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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85화 (885/1,559)

제 885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라는 단어는 이런 곳에서 쓰는 것이리라.

분명 자신의 영역인 바다일 텐데.

다굴 앞에 장사 없다고 베헤모스는 복날에 개 맞듯이 두들겨 맞았다.

[이런! 손이 미끄러졌군! 미안하게 되었다!]

[어이쿠! 이가 간지러워서 그만!]

[죽어라. 계약자!]

니들 계약자는 여기 있다. 이놈들아.

베헤모스가 거대한 체격을 이용해 반항하려 해도 그것을 지켜볼 두 환수왕이 아니었다.

셋의 힘 자체는 방식에 따라 엇비슷한데 그런 환수왕 중 둘이 한 명을 상대하고 있는 마당에 신수와 정령왕까지 있으니.

베헤모스의 입장에선 미치고 펄쩍 뛸 상황인 것이다.

살아오며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하고 절대적인 왕으로 군림했을 놈에게 이런 굴욕과 위기는 쉬이 익숙해질 수 있는 부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능이 강한 놈이라도 이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모를 순 없다.

아니, 오히려 본능이 강하기에 더 잘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놓치지 마라. 잘게 다져놓으라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베헤모스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변질되고 진화해온 바다생물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지의 정령왕 노아스가 띄워놓은 수많은 크고 작은 대지 위로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오징어의 다리들이 솟아나 자신들의 왕인 베헤모스를 도우려 든다.

물론 고작해야 진화한 생물일 뿐인 놈들이라 환수왕을 방해할 순 없지만, 그 수가 많다.

휘이이잉!! 서걱!! 서걱!

섬뜩한 폭풍음과 함께 진화한 바다생물들이 일거에 잘려나가며 푸른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저항하는 베헤모스 때문에 그 붉은 핏방울은 순식간에 쓸려 내려갔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몰려온다.

“꽤 오랫동안 여기 있었나 보네.”

못해도 몇 년은 이곳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어떻게 확신하시는 거죠?”

“베헤모스의 진화는 강제가 아니라 권유에 가까워. 자극하고 변화하는 데 힘을 보태주는 거니까.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 변이하고 진화할 힘이 없는 생명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빛을 주는 거야.”

“그럼…….”

“당연 그런 조건이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균열 속에서 봤던 그 몬스터가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있던 건 멍청한 베헤모스의 머리로는 구현해낼 수 없다.

신기한 점은 몬스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마 베헤모스가 자신의 영역 내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해서 잡아먹어 버렸기 때문이리라.

-크아아아악!!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싀리리리리릭! 죽어라. 계약자!]

[평소에 탈것취급을 한 복수를 하는 것뿐이다! 얌전히 있어라!]

아주 광기가 들린 것처럼 베헤모스를 쥐어패는 두 환수왕을 살며시 노려보자 코오나가 이제는 진이 빠진 얼굴을 해 보였다.

“평소에 저 존재들을 얼마나 괴롭힌 거죠?”

“괴롭히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하네.”

그렇게 말하며 튀어 오른 상어를 향해 한 발 내디뎠다.

쩌엉!!!

그리고는 부드럽게 주먹을 내질러 거대한 상어의 코를 뭉개버린 뒤 놈의 치아를 하나 뜯어내 버렸다.

“좀 빌리자, 어차피 니들 이빨 또 나잖아.”

죽은 상어가 다시 이빨이 날 리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쉬리릭!! 쩌엉!!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내가 그 이빨을 메가로드리아에게 던져버렸다.

고작 작고 가벼운 에나멜질의 이빨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메가로드리아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후려쳤고 놈은 그것을 맞고 비틀거리다 베헤모스의 수염에 맞아 튕겨 나갔다.

이에 녀석이 분기 어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지만…….

[보고 있다.]

입을 뻐끔거리며 의념을 전하자 녀석이 크게 움찔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매달려 베헤모스의 미끈미끈한 피부를 물어뜯는 샨드라미네아를 걷어차 버리고는 눈빛을 교환한다.

[크…… 크흠!! 얌전히 있어라. 베헤모스!]

[그, 그래!]

-그만! 그만!!!

그래 이래야지.

“저들이 당신에게 앙심을 품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네요.”

“적어도 저놈들의 전 주인보다는 인도적이니까.”

-그만!! 그만해라!!!

그때 발버둥 치던 거대 흰수염 고래. 베헤모스가 어마어마한 성량을 담아 소리 질렀다.

일순간 모두가 멈췄고 놈은 지친 듯 숨을 헐떡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두 환수왕으로 인해 상처투성이지만 녀석의 눈은 역시나 본능에 충실한 놈답게 굉장히 호전적이다.

녀석이 거대한 체격을 대부분 물속에 잠근 채 눈부분만 띄워놓고 내게 물었다.

