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2화
보통 격투술을 사용하는 이들은 너클이나 건틀릿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를 가죽장갑을 꼈다.
“경기 봤어. 네가 설마 라운 왕국의 성자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지만 말이야. 강하더라.”
그가 가볍게 몸을 풀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이 하필이면 새로 사귄 친구라니. 바리스는 잘 지내?”
그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 잘 지내지.”
“알고 있었다는 말투네.”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
스스스슥…….
그가 자세를 잡았다.
“봐주지 말고 들어와. 친구로서 부탁이야.”
쩌어어엉!!!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사일런스 마법을 순식간에 주변에 펼친 나는 섬광처럼 날아 들어온 그의 주먹을 빗겨내듯 차단했다.
“아직 남았다!”
쿠우우웅!!!
자신의 공격이 틀어막히고 균형을 일어야 정상이건만 그는 그 몸의 힘을 역이용해 그대로 강하게 바닥을 굴렀다.
무공의 기초 중 하나인 진각이다.
역시 이놈이 얻은 기연은 단순한 기연이 아니다.
내공에 진각.
그리고, 물결처럼 파고드는 권각술.
“태극권.”
내 말에 그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너…….”
“그래. 그것도 9성 이상의 경지네. 상당한데?”
“푸하하하하, 너 정체가 대체 뭐야?”
“이기면 알려줄게.”
키득거리며 내가 답하자 그가 이내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발끝과 손을 따라 물결처럼 태극의 문양이 만들어진다.
건곤감리. 팔괘의 내공이 퍼져나가며 이전과는 격이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내 생각대로였다.
“하압!!”
공간을 찢듯 파고드는 그를 향해 내가 말아쥔 주먹을 천천히 내뻗었다.
“그렇게 정직하게 들어오면 당연히…….”
휘리릭!! 터업!!
그의 손이 일순간 내게 차단당한다.
“어?”
동시에 내 팔이 그의 팔을 휘감아 당겼고 급히 몸을 빼려던 그는 자신의 관절이 빠져나갈 수 없게끔 내게 이미 잡힌 후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경악하는 그를 향해 주먹을 당긴 내가 시선을 마주했다.
당황한 그의 실눈이 한차례 크게 뜨여졌다.
그의 무술은 실로 경이적인 수준이다.
도저히 십 대 후반에 이뤄냈다고 볼 수 없을 만큼의 깨달음이 몸에 배어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자신하던 그의 움직임은 모조리 내게 차단당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내게 틈을 만들어주어 스스로를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래.
그가 연습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한 무술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무술을 극도로 증오했다.
그러니 알 수가 없지.
“잘 들어.”
아무리 좋은 무기를 쥐어도 휘둘러보지 않으면 감을 익히는 건 불가능하다.
그의 복부로 내 주먹이 빠르게 파고든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 흐름 속에서 내가 조용히 읊조렸다.
“고작 그걸로 네가 원하는 힘을 얻어버렸다고 착각한 거라면.”
“흐읍?!”
“그로 인해 노력이 배신당한 기분이 든 거라면, 당장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쩌어어어엉!!!
막대한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내가 펼쳐놓은 사일런스 장막까지 박살 내버리고는 묵직한 충격음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이런…….”
쓰러져버린 막시모스를 바라보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얘 데리고 가자.”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야?”
“처음 사귄 같은 나잇대의 친구잖아. 게다가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이 이놈을 이렇게 만든 건지. 이 녀석을 이렇게 내몰았는지를 말이야.”
“친구라…… 그러네. 넌 동갑내기 동성 친구를 단 한 번도 사귄 적이 없구나.”
새삼 씁쓸한 현실이었다.
* * *
“끄응…….”
눈을 뜬 막시모스는 그를 내려다보는 바리스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다. 막시모스.”
“바리스, 바리스냐?”
“그래. 오랜만이다.”
“흐, 흐흐흐흐. 6년 전쯤인가…… 국제회의 연회에서 만나서 함께 사고 친 뒤로 한 번도 보질 못했으니…….”
“네가 테라리아 왕국의 왕자라는 것도 이곳에 온 뒤에 알았다.”
“누군 뭐 다른 줄 아나. 하하하하. 이렇게 보게 되니 좋다고 해야 할지…….”
“왜 이렇게 변했냐.”
바리스의 씁쓸한 물음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데이비.”
“잘 잤냐?”
