴진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할 수만 있으면 저 인간 해부해보고 싶으니까.”

물질변환사로써의 직감이 맹렬하게 부르짖는다.

저건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고.

퍼엉!! 피이이잉!!

그런 서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멀리서 쏘아 올려진 빛덩어리는 화려하게 타오를 뿐이다.

* * *

“아버지!”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품에 안기는 초단이는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라 내 의지와도 상관없이 현신화 해있다.

초단이를 본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선 정신적으로 안정화 될 필요가 있다.

“안 늦었지?”

“어딜 갔다 온 거야.”

“아니 그냥 도둑이 들어서.”

내 말에 일리나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고 쳤지?”

“내가 쳤나 도둑이 쳤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미리 걸어둔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준비됐어요? 쏘세요.”

“아버지?”

“선물이다. 초단아.”

부디. 마음에 들길 바라마.

피융!!! 파앙!!

저 멀리서 쏘아 올려진 빛이 이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동시에 퍼레이드를 구경하던 이들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퍼엉!!!

동시에 커다란 불꽃놀이가 되어 하늘을 환하게 비추었다.

물론 평범한 불꽃놀이다.

이미 하인스 영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수차례 봐온 이들에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물론, 거기서 멈춘다면 말이다.

가볍게 손뼉을 치며 생명력을 흩뿌리자 주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들 모르게 퍼져나간 신력이 규칙을 간섭하고 뒤바꾸기 시작한다.

아무리 신격이라도 규칙에 간섭하는 건 해선 안 될 짓이지만.

이미 세상의 유지를 담당하는 한 축이 되어버린 내게 세상을 이루는 규칙과의 협상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다.

피융!!! 퍼어엉!

커다란 폭음과 함께 수십 개로 갈라진 빛줄기들이 이내 퍼져나갔다.

그리고,

구경하던 이들은 물론 퍼레이드를 진행하던 이들조차 눈을 크게 뜨며 멈춰 하늘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수놓은 빛은 마치 밤하늘의 빛과 은하수처럼 퍼져나갔고 환하게 밤하늘을 비추다가 유성우처럼 꼬리를 만들고 떨어져 내렸다.

-세상에…… 회장님! 저게 뭡니까?!

“뭐긴 뭐에요. 불꽃놀이지.

-저, 저희가 준비한 건 저런 게 아니었는데요…….

당황한 스태프진 쪽의 통화를 끊으며 다시 한번 손뼉을 친다.

그러자 방대해진 생명력을 기반으로 정령의 빛가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제로 정령계를 열어 정령계의 정령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요정의 왕국이라는 컨셉에 맞추듯 정말로 몽환적인 빛으로 가득 차오르는 놀이공원은 마치 요정의 축제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하늘뿐만 아니라 모두의 주변에도 빛덩어리들이 마치 눈이 내리듯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흘러내린다.

“와아, 예쁘다.”

“어때?”

내 물음에 초단이는 몽롱한 얼굴로 하늘을 보다 내게 시선을 돌렸다.

“너무 예뻐요. 아버지…….”

“다음에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만들어줄 테니까.”

그 말에 초단이는 감격이라도 한 듯 내 품에 안겨들었다.

“저거 마법으로 한 거야?”

“비슷하지.”

정확히는 신력을 이용한 꼼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가 심취한 듯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게 생명력을 끌어올려 손가락을 튕긴다.

신력이 마치 준비된 명령을 수행하듯 공간을 일변시켰다.

“엄마, 엄마! 요정님이야!”

한쪽에서 작은 아이가 하늘을 가리킨다.

“어머나…… 아름다워라.”

그리고 그런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여성은 하늘의 변화에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흘렸다.

그녀를 제하고도 탄성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빛가루를 흩날리는 초록빛의 요정인 실프들이 춤을 추듯 날아오른다.

불의 정령 카사들이 마치 저글링을 하듯 빙글빙글 돌며 불의 고리를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내고 흩어졌고

물의 정령인 나이아스가 움직이며 물줄기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공해로 인해 별이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일부만 보이던 밤하늘과 다른 아름다운 요정 같은 정령의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뒤틀려 부서져 가던 정령계를 구해줬던 내게 고마워한 정령들이 내 의지에 따라 모여 들어주었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법한 그런 너무도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지금 이곳의 장관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초단이는 넋을 놓은 듯 하늘을 보다 나를 향해 말했다.

“저 정말 행복해요. 저, 아버지.”

“아바마마라고 해줄래?”

내 미소에 그녀가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팍 숙였다.

“아, 아바마마.”

“사랑해요를 붙이면 더 좋을 거 같다. 초단아.”

“사, 사랑해요.”

크으…… 주인장 여기 깡소주 한 병 더!

내 품에 안긴 채 하늘을 올려다보던 초단이는 어느새 내 품에서 사라져있었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보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 초단이가 잘 볼 수 있도록 나는 초단이를 검집째 들어 하늘을 향하게 했다.

불꽃놀이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같은시각.

국가 재난을 담당하는 국재원에선 몇몇 인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모여들었다.

“이 일로, 몇 명이 옷을 벗게 될지 모릅니다.”

“…….”

“유나 씨. 제발 부탁해요. 그 사람 좀 잘 구슬려주세요.”

양복을 입은 사내가 마가 한유나를 붙잡고 애걸하고 있다.

“내가요? 무슨 수로?”

“그 형이 하려고 마음먹으면 아무도 못 막아요. 무슨 수로 막아. 그 불도저를. 후우, 내가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느낌 싸하다고.”

“유나 씨! 당신밖에 없어요! 제발!”

“아 몰라요! 나한테 그러지 마!”

“인맥 좋다는 게 뭡니까!”

“아아아아아! 안들려 안들려!”

“유나 씨!! 제발!”

한쪽은 천국 같은 광경을 보고 있지만.

이곳에선 실시간으로 지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대체 왜!”

“속았다잖아요. 서윤 씨도. 일단 자료 다 챙겨요.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어. 정식 항의 들어오면 진짜 골치 아파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