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9화
253. 잃어버린 자들의 광기와 괴신의 방망이
-데이비? 데이비? 음? 왜 이렇게 회선이 약해지는…… 지지직…….
연락은 금방 끊어졌다. 아마 그들에게 모종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르게 개별적으로 움직여준 두 사람이 우연찮게 발견해준 게 하필 베헤모스와 연관이 있었으니 말이다.
베헤모스의 난동으로 해저기지의 최하단은 이미 침수가 진행되고 있다.
마나라는 게 물 좀 들어온다고 막히는 건 아니라지만…….
“그 인어, 살아있다는데? 혹시 인어가 둘인가?”
-……하나뿐이다.
기괴하게 뒤틀린 목소리가 본래의 형태로 서서히 돌아오며 흉포해져만 가던 기세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럼 네가 찾던 인어 맞지?”
-…….
“맞냐고 묻잖아.”
-녀석이 살아있는 것인가.
“그래서 묻잖아. 맞냐고.”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뭔가 우물쭈물하는 것이 다급함을 숨기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어서…… 어서 나를 안내해라!!
그의 외침에 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방금까지 대형 사고 칠뻔한 놈이 굉장히 뻔뻔하네?”
-그, 그것은…….
“아 됐고. 비켜봐.”
내 말에 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콰아아앙!!!
멀지 않은 곳에서 격벽이 박살 나며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내겐 익숙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괴물은?!”
내 곁에 있던 코오나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소리를 들으면 안 돼요!!”
그녀의 외침과 함께 벽면을 뚫고 튀어나온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괴물이 포효를 터뜨린다.
쿠웅!!!
바닥이 갈라지고 벽면이 풍화한다.
소리에 닿는 모든 것을 붕괴시키는 경천동지할 위력에 나는 주변의 마나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저 폐기물은…… 마신…….
“잘 알아?”
-이들은 내 힘을 이용해 수백 마리의 미물들을 합치고 진화시킨 마신이라 부른다. 잘은 모르겠지만 수준마다 다른 녀석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 소년형태로 있던 베헤모스의 눈이 불은 안광을 일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인간형태.
주홍빛이 아닌 붉은 빛의 타오르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간은 그 크기가 무려 십수 미터에 달하는 크기를 지니고 있다.
지금껏 본 놈들보다 더 거대하고 강하다.
벽면을 뚫고 상체만 나왔음에도 저만한 크기.
입이 없으나 터져 나오는 강력한 포효에 코오나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 코오나의 두려움을 눈치챘는지 마신이 거대한 팔을 들어 코오나를 낚아채려 들었다.
“베헤모스. 저거 치워라.”
이어지는 내 말에 베헤모스의 몸이 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시계가 멈춘 듯한 착각과 함께 베헤모스가 거대한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며 해저 시설의 최하부를 완전히 박살 내고 놈을 집어삼킨 채 심해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주변에 남은 것은 거의 조각밖에 안 남은 일부분이다.
사방이 물로 가득하지만 놀랍게도 한 방울도 더 들어오진 않았다.
“위쪽은 정리가 끝난 모양이니 올라가자.”
“네? 저대로 둬도 돼요?”
“내버려 두면 알아서 치울 거야.”
그렇게 말한 내가 손을 휘젓자 내 등 뒤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상반신만 나온 거신, 천하대장군이 도끼를 사라지게 한 뒤 코오나와 나를 양손으로 감싼다.
거대한 신다운 행동이었다.
우웅!!
갑작스런 행동에 코오나는 의아해했지만 나는 익숙하게 내 의지를 전달했다.
“축지.”
스팡!!!!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본 무인도의 섬 위로 도착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간 이동 마법 같은 건가요?”
“도술에는 축지라는 게 있어. 괴신은 빙의형 주술이라 놈의 주술을 이용해서 움직인 거야.”
나를 보호하듯 내 뒤에 현신한 채 아직 사라지지 않은 괴신 천하 대장군의 기세가 강해진다.
“아직 살아있네.”
베헤모스의 힘과 덩치를 생각하면 그런 놈은 오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본 마신 중에는 가장 위협적이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모양새였다지만 그래 봐야 환수왕과의 힘 차이는 거대할 테니까.
그런데.
쿠웅!! 쿵!!
꽤 싸움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퍼어어엉!!!
이윽고 거대한 체격을 지닌 마신이 수면 밖으로 튕겨 나오면서 거대한 물줄기를 일으켰고, 비가 쏟아지듯 물방울들이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십여 미터 정도라 생각했던 육신은 내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다.
