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3화
248. 그거 좋아 보이는데
쌔애액!!! 콰앙!! 쾅!!
상상을 초월하는 힘으로 몰아붙이는 막시모스의 변화에 좌중이 경악한다.
그의 손에 머금어진 것은 10대 소년 소녀들이 가지기엔 너무 아득한 경지.
마스터의 상징인 권강. 즉 오러피스트였다.
파랗게 타오르는 권강은 주로 사용자의 의지와 집념을 보여준다.
푸른 화염을 지닌 이들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순수한 열의.
“놀랍군요. 테라리아 왕국의 흥복입니다.”
한 귀족의 중얼거림에 테라리아 왕국의 국왕은 조용히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소.”
“하지만…….”
“우리 테라리아 왕국의 무술은 대륙 최강일 터. 그 어떤 적에게라도 진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하물며 왕국 최강의 무술을 익힌 녀석이라면 더더욱!”
“하……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천천히 성장하다 보면 앞으로 대륙적으로 명성을 날릴 대단한…….”
“상대인 데이비 왕자 또한 아직 20대의 나이도 채 지나지 않았소. 그리고, 지금 수준으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지. 패배하면 엄한 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
“하지만.”
“타국의 일에 언제부터 그렇게 간섭할 수 있게 되었소?”
극도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국왕의 모습에 모두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간섭할 권한은 그들에게 없다.
실제로 테라리아 왕국의 귀족들조차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쯧쯧…….”
노령의 귀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조금 과하지 않나요?”
그것을 지켜보던 팔란 제국의 한 귀족이 물었다.
“어쩌겠소. 국왕이 저토록 완고한 것을.”
“안타깝네요. 성년이라 해도 아직 저렇게 매몰찬 세계에 내던져지면 좋지 않을 텐데.”
“막시모스 왕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지, 13세 즈음부터였던가. 국왕이 왕자를 저토록 내모는 것이…….”
“가엾네요.”
“알고 있소? 테라리아 왕국은 두 개의 정파가 있소. 동파와 서파. 뭐 어느 국가에서나 볼법한 정파지. 상대가 정책을 내세우면 일단 덮어놓고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격한 편이기도 하다오…….”
“그게 왜요?”
“웃긴 점은 그 동파와 서파조차 안타까워서 다 내려놓고 막시모스 왕자에 한해서만큼은 그를 비호하고 있소. 제발 그만두라고,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안타깝다는 생각부터 들더이다.”
“…….”
서로 물어뜯고 죽이기 바쁜 정당끼리도 너무 안타까워서 입을 모아 너무 모질게 대하지 말라 할 정도면.
대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사랑하는 약혼자의 목을 베고, 제 어미를 베어 죽이고, 여동생의 눈을 뽑았으니. 이번에도 패배하면 무슨 벌을 받을는지. 저토록 재능이 출중한데.”
쌔애앵 콰아앙!!
폭발적인 기를 토해내며 몰아붙이는 막시모스는 더욱 강해져 있었다.
데이비는 만족했다.
“트라우마는 여전하냐?”
콰앙!!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막시모스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들어왔다.
태극을 그리며 바닥을 부수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공격들을 쳐내며 천천히 반격하지만, 그는 그 반격 정도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듯 모조리 걷어내며 반격을 가해왔다.
수년간 쌓아온 그의 노력이.
모든 것을 잃고 증오하게 되어 버려졌던 그 노력들이.
업과 만나 강해졌고,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며 다시 개안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맙다고 할까, 야박하다고 할까.”
콰아앙!!
그의 막대한 힘이 서린 태극권의 권강이 충돌했다.
“네 덕분에 내가 얻은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게 됐어.”
쩌엉! 쩌엉!
눈을 믿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맹렬한 공격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쉬지 않고 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막시모스에게 공격을 쳐내거나 차단하는 식의 방어로 일관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공격은 간혹 섬뜩할 정도로 직관적인 모습이 보였다.
보통은 피스트마스터, 즉 권강을 피운 마스터 급 격투가들조차 반응하지 못할 공격을 그는 받아내고 대비한다.
그의 실력이 그들보다 뛰어나서라기보단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개 개인은 국가를 바꾸지 못해. 그래서 나는 좌절했다.”
그가 얻은 힘이 절대적인 힘의 끝이라고 착각했으니까.
더 이상은 노력해도 소용없고.
그렇게 해도 국가라는 거대한 전력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강대한 태극권의 힘을 얻었으면서도 국가에 대항할 수 없었던 막시모스는 자신의 무력함과 자신의 어정쩡한 강함에 절망해버렸다.
그렇게 무력한 이가 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널 보고, 너와 싸우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들을 마주하고 나니까.”
