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9화
치직…….
전기가 튀는 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을 관통한 기검이 뽑혀 나온다.
“설마, 죽인 거야?”
“죽일 거면 홍단이로 찔렀지.”
죽이진 않았다는 말이었다.
“정령이죠? 검에서 정령의 향기가 났어요.”
에이리아는 내가 만들었던 기검이 흩뿌린 빛의 흔적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령사이자 정령의 사랑을 받는 편인 그녀는 생각보다 정령에 관해서 민감했다.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야, 녀석의 형체는 어떻게든 바뀔 수 있으니까, 검으로 바꾼 것뿐이야.”
쓰러진 코시아는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은 전혀 달랐다.
내가 기검을 통해 그에게 가한 힘은 간단히 말해서 의식을 무작정 가속화 시킨 것이었다.
육체는 따라가지 못하는데 정신만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의식 가속.
그의 정신이 체감상 일주일을 견뎌도 바깥에서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게 만드는 힘이 바로 시간의 힘이었다.
대가는 상당하지만, 녀석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현재의 내 기준에서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의 힘은 위험하면서도 강력하다.
보통 사람이 이 정신 감옥을 견뎌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누워서 한 시간만 있어도 정신이 멍해지니까.
쓰러진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지만, 그의 영혼이 극도로 흔들리고 있는 게 그 진실이었다.
그렇게 잠시 방치했을까.
나는 시험 삼아 그에게 걸어두었던 의식 가속을 해제해주었다.
“크억 쿨럭!!”
그가 온몸을 버둥거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그가 소리 지른다.
“그만!! 그만해주세요! 잘못했어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가 느낀 시간은 수십 수백 배의 시간이었다.
끔찍한 악몽 같은 경험을 한 그는 이미 반쯤 패닉에 빠져있었다.
“제발!! 제발!!”
“잘못했어?”
“예! 예!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치지직!!
다시 알타이르의 기검이 번뜩인다.
“가자. 진실의 방으로.”
“아…… 안돼!! 안돼!!!”
“돼 임마!”
콰직!!!
다시금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그를 보며 일리나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우와…… 잔인하다…….”
“목숨은 살려주잖아. 그보다 에반젤린의 상태가 어떻다고?”
“갑자기 떠나갈 것처럼 울더니 지금은 온몸이 불덩이야. 페르 언니가 간호하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네가 봐야 할 거 같아서.”
* * *
아이들의 경우 어릴 때 성장통을 겪고는 한다.
하지만, 다리안이나 에반젤린의 경우 내가 몸에 새겨놓은 면역력 향상 축복으로 인해 이런 잔병치레를 겪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반젤린은 고열에 시달리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쌔액…… 쌔액…….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잠들어있는 에반젤린은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검은 머리카락은 땀으로 인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괴로워 보였다.
‘생각 이상으로 체온이 많이 높네, 그래도, 괜찮은 범위 내다.’
보통 인간의 체온은 36~37도가 적당하며 40도만 되어도 뇌가 익어버릴 정도라고 한다.
에반젤린 또한 큰 차이는 없지만, 고대룡인 에반젤린이 이토록 괴로워할 정도라는 건 보통 인간 이상의 체온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는 소리일 것이다.
“이러다가 에반젤린이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병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 본 경험이 있던 에이리아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내 옷깃을 잡았다.
이에 나는 조용히 에반젤린의 곁에 앉아 작디작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자그맣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느껴진다.
녀석은 본능적으로 내 손가락을 동아줄마냥 꼭 쥐고는 숨을 거칠게 쉬었다.
열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우선 이 고열이 그녀의 몸을 망가뜨리지 않게 마나를 이용해 얇게 펼치듯 보호하고 감싸 그 열기를 냉각시켜 나갔다.
‘성장통이 분명하다.’
이 이상은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에반젤린이 지치지 않도록 마나를 통해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고열의 체온이 몸을 망가뜨리지 않게 막아주는 정도였다.
당장은 괴롭겠지만, 성장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약보다 자체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선택도 없을 테니까.
일반 인간과 고대룡은 태생부터가 다르다.
에반젤린이 나를 보고 나의 습성을 배우고 습득하고 있지만, 그녀는 엄연히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의 상식을 적용시켜선 곤란했다.
“데이비? 의원의 말로는 성장통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맞아?”
“맞는 거 같네. 다만 에반젤린은 고대룡이니까 그 정도가 심한 거야.”