-네놈, 누구.

“통성명은 처음이지? 데이비 올 라운이다. 셰인의 후계를 이어받은 환수 소환사다.”

내 대답에 그의 거체가 일순간 흔들렸다.

-셰인! 셰인이 살아있나!

“죽었어.”

내 말에 그가 조용히 침묵했다. 내가 아는 베헤모스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무대뽀에 호전적이기 그지없는 또X이 환수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그리움과 슬픔이었다.

“공격은 네가 먼저 해왔으니 서로 피차 복잡하게 잘잘못을 따지진 말자고, 하나 물어봐도 되나?”

-잘잘못이라니, 흥! 인간이 참 멍청하군, 잘잘못이라는 단어는 그런 곳에 사용하는 게 아니다! 사과할 때 쓰는 거다!!

“풉…….”

코오나가 웃음을 터뜨리려다 입을 틀어막았다.

“쟤 빡대가리야.”

“…….”

이해했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네가 맞다고 치자. 내가 묻고 싶은 건 너도 저 두 놈과 같이 울드에게 잠식되어 있었을 텐데?”

-울드라…….

그가 고민하듯 중얼거렸다.

-그게 누구냐?

“…….”

[계약자. 저 멍청한 놈이 기억하는 인간은 적과 셰인뿐이다.]

“알고는 있었는데 여기서 막힐 줄 몰랐네. 결국, 잠식에 대해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건가?”

놈의 몸에선 울드의 잠식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있다 한들 상관은 없었다.

울드는 눈을 뜨지 못하지만, 그녀가 쳐놓은 잠식 정도는 어렵지 않게 걷어낼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 다른 질문이다. 적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아무리 멍청하고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는 단순한 놈이라도, 자신의 힘이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특히 그게 금기를 범하기 시작했다면 더더욱.

“너, 대체 여기서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내 물음에 그는 조용히 침묵했다.

“네 힘이 금기를 넘은 건 알고 있나?”

-모, 모른다!

“알고 있네. 똑바로 말해. 네가 하든, 하지 않았든 일이 좀 복잡하니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비 폭력주의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말로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마라.

“be 폭력, 이 새끼야. 넌 오늘 좀 맞자 그냥!”

퍼어엉!!!!

[진정해라! 계약자! 계약자가 때리면 그놈 죽는다!]

[미친놈! 봐가면서 까불어야지!]

-끄어어억!

필사적으로 나를 붙잡고 말리는 메가로드리아의 저지 덕분에 진정한 내가 놈을 노려본다.

고작 티끌만큼 작은 인간의 주먹에 죽음의 공포라도 느꼈는지 녀석의 몸이 더욱 물속에 잠긴다.

“좋아. 난 두 번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베헤모스.”

-…….

“네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네가 왜 인간에게 협력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지. 전부 아는 대로 말해봐.”

내 말에 그는 조용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려라. 인간. 돌아와서 이야기해주겠다.

그렇게 말하며 물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베헤모스였다.

대체 무슨 이유로 사라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10분 2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도망친 거 아닐까요?”

“끈덕지게 좀 기다려봐.”

거대한 그림자가 흩어지듯 사라지자 정령왕들이 의견을 내비친다.

[도망친 거 아니에요?]

[웃기지 마라. 가장 멍청하지만 가장 용맹한 놈이며 그렇기에 정직한 놈이기도 하다. 놈은 자신의 말은 기억하는 한에선 절대로 기억하고 이행하는 놈이다. 그런 놈이 도망을 친다고?]

놈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건 나머지 두 환수왕과 내 의견이었다.

하지만.

30분, 1시간이 지났을 때.

“메가로드리아.”

[말하라 계약자.]

“고래 고기, 잘 먹기 힘들지?”

[그렇다.]

“오늘 하나 잡자.”

순식간에 신창을 뽑아 들며 바다로 뛰어들려는 나를 코오나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이 새끼가 지금 도망을 쳐?!”

놀랍게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의적인 도망을 친 적이 없던 흉포한 환수왕, 베헤모스가. 도망쳐버렸다.

[진정해라. 어차피 네놈은 추적할 방법 정도는 만들어놓았을 텐데?]

“점점 멀어지고 있네. 저쪽 방향이면…….”

내 중얼거림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베헤모스가 도망을 치다니…… 이건…….]

“뭔가 이상하긴 하네. 일단 따라가 보자. 천천히.”

시간이 변해도 천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런 베헤모스가 도망을 친 것이다.

* * *

작은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수많은 소형 어류들을 먹어치우던 일대의 포식자는 의기양양한 듯 온몸을 부드럽게 휘젓듯 나아갔다.

오늘은 어떤 먹이를 찾을까.

강자에겐 선택권이 있고, 약자에겐 선택권이 없다.