그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의 자조 섞인 미소도, 분노도 아닌, 열의였다.
“세상이 참…… 넓더라.”
콰드드드드득!!
바닥이 그의 기류를 못 이겨 박살 난다.
강화해놓은 바닥이었지만 그의 압도적인 기류는 그것을 부수며 태극의 문양을 강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푸른 권강에 붉은빛과 푸른빛의 내공이 스며들며 한순간 모여든다.
“후회되냐?”
“1년만 더, 아니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적어도 이렇게 후회하진 않았을 거다. 좀 더 발버둥 치고, 좀 더 나은 상황에서 너와 싸워볼 수 있었을 테니까.”
왜 좀 더 파고들지 않았나.
왜 멋대로 멈춰 절망해버렸나.
“이제부터, 지킬 거다. 내가, 전부 지킨다고!”
그의 결연한 다짐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든지 받아줄 테니 들어와 봐.”
“좀 아플 거다. 데이비!!”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가 환하게 웃으며 파고들었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내공을 운용하며 그가 태극권의 진수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고작 열아홉의 나이의 소년이 만들어내기엔 너무도 거대한 기류.
모두가 경악하는 틈 속에서 거대한 폭풍의 태극이 일순간 잠잠해진다.
그리고, 그가 박살 낸 바닥의 태극문양에 내공이 스며들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태극권]
[음양대기광권]
거대한 음양의 기공이 마치 용의 형상화하듯 내리꽂혔다.
* * *
나와 싸우면서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막시모스는 자신이 쌓아온 모든 노력들이 전부 허사였다고 절망했으나 내 눈에 비친 현실은 달랐다.
그의 노력이 있기에. 저만한 힘이 그의 몸에 스며들 수 있었다.
그 노력이 있었기에 재능이 꽃피었고, 그 열정이 있었기에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었다.
친구가 아니라 했지만 나는 언뜻 나와 비슷한 그에게 신경이 쓰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나도 보여줘야지.”
일격을 준비하며 튕겨 들어오는 그의 공격은 단순한 주먹의 수준을 넘어 거대한 전략폭격 마법 수준의 힘을 담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주먹을 말아쥐고 당긴 내가 가볍게 바닥을 굴렀다.
투웅!!
옅은 진각에 이어 공파가 퍼져나가며 파장이 주변의 대기를 뒤흔든다.
[천마신공]
[병합]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천마신공과 베르델 대륙의 마왕 유르그의 격투술이 병합되며 검백의 화염을 손에 머금었다.
동시에 폭풍처럼 회전하며 하나의 태풍이 손에 머금어졌다.
[전력 싸다구]
검백색의 화염이 머금어진 장법이 내질러졌다.
동시에 주변의 소리가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듯한 착각이 들었다.
휘이잉!! 타아아앙!!
마치 거대한 비공정의 동력구 소리처럼 강대한 소리와 함께, 음속의 수배는 가볍게 넘어서는 거대한 충격음이 한차례 퍼져나간 뒤 천천히 귀를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그는 주먹을 내 지근 거리까지 뻗어왔으나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닿지 못하고 멈춰버렸으니 말이다.
전력 싸다구의 여파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드드득!! 콰자자자작!!
뒤이어 금이 가 있던 바닥이 완전히 박살 나며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내가 쳐놓은 결계 너머 강대한 여파가 보는 이들에게까지 전해지려 하는 것이다.
상당히 강한 결계를 쳐놨음에도 결계가 흔들렸다는 건, 힘 조절을 제대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죽지 않게 최대한 억눌렀는데. 막시모스가 내비친 전의와 열정이 큰 영향을 미친 듯 보였다.
인상을 찌푸린 나는 쓰러진 막시모스의 뒤편으로 부서지기 시작하는 결계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마법을 사용하면 결과가 어떻건 결국 이쪽의 판정패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사람이 다치는걸 막는 게 우선이 아닌가.
그렇게 마법을 사용하려던 순간.
투웅!!
관중석에서 일어난 페르세르크의 손에 빛이 모여들며 초월의 종언이 쥐어졌다.
쩌엉!!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대한 두께의 결계가 경기장을 다시 한번 감싸며 내가 만들어낸 힘 조절 실패의 여파가 결계에 막혀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완전히 흩어지진 못했는지 거대한 힘이 하늘로 쏘아 올려지며 강제로 상승기류를 만들어냈고 대기를 뒤틀어 버려 비구름을 만들어냈다.
따스한 비가 쏟아져 내린다.
고개를 돌려 결계를 펼친 장본인인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자 그녀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빚 하나]
누구 마음대로.
어딜 빠져나가려고.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망설임 없이 메시지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을 사용하면 실격? 지금 그게 중요한가!