“그래. x나게 잘 잤다. x. 적당히 팰 것이지 아주 사람을 죽이려 들어?”
“그 정도로 만족할 줄 알았어야지. 마음 같아선 그 자리에서 패 죽이고 싶었으니까.”
“…….”
내 대답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주변에서 네 이야기를 할 때.”
“…….”
“사실 거짓말이라 생각했거든. 세상일이라는 게 과장투성이니까. 그래 봐야 큰 차이 안 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네. 하나부터 열까지 대번에 간파당한 것부터가 기가 막힐 지경이야.”
그렇게 말한 그가 다시 눈을 감는다.
에이리아의 품에 안겨있던 다리안이 내게 안기기 위해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말해봐. 그때 나와 만난 이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리스가 걱정스레 묻자 그가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바리스의 말에 따르면 과거 국제 연회에서 그와 만났을 때 그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고 했다.
비록 자신의 실력은 부진하나 그것을 노력으로 메꿀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쉬지 않고 노력하는 노력파였으며, 지금처럼 망나니 같은 오만한 성격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존경받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던 무술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정반대였다.
조용히 침묵하던 그가 다시 눈을 뜬다.
“쓸데없는 짓이야.”
“막시모스!”
“이봐 바리스.”
“…….”
조용한 목소리에 바리스가 침묵했다.
“그토록 노력하며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내 인생 전체를 개 박살 내버렸다면, 넌 어떻게 생각할래?”
“그건…….”
“또 수년간 노력해온 것들이 고작 재능에 밀려 철저하게 부정당했을 때. 필요할 때엔 없던 게 모든 게 무너지고 나서야 손에 잡혔을 때.”
“…….”
“넌 그것을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그 물음에 바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저는 마실 것을 좀 가져올게요.”
에이리아가 내게 그리 말하며 다리안을 안고 나가자 페르세르크와 일리나도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데이비.”
“그래.”
“넌 대회에서 이길 거냐?”
“이겨야지.”
“네게 그 대회는 그저 재롱잔치에 불과할 텐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비록 10대의 나이로 알려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이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 나 어떻게 하냐?”
킥킥 웃어 보인 그가 나를 바라본다.
“여기서 그만둬주라.”
“이봐 막시모스!!”
“부탁이다 데이비. 친구로서 이런 부탁하는 게 웃긴 건 아는데…… 제발 그냥 물러나 주라.”
침울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다리를 꼰 채 물었다.
“적어도 진상 정도는 알아야 생각이라도 해주지 않겠냐?”
내 물음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테라리아 왕국은 오래전부터 무술을 익혀온 전통 있는 국가다.
그 탓에 백성들부터 왕족까지 무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그중 현왕은 역대급이라 부를 정도로 그 욕심과 자존심이 강했다.
현 테라리아의 국왕은 12명의 부인을 두고 15명의 자식을 두었다.
왕자가 12명, 그리고 공주가 셋.
그는 자신의 보위를 가장 뛰어난 무술을 지닌 왕자에게 물려주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할 정도로 그 무술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난 말이야. 사실 다음 대 국왕 같은 건 관심 없었어. 그냥 무술이 좋았을 뿐이야. 형님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고, 언젠가 왕국을 떠나 대륙을 유람하며 수련하고 싶었다.”
무술을 좋아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격투술을 좋아해 스스로 그것을 익히고 연습해왔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손이 까지고 근육이 찢어져 팔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는 멈추지 않고 무술에 심취했다.
“난 말이야, 자존심을 떠나서 무술 자체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무술을 좋아했고, 언젠가 그렇게 익힌 힘으로 대륙에 이름을 날리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랬지. 넌 분명 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했었어.”
6년 전 바리스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연회를 빠져나가 홀로 연습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바리스와 같이 만났다고 했다.
연회 따위보다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는 게 좋았으니까.
언젠가 같이 대륙에 이름을 날리는 위대한 영웅이 되자며 약속했던 두 친구는 그렇게 헤어졌다.
본래라면 그가 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 대의 대륙 격투대회가 벌어졌을 때.
그때 그의 모든 것이 뒤틀어졌다.
무술을 좋아했기에 연습했고, 자연스레 자신의 형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뛰어난 실력을 겸비하게 된 것이 시발점이었다.
[가라, 가서 테라리아 왕국의 명성을 드높이고 오라.]
