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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78화 (878/1,559)

제 878화

250. 제작 노예 집합

마리아 공주에게 있어 앞을 명확하게 보는 건 처음 느껴본 경험이 아니다.

과거 현국의 시험에서 그녀는 나의 손을 통해 갑자기 앞이 잘 보임으로써 엄청난 혼란을 겪은 바 있으니까.

물론 그건 눈이 보인다고 믿는 착각일 뿐 그녀의 눈이 진짜로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가를 감싸는 안대가 아닌 붕대를 풀었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때요?”

그 한마디에 그녀는 멍하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뺨에 손을 올리더니 이내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아…… 아아.”

아닌 척, 괜찮은 척 해왔지만 역시 그녀도 결국은 앞을 명확하게 본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라티아나 왕녀보다는 그래도 상황이 좋았습니다.”

“저…… 앞을 볼 수가…….”

“뿌연 게 끼이거나 하는 건 없습니까?”

“네, 하지만 어떻게…… 내로라하는 모든 의원과 신관들도 불가능하다 했는데…….”

“그건 그 인간들 기준이고.”

담담하게 말하며 작은 주사기를 꺼내 그녀의 팔에 쿡 찔러넣었다.

“읏…….”

“당분간은 주사를 계속 맞아야 합니다. 타냐에게 일러두었으니까 주기적으로 받으세요.”

“저…… 정말 앞을 볼 수 있는 거 맞죠?! 다시 시력이 사라진다거나…….”

“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축하합니다.”

“아…… 아아아아!”

그제야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였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멍한 얼굴로 창밖을 보는 라티아나 왕녀는 마리아 이상으로 멍한 얼굴이었다.

“새가, 보여요.”

“그렇겠죠.”

“나무가 보여요…… 색이 돌아왔어, 색이…….”

두 사람의 반응은 비슷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빛을 빼앗겨 절망했던 그녀는 자신이 앞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아직도 쉬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우선 이것 좀 볼래요?”

내가 손가락 두 개를 편다.

“몇 개로 보입니까?”

그 질문에 그녀는 황급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두…… 두 개요!”

“이런, 세 갠데. 아무래도 일시적으로 빛이 보이는 거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네?!”

“거짓말입니다. 두 개 맞아요, 앞은 잘 보이는 모양이네요. 거울 좀 보실래요?”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가 거울을 보여주자 회색빛의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투명한 회색의 눈동자가 보인다.

아름다운 눈동자와 도저히 사람의 눈을 인두로 지졌다고는 볼 수 없는 예쁜 얼굴이 보였다.

“화상 자국을 없애준 건 서비스입니다. 이제 안대로 눈을 안 가려도 되겠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궁금하면 확인하면 되지.”

“아갸갸갸갸갸갹!”

사정없이 그녀의 뺨을 꼬집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사람이 신경 써서 수술해줬더니 꿈인지 헷갈리는 꼴이라니.”

“…….”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한다고? 정론이긴 한데 나는 환자를 상대로 함부로 뻥카를 던지지 않아.”

구라를 쳐야 환자를 살릴 수 있을 때.

그 후에 그 구라가 들통나도 큰 후유증이 생기지 않을 경우에만.

그 외엔 어떤 경우가 있어도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 희망을 함부로 불어넣지 않는다.

그녀가 아직도 믿을 수가 없는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안구는 상해버렸고 시신경도 괴사했다.

그 여파로 후유증까지 생겨 시시각각 통증으로 잠도 못 잘 수준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후유증은커녕 너무 앞이 잘 보였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시력이 더 좋아졌다.

“당분간 의안이 눈에 잘 적응할 때까지는 무리하게 눈뜨지 말고 주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한 두 달 정도는.”

“의안…… 이요?”

의안이 무엇인가. 눈이 망가진 탓에 끼우는 가짜 눈을 뜻한다.

하지만, 의안은 이렇게 사람에게 빛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은 쉬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블랙 슬라임 코어는 사람에게 상당히 악영향을 끼치는 물건이지만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외려 인간의 육신과 가장 흡사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게 이것이고.”

라티아나는 곧이어 내가 설명해준 시신경이니 괴사한 신경을 제거하고 직접 연결을 하느니 복잡한 설명을 들었지만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의안은 마나를 통해 순환하며 시신경의 정보를 전달하지만 사람이 마나를 다량 사용하면 당연히 마나 부족 현상으로 시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라티아나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자체 순환 마법진을 새겨서 부담을 최소화하고 뇌를 속이는 거고요.”

어차피 시신경의 정보전달은 전기신호의 일종이다.

그런 만큼 나는 그 전기신호를 속이는 방식을 택했을 따름이었다.

