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7화
246. 나는 용서하마, 하지만.
알프랜드 사고의 원흉은 이미 사망한 박웅철이지만 그에게 속아 일을 진행한 서윤과 윤석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징계를 생각하고 했던 일이었다.
“나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부스스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난 그녀는 국재원으로부터 온 문자를 보며 눈꼬리를 찌푸렸다.
“징계내용이 정해졌다고…… 그래. 가자.”
딱히 징계 자체에 불만을 품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건 알고 있으니 말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샤워를 마친 그녀는 가능하다면 피곤한 일은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국재원에 출근했다.
국재원 자체는 늘 그런 분위기였다.
“서윤아.”
“아, 오빠.”
같은 연락을 받고 왔는지 윤석도 피곤한 얼굴이었다.
“술 마셨어요?”
“그래. 세상일이라는 게 참 내 마음대로 안 돌아가니까 씁쓸하더라.”
“오빠는 잘못 없어요. 전부 제가 부탁한 거지.”
“아니, 전부 내 잘못이다.”
“신파극 그만 찍고 들어와. 이 멍청이들아.”
그런 두 사람의 고집싸움을 보고 있었는지 한유나가 대뜸 나타나 톡 쏘아붙였다.
그녀는 빛을 머금은 금속 덩어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지나갔다.
“유나 언니.”
“들어가 봐. 너희 이번 일이 얼마나 큰 건지는 알지?”
“망할. 그 인간이 티오니스 성자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고.”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당연히!”
윤석의 외침에 유나는 고개를 저었다.
“후우…… 그 인간이 데이비 올 라운이 아니었어도 너희가 저지른 짓이 달라져? 아니, 더 심각해졌겠지.”
“우린 사람을 구하려 했을 뿐이야.”
“그 결과 더 많은 사람을 죽일뻔했잖아.”
한심하게 바라보는 한유나의 시선에 그가 이를 부득 갈았다.
“야! 한유나!! 너 대체 누구 편이야!”
“멍청한 새끼야. 난 내 직장 편이야. 네 뒤치다꺼리를 해결하는 건 내 분야가 아니고.”
“…….”
윤석과 한유나는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었다.
“서윤이에게 관심 표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걸 나한테 티 내지 말라고.”
“뭐…… 뭣?!”
“다들 뭐해요. 국장님 부르니까 어서 들어와요.”
말싸움이 이어지던 작은 망치를 들고 걸어가던 포도 녀석의 부름에 서윤과 윤석은 한숨을 내쉬고 국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읏…….”
“다시 보네. 일주일 정도 됐나?”
“당신은…….”
“알프랜드에 관한 문제니까 당연히 내가 있어야겠지.”
“여긴 국재원이에요. 항의를 한다 해도 당신이 여기 와서…….”
“그만!”
비명을 지르듯 국재원의 국장 박서호가 서윤을 말렸다.
“그만해라 서윤아! 네가 이러면 일이 더 복잡해져!”
“죄송합니다.”
담담하게 그녀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가 괜히 흥분했네요.”
“흐음……”
내가 흥미롭다는 듯 웃어 보이자 윤석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본래라면 보통 일이 아니야. 아무리 국가 일이라지만 영장도 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까. 차라리 그걸로 해결이 잘됐다면 할말이라도 있겠지만 역으로 문제가 발생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냉혹하다 여길 정도지만 그들 누구도 박서호 국장에게 뭐라 하는 이가 없었다.
실제로 두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으니까.
“뭐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징계에 관해서 내가 딱히 간섭할 위치는 아니니까 제안을 할게.”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다만 그 전에.”
손가락을 가볍게 튕긴다.
그러자 검은 기류가 순식간에 서윤과 윤석에게 스며들었다.
“무슨…….”
“별거 아니야. 탈모의 저주라고 들어봤나?”
“으악!!”
“꺄아악!!”
내가 누구인지 알기에. 그것이 허풍이 아님을 알기에 두 사람의 표정이 퍼렇게 질린다.
“안타깝게 됐네. 젊은 나이에 탈모라니.”
“아…… 안돼!!”
“돼.”
“이럴 순 없어! 탈모라니! 탈모라니!!”