[고양이 발, 고양이 꼬리. 협상은 없다. 나머지 두 명도 예외 없음.]
단호한 메시지 마법에 그녀가 움찔거리더니 이내 나를 곱게 흘겼다.
보통 마스터 급 격투가들조차 보일 수 없는 경악스러운 경기를 보여준 탓에 좌중은 비가 쏟아져 내림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전력을 다한 막시모스와 최대한 힘을 억제한 나의 한판이었지만 나 또한 그에게 통용될 최선의 선을 지킨 것이기에 이 이상 만약 그가 힘을 발현했다면 미련 없이 기권할 예정이기도 했었다.
완전히 조각나버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막시모스는 피를 울컥 토해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모든 힘을 끌어내고 패배한 그에게 일어설 힘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쓰러진 채 하늘을 보던 그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하…….”
“미안하게 됐다.”
“입에 침은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킥킥킥.”
“어떠냐?”
“적어도 네가 왜 그랬는지는 알 것 같더라.”
일어서는 것을 포기한 그가 조용히 후회하듯 중얼거렸다.
“남들이 평생을 걸쳐 얻고 싶어 할 기연을 얻은 주제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잘못 된 거겠지. 너와 대결을 펼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게 끝이 아니었구나 라고.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어.”
“흐음…….”
내가 침음성을 삼키자 그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데이비.”
“왜.”
“우리 친구 맞지?”
“절교했잖냐.”
“그냥 친구 하자, 우리.”
실없는 놈.
보통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속이 상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더 후련해진 얼굴이었다.
“데이비.”
그가 다시 부른다.
“왜.”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네게 한 방 먹일 수 있었겠냐?”
“그래. 아슬아슬하더라.”
그의 곁에 털썩 주저앉아 내가 어깨너머로 그를 내려다보며 웃어 보였다.
그러자 그는 뭐가 그리 유쾌한지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새끼. 끝까지 거짓말은…….”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의식을 놓으려는지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x라게 분하네…….”
회한이 서린 중얼거림이지만 절망은 엿보이지 않았다.
“죽도록 노력하다가 술이 땡기면 말해. 좋은 술은 많으니까.”
“하하하하!”
그는 그 웃음을 끝으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병합 장법인 전력 싸다구를 맞고도 의식을 유지한 점에서 볼 때 이미 그는 나와의 대련으로 더 큰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 * *
대륙 무투대회가 끝이 났다.
결과를 예상한 이들은 예상했다는 반응이었고, 의외였다는 이들은 의외라는 티를 냈다.
데이비 올 라운, 즉 나의 존재에 대해 아는 이들은 결과에 대해 당연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반대로 내가 얼마나 막돼먹은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아는 이들은 고작 10대 소년이 나와 대적해서 이만큼 버텨냈다는 것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그것도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 아닌가.
정작 나 또한 육체 나이는 20대조차 채 되지 않았건만.
왜 나는 그 평범한 계통에 포함시키질 않는 건지.
“그걸 말이라고 해? 니가 싸우는 걸 한 번 보고 나면 다들 그런 생각을 할 거야. 인간이 아닌 존재이거나,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어떤 은거 강자라고.”
“틀린 말은 아니네.”
실소를 흘리며 손에 쥔 미스릴제 메달을 바라보았다.
대륙 무투 대회 우승자에게 건네주는 물건으로 정교하고 멋진 문양이 새겨진 메달이었다.
“그거 쓸 거야?”
“아니.”
사실 내겐 별로 필요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 나 줘.”
“어디 쓰려고?”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였다.
“쓸 곳이야 많지.”
“그럼 가져가.”
“네가 목에 걸어줘.”
그녀의 말에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목을 휘감듯 팔을 뻗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지가 걸어 달라 해놓고 왜 이래?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순식간에 팔을 뻗어 내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발뒤꿈치를 들며 거칠게 입술을 부딪쳤다.
그야말로 기습적인 입맞춤에 이어 부드러운 감촉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살짝 떨어진 그녀의 입술로 은빛 실타래가 살짝 보였다가 사라졌다.
부부 사이에 입맞춤이 무에 그래 부끄러울까.
일리나는 밤에 강한 스타일이지만 바깥에서도 애정표현이 잦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할 터.
“뭐하냐?”
“응? 키스하려던 거 아니야?”
엉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님 말고. 1등 한 보상이라고 생각해.”
“어림도 없다. 바니걸에 협상은 없어.”
“아, 알고 있거든?”
그제야 당황한 듯 그녀가 허둥지둥거리자 에이리아가 웃음이 터진 듯 쿡쿡 웃기 시작한다.
에이리아의 웃음코드는 상당히 이상한 면이 많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리나는 입술을 혀끝으로 할짝대며 요염하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