에반젤린은 무려 이클립스가 남긴 유일한 고대룡이자 그녀의 혈육이다.
비록 내가 그녀의 부모가 되어주었다지만 태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마나를 이용해 그녀의 체온을 아주 천천히 냉각시킨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점차 숨이 고르게 변하자 나는 에반젤린의 뒷목과 엉덩이를 받쳐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그러자 쌕쌕거리던 에반젤린이 아주 천천히 눈을 뜬다.
그리고는 꼬물거리는 작은 손을 뻗어 나를 향해 뻗어왔다.
“빠…… 빠…….”
“응?”
“하빠?”
아주 희미한 미소. 아프면서도 나를 보았다고 웃어주는 에반젤린이다.
…….
동시에 페르세르크와 일리나가 후다닥 다가왔다.
고작해야 2살짜리 아이가 엄마아빠를 부를 수나 있을까.
그저 비슷한 발음이지만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 어딜 가든 똑같은 모양이었다.
“지금! 아빠라고 한 거 맞지?! 그렇지?!”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제대로 발음할 때의 그 격한 감동은 쉽게 잊혀지는 분야의 일이 아니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둘을 떨쳐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 아픈 애에게 뭐 하는 짓이야.”
“아…….”
으르렁거리던 두 소녀는 에반젤린이 다시 숨을 거칠게 몰아쉬자 다급한 표정으로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본녀가 못난 꼴을 보였구나.”
처음 엄마 아빠를 들은 그 벅찬 감동과 아이가 아프다는 현실이 공존하며 복잡한 심경을 자아냈다.
성장통은 에반젤린에게 어떤 의미로는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푹 자면 괜찮을 거야. 자장가라도 좀 불러줘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내가 천천히 화음을 넣으려던 그 순간.
“데이비.”
페르세르크가 잽싸게 손을 뻗어 나를 저지하고는 에반젤린을 품에 안았다.
“아이를 더 힘들게 하려고?”
“뭔 소리야, 자장가 하나 내가 못 부를 줄 알아?”
“당연한 걸 묻는구나.”
이년이?
내 시선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건 그녀는 나를 무시한 채 에반젤린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쁜 목소리와 아름다운 선율에 일리나와 에이리아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쌕쌕거리던 에반젤린은 그녀의 자장가를 들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편안해진 표정을 지으며 잠들었다.
“설마. 이대로 훌쩍 커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조금 섭섭할지도 모르겠어.”
아직 아이 때의 모습을 거의 남겨놓지 못했으니까.
아이가 서서히 커가는 모습을 기록에 남기고 싶은 마음은 나로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고작해야 2살짜리인 에반젤린의 몸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일리나와 에이리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와 페르세르크 또한 들어 알고는 있는 진실을 직접 목격하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고작해야 태어난 지 2년밖에 안 된 에반젤린의 작은 몸이 서서히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점차 자라난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고대룡의 성장 그 과정이었다.
그렇게 숨죽여 에반젤린의 성장을 지켜보던 와중이었다.
산통을 깨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하. 에이미예요.”
소란스러운 방이 다시금 고요해지고 모두가 말없이 잠든 에반젤린을 바라보던 그 순간 에이미가 조심스레 나타나 문 너머로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저하. 그게 앨리스 대주교께서 찾아오셔서 어떻게 할 거냐고…….”
“뭘 어떻게 해. 관련된 놈들 싹 다 치우고 앞으로 산 왕국에서 단 한 명도 안 받는다고 해.”
국가로 사람 차별하긴 싫지만 본보기는 필요하니까.
아쉬운 건 저쪽이지 이쪽이 아니다.
“그리고 코시아 샤렌을 포함해서 비리에 관련된 놈들 전부 강제 추방시켜.”
절차? 유예 시간? 다시 한 번의 기회?
그딴 건 받을 자격이 있는 놈들에게나 주는 것이다.
* * *
비리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들을 응징하고 이 사실을 아카데미 전체에 있는 게시판에 공개했다.
그들의 신상 그들이 한 짓을 세계 각국의 귀족들이 보는 게시판에 그대로 써 붙인 것이다.