비명을 지르는 윤석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떠는 서윤이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이럴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함부로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지.”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너희가 한 일은 심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나? 내가 데이비 올 라운이 아니었다면 너희가 벌인 일로 인해 몇 명이 죽었을까.”
내 물음에 두 사람이 침묵했다.
“뭐. 내가 묻고 싶은 건 별거 없어. 향후 네 생각을 듣고 싶은 거니까. 만약에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땐 어떻게 할 거지?”
그 물음에 두 사람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너희 대답에 따라 저주를 해제해줄 수도 있다.”
그 한마디에 두 사람의 눈에 혼란이 서린다.
* * *
자신들의 대답 여하에 따라 머리의 모근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니까.
가장 이상적인 답변은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였다. 그가 국재원 소속도 아니고 이번 일이 원권에 가까운 횡포임을 알지만
이에 윤석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가 바라는 대답을 내놓으면 머리는 살릴 수 있다.
단순한 각성자가 아니라 데이비는 타 차원에서 온 마법사.
그렇다면 그런 저주 쯤은 우습지도 않을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일단은…….
“다시는…….”
“할거에요.”
그때였다.
윤석의 대답을 끊은 채 서윤이 데이비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다음에도 사람을 살릴 방법이 있다면 징계를 각오하고서라도 나설 겁니다.”
“서윤아!”
윤석의 당황한 외침에 데이비의 표정도 차갑게 식었다.
누가 봐도 명백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는 데이비의 전신에서 주변을 압박하는 섬뜩한 기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마력을 느끼는 이들조차 마나가 한 줌 느껴지지 않는 데이비의 몸에서 섬뜩할 정도의 마나가 쏟아져 나오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파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본래의 답조차 바꾸게 할 정도의 압박감이 더욱 강해지자 이내 데이비의 뒤편으로 섬뜩한 귀신의 형상 같은 게 보일 지경이었다.
“우욱…… 욱…….”
그것을 참지 못한 박서호 국장이 헛구역질하자 데이비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고통스러워하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본래대로 돌아왔다.
“어라? 괜찮네?”
“대답해라. 서윤이라고 했나? 네 독단으로 많은 사람이 다쳤는데 또 그런 짓을 저지를 거냐?”
“……네. 그럴 겁니다.”
“또 이런 사태가 벌어져도?”
“한번 실수한 걸 두 번 실수할 생각은 없어요.”
“이상론이네.”
담담하게 말하며 데이비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며 살기를 내뿜는다. 공포에 절게 할 만큼 끔찍한 살기가 그녀의 전신을 억누르자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그녀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저…… 저는…….”
“말해봐. 더는 나를 열 받게 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서윤이 급기야 눈물을 보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데이비를 노려보던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어찌나 강하게 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난다.
“서윤아…… 그만해! 그냥 죄송하다 말씀드려! 너 그러다가 정말…….”
데이비가 저질러온 일이 있기에 지금 상황이면 그가 정말로 그녀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윤석이었다.
“할거에요. 다만 두 번 다시 그런 바보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아요. 사람이 위험하면, 사람이 위험할 상황이면 언제고 다시 뛰어들 거에요.”
그 한마디에 데이비의 두 눈이 그녀를 바라본다.
“설사 네 머리카락 다 빠지고 죽어도?”
끔찍한 발언이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내비쳤다.
“설사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겁니다!!”
그녀의 그런 외침에 데이비가 눈을 감았다.
천천히 손을 뻗는다.
그녀의 얼굴을 향해 뻗은 손에 윤석은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몸을 저주했고, 곧 끔찍한 짓을 당할 서윤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만!! 그만! 서윤이는 두고 차라리 날 죽여, 이 악마 같은 자식아!!”
그의 외침에도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이윽고 눈을 꼭 감은 서윤은 고통에 대비하듯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다가온 것은 고통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툭 덮고 꾹꾹 누르는 행동이었다.
화악!!
동시에 주변을 압박하던 기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합격.”
담담하게 말하며 돌아선 데이비를 보며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너희들의 문제는 잠시 빚으로 달아두지. 만약 거기서 마음을 바꿨으면.”
짧게 대답한 데이비가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단순한 치기로 나를 방해한 것으로 간주하고 널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버렸을 거다.”
그 지옥이 어디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으마.
이어지는 그의 말에 서윤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버렸다.
