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6화
퍼어어엉!!!!!
공간을 찢으며 날아가는 메가로드리아의 등위에 올라앉은 채 나는 곰곰이 침묵했다.
“이상하네.”
“뭐가 이상한데요?”
“아무것도 아니야. 슬슬 도착한 거 같네.”
내 말에 메가로드리아가 속도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하며 하강한다.
[저 섬이냐 계약자.]
“아니. 그 아래.”
[심해저인가? 그놈이 있을 곳이 바닷속이긴 하지.]
베헤모스가 꼭 물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존재는 아니다.
실제로 육지에서도 4개의 다리를 이용해 잘만 돌아다니지만, 태생부터 해양 환수인 만큼 녀석은 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애초에 놈이 섬으로 도망쳤다면 그 형체가 안 보일 리가 없다.
“베헤모스는 그 거대한 육신이 언제나 약점이었으니까.”
“가만 그래도 내려가기 전에…….”
나는 메가로드리아의 등에 올라탄 채로 가볍게 손뼉을 쳤다.
우웅!!!
동시에 나와 코오나의 육신에 빛이 서린다.
“메가로드리아. 신호할 때까지 대기해.”
[……알겠다.]
“뭘 하시려고…….”
“스카이다이빙 좋아하나?”
“네? 설마!”
콱!! 퍼어엉!!
창공에서 그대로 코오나를 집어 던져버린 내가 그녀를 뒤따라 뛰어내린다.
“꺄아아아악!!”
당황한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내가 있는 곳은 상공 수천 피트 높이.
낙하산도 없이 이곳에서 낙하하는 건 맨정신으로 할 일은 아니었다.
물론, 정말 아무런 대책도 없다면 말이다.
[7서클 중력계]
[하이 리버스 그래비티.]
‘후웅!!
순식간에 그녀와 나를 당기던 중력이 사라지고 낙하하던 운동에너지마저 흩어지듯 사라졌다.
기존의 6서클 리버스 그래비티는 중력의 영향을 서서히 줄이지만 7서클 하이 리버스 그래비티는 추락하는 에너지마저 제어하는 마법이다.
섬의 끝단 모래사장에 착지한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아…… 하아.”
“겁이 많기는.”
“죽을뻔했거든요!”
그녀의 외침에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비트의 사역인으로써 존재할 때도 그녀가 감정이 적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전보다 더 감정이 풍부해져 있다.
아비트가 소멸하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했구나.
그녀는 사역인으로써 존재하면서 상당히 메말라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우물에 물줄기가 돋기 시작한 듯 보였다.
물론 그것을 그녀에게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정 애매하면 돌아가. 불닭이를 빌려줄 테니까 집까지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따라가겠어요. 예언을 직접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녀는 끝내 나를 따라오려 했다.
그녀도 어느 정도 무력은 있으니 본인은 잘 지키겠지.
“방해되면 곧바로 돌려보낸다.”
“그런데. 해저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실 생각이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도착한 곳에는 숲속에 숨겨진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여긴…….”
“들어가 볼까?”
“들키지 않고 들어갈…….”
서걱!!
홍단이의 가느다란 검신이 두껍디두꺼운 문을 갈라버리자 그녀는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다.
“들켜도 몰라요.”
“괜찮아.”
[5서클 인비져빌리티.]
비가시화 마법을 건 뒤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엄중한 경계는 예상한 바였다.
곳곳에 붙은 CCTV부터 간혹 보이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용병들도 보인다.
“음?”
“왜 그러나.”
“아니, 기분 탓인가 싶어서.”
“어제 너무 질펀하게 놀아서 그런 거 아닌가?”
“적당히 마실 걸 그랬나…….”
검은 소총을 쥔 채 지하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의 잡담이 들려온다.
코오나가 긴장한 듯 나를 바라보자 나는 주변을 스윽 훑은 뒤 소리 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뭐 하는 곳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응?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네?”
“밑에서 누가 부른 건가?”
“냅둬. 그 양반들 괜히 트집 잡으면 한도 끝도 없이 귀찮아진다.”
열려있던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내려가는데에도 그들은 크게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방금 언어…… 스페인어에요.”
“스페인어? 배배 꼬인 건 알겠더라.”
“이전에 스페인 대사와 만난 적이 있어요. 그때 간단하게 회화를 배워뒀는데 비슷한 단어가 상당히 많이 들렸어요.”
다국적 용병.
미국의 영토지만 미국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내가 아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상당히 막 나가는 인물이지만 이런 무리수를 지원할 인간상은 아니었다.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다.
천천히 문이 열리며 그 내부로 거대한 기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차트를 들고 다니며 번잡하게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저…… 어떻게 하죠?’
입을 뻐끔거리며 신호를 보내오는 그녀를 보며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확실히 좋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는 건 알 것 같은데.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료실이라는 팻말을 보며 그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부터 털어보자. 확신이 서면, 그땐 이 기지 전체를 수장시킬 거다.’
* * *
자료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자료로 가득했다.
보관소에 가까운 만큼 딱히 사람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흐음…… 머리 아프네. A-f 자료들은 다 정리가 됐는데…….”
조용히 중얼거리며 컴퓨터를 두드리던 사내가 천천히 일어났다.
“흐아아암…… 일단 커피라도 좀 마실까…….”
말린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기지개를 켜며 퀭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리고.
“반갑다.”
퍼억!!!
빙그레 웃고 있는 나를 보기가 무섭게 동공이 확장되며 입을 벌린다.
