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4화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버린 기생충을 제외하고도 나는 자나르라는 커다란 민물고기의 뱃속에서 똑같은 형태를 지닌 기생충을 더 끄집어냈다.
“우웁! 저, 저리 치우시오! 그런 징그러운 걸 여기서!”
끔찍한 모습에 참다못한 귀족 하나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해왔다.
“망할!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오는군!”
“징그럽다?”
동시에 내 표정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뭐, 뭐요! 내가 뭐 틀린 말 했소?!”
“징그러워 보입니까 이게?”
내 물음에 커다란 덩치를 씰룩이던 그가 볼을 부들부들 떨었다.
“허면! 그게 뭐 귀엽기라도 하단 말이오?! 에잇 젠장! 당장 꿈에 나올까 두렵군!”
“뭐 징그럽긴 하네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내가 표정을 지운 채 물었다.
“보아하니 중앙 질병 관리단 의회원 같은데.”
“마, 맞소! 나는 류티스마 자작이오.”
그는 당장에라도 기생충을 눈앞에서 치우고 싶었는지 인상을 대뜸 찌푸렸다.
“내 성자 데이비 왕자님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소. 하지만 이런 중요한 회의실에서 그런 끔찍한 생물이나 들이밀다니! 제정신인 겝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흑사병과 매우 흡사한 [백흑담]의 병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생충을 쥐고 있던 나는 손에 힘을 주어 그대로 기생충을 다시 태워버린 뒤 그에게 다가갔다.
“히익! 다, 다가오지 마시오! 소, 손에 그 끔찍한 병균이!”
그가 학을 떼며 내게서 물러났지만 나는 말없이 그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그리고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병균.”
병균이긴 하지.
그런데 당신이 이 사태를 해결하고 싶은 의사라면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 되지.
“류티스마 자작.”
“……”
“당신, 여기 환자들 치료해본 적도 없지?”
존대를 지운 내가 싸늘하게 물었다.
“무, 무슨?!”
“그러니까 이게 지금 뭘 의미하는지 관심도 없지.”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했는지 류티스마 자작은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심연의 힘이 많이 약해진 나보다는 더 정확하게 그를 파악할 수 있는 페르세르크가 현재 내 주머니 속에 숨어있다.
그녀는 류티스마 자작에 대해 딱 두 가지로 평가했다.
[낙하산]
[단 한 번도 환자를 치료한 적이 없는 돌팔이.]
이곳은 현재 환자와 의사, 그리고 병자들을 옮기거나 시체를 치우는 병사, 기사들을 제외하면 없다.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으로서 여기까지 온 주제에 환자를 치료한 적도 없는 돌팔이라면.
그 내용은 뻔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극도의 모욕을 느꼈다고 판단한 듯 나를 노려보다 돌아섰다.
“애, 애초에 그 기생충이 병을 옮긴다는 보장도 없지 않소!”
그의 반박은 확실히 가능성은 있었다.
대놓고 내가 이리 말하긴 했지만, 저들에겐 솔직히 뜬구름 잡는 소리였을 테니 말이다.
이에 질세라 류티스마 자작과 한편인 자들이 순식간에 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곳은 질병 관리단에서 독자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격리구역이오! 우리 관할이라 이 말이외다!”
“외부인이 들어와서 멋대로 들쑤셔도 된다고 허락한 바가 나는 없소!”
그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커다란 패 하나를 꺼내 그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럼 중앙 질병 관리단 총수대리의 이름으로 명하지.”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자넨 해고야.”
너 모가지.
손날로 목을 휙휙 그으며 선언하는 나로 인해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기 시작했다.
“삼 제국과 각 국가가 중앙 질병 관리단에 돈을 지원해준 이유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지키라는 이유였다.”
당신 같은 인간이 나이 들어서 자리하나 꿰차고 용돈 벌이나 하라고 해준 게 아니라고.
“해, 해고라니! 부당한 처우에 응할 수 없소!”
“편한 대로 생각하시던가. 뭣들 하나! 관계자 외에는 출입 불가한 곳이 이곳이라 하지 않았나? 끌어내.”
담담한 내 말에 주변이 침묵했다.
하지만 곧 내가 꺼내 든 삼황제의 권한을 상징하는 패를 본 의원 하나가 급히 소리쳤다.