겉보기에만 해도 수백 미터 단위.
베헤모스처럼 자신의 육신을 축소시키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하늘로 떠오른 마신을 뒤따르듯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크기의 4족 고래가 입을 쩍 벌리고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치지지직!!!
압도적인 힘 차이.
제아무리 마신이라도 싸움이 될 리가 없다.
하지만, 마신은 침착하게 붉은 뇌전의 검을 만들어냈고 이내 베헤모스와 정면충돌하더니 그대로 베헤모스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음?”
힘 차이는 명백했다. 처음 내가 베헤모스를 발견했을 때와 다르게 지금의 녀석은 내가 알던 녀석의 힘 전부를 끌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붉은 뇌전의 검이 베헤모스에게 닿았을 때 묘한 공명이 일어나며 베헤모스의 힘을 강제로 상쇄시키고 축소시킨다.
콰아앙!!
다시금 물속으로 떨어진 베헤모스가 거대한 머리를 꺼내며 수염을 쏘아 보낸다.
“저거 뭐냐?”
-이곳에서 만들어지던 파괴 병기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하늘에 뜬 채 붉은 뇌전의 검을 쥔 마신을 보며 그의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가 일렁인다.
“방금 공명한 거 같은데.”
-빌어먹을 미물들이 내 몸뚱어리로 무슨 짓을 한 거냐!!
마신은 몬스터가 다수 모여 진화한 거라고 했던가.
다만 눈앞에 있는 붉은 마신은 기존의 마신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베헤모스와 비슷한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쿠웅!!
[계약자. 베헤모스의 공격이 미묘한 파장에 의해 상쇄되고 있다. 내가 나서도록 하지.]
“아니야. 나서지 마.”
[계약자?]
“기왕 부른 거 써먹어야 할 거 아냐.”
담담하게 말한 내가 한걸음 내디딘다.
그래. 꺼낼 건 다 꺼냈고 건질 것도 코오나가 이미 다 건졌으니.
“이 섬. 지워도 상관없지?”
퍼어엉!!
내 말에 무언가 느꼈는지 붉은 마신이 손을 뻗는다.
그러자 사방의 바다가 폭발하며 노란빛 화염을 두른 똑같은 마신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일리나가 단번에 베어버렸던 하위 존재들이다.
다만, 그 수가 무려 일백에 이른다.
“질은 떨어지는데도 이런 숫자를 모아놓은 걸 보니. 베헤모스 때문이겠지?”
베헤모스가 날뛰면 놈을 저지할 수단이 필요하니까.
물론 베헤모스가 작정하면 저들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이 마신들을 불러모은 건 베헤모스와 대치 중인 저 붉은색의 화염으로 일렁이는 마신일 것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검지와 중지만을 펼쳐 붙인 채 허공에 글귀를 쓰듯 써 붙였다.
[꿈속에 이르니, 그곳이 몽환의 세계로다.]
치잉!!!
몽(夢)자가 허공에 떠오르며 이내 천하대장군에게 스며든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각기 다른 문자들이 떠올라 스며들기 시작한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마치 노래를 부르듯 구절을 읊자 거대한 괴신의 무기가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남빛의 빛으로 된 도끼는 곧 거대한 방망이로 변하기 시작한다.
가시가 돋아난 거대한 도깨비방망이.
그것을 양손에 쥔 거신은 숨이 막힐 정도의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내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붉은 마신부터 사방에 깔린 수많은 하위 마신들 모두가 타깃을 베헤모스에서 나로 바꾸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얽혀 백 년을 함께 하세.]
그리고, 완전히 변한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찍을 것처럼 자세를 취한 거신의 눈이 번뜩인다.
“피하세요!!”
내가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그저 구절만 읊고 있자 코오나가 당황한 듯 소리친다.
맹렬한 속도로 쏟아지는 그들의 공격이 당장이라도 나를 사방에서 꿰뚫을 것처럼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놈들이 일정 영역 안에 들어왔을 때.
새하얀 부적 한 장을 꺼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내가 주술을 발현한다.
[천하대장군 빙의술]
[하여가(何如歌)]
후우웅!! 쩌어엉!!!
거대한 괴신 천하대장군의 도깨비방망이가 허공을 내리친다.
그리고, 아주 잠깐의 고요 끝에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섬 전체와 일대 바다 전체를 집어삼켰다.
허공마저 뒤흔들리는 것 같은 거대한 힘의 폭풍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한다.
* * *
흔적 하나 남지 않아버린 섬을 내려다보던 나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힘이군. 원래 주술이라는 게 그런 힘을 가지고 있나?]
