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8화
-그르르르르!!
콰작!! 촤아악!!
짐승에게 필요한 것은 본능이다.
생존에 필요한 먹을 것을 사냥하는 본능.
위험한 존재를 감지하고 도망치는 본능 등등이 있지만,
베헤모스에게 가장 강한 본능은 먹어치우는 본능이었다.
콰작!! 콰득!!
[베헤모스!! 그만해라! 너무 과하다!]
과거 메가로드리아가 매번 했던 말이다.
늘 동족은 아니면서도 동족과도 같은 존재인 메가로드리아에게 저지를 당하고 나서야 적들을 놓아주던 베헤모스였다.
거칠고 흉포하고, 극도로 호전적인 베헤모스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폭군이었으며, 재앙신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셰인을 제외하고 우습게 여기던 인간에게 고개를 숙여왔다.
그르르르르…….
그러니 그 분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쌓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저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 뒤 인간을 모조리 몰살시키리라.
분노는 힘의 원천이다.
그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그의 이성을 점차 좀먹어갔다.
늘 그래왔듯이 죽이면 된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방해하는 저 인간을 치우고 저 백의의 인간을 찢어 죽이리라.
그의 전신에서 섬뜩한 존재감이 쏟아져나오려던 찰나.
아주 잠깐 무언가가 그의 얄팍한 기억을 스치고 지나갔다.
[음~~음~]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목소리.
물속임에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깨던 기억.
“큭!”
베헤모스가 한차례 비틀거렸다.
“으아아아악!!!”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연구원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이에 그는 데이비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가해 그를 밀어냈다.
콰아앙!!
그리고는 연구원의 목을 틀어쥐고 그를 벽면에 처박아버렸다.
“커억!!”
“내가 말했을 텐데.”
“…….”
“반드시 네놈을 찢어 죽여버리겠다고.”
“크흐…… 날 죽이면 그년의 목숨도 없다.”
“말해라. 소야는 어디에 있나.”
“그걸 말해줄 이유가 어디 있나.”
“널 여기서 영원히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의 말에 연구원은 죽어가면서도 낄낄 웃어댔다.
그리고는 깔아보는 듯한 시선으로 조용히 말했다.
“알고 싶나? 그렇다면 알려주지.”
그가 섬뜩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침묵 끝에 천천히 이죽거렸다.
“이미 예전에 죽였다.”
“뭐?”
“키히…… 키히히히히히!! 뭘 놀라고 그러나. 괴물아. 다시 한번 말해주지, 이미 죽였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죽였다. 왜인지 알고 있나? 역겨운 몬스터 따위에게 베풀 온정 같은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거든.”
그 말에 베헤모스의 세로로 찢어진 눈에서 섬뜩한 붉은 빛의 안광이 불길처럼 일렁였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지껄여라 하찮은 미물아.
목소리가 본래의 형태를 잃고 비틀리며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극도의 분노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를 뒤틀기 시작한다.
“쿨럭!! 하하…… 왜 그러나. 왜 분노하지?”
-뭐라?
“네까짓 지성인의 흉내를 내는 단순 괴물이 감히 인간을 흉내 내는 거냐?”
그의 빈정거림에 베헤모스가 그대로 팔을 뻗었다.
푸확!!
그리고 그의 팔을 잡아 뜯어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쓰러진 그는 죽어가면서도 낄낄 웃어보였다.
“저길 봐라.”
그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여러 서류와 자료를 담은 하드들이 보였다.
“며칠 전에 받은 것이다. 뭐하나. 선물은 확인해봐야지.”
-웃기지 마라!! 좀 전까지만 해도……!
“이래서 멍청한 어류 새끼는, 당연히 거짓 영상일 뿐이다.”
그 말에 베헤모스의 눈이 부릅 뜨여지며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더욱 가늘어졌다.
“하하. 짐승 새끼가 동요도 할 줄 아는구나.”
-닥쳐라!!!
푸확!! 콰직!!
-크아아아아아아!!
베헤모스는 미친 듯이 포효를 터뜨리며 그의 사지 육신을 모조리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그래! 죽여라! 어디 마음대로 죽여봐라!”
작은 소년의 몸이지만 그의 손에 닿는 인간의 육신은 마치 수수깡처럼 너무 쉽게 부러져 나갔다.
그러면서도 연구원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끔찍하게 상대를 찢어발긴 그는 진정이 되지 않는다는 듯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다했냐?”
이윽고 데이비가 그를 부르자 그가 섬뜩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베헤모스의 눈에 비친 감정은.
지독한 증오였다.