테라리아 국왕은 아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막시모스를 총애하기 시작했고 그에게 과할 정도의 압박감이 서리는 기대를 걸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동조하는 귀족들, 백성들까지.
고작 15살 정도의 소년에게 국가 전체가 말도 못할 정도로 과한 기대를 걸어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하하. 물론 그게 문제는 아니었어. 그 일 때문에 나를 질투한 형이라는 놈들이 나를 암살하려 들었을 때도 다 괜찮았지.”
하지만.
4년 전 콘타스 제국에서 개최되었던 대륙 무투 대회에 참가했던 그가 하필이면 테라리아 왕국과 앙숙이며, 라이벌 격인 바시스 왕국에서 온 공작가의 자제에게 패배하면서 모든 것이 비틀렸다.
그가 말끝을 흘린다.
참을 수 없는 증오와 분노가 그의 전신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증오와 분노는 그가 익힌 무술이라는 개념을 향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고, 그럼에도 졌어. 비록 라이벌에 앙숙이지만 바시스 왕국의 공작가 자제 또한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후회 없이 싸웠지. 그것을 모두가 봤어. 내 노력이 부족해서 재능이 출중한 상대에게 졌다고 판단했기에 당당하게 패배를 시인하고 반성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가 테라리아 왕국에 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그토록 차가울 수가 없던 현 국왕의 싸늘한 눈초리였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버지의 너무 차가운 시선에 어리둥절한 그는 저도 괜찮다고, 차라리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다독여주기를 바랐다.
형들은 몰라도 적어도 자신의 아버지만큼은.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형제들의 비웃음. 그리고 차가운 국왕의 시선이었다.
“막시모스.”
바리스가 굳은 얼굴로 그를 부르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도 괜찮았어. 그런데 있잖아.”
분노한 국왕은 그를 향해 모멸에 찬 분노를 토해내는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궁으로 상자가 하나 도착했어.”
상자.
국왕이 보낸 선물이라기에 아버지가 드디어 화를 푸셨구나! 그렇게 생각한 그가 상자를 열었을 때. 그는 비명을 지르고 피눈물을 흘렸다.
“대체 뭐였길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목.”
“…….”
그 말에 바리스가 눈을 부릅떴고 나는 눈을 감은 채 헛웃음을 흘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을 베서 보냈다고. 아비라는 인간이?
다름 아닌 그가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때 그의 곁을 지켜주며 도시락을 가져다주고 같이 웃고 떠들었던 오랜 친구이자 사랑했던 소녀.
로이나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잘린 머리의 곁에 서신이 있더라. 피가 흥건한데 서신만큼은 새하얗더라. 역겨울 정도로 혼자 깨끗한 척하면서.”
내가 웃을 자격 따윈 없다. 행복할 자격 따위는 대회에서 패배한 이후로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니 복수하고 싶으면 강해져라.
필사적으로 연습해라. 그래서 다음번엔 어디 한번 지켜봐라.
단순히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게 아닌 그를 절망에 처박아버린 제 아비의 선언이었다.
목만 남은 소녀는 당연히 그를 향해 웃어주지도 울어주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굳어있을 뿐.
국왕의 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사랑했던 소녀 로이나의 가문인 남작 가문을 일거에 역적으로 몰아 멸문시켰고 단 한 명, 로이나의 동생인 로이사만을 살려 궂은일을 하는 하녀 겸 시녀로써 그의 곁에 붙여놓았다.
제 언니의 죽음에도 괜찮다며 처연하게 말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언니를 그리워하며 흐느끼던 로이사.
국왕의 말도 안 되는 벌은 정도를 넘어선 폭압이었다.
형제들의 비웃음.
피가 나도록 주먹을 휘둘러도 이길 수 없는 대상과의 벽.
순수하게 무술을 좋아했으며, 대륙의 이름 날리는 영웅이 되어 대륙 전체를 유랑하고 싶어 했던 소년은.
거기서 망가졌다.
“필사적으로 노력했어. 그래서 1년 전 다시 바시스 왕국의 소공작과 대결을 치렀고.”
필사적으로. 더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여 연습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전보다 더 참혹한 패배였다.
“그는 이미 더 강해져 있었어. 재능은 노력의 격을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
“그리고 그는 내게 실망했다고 하며 돌아서더라.”
남은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저주스러운 현실에 절망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왔을 때. 그는 또다시 국왕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우리 아버지라는 인간이 한 짓이 뭔지 알아?”