신의 히포크리아에게 배운 것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불가능했을 경악스러운 시술이 아닐 수 없다.

“왕녀를 데리고 가 부담이 적은 숲에서 당분간 요양하게.”

이어서 나는 토인족 시녀에게 그녀를 맡겼다.

“저…… 저 그럼 저는 정말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나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담담하게 대답하자 그녀가 벌떡 일어나 내 뺨에 제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요!! 흑!!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울먹거리며 소리치는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기뻐할지는 사실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후 그녀의 상황을 지켜보던 내 곁으로 익숙한 인물이 다가왔다.

“정말 볼 때마다 경악스러운 수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시는군요.”

“그래도 이번엔 꽤 긴장했습니다. 워낙에 예민한 부위라.”

내 대답에 노인은 껄껄 웃어 보였다.

“보통은 수술할 엄두도 내지 못하거니와 이런 발상은 하지도 못할 겁니다. 설마 사람의 몸에 상극이라는 블랙 슬라임을 가공하여 의안으로 만들다니.”

“블랙 슬라임의 코어는 인간의 장기와 유사한 점이 많으니까요.”

“이건 의학계에 혁명이나 다름없습니다! 제 장담컨대 이걸 공개하고 발표하면 아마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요.”

“귀찮음은 덤이고요?”

“하하하. 잘난 이의 숙명이지요. 다만 아쉽군요. 잘하면 대륙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되찾아 줄 수 있을 터인데…… 왕자님을 제외하곤 이런 수술이 가능한 이가 없으니…….”

극도로 정교한 수술이다. 직접 신경을 파악하고 연결하는 건 특수한 장비라도 없는 한 불가능하다.

그가 수술을 기록한 영상석을 소중하게 보관했다.

“왕자님. 이걸 가져가서 아카데미의 교수들에게 보여주어도 되겠는지요.”

“뭐 편한 대로 하세요.”

“허허허. 벌써부터 끓어오르는 기분입니다. 아마 왕자님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후발교수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겝니다…….”

“그나저나 의학부에 대학원생으로 보낸 그 시녀는 잘 하고 있습니까?”

“영특합니다. 잘만 가르치면 굉장한 의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잘 키워주세요. 아 그렇다고 너무 굴리진 마시고.”

“허허허. 그저 코끼리가 필요하면 코끼리를 잡아 와라 시키는 정도입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거 농담이라도 너무 살벌하네요.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어 보였다.

테라리아 왕국을 떠나 대륙을 유랑하기 시작한 막시모스 녀석이 돌아왔을 때.

그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조금 궁금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참. 고르네오 남작님.”

“예?”

“이전에 영지에서 아카데미의 의학도 학생인 타디아를 만났었습니다만.”

“타디아를 알고 계십니까?”

“저 한번 본 거 못 잊는 건 잘 아시잖아요.”

“아참 그렇군요. 타디아라…….”

그 말에 그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저하께서 거둬주신 전쟁고아 중에서도 의학부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여주던 아이이지요. 실은 그 덕분에 제가 대학원생으로 부르기 위해서 상당히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흐음…….”

“안 그래도 조만간 맛난 것들을 준비해 녀석을 초대하고 대학원생이 되어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음…… 역시 어딜 가도 비슷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타디아는 왜 찾으시는지.”

그런데 왜 그렇게 다급해 보였지?

“아닙니다. 그냥 잘 있는가 해서요.”

“허허. 녀석에겐 영광이군요. 다만 제 눈에는 딱히 이상한 짓을 하는 건 못 봤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니까요.

그런데 그때 본 녀석의 표정은 상당히 급해 보였는데.

괜한 감이 나를 좀먹듯이 살살 건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 * *

[오늘 저녁에 한잔. 콜?]

“얘는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마가 한유나는 자신에게 온 문자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화끈하게 깡소주, 콜?]

[궤짝으로 준비할 테니 오기나 하셈. 오늘 내가 쏜다. 참, 이번엔 그때 본 지아 씨도 데려옴? 나 완전 기대 중.]

[그거 암? tc 관련 사업 내가 물려받았거든? 네 연봉 내가 주는 거니까 까불지 마. 그리고 지아는 바빠서 너 같은 거 볼 시간 같은 건 없어.]

[갑질 반대! 그리고 내가 뭐 어때서! 이래 봬도 프로게이머라고! 세계적인 스타는 돼야 하냐?]

[난봉꾼한데 우리 지아 못 준다. 감히 누구 마음대로.]

[에잉, 우리 처음 술 마셨던 곳 기억하지? 거기서 보자. 소개시켜줄 사람도 있고.]