그 대상은 아마…… 인간이리라.
-인간……
뒤틀린 목소리로 그가 천천히 데이비를 노려보았지만, 데이비는 짧게 혀를 찼다.
“저건 손대지 마라.”
-…….
곧 죽을 놈이 펼친 정치질에 휘말릴 이유는 없다며 데이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체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삐익!
그때였다.
갑작스레 기계음이 울려 퍼지며 멋대로 디스플레이가 켜졌고 어떠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떤 소녀의 시신이 담긴 모습이었다.
-흡?!
그 모습을 본 베헤모스가 몸을 비틀거리며 눈을 크게 뜨고 영상을 바라본다.
처참한 상처를 안고 죽어있는 소녀는 영상 속에서 녹빛의 수술복을 입은 이들에 의해 해부되고 있었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끔찍한 짓을 당했는지 꼬리를 이루는 비늘은 여기저기 찢어져 피딱지가 앉아있었고, 피부는 여기저기가 채취당한 것인지, 갈기갈기 찢긴 것인지 피투성이 상처로 가득했다.
감고 있는 눈의 한쪽은 이미 안구를 적출했었는지 실로 꿰매어져 있었고 미소를 지을 순수한 나잇대의 모습임에도 너무도 차갑게 식어있었다.
“저게 왜 켜지는 거야.”
그 모습을 본 데이비가 짧게 중얼거리자 베헤모스가 비적비적 걸어가며 디스플레이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
그의 눈은 사정없이 흔들렸고 수많은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베헤모스는 극도로 기억력이 나쁜 존재다.
그런데. 왜 하나하나 기억이 나는 것인지 그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여기 혼자 계신 거예요?]
[저랑 같이 이야기나 나누실래요? 저도 이 세상에서 혼자거든요.]
[동족이 전부 죽었어요. 우리 동족은 이 세상에 있는 물의 흐름에 축복을 넣어주는 것밖에 죄가 없는데 말이죠.]
[수호자님. 또 왔어요. 이게 뭔지 알아요? 100년 된 진주에요. 예쁘죠?]
또 그녀와 나눈 대화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세상은 참 신기하네요.]
[신기할 것 없다.]
[오? 처음으로 대답해주셨네요. 수호자님!]
-아…… 아아…….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던 베헤모스의 눈이 붉게 변하기 시작한다.
점차 살기가 짙어지기 시작하며 그의 전신에서 고요한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인간은…… 늘 그렇듯 어리석구나.
몇 번이고 소녀의 이름을 되뇌며 베헤모스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본능에만 충실하고 정이나 관계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던 것이 베헤모스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은 극도의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했다.
“쟤가 뭐길래.”
데이비의 중얼거림에도 베헤모스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점차 힘을 증폭시켜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힘이 어느 정도 증폭되었을 때.
주변이 침묵이 침묵했고 베헤모스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이번에 제 보금자리를 지켜주셨다면서요. 아닌척하시더니 다 도와주시네요.]
[수호자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전 소야라고 해요. 동족이 모두 죽고 혼자남은 외톨이에요. 헤헤 수호자님과 저는 닮은 곳이 많네요. 자주 놀러 올게요. 수호자님이 몸을 추스르는 동안 말 상대나 해요 우리.]
처음엔 귀찮은 날파리 하나였다.
그녀가 어찌 되건 알 바 없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때.
베헤모스는 인어 소야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극도로 분노하고 절규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깟 작디작은 미물이 뭐라고.
단순히 대화를 나눌 대상에 대한 의리라고 하기엔 너무 극명한 분노였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왜 그녀를 죽인 인간이 이토록 미운 것인가.
계약자였던 셰인과의 약속인 인간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마저 하찮게 보일 정도로 원망스러운 것일까.
오버랩되듯 기억의 일부가 빠르게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고작 말 상대며 귀찮은 미물이었던 인어, 소야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달걀귀신처럼 회상 속에서도 베헤모스가 본 인어 소녀 소야의 얼굴을 형체로 잡아 보기가 힘들었다.
그 하나하나 모든 것이 극도의 분노를 머금었다.
오갈 곳을 찾지 못한 분노, 제어되지 않은 슬픔과 격노가 모조리 인간이라는 존재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시리디시린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기필코, 인간을 내 손으로 모조리 멸종시키리라!
격하게 소리 지른 그의 전신이 빛으로 휩싸인다.
누가 봐도 명백한 본체 현신의 징조였다.
이에 데이비가 그대로 손을 뻗었고.