자연의 생존법칙에 따라 철저하게 강자로서 군림하는 거대한 어류는 그날도 어김없이 자신을 보고 도망치는 작은 어류들을 보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작은 멸치 떼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큰 녀석들까지도. 오늘따라 유별나게 자신을 보고 도망친다.

그렇구나! 내가 더 강해진 것이로구나!

생물적인 본능에 의해 의기양양해진 그는 도망치는 거대한 고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대한 고래는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다.

맹렬하게 달려들어 진로를 방해하고 물어뜯으려던 찰나.

구우우우우…….

바다를 헤엄치던 상어는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

어마어마한 존재감.

상어의 뒤쪽 바다가 떨리며 보이지 않던 어두운 저편의 거대한 것이 다가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저토록 거대한 존재가 다가오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접근하면서 생긴 거대한 수류에 휩쓸려 꼴사납게 튕겨 나간 상어는 그 수류에 의해 몸이 부러져 죽어가면서도 시선을 거대한 존재에게 담았다.

절대 두려움 따윈 없어 보이는 절대적인 존재.

그런데.

그런 존재가 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바다를 가로질러 도망친 거대한 존재.

베헤모스가 도착한 곳은 심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거대한 시설이었다.

물론, 시설이 아무리 거대해도 베헤모스의 거대한 체격을 수용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베헤모스는 상관없다는 듯 해저에 있는 거대한 시설을 한 바퀴 돈 후 빛에 휩싸였다.

동시에 거대하기 그지없던 베헤모스의 몸집이 서서히 줄어들며 이내 작은 새끼 고래 정도의 규모로 줄어들었다.

퍼엉!!!

해저 기지의 아래쪽을 통해 기지 내부로 진입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그를 안내한다.

그리고, 물 위로 그가 올라왔을 때 그의 앞에 새하얀 가운을 입은 다국적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어딜 갔다 온 거지? 베헤모스.”

-알 거 없다.

차갑게 쏘아붙이는 그 모습에 연구자들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진다.

“분명 실험이 7차례나 밀려있었을 텐데?”

-닥쳐라. 하찮은 인간.

베헤모스는 전신에 극도로 기분 나쁨이 묻어나고 있었다.

보통 생명체라면 그 자리에서 겁에 질려버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철컥…… 퍼억!!

-…….

학자들은 망설임 없이 주변에 비치된 라이플을 꺼내 들었고 그대로 베헤모스의 머리를 후려쳐버렸다.

콰앙!!

-그르르르르르!!!

격분하는 베헤모스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분노를 토해내자 겁에 질린 연구원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하…… 하하…… 나를 물어뜯으려고?”

-큭.

“그래. 뜯어봐. 대신 네가 그간 해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겠지.”

-그렇게 되는 순간 나는 인간을 멸망시킬 거다.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생명체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베헤모스의 경고에 연구자들이 킥킥 웃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그년을 쥐고 있는 이상 넌 절대 우릴 반항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한 연구자가 베헤모스를 향해 다가가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지 마라. 짐승 새끼가.”

-…….

“알았으면 빨리 변하지? 따라와. 실험이 남았다.”

그 말에 베헤모스는 조용히 침묵하다 빛으로 다시 한번 휩싸였다. 그리고.

그의 육신이 다시 작아지며 인간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한다.

하늘빛 머리카락을 가진 10대 중반 정도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등 뒤로 돋아난 가느다란 촉수들을 꿈틀거리며 연구자들을 노려보다 이내 촉수까지 숨겼다.

“그래. 말 잘 들어야지.”

“잘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그의 말에 연구자들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태블릿 PC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자. 어때.”

태블릿 PC 안에는…….

거대한 수조 속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소녀가 있었다.

다만 소녀는 인간과 달랐다.

소녀의 하반신은 인간이 아닌 인어의 꼬리를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너…….

[수호자님? 수호자님이세요?!]

-…….

[무사하셨네요. 수호자님!!]

다급히 소리치는 소녀 인어를 보던 베헤모스가 차갑게 연구자들을 노려보았다.

-약속은 지켜라. 네놈들이 원하는 것들이 모두 이뤄지면 그녀를 해방해.

“알았으니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네가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낌새를 보인다면 저 수조에 끔찍한 독을 풀 거다. 그녀의 피부가 뒤집어지고 살가죽이 녹아내리며 비명 속에서 죽어가겠지. 그게 아니면 흉포한 포식자 무리에 던져넣을 수도 있다.”

-그 입……! 조심히 놀려라. 미물아.

이를 악문 소년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알았으면 따라와.”

하급 연구원들이 다가와 그의 팔에 족쇄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의 육신을 이용해서 만든 족쇄였다.

그 말에 베헤모스는 좀 전 자신이 왔던 방향을 한번 바라보고는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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