당연히 신뢰로 먹고 살아야 하는 교수진은 자신들의 지식을 잃었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으며 조작을 펼친 코시아는 내가 걸었던 의식 가속의 폐해로 정신을 놓았는지 그저 하늘만 공허하게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또한, 비리사건과 연관된 이들을 철저하게 응징하고 추방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성적조작의 시작이었던 코시아의 왕국 산 왕국과의 교류를 완전 중단, 아카데미에선 더 이상 산 왕국의 사람을 받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작 귀족자제 학생 한 명이 저지른 비리 사건으로 인해 국가 전체와 손절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중서부 지역에 있는 산 왕국이 하인스 영지와 교류를 끊는다고 문제가 크게 생길 국가는 아니었다.
산 왕국은 중서부에 위치한 국가다.
그렇기에 하인스에서 생산하는 특산물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도 아니었고 굳이 라운 왕국 쪽과 척을 진다고 해도 군사적인 문제가 발생할 지역도 아니었다.
물론 산 왕국과 죽자고 싸울 생각도 아니기에 굳이 추가적인 제재를 가하진 않았지만 산 왕국의 국왕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향후 이 같은 일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일의 경중을 따지고…… 이와 같은…… 앞으로 좀 더 나은 관계를…….
구구절절 복잡한 내용이 쓰인 서신을 내가 찢어버리자 페르세르크가 다가왔다.
“산 왕국에서 온 게야?”
“어, 이번 일 때문에 온 거 같더라.”
“보아하니 어떻게든 화해해보려는 듯한데.”
“직급도 없는 귀족자제 하나 때문에 국가 외교의 한 방향이 완전히 틀어막혔는데 어떤 국왕이 좋아하겠어.”
그녀가 키득거렸다.
당연 산 왕국 입장에선 왕국의 이미지 격하를 절대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너무 과하게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 말하지만 이미 배는 떠난 후였다.
신뢰란 쌓아 올리는 건 쉬워도 박살 나는 건 한순간이다.
조금 웃긴 점은 이 일의 원흉 중 하나인 샤렌 공작이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신중한 건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제 아들이 머리에 태양이 생기고 고자가 됐다는데 의심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라니 놀라운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타디아는 어쩌고 있대.”
“의도하지 않게 여기저기서 관심을 받았나 봐. 본인이야 부담스러워 하지만 결코 나쁜 상황만큼은 아닐 게야.”
귀족 중에서도 특유의 선민사상에 빠지지 않은 이들도 다수 존재한다.
코시아처럼 극단적으로 선민주의를 가진 이가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많았으니까.
그 단적인 예가 코시아의 곁을 지켜주던 귀족가의 자제들이었다.
비록 집안이 대단하진 않지만, 그들은 그런 집안의 고하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를 보고 있었다.
기특한 놈들도 제법 있네.
“타디아의 동생들은? 협박받고 있었다면서.”
“데려오는 게 제일 편하긴 한데. 본인들이 원하던 게 아니니까. 메아리 길드를 통해서 타디아가 졸업할 때까지 신변을 지켜주기로 했어.”
상당량 자금이 들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타디아는 피해자고 나는 학장으로서 그런 피해자인 타디아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
소중한 학생은 평민 귀족 할 것 없이 모두가 중요하니까.
“산 왕국에서 계속 서신이 오고 있어. 이 일을 좀 더 조용히 풀자고.”
애석하게도 코시아의 협박은 내겐 씨알도 먹히지 앓는 협박이었다.
그는 하인스 영지가 아카데미를 포함한 여러 요소에서 막대한 자금을 소모하기에 산 왕국의 기부금이 일거에 빠져나가면 크게 자금 순환 융통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판단했고, 그것을 무기로 삼으려 했다.
그의 판단은 나름대로 정확했다.
본래 아카데미라면 당연히 한 국가 단위의 기부금이 빠져나가면 자금 사정에 크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는 그런 현실에 입각하여 나의 거침없는 징계에 대해 맞서려 했지만, 돈이야 달의 풀이나 에오니샤가 만든 손목시계 이외에도 의안 이식 수술까지 진행하기 시작한 하인스 영지의 자금을 너무 우습게 본 경향이 있었다.
일개 국가가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자금의 흐름.
호수에 물 한 바가지 퍼낸다고 물이 마를 리가 없다.
에반젤린의 열을 내리고 아이가 편히 잘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켜준 뒤 나는 잠시 미뤄두었던 아카데미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
“감자 드실래요?”
이후 아카데미의 현 상황과 실태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읽던 내게 올만 교수가 감자를 내민다.