“삼황제 폐하의 권한을 상징하는 미스릴 패군!”
그걸 내가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모를 리 없다.
그제야 내가 정말 총수대리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기사와 병사들이 하나둘 나서며 그를 잡아 끌어내기 시작했다.
“이거 놓아라!! 이건 부당한 대우요! 데이비 왕자! 당신이 내게 이럴 순 없어!”
“왜 이럴 순 없어. 도움 안 되는 트롤러가 있으면 잽싸게 쳐내야지.”
미안한데, 그쪽 내부의 더러운 거래나 입장 같은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이거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데이비 왕자!! 데이비 왕자아아아!!”
격노하며 소리치는 그를 보내버린 나는 가볍게 손을 털어버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불만 있는 사람?”
내 말에 류티스마 자작과 같은 입장을 취하던 이들이 일제히 내 시선을 피했다.
완전히 잘못 걸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고요한 침묵이 오가자 나는 만족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럼 방해꾼은 처리했으니 이제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죠. 방법을 알면 애초에 오래 걸릴 병도 아닙니다. 페니실린 수석 연구원님.”
“예…… 예!”
내 부름에 페니실린 수석연구원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페니실린 수석연구원께서는 항원 채취와 항체 제작에 제법 조예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마, 맞습니다.”
그 말에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의 몸에 얇은 신성력 코팅을 쳤다.
‘신성력이 더 약해졌어.’
신성력은 신의 힘을 모방하는 마법이다.
난이도 자체로 치면 사령 마법이나 원소 마법에 비해 훨씬 쉬운 편에 속하지만, 반대로 신이 이 땅에 행하는 영향력이 약해지면 자연스레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신성 마법의 힘이 약해진 게 체감이 드는 경우는 딱 하나밖에 이유를 꽂을 수 없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 이 땅에 행하는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소리.
이전 신벌을 핑계로 무리수를 두면서 주신 프리아 여신은 내게 와야 할 대가의 대부분을 짊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그 탓으로 인해 주신 프리아 여신이 아니라 그녀가 이 땅에 행하는 영향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잘못하면 신성력 수준이 말도 안 되게 퇴보하겠구만.’
이 사태의 원흉은 나겠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에 누가 성질 건드리랬나.
주신의 영향력을 이 땅에서 아예 몰아내 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
“무엇을……”
“혹시 모르니까 간단한 축복을 걸었습니다. 수석연구원께서 해주실 일은 륀느가 구해주는 샘플을 통해 이놈들에게서 이번 병의 근원인 백흑담 바이러스의 모체를 채취해주는 일입니다. 간단하죠?”
내 말에 그가 식은땀을 흘렸다.
“간단하겠죠?”
“……예……”
어렵사리 대답하는 걸 보니 쉽지는 않다는 뜻일 거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공돌이건, 연구원이건 공통점은 한가지.
갈아 넣으면 뭐든 되는 법이다.
-그렇지……. 그래야 본녀가 아는 데이비의 참된 인성질이지.
‘아예 불가능한 걸 시킨 것도 아니잖아.’
내 반박에 페르세르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면, 왕자님. 나머지 한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확인해봐야지요. 고르네오 남작님. 환자 중 유별나게 증상이 심한 이들을 구분해주세요.”
모든 단서는 환자의 몸 안에 있으니.
범인은 꼭 그 안에 있는 법이다.
* * *
“이곳입니다……. 환자들의 상태가 가장 안 좋은 이들을 따로 격리해둔 곳입니다. 보통 이 단계에서는 수술을 받건 받지 못하건 거의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환자들을 분류하기 위해 떠난 고르네오 남작을 대신하여 나를 보좌하는 베르나르도의 설명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밴 환자 한 명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전신에 검은 반점이 돋아난 여성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환자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손가락 끝에 라이트를 모아 켜고는 환자의 동공을 확인했다.
그리고 익숙하게 그녀의 입을 벌려 구강 상태를 확인하고 가슴, 배꼽, 사타구니까지 남김없이 확인했다.
신의 히포크리아는 정말 엄청난 의원이었다.
그녀는 마법 같은 요소 하나 없이 오로지 의술의 기술만 가지고 신의라는 이름에 오른 진실한 성인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배운 이상 나도 의술에 한해서는 실력이 떨어진다고 여기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효율은 효율인 법이다.