“아니.”
사용자에 따라 화력이 달라지는 건 마법이나 주술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바다에서 머리만 빼놓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흰수염 고래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표정을 읽을 순 없다.
일순간 섬과 일대 영역 전체를 증발시켜버린 나는 천하대장군을 소환 해제하지 않고 물었다.
“베헤모스.”
-흡?!
녀석이 경기를 일으키며 움찔거린다.
“계속해서 사고 치는 놈을 내가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그…… 그게 무슨…….
“셰인의 부탁을 받고 널 찾아왔거든. 그런데 니가 이 지경이면 별수 있나.”
예부터 몽둥이가 약이었다.
나는 거신의 시선을 놈에게 향하게 한 채 말했다.
“너도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한 대만 맞자.”
-크흠! 나…… 나는 괜찮은 것 같다!
당황한 듯 녀석이 슬금슬금 물러난다.
아무리 전력 차가 강해도 도망치는 법이 없는 베헤모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왜? 안 죽여 걱정 마. 한 대만 맞자.”
-괜찮은 것 같다! 인간 너의 생각은 잘 알았으니!
“아니 모르는 것 같은데.”
-알고 있다! 그러니!
“아니 몰라.”
출렁거리는 바다 위로 가볍게 내려선다.
하지만 내 발끝은 마치 투명한 발판이라도 있는 것처럼 바다 위에 서서 버텨냈다.
“너 때문에 참 고생도 많이 했잖아.”
-큭?!
“이리와. 새끼야.”
내 미소에 녀석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이 날아가 버린 황량한 바다 위로 누군가의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왔구나.”
“일리나는?”
“그 인어 아가씨를 보호하고 있어. 본녀는 상황을 좀 보기 위해 따로 온 것이고.”
“잘 왔어.”
“한데, 그 인어에 대해 알고 있던 눈치였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다친 곳은 없지?”
“본녀가 어디 가서 다쳐올 상이던가.”
장난스레 웃으며 그녀가 내게 다가와 올려다본다.
“그리고 본녀가 다치면 그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그것은 그것대로 골치 아픈 일인 게지.”
“잘 알면 어디 가서 다치지 말고.”
“과보호는 오히려 좋지 않아. 데이비.”
페르세르크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와이 근지의 작은 섬에서 벌어진 일을 뒤로하고 나는 그곳에서 챙긴 정보나 그곳에 잡혀서 진화실험에 이용당하고 있던 이들을 대동한 채 일본으로 돌아왔다.
“저 생존자들은 네 선에서 처리할 수 있지?”
“네.”
피해자들이다.
연구소의 이들은 가지각색의 종류의 인간을 납치해 실험을 강행했다.
그들의 피부조직이나 혈액을 이용한 실험.
베헤모스의 피와 살점을 이용해 각성시킨 새하얀 돌멩이를 이용해 진화한 인간.
몬스터와 함께 합쳐져 진화한 인간.
몬스터의 씨를 인간의 난자와 인공수정시켜 다시 체내에 삽입시킨 뒤 출산시키고 진화시키는 등등.
몬스터를 잡아 진화시킨다는 목적에 도움 된다면 무슨 짓이든 저지르고 있었다.
페르세르크와 일리나가 인어 소야를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강원도 인근의 한 제약회사 공장.
그곳에 숨겨진 연구실의 지하에 다국의 인간들이 모여 실험을 지속하고 소야를 수조에 가둬놓은 뒤 그녀를 실험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녀들이 그곳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독자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서윤과 윤석이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우연찮게 발견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갔다가 제대로 대박을 친 셈이다.
“한데…… 저 거대한 존재는…… 설마 환수왕?”
“맞아. 베헤모스.”
“한데. 왜 그대의 눈치를 저리 살피는 게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나를 흘끔흘끔 보다 움찔거리는 호전적인 환수왕을 바라보았다.
“나도 몰라.”
내 담담한 대답에 베헤모스가 억울하다는 듯 길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참. 데이비. 그대가 수술해준 시우라는 그 사람. 슬슬 시력이 안정된 모양이던데. 륀느의 말에 따르면 그대를 찾고 있나 봐. 신기할 테지. 고글을 벗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 고글을 쓰면 눈을 뜬 것처럼 잘 보일 테니까.”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의안 시술이다.
놀라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부작용은 없었어?”
“본녀가 본 바로는 없어.”
그녀의 말에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인스 영지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꼴이니 말이다.
“아. 그리고 데이비.”
그녀가 생각난 듯 장난스레 웃으며 나를 본다.
“왜?”
내 물음에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