그의 말에 바리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어머니를 내가 보는 앞에서 베어 죽이셨어.”
“…….”
그가 또다시 패배한 대가였다.
“그리고 내 여동생을…….”
그가 눈을 감았다.
“내 여동생의 눈을 뽑아버렸지.”
그야말로 미쳐버린 폭군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국왕. 내 아버지라는 인간에게 덤볐어. 당연히 이길 리가 있나. 왕국엔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자들이 많은데.”
그렇게 말한 그가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쓰러진 내게 아버지라는 인간은 역적으로서의 처벌을 내리지 않았어. 대신 말했지, 앞으로 또 패배하여 왕국의 위신이 떨어졌다 판단되면, 그땐 겨우 살린 로이사의 목숨을 거둬가겠다고.”
절규하며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를 지하감옥에 가둔 그는 그렇게 돌아섰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려 했지만 모든 것이 그를 무너뜨렸다.
“그런데 웃기지 않아? 모든 것을 잃고 미쳐가던 내 앞에 빛이 나타난 거야.”
그리고 그 빛 안에서 쏟아져 들어온 기억.
천중원의 태극권 절대고수 [방심환].
방심환이라……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있는 인물이다.
“태극권 절대 고수. 방심환. 태극권의 절대자로 독고준에게 덤볐으나 방심한 탓에 패배하고 죽어버린 멍청한 양반.”
내 말에 그는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 힘을 얻었을 때 깨달았어. 내가 수년간 지키고자 노력해온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해져 버린 것을.”
그 이후 바시스 왕국의 소공작과 다시 대결을 펼쳤다.
바시스 왕국의 소공작은 이번엔 처참하다 싶을 정도로 막시모스에게 패배했고, 다시는 주먹을 쥐지 못하게 근육이 파열되어버렸다.
노력을 해왔으나 아무도 지키지 못했고, 그 후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얻은 강대한 힘은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연습과 노력은 그에게 구역질 나는 것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단련하여 강해지는 것, 그것 자체가 구역질이 나. 정신이 혼미해지고 당장이라도 로이나가 내 탓이라며 피눈물을 흘리고!!! 내 목을 조르는 것 같더라!”
그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다. 그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일이 그렇게 흘러갔기에 그는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잃게 만든 무술을 미워했고, 그토록 좋아했던 연습을 완전히 손에 놓았다.
하지만 태극권의 고수 방심환의 기억은 그를 계속해서 강하게 만들었다.
“있잖아. 데이비.”
“…….”
“친구로서 부탁하는데. 한 번만 져주라.”
“…….”
“이번에도 패배하면…… 그땐 로이사가 죽게 될 거야.”
연습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도 알 것이다. 이대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네가 강한 건 확실히 알아. 명백한 패배였으니까.”
“막시모스.”
“그러니까 부탁한다. 내게 한번만 자비를 베풀어줘.”
그가 내게 매달려 애걸하듯 외쳤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도와줘!”
그의 외침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팍!
그리고 말했다.
“이기고 싶으면 날 이길 만큼 강해질 수 있도록 노력부터 해라.”
와장창!!!
* * *
결승까지 열리는 경기가 밝았다.
여타 여러 국가에서 굉장히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지만 사실상 경기의 우승자가 모일 결승전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크게 미치고 있었다.
“형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음?”
“그, 막시모스…….”
“그런 놈은 내 친구가 아니야.”
“그래도 굳이 중요한 일이 아니면…….”
“중요하지 않아? 내겐 그 어떤 대회보다 중요하다 바리스.”
“형님…….”
“일리나와의 약속 때문이 아니야. 막시모스가 그랬으니까 더 이기는 게 중요해진 거다.”
싸늘하게 일갈한 내가 다시 눈을 감고 마나를 운용한다.
한 번도 빠짐없이 해온 기초 스트레칭과 같은 행동이었다.
막시모스는 그길로 떠났다.
아니, 정확히는 내게 쫓겨났다.
그 후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이후 우연에 가까운 문제로 인해 경기는 사흘 정도 미뤄졌다.
당연히 일정의 연기는 많은 불만을 일으켰지만, 국가 내에 큰 문제가 생긴 일 때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막시모스는 결승 경기가 펼쳐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으로 입성한 나는 막시모스가 아직 경기장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당히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테라리아 국왕을 보니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모르는 듯했다.