귀족들은 보통 휘황찬란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에 이런 감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올만 교수는 마치 군대에서 초코파이에 환장하는 군인처럼 감자에 광기 어린 집착을 내보이곤 했다.
“그놈의 감자, 지겹지도 않습니까? 줄 거면 거기 찐 감자나 주세요.”
“흐익! 찐 감자 만큼은 제 꺼에요. 아무도 못 줘요!”
찐 감자를 마치 보물처럼 품에 숨기며 그가 한발 물러났다.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그에게 물었다.
“보고서는 이게 전부입니까?”
“네? 아아. 네. 죄송합니다. 사실 이런 일은 저희가 했어야 했는데.”
“아뇨. 교수 개개인에게 모두 역임한 건 제 책임이니까요. 그래도 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잡아서 다행이네요. 본보기로 아작내버린 교수들을 보고도 겁 없이 조작질을 해댈 인간은 없을 테니.”
“예. 안 그래도 이번 일로 저희 교수진 측에서도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더 이상 이런 일로 신경 쓰실 일 없게 저희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가장 좋은 방법은 후발 교수진도 하나하나 손수 가르치면 된다.
사상도 개조하면 가능한 것이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왕자님. 비리사건도 비리사건이지만 사실 앨리스 대주교님과 이야기하던 중에 나온 말인데. 생도들의 실습훈련이 조금 필요할 거 같습니다.”
“실습훈련이요? 몬스터를 잡는 그런 실습훈련?”
“네. 문제는 왕자님이 일대 몬스터들을 아주 씨를 말려놔서 생도들이 실전 경험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몬스터를 너무 말려 죽여놔서 외려 손해를 본 상황이다.
그러면 쓰나.
검술학부 마법학부 등등 전투 계통의 학과에서 이렇게 실전 경험조차 새우지 못하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실습은 중요하죠. 실전경험은 전부 피가 되고 살이 되니까.”
“몬스터가 없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예 가능합니다.”
내 말에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찐 감자를 베어 무는 그였다.
“그 준비는 제가 따로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늘 하던 대로 해주세요. 학생들이 졸업하고 아카데미를 나섰을 때 세상의 풍파를 딛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건 선생의 의무니까요. 가능한 모든 환경을 제공할 겁니다.”
내 말에 그는 뭔가 감동이라도 받은 듯 옅게 웃어보였다.
“정말. 왕자님은 생도들을 정말 사심 없이 챙기시는 분이네요. 정치문제. 이권문제 이런 걸 떠나서 배울 수 있는 이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거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일종의 투자라 생각하세요. 그냥…….”
내 그런 대답에도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왕자님? 찐 감자, 드실래요?”
보물처럼 여기는 찐 감자를 내미는 그를 보며 나는 그가 처음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를 신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 * *
“흐…… 흐흐흐…….”
실전 경험은 사람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어서 와…… 지옥행 편도 익스프레스는 처음이지?”
나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하인스 영지의 북쪽에 개발되지 않은 영지를 통해 만든 거대한 미궁을 바라보았다.
정령의 힘으로 만들어진 미궁은 무슨 마왕의 소굴마냥 음산하기 짝이 없다.
지하 3층에 해당하는 미로 지상 5층에 해당하는 미로.
단순 동굴 같은 자연 구조물이라 복잡하게 드워프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
이 거대한 무덤형태의 미궁을 보며 나는 손을 살살 비볐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경험을 해야지.
단.
내게 난이도는 울트라 나이트메어 급 난이도밖에 없음을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내 미소를 보며 사전답사를 위해 따라왔던 앨리스 대주교가 눈을 꿈틀거렸다.
“저기요 왕자님. 당신 기준으로 애들 교육시키면 애들 다 죽어요.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하루 만에 이 거대한 미궁을 만든 거예요?! 누굴 죽이려고?”
“앨리스 대주교님. 사람은 말입니다.”
쉽게 안 죽어요.
“와…… 이런 싸이코가 학장이라니…… 학생들의 미래가 어둡다…….”
“원래 강하게 키워야 강하게 크는 겁니다.”
내 스산한 미소를 보며 앨리스는 에반젤린을 품에 안고 있는 페르세르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페르세르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미궁의 외관을 더 음산하게 바꿀 고민이나 하고 있다.
“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얘들아…… 교수님이 힘이 약했구나.”
좌절하는 앨리스 대주교의 생도들을 향한 애도가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