우웅!!
그녀는 신성 마법이나 원소 마법을 사용해 환자를 치료하거나 진료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우웅!!!!!
더욱 강해지는 마나의 공명과 함께 내 손끝을 따라 푸른 마나가 잔상을 남겼다.
내가 찾는 것은 특이한 마나 반응이었다.
백흑담이 단순한 유전자 변이로 생겨나는 병이었다면 이전에도 사례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놈의 병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가 이제 와서 나타난 케이스였다.
이전과 지금의 다른 점.
역사서에서조차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전의 일이 아닌 이상 지금에 와서 나타날 병이라면.
그 요소는 딱 하나밖에 없다.
말없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덜컹!! 덜컹덜컹!!!
갑자기 멀리서 누군가가 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 데이비 왕자님!”
“내가 말했지. 허둥대지 말라고.”
내 말에 그가 움찔거렸다.
“가서 메스 가져와.”
내 말에 그가 메스라는 단어를 떠올리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전 나는 오르뎀 영지를 떠나기 전 고르네오 남작에게 작은 노트를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의학지식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적어두었는데 적어도 고르네오 남작이 내가 준 노트를 잘 읽고 반영했다면, 반드시 존재하리라.
후다닥 뛰어가는 그를 뒤로한 채 발작하는 환자에게로 뛰어간 나는 상태가 끔찍할 정도로 악화된 환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에!!”
뒤이어 급히 나를 따라 온 베르나르도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표정을 찌푸렸다.
“이 정도로 진행이 되었다는 건……”
“혈관에 종양이 생겼어. 당장 절개 안 하면 이 환자 죽는다.”
내 말에 그가 바들바들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 하지만 혈관 어느 부위에 종양이 생겼는지……”
“그래? 그럼 보고 배워.”
내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말없이 그가 건네준 소독된 메스를 확인했다.
이 그립감도 오랜만이다.
능숙하게 메스의 날을 빙그르 돌린 나는 망설임 없이 환자의 상의를 찢어냈고 나머지 손으로 환부를 꾹꾹 눌렀다.
“피가 뭉친 곳은 반드시 티가 나게 마련이다. 눈으로만 보지 말고 손끝으로 봐.”
“……”
내 말에 베르나르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겉보기엔 어디가 어떻게 막힌 건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의 증상이나 시간을 계산해보면 대충 어느 부위가 막혔는지 특정할 수 있다.
“찾았다.”
이윽고 눈을 번뜩인 나는 곧바로 마취제 하나 투입하지 않은 채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통각경감]
뒤이어 신성 마법도 불어넣었다.
[출혈제어]
[홀리 코팅]
극심한 부상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다.
고르네오 남작을 제외하고 나를 따라온 다른 질병 관리단 의원들은 그저 멍하니 내가 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저들도 고르네오 남작과 같은 생각을 품은 의원들이지만 나라는 존재를 조금 못 미더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어려 보이는 왕자가 대체 경험이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려 들면 안 된다는 건 내 주변인들의 견해이지 이들에겐 아직 나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오묘한 무언가일 뿐이었다.
두 가지 마법이 몸에 안착하기가 무섭게 메스로 환자의 몸을 가르자 그 안에서 내부출혈이 있었는지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 으악! 내부출혈!”
“이럴 수가!”
피가 잔뜩 고이면 환부를 찾아 치료가 불가능하다. 현재 이곳의 의학기술로는 도저히 수술할 수가 없는 상황에 내가 잠시 침묵하자 의회원 중 하나가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와, 왕자님 어쩔 수 없습니다……. 병이 너무 진행된 탓에 내부출혈을 일으키는 합병증까지 와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몸을 절개하고 수술한다는 건 환자를 당장 죽이겠다는 행위입니다!”
“그냥 둬도 죽어요. 수술 진행합니다.”
“예 당연히 불가…… 네?”
전문장비도 없이, 전생 지구와는 외과 수술 자체가 다르다.
이들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밀어 넣었다.
잊지 마라. 티오니스의 의술이 전생 지구와 다르다곤 해도 내가 티오니스의 수준에 맞는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신의라 불렸던 의원, 히포크리아의 유일한 제자가, 바로 나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