물론, 비명이 터져 나오진 않았다. 순식간에 그의 복부를 후려쳐 기절시켜버렸으니 말이다.
“그냥 그를 붙잡고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번거롭잖아.”
쓰러진 연구원을 질질 끌어 라커룸에 던지듯 넣어버린 나는 근처의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제가 컴퓨터를 좀 조사해볼까요?”
“그렇게 해. 나는 여기부터 좀 둘러볼 테니까.”
가장 앞쪽에 있는 A라인의 서류철 하나를 뽑아 들고 천천히 그것을 펼쳤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페이지를 한 장, 두 장 넘기기 시작했다.
몇 년은 된 서류들이다.
관리는 잘되어있지만, 종이가 약간 퍽퍽한 느낌을 주었다.
해저 기지라는 조건 때문일까.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기던 나는 그 내용에 서린 것들을 보며 피식 웃을 수 있었다.
“당첨이네.”
“찾았어요.”
동시에 코오나가 고개를 돌렸다.
“이 기지는 본래 한 국제기업에서 만든 몬스터 연구 시설이에요.”
“안 그래도 여기 나오네.”
“다만 해양 생물과 몬스터를 포획하고 연구하는 시설이죠.”
그녀가 손가락을 이용해 키보드를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자료들이 바르게 출력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와 해양생물에 대한 데이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전 세계가 이 망할 놈의 조직을 공인했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녀가 연구시설의 명단을 출력하자 얼굴들이 드러난다.
“여기 명단에 있는 연구원들 말이에요. 이 사람들 여기서 단 한 명도 본 적 없어요”
“빈집털이라도 당했나?”
“그야 잘 모르죠?”
뭐가 됐건 원래 이곳의 연구원은 단 한 명도 없고 다른 도둑들이 태연하게 빈집을 털어먹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자기 영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일부러 눈을 감았다는 거야 뭐야.”
“반대로 미국이 이 일의 주범일지도 모르죠.”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의 인간들이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적대 세력의 끝은 아닐 거라는 점이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생각했다. 왜 베헤모스가 굳이 이곳으로 도망쳤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거짓말을 했다는 거대한 오명을 뒤집어써서 스스로 고통 속에 빠졌으면서도 그는 끝내 해명하지 않고 내게서 숨었다.
놈은 분명히 이 시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코오나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듯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결정을 내렸다.
“어쩌긴 뭘 어째. 일단 싹 장악하고 알아봐야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쓰러져 있던 연구원을 향해 손가락을 튕겨 목을 꺾어버렸다.
여기 놈들이 저지른 짓은 컴퓨터의 자료에 전부 남아있으니 말이다.
금기의 대부분은 인간으로서, 생명으로서 최소한의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선을 지킨 베르단데의 양아들, 그리드 국왕은 몰라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단죄할 자격을 묻느냐면 사실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고생해서 만든. 이 세상이 부서지지 말라고 만든 달의 힘을 끌어내고, 셰인의 환수를 이용해 일을 저지른 이상 인간적인 대우를 해줄 생각은 없다.
그건 너무 사치가 아닌가.
저항은 거셀 것이다.
완전히 박살 내진 않았다.
이 시설 내부에 살아있는 사람도 제법 있다.
그들이 어째서 이곳까지 흘러왔건 생명의 목숨의 경중을 멋대로 판단할 순 없다.
나는 모퉁이를 넘어 돌아서며 접근해오는 군인 두 명을 향해 손을 벋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두 명이 섬뜩한 파육음을 터뜨리며 피를 뿌리고 쓰러진다.
장난 스레 웃으며 한걸음 내딛는다.
동시에 저 멀리서 다수의 군인들이 나를 발견한듯 놀란 얼굴로 총을 겨누고 소리쳤다.
“움직이지마라!!”
제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그 언어의 뜻은 충분히 알수있다.
내가 멈추지 않자 그들은 섬뜩함이라도 느꼈는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총탄이 내게 날아들게 만들었다.
음속을 관통하는 철갑탄이 발포되고.
내 근처에 닿았을때.
나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뻗은 손을 이용해 허공을 걷어냈다.
그리고 내 손끝에서 황색의 철갑탄두가 후두둑 떨어지자 그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나는 최대한 장난스런 어조로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거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없으셈.”
콰직!!
내가 그를 쫓아왔으며 재앙에 가까운 습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베헤모스는 알지 못했다.
같은 시각.
베헤모스는 거대한 철제 침대에 온몸이 포박된 채 인상을 왈칵 찌푸린 채 끝없이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좋아. 좋아. 이렇게 완벽한 증폭률이라니 넌 정말 대단하군. 덕분에 개량이 가능해졌다!”
모니터를 통해 즐거워하는 어떤 노인을 노려본 베헤모스의 눈이 한없이 차갑게 식어갔다.
바다의 지배자. 심해의 폭군.
베헤모스의 인내심이 점점 고갈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체를 향한 증오, 인간을 향한 미움이 그의 전신에 스며드는 것도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심해의 포식자인 자신이 어쩌다가 이 하찮은 필멸자의 손에 붙잡혀 치욕을 당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그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당장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죽일 수 있다.
죽여야 한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계약자였던 셰인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경우에서도 그를 혼란스럽게 한 존재가 없건만.
그가 꽉 쥔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조금만 더 견디겠다. 그리고,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되찾았을 때.
인간을 모조리 잡아먹으리라.
극도의 분노가 서린 의지가 그의 힘에 섞이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쿠우우웅!!!
거대한 진동이 해저 기지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