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0화
한차례 사건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다 해결되었다.
나는 마치 최후의 만찬을 즐기듯 연회를 베풀었고 귀족자제와 평민들이 같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상황에 순종하는 게 인간이라고 비록 평민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이들이라도 부대끼고 지내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도 학생 간의 차별은 금지한다.
그 대가를 이미 코시아 샤렌이 어떻게 치르는지 보았기에 간 크게 일을 칠 이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귀족파와 평민파가 나뉘는 건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실습을 거칠 아카데미 생들을 모두 모아 내가 만들어둔 미궁으로 데리고 왔다.
수많은 생도들이 마치 마왕의 소굴 같은 미궁의 입구에 신기하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반갑습니다. 학장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알다시피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들 계시겠지요.”
고작 며칠 전의 일이다.
생도들이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손뼉을 쳐 주변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어도 아카데미는 그대로 굴러갈 겁니다. 여러분들이 배우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게 할 테니까요. 아 혹시 이 일로 휴교 같은 걸 바랐던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손을 들진 않지만 몇몇은 내심 아쉬운 기색을 보인다.
학생이야 어디를 가나 똑같지. 대학에서는 공강을 학교에선 임시 휴교를.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휴식일지도 모른다.
“저요! 학장님! 휴교 안 해요?”
유쾌한 인상의 한 귀족 소녀가 방방 뛰며 소리친다.
귀여운 생김새에 발랄한 인상.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를 보니, 아카데미 내에 있는 학생회의 일원으로 보였다.
“방금 너 때문에 휴일이 하루 사라졌다.”
“윽?! 무슨?!”
“장난이야. 실습수업이 끝나는 대로 임시 방학을 개시할 테니 걱정 마라 마리벨 양.”
“엇?! 제…… 제 이름을…….”
“학생 한 명 한 명 이름 기억 못 해서야 쓰나.”
내 말에 마리벨은 신기함과 감동이 뒤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학장이 학생 하나하나의 인적사항과 얼굴을 모두 기억해주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일단 입장 상 하대를 하겠습니다. 음음…… 너희들의 뒤편에 있는 이 미궁은 실습 교육을 위해 내가 직접 만들었다. 내부에는 몬스터와 함정, 습격자 같은 갖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거다. 특히 실내라는 점과 어둡다는 점, 그리고 죽자고 달려드는 적과 팀원끼리 협동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까지.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할 거다.”
내 말에 학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죽진 않겠지만 실전 수업인 만큼 부상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다친다는 말에 학생들의 동요가 일어났다.
“두려운 놈 있나?”
그 물음에 서로가 눈치를 살핀다.
그때 학생회장의 브로치를 차고 있던 한 소녀가 손을 높이 들었다.
저 얼굴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겉보기에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소녀였다.
“없습니다. 학장님!”
“목적은 간단해. 단순히 저 미궁으로 들어가서 일정 지점에 이르면 마법진들이 있을 거다. 지하부터 지상까지 미궁 곳곳으로 이동시켜주는 마법진이다.
전이 마법진을 임의로 만들었다는 말에 마법학부 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게 내심 놀라운 듯 보였다.
“목표는 간단해. 나흘간 생존하면 된다. 다만 그 안에 버티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거나 포기를 선언하면 그 즉시 정령들이 너희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너희들을 밖으로 빼줄 거다.”
내 말에 서로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굳이 나흘이라는 시간을 버틸 필요 없이 적당히 벗어나면 되는 건가 라는 시선들이었다.
“포기는 너희의 자유다. 그런데 말이야. 타국까지 와서 강해지기 위해 공부를 하는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그렇게 버리기에 기회가 너무 아깝지 않나?”
“저는 도망 안 가요!”
뮤우를 꼭 끌어안은 채 마리벨이 방방 뛰며 소리친다.
생각해보면 마리벨이라는 저 여학생도 같은 그림 동아리 출신이었던 것 같은데.
학생회와 동아리는 중복 가입이 가능하니까.
“저…… 학장님. 그런데 죽지 않게 해주신다 하셨는데. 미궁 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안전장치가 이 미궁 속에 많이 있으니까.”
정령부터 곳곳에 있는 세이프 하우스까지.
그 외에도 실전 수업을 하는 곳인 만큼 이 거대한 미궁 전체에 막대한 크기의 마법진이 가동하고 있다.
이미 내 마법은 단순히 마법학이라는 학문의 계통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인원은 총 5인 1조. 의학부와 탐색학부, 검술학부와 마법학부 등등 조합은 너희 자유다. 그리고, 직접 싸움을 하진 않을 테지만 인솔을 해줄 이도 파견해 두었다.”
내 말과 함께 주변에서 스르륵 소리와 함께 녹빛의 복장을 입은 엘프들이 나타난다.
“질문 있는 사람?”
“그럼 나흘을 모두 우수한 성정으로 버텨내면 보상이 있나요?”