소개시켜준다는 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무슨 상관이랴.

본래 산소맛곰탕. 즉 한유나와 현아를 제외하고 날을 세워대던 미친년 포지션의 한유나였지만 그녀도 제법 짧은 시간에 많이 변했다.

그 과정에서 친해진 것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e스포츠 팀의 게이머 바로 tc였다.

tc의 게이머 중 김박수는 상당한 넉살과 털털한 성미로 인해 팀 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것을 넘어 팀 바시리안에서도 상당히 호의적인 편인데 그런 그의 털털한 성격 때문인지 유나와도 결국 친해지는 데에 성공했다.

그 후 술을 좋아하는 김박수와 제법 빠르게 친해져서 이렇게 회사의 일을 제외하고도 간간이 만나 술을 마시는 사이가 된 것이다.

“여기 여기!”

조용한 룸 술방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자리에는 김박수를 포함한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어?”

“반갑습니다. 시우라고 해요.”

“한…… 유나에요. 혹시 바시리안 팀 프로게이머…….”

“네. 맞습니다.”

“와아…….”

그녀가 눈에 띄게 화색을 보였다.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분을 만나서 영광이에요!”

“야! 나도 같은 프로게이머거든?”

“너 같은 쩌리와 감히 비교하지 마라. 시우 황제라는 오글거리는 명칭이 괜히 붙은 줄 아냐?”

시우 황제라는 말에 시우의 표정이 핼쑥하게 질렸다.

하지만 곧 두 사람의 투덕거림을 지켜보며 다시 본래의 부드러운 미소를 되찾았다.

“하하 두 분 사이가 좋으시네요.”

“뭐. 평소에 사인 받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서 내가 자리 한번 마련한 거야.”

“어머나 웬일로 고마운 일을 다 하네. 저 사인 좀 해주실래요?”

“그럼요 얼마든지 해드려야죠.”

시우는 한유나가 내민 종이에 빠르게 사인을 남긴 뒤 글귀를 남겼다.

“와 역시 사람은 덕질을 하고 살아야 해. 이거 가보로 모실게요.”

“하하 부끄러우니까 그러지 마세요. 실제로 아마추어한테도 패배한 한물간 프로게이머니까요.”

“세상에 같은 프로게이머인데 인성 차이 뭐냐?”

“내가 뭐.”

김박수가 투덜거리자 한유나는 자리에 털썩 걸터앉으며 박수를 밀어내 버렸다.

“비켜, 좁으니까.”

“와씨! 내가 연봉 주니까 참는다!”

“술은?”

“이미 시켰지. 기대해라. 오늘 내가 황금비율 폭탄을 보여줄 테니까.”

“니가 백날 날고 기어봐야 각성자 못 이긴다.”

아무리 제작직의 각성자라도 1세대 각성자의 육체능력은 굉장한 편이다.

“근데 참 신기하지. 제작 유저가 그렇게 힘 세도 되는 거냐?”

“날 단련시킨 괴물이 좀 보통 인간이 아니라서.”

그녀는 악마 같은 웃음을 짓던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지니고 있던 청년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자자 적셔! 아주 그냥 부어!”

그렇게 자리에서 빠르게 친해지기 시작한 세 사람은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사람의 만남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딸꾹! 야 너 나하고 약속 왜 안지키냐아아…….”

결국, 제대로 술에 꼴아버린 김박수가 한유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약속은 무슨 약속. 이거나 처먹고 술이나 깨.”

“어이쿠 감사.”

한유나가 건넨 병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본래대로 돌아온다.

“와씨. 효과 대박. 진짜 야 너랑 나랑 장사하자니까? 내가 팔게 넌 이걸 만들기만 해! 숙취도 없고 술도 바로 깨고 이거야말로 직장인들의 꿈의 아이템이다!”

“너랑 사업하면 잘될 것도 다 말아먹어. 그리고 이런 거 괜히 팔 생각 없어.”

한유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런데 약속은 무슨 약속.”

“야, 나 여자 소개해준다고 했잖아. 나도 연애 좀 하고 싶어…… 내 20년 넘는 모태 솔로 인생은 완벽한 연애생활을 위해 준비해온 기간이다. 이 말이야.”

“말은 잘하지.”

“하하하하!”

시우가 시원하게 웃자 한유나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시우 씨는 여자 친구 없어요?”

“아 저요? 글쎄요…….”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여자의 직감이라고 할까.

한유나는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게 물었다.

“애인은 없고 반한 사람이 있구나.”

“아…… 아니 그건.”

“에이. 있구만. 전에 인터뷰할 때 그랬죠? 같이 게임할 수 있는 여자친구가 이상형이라고.”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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