“후우…….”
그런 모습을 보던 박서호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많이 유해지셨네요. 방해하는 인간은 가차 없이 작살냈잖아요.”
“네가 어떻게 알아.”
“지아에게 들었죠. 지아가 하인스 영지에 있을 때. 비리를 저지른 법관을 법전으로 직접 패 죽였다고 들었는데.”
“…….”
그 말에 윤석과 서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그제야 내가 지구, 한국의 인간이 아닌 얼마든지 사람을 죽여본 존재인 타 차원의 존재라는 걸 인식한 것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거리는 그녀를 뒤로한 채 데이비가 윤석에게 물었다.
“넌…….”
“…….”
“조금 실망인데.”
“……원망하려면 해. 나는 내가 이런 걸 부정할 생각은 없으니까.”
윤석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서 넌 탈모의 저주를 안 거뒀어.”
“흡?!”
“왜. 목숨 걸고 대답한 건 이 꼬맹이인데. 네가 숟가락을 얹는데?”
“그…… 그건…….”
“머리가 소중하냐?”
그 말에 윤석은 머리를 쥐어뜯듯 잡았다가 몇 가닥이 빠지는 걸 보고 눈을 부릅떴다.
“소중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뭐든 하겠습니다!!”
방금전의 자존심은 냅다 버린 그가 소리 질렀다.
“소중한 머리카락을 살려주세요!”
그의 외침에 데이비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 웃어 보였다.
“일단 징계 때리시죠.”
“어떤 거로…….”
“별거 없고, 그냥 보육원 봉사나 시킵시다. 당분간은 저도 시킬 게 없으니.”
“국장님?! 이게 무슨…….”
당황한 그녀의 외침에 박서호 국장이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윤석이 서윤이, 너희 징계 기간은 6개월이다. 본래 이게 공식화되면 너희는 바로 징역이야.”
“네. 알아요. 각오하고 있으니까.”
“다만 데이비 왕자가 이걸 비밀리에 붙여주는 조건으로 징계 기간 동안 너희 지휘 권한을 데이비 왕자가 받아갔다.
“네?!”
당황한 윤석의 외침에 박서호 국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게 최선이다. 가서 고생 좀 하고 와.”
“따라와. 당장 시킬 게 있으니까.”
데이비의 말에 서윤과 윤석은 이게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국 인간에게 국가의 공무원을 내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싫으면 안 해도 돼. 뭐, 말도 안 되는 짓을 시킬 생각은 없는데 나도 싫은 녀석들 데리고 일 치는 건 별로 안 끌리거든.”
담담하게 말하며 데이비가 말했다.
“그냥 공론화하지 뭐. 대신 그렇게 되면 너희 둘 뿐만 아니라 너희를 지키려고 애쓰던 저 국장님도 모가지 되는 거 알지?”
그 말에 서윤이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건데요?”
그 말에 데이비가 시원하게 웃었다.
“으음, 그래. 윤석이라고 했나? 물에 관련된 능력이라고 했지?”
“그…… 그래.”
“좋아. 그러면 됐어.”
우선은.
세차부터 시작하자.
* * *
“히익!!”
숨넘어가는 비명을 삼키며 와들와들 떠는 서윤과 윤석을 바라보는 거대한 흑빛 비늘의 용이 차갑게 둘을 응시한다.
[뭘 보는가 하찮은 미물이여. 죽고 싶으냐.]
그르르르 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보여주자 서윤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창백해졌다.
“이…… 이게 대체.”
위압감과 공포심에 움직이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날 수 없었다.
“뭐해. 세차 시작 안 해?”
고요한 산골, 그 산골의 어귀에 앉은 거대한 흑룡. 창공의 폭풍 용왕 메가로드리아를 보며 바들바들 떠는 두사람을 향해 내가 말했다.
“니들 능력, 세차하기에 딱 좋겠더라고. 한 명은 분석 관련 능력이고, 한 명은 물이라. 아 참. 저 녀석 비늘은 예민하니까 이걸로 세심하게 닦아줘라.”
정체 모를 비누거품과 수건을 내려다 놓은 채 내가 품에 안긴 청단이와 홍단이를 안고 걸음을 옮겼다.
“뭐해. 아직 시킬 거 많아 시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