막대한 힘이 그의 현신을 강제로 봉인하듯 틀어막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힘겨루기로 이어지는 그 모습에 격분한 베헤모스의 섬뜩한 시선이 데이비에게 향했다.
눈앞의 존재도 인간이다.
예외는 없다.
낮게 으르렁거리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을 쏟아내기 시작한 베헤모스의 형체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 * *
심해 600여미터에 달하는 장소에서 외부격벽이 완전히 박살 나면 어찌 될까.
당연히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물에 휩쓸려 파괴될 것이다.
베헤모스의 힘이 터져나가며 알타이르의 결계가 부서졌고 이내 엄청난 물이 시설 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거대한 빛이 퍼져나가면 내부로 밀고 들어온 물들이 하나둘 멈추더니 역행하듯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결계가 박살 난 것을 깨달은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가 고집을 부린 게 분명했다.
쏟아져 들어오던 물이 일제히 멈추고 되돌아가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콰지지직!!!
-모조리 찢어버릴 것이다!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포효였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저 포효가 구슬프게 우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
셰인을 제외하곤 그 어떤 존재와도 말을 섞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베헤모스였다.
본능만 충실한 베헤모스에게 누군가와 연을 쌓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이 가능하게 바뀌어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극소 희귀 종족.
인어 하나로 인해 극도로 분노하며 절규하고 구슬프게 울음을 터뜨리며 모조리 부수려 들었다.
놈은 덩치가 크다.
현신을 마치면 이 해저기지는 모조리 박살 날 것이고 느긋하게 이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던 내 계획도 물거품이 된다.
이내 내 전신에서 막대한 도력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베헤모스!! 후회하지 말고 멈춰라.”
“닥쳐라!! 네놈이 뭘 안다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인가!!”
격분한 그는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너무도 격한 분노와 슬픔이 그를 완전히 집어 삼켜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완전히 현신을 하는 건 내 방해로 실패했지만, 그의 육신 일부가 본래대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등 뒤로 본래 수염이던 촉수들이 돋아났고 그 덩치가 거대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일단 복수도 정보가 있어야 하는 거 모르냐! 멀쩡한 단서들 다 파기되면 네가 책임질래?!”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는 내 말이 귓가에 닿지도 않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제압. 즉. 실력행사뿐이다.
힘 조절이고 나발이고 이런 식이라면 이쪽도 방법이 있는 법.
검지와 중지만을 펼친 내 손끝에 새하얀 종이로 만들어진 부적 7장이 번뜩였다.
그리고 부적을 쥔 팔을 휘두르며 뻗자 내 손을 떠난 부적들이 한 장 한 장 빛을 내뿜으며 변화를 이루어내기 시작하며 거대한 태극 문양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쿠웅!!!
[특급 주술]
[괴신 강림]
[천하대장군]
나를 중심으로 내 등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웅크린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남색의 빛으로 이루어진 옛날 갑주를 걸친 거대한 거인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괴신, 천하 대장군.
1급 주술 위 상위 주술로 그 힘은 가히 천지를 뒤흔든다고 알려져 있다.
시설 전체를 박살 내려 드는 베헤모스에 이어 내 등 뒤에서 천천히 일어난 거인이 거대한 도끼를 들어 올린다.
저 도끼 한 방 맞으면 마냥 무시하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 거다.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천천히 허리를 펴듯 일어서는 거대한 그 형태에 절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어느 쪽이 이기건 이 해저도시는 그대로 파괴된다.
애석한 일이지만 연구원 놈이 죽기 전에 저지른 꼬장이 이렇게 큰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이윽고 내 손을 따라 천천히 거대한 거인이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우우우우우웅!!!
그때 품 안에 있던 통신용 수정구슬이 맹렬하게 울린다.
분위기 파악 못 하네 진짜.
“현신 중에 누가 전화를 해. 매너 없게.”
짜증스레 주술을 펼치며 수정구를 꺼내 활성화 시키자 수정구에서 쏟아져 나온 빛이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냈다.
-데이비!! 우리가 뭘 발견했게?
신이 난 일리나의 말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
-인어야 인어! 동화 속에서나 본 인어 공주님!
그 외침에 당장 천하 대장군과 충돌할 것처럼 굴던 베헤모스와 베헤모스의 상태를 조금 악화시키더라도 그를 제압하려던 천하대장군 모두가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남빛의 빛으로 만들어진 거인 천하대장군은 양손으로 쥔 도끼를 내리찍을듯한 자세로, 반쯤 현신한 베헤모스는 등에서 돋아난 수많은 촉수를 천하 대장군을 휘감으려다 멈춘다.
“야 타임!!”
내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