그 외침에 내가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래 보상. 보상 좋지. 상환판단. 전투 센스와 실력. 그 외에 생존기술. 지금까지 너희가 배운 것들을 잘 응용하고 잘 써먹는다면 그것이 다 점수가 된다. 그리고. 점수 높은 팀 1등부터 3등까지.”
짧게 침묵한 내가 빙그레 웃어보였다.
“오더메이드 장비와 육체 마나 활로를 뚫어주마. 당장은 몰라도 익스퍼터급이 되는 데에 큰 효과가 있을 거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반응은 순식간이었다.
함성을 지르며 의욕을 불태우는 생도들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돌린다.
“반응이 너무 거센데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내가 앨리스 대주교를 향해 묻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소문이야 퍼져있죠. 야장학과에 드워프 교수들이 당신의 실력을 하도 칭찬하니까 모를 수가 없지.”
“아…….”
그렇구나.
나는 환호하는 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들 조용히!!”
“그리고 10등까지는 드워프제 오더메이드. 20등까지는 뭘 해줄까.”
내 말에 학생들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까짓거 신목의 성지에 있는 엘프와 미팅이라도 주선해 줄까? 음…… 이건 좀 아닌가.”
“학장님 만세!!!!”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학생회장이 눈을 번뜩이며 소리 질렀다.
“꼭 20등 안에 들겠습니다!!”
그의 저돌적인 외침에 내가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장난으로 한 소리에 왜 저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건지.
“엘프는 그 외모가 엄청난 데 잘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좋은 의도로 미팅을 주선해준다니까 아주 환장할 수밖에.”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은 모양이다.
앨리스 대주교의 첨언에 나는 환호하는 일부 학생들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됐고. 실습 시작한다. 다만 경고하는데.”
쉽게 생각했다간 진짜로 큰코다칠 거다.
* * *
“이야…… 진짜 마왕의 소굴 같네.”
“그러게요.”
마법학과 학생이자 하인스 아카데미 상급부의 학생회장인 거구의 사내 듀크는 자신과 함께 와준 학생회 임원중 하나인 린디스 제국 출신의 백작가 영애. 마리벨을 포함한 학생회 임원들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호하듯 뒤편에서 조용히 무복을 입은 엘프 하나가 따라온다.
엘프는 그들이 나흘 동안 생존하는 데에 어떤 간섭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엘프가 나서는 경우는 단 한 가지. 오로지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거나 실습수업을 포기했을 경우나 다름없다.
“잘 들어. 우리 목표는 20등 안에만 드는 거다. 알겠나?”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학생회장 듀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다섯 명 중 두 명이 환호를 지르며 수긍한다.
반대로 마리벨은 질린 표정으로 제 학생회장을 째려보았다.
“이봐요 회장님. 난 1등 해서 학장님이 직접 만든 오더메이드를 받을 생각이거든요?”
“어허! 대를 위해 소를 희생…….”
“웃기고 자빠졌네!”
빠악!!
거침없이 듀크를 걷어차 쓰러뜨린 마리벨이 그를 콱콱 짓밟았다.
“엘프들이 회장의 그 떡대 거구에 반하기라도 할 거 같아요? 꿈 깨세요. 정말!”
“으억! 억!”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그를 짓밟으며 마리벨은 단단한 너클을 손에 끼웠다.
그나저나 미궁이라 어두운 동굴이고 이런 분위기는 좋은데. 몬스터가 하나도 안 보이네요.“
마리벨의 말에 탐색을 하던 평민 출신의 소녀가 눈을 크게 떴다.
“와요!! 전방 10미터!”
“뭐?!”
놀란 마리벨과 듀크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첫 실전 수업이다.
당연히 긴장이 안 될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듀크와 마리벨은 자신들의 실력을 믿고 조금씩 긴장을 완화시켜가며 천천히 무기를 겨누었다.
“마리벨! 횃불 던져!”
“네? 아아 네!”
듀크의 외침에 마리벨이 횃불을 어둠 저편으로 던졌다.
그리고.
“…….”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한 손에 피떡이 된 미노타우로스를 쥐고 질질 끌며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흰색의 2족 보행 토끼를 말이다.
“뀨?”
고개를 갸웃거리며 큰 점과 같은 붉은 눈동자가 번뜩이며 꼬리를 만들 듯 안광을 일렁였다.
“야…… 야…… 지금 뭔가 아주 X 된 거 같은데…….”
학생회장 듀크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뀨.”
이윽고 미노타우로스를 집어 던져버린 백색의 토끼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듯 온갖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표정, 그 몸짓. 그 분위기.
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제야 마리벨과 듀크는 깨달을 수 있었다.
실습수업을 오기 전 자신들을 인솔해주던 교수 올만 교수님이 감자를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했던 말을 말이다.
[교수님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얘들아…… 죽지만 말려무나.]
데이비식 수업에 적당히란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