이번에도 패배하면 그는 그가 지켜왔던 이는 물론 그보다 더 큰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희대의 폭군. 사이코패스. 자존심에 미쳐버린 왕.
뭐가 되었건 테라리아 국가의 내부 일에 내가 간섭할 수 있는 건 없다.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일부러 저주는 정도일까.
하지만 그가 친구였기에 나는 더더욱 그러지 않았다.
“힘내 데이비.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와. 그 어떤 결과가 나와도, 본녀는 그대를 믿어줄 테니까.”
“몸 조심해. 기다리고 있을게.”
페르세르크와 일리나의 말. 그리고 말없이 다가와 우물쭈물하며 내 품에 안겼다가 떨어지는 에이리아를 보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윽고 8명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내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는 한 소년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쟁취한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중 엄청난 환호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의 근원을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나갔을 때.
콰앙!!
내 바로 옆까지 날아와 처박힌 한 소년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새 옷이지만 거칠게 다룬 탓에 넝마가 되어버린 옷에 평소의 오만한 미소를 지워버린 채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년이 보였다.
막시모스 반 테라리아.
그가 내 옆에 날아와 처박힌 소년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것이다.
8강에 들 정도면 강한 재능이지만 막시모스는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그는 수많은 환호를 받으면서도 천천히 내게 손을 뻗어 가리켰다.
그리고는 검지를 끌어내리듯 아래로 가리켰다.
그의 도발에 반응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쓰러진 소년의 몸에 회복마법을 걸어준 뒤 차갑게 웃어 보였다.
며칠 사이에 그는 변했다. 하지만 나는 미소지었다.
내게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질 수 없기에.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지독한 거부반응을 무시하고, 이기기 위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눈빛에는 이전과 같은 무력함이 아닌, 강렬한 독기가 엿보였다.
그래. 지키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도망치면 쓰나.
그리고, 그렇게 연습을 하면서 그는 내가 풀어놨던 임독양맥의 도움을 받아 급성장을 이루었고,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겉보기엔 저래도 중원의 기준으로 화경, 이곳의 기준으로 마스터의 벽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업보라…….”
노력이나 재능과는 다른, 한 인생이 살아오며 쌓아온 모든 것들.
내가 볼 때 태극권의 절대 고수 방심환의 기억이 그에게 스며든 건 단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타나토스 프리아 여신 넬타리드 삼신의 전쟁으로 약해진 차원의 틈을 타고 천중원에서의 업이 그대로 그에게 넘어왔다.
즉.
방심환의 혼이 환생한 대상.
그것이 막시모스에게 업을 고스란히 안겨다 준 것이다.
그 업이 연습을 통해 제대로 깨어났으니까.
“잘 들어 데이비.”
나를 향해 그가 말한다.
“네가 얼마나 강하건 나는 반드시 널 찍어누를 거다.”
“기대할게.”
여유롭게 웃으며 내가 말하자 그는 전의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조용히 읊조린다.
“아이나. 심부름이 있어.”
“갑자기요?”
언제 나타났는지 스르륵 내 곁으로 나타난 그녀는 본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 해줄 수 있지?”
“당신이 원한다면 제국 황제의 목도 가져다 바칠 겁니다. 제 목숨은 당신의 것이니까요.”
서로가 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결승은 결국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갈 따름이었다.
그리고 4강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승리를 거머쥔 나와 그는 결승이 펼쳐졌을 때.
서로 말없이 경기장으로 천천히 올라섰다.
그리고, 나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 마법을 발현했다.
바닥이 강화되고 사방에 옅은 빛으로 서린 장막이 펼쳐진다.
“데…… 데이비 왕자?”
“여파가 퍼져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보호마법 정도는 걸어놓아야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마법을 쓰는 건 규정 위반…….”
우물쭈물하던 귀족은 곧 국왕의 저지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장막을 유지한 것 때문에 패배했다 하는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질 생각은 없네요.”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맞은편에 선 그를 향해 차갑게 웃어 보였다.
“우물 밖이 이제 좀 보이나?”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그대로 바닥에 거대한 힘이 서린 진각을 밟았다.
쩌어어엉!!
그리고, 그의 주먹이 허공을 후려치며 무형의 충격파가 그대로 나를 강타한다.
“네가 강하다고 해도. 나는 여기서 널 이길 거다.”
그의 결연한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걸음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