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1화
산 왕국은 상당한 상업과 농업으로 발달한 국가이다.
실제로 산 왕국은 국가 규모는 작지만, 굉장히 부자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 산 왕국 내의 샤렌 공작가는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세계 각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기도 했다.
스스슥.
“여깁니다.”
그 샤렌 공작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 20여 명이 현재 하인스 영지의 북부에 있는 미궁을 향해 천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데이비 왕자를 죽일 순 없겠지. 자칫 실패라도 하는 날엔 어떤 이유로던 왕국이 뒤흔들릴 테니.]
세간에선 영웅이니 대륙의 성자니 하지만 데이비 올 라운의 성질머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
이미 팔란 제국과 성국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정도인데 고작해야 소왕국인 산 왕국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데이비 왕자가 아닌 타디아는 달랐다.
샤렌 공작의 시선에도 타디아라는 평민은 고작해야 일개 평민일 뿐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그 꼴로 만든 것보다 자신의 위상이 왕국 내에서 흔들렸다는 사실이 더욱 열 받은 그는 데이비 왕자가 아닌 타디아에게 그 분풀이를 시켰다.
돈이면 언데드도 부린다고 했던가.
돈이 급한 암살자들을 고용해 그를 암살하기 위해 이 미궁으로 들어온 것이다.
[반드시 그놈을 죽여라. 실패한다면 그 자리에서 자결하도록. 어떤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마라.]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암살자들은 미리 훔쳐낸 미궁의 지도 정보를 보며 천천히 진입해 나갔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이곳은 그 악명높은 성자의 미궁이다.”
긴장한 얼굴로 진입하던 그들은 곧 들려오는 다수의 비명에 인상을 찡그렸다.
-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근육 싫어!!!
“근육?”
단단한 석벽 너머까지 울려 퍼질 정도면 대체 얼마나 처절한 비명이란 소린가.
긴장감이 서린 얼굴로 진입하던 중 암살자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정지. 몬스터다.”
그 말과 함께 어두운 석벽 너머에서 키키킥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곳에는 이마에 기이한 문양을 박은 고블린이 수십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최대한 소리 없이 제압한다. 암살까지 시간은 총 30분. 길어 보이지만 대상을 찾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빠듯한 시간이다. 움직여.”
그 말과 함께 약 15명 정도 되는 암살자들이 일순간 흩어지듯 파고들었다.
키에에에엑!!
케엑!!!
고블린의 공격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고블린.
암살자들은 능수능란한 움직임으로 소리 없이 고블린들을 모조리 베어 넘겼고 마지막 고블린의 목덜미에 단검을 꽂아 넣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몬스터 수준이 이 정도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없겠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석벽 내부가 뒤틀리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암살자들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순식간에 몬스터를 정리해 나가던 암살자 수장의 표정이 굳었다.
“대장. 몬스터의 수준이 저희가 아는 것 이상으로 강합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몬스터들이 나온 거지? 아무래도 성자가 몬스터를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의혹이 진실인 모양이군.”
“세상에 알려지면 그의 위상이 순식간에 추락하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피를 털어내고 잠시 숨을 고르던 그들이었다.
이렇게 좁은 일방통행형 석실에서는 그들의 기술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복잡한 미로라면 몰라도 이건 달랐으니까.
그렇게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는 지역까지 가까이 온 암살자들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쑤욱!!!
갑자기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에 고개를 돌린 암살자는 문득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뻐꾸기. 뻐꾸기 12 대답하라.”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들의 동료 중 둘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같이 일류의 암살자들이다.
돈도 돈이지만 파국과 살인을 즐기는 진짜배기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인 그들은 오랜 시간 기술을 갈고 닦아왔다.
실력은 두말할 것 없이 최상위.
이곳 미궁의 몬스터나 학생의 수준으로 절대 어찌할 수 없는 살인계의 프로패셔널들이다.
그런데.
둘이나 소리 없이 사라졌다.
“다들 긴장해라. 뭔가 이상하다.”
스르륵.
“둘이 또 사라졌습니다.”
빛이 반사되지 않는 대거를 꺼내 들며 그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표정을 굳혔다.
벌써 넷이 사라졌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낚아채 가는 것처럼 말이다.
쉬리리리릭!! 카아아앙!!
암살자의 수장은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던 중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에 위험의 본능을 느꼈고 그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자신들을 습격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흡?!”
“이게 무슨…….”
뀨?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존재는 몬스터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두려움이 절로 앞선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그들이 알던 몬스터가 아니었다.
인간보다 큰 신체.
터질듯한 근육. 입고 있는 옷이라곤 터질 것처럼 달라붙은 특이한 소재의 면적이 좁은 팬티 한 장이 전부다.
징그러울 정도로 힘줄이 돋아나 있고 근육이 부풀어있는 그것은…….
“토끼?!”
다름 아닌 이족 보행형 토끼였다.
뀨.
이윽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토끼의 얼굴에 실핏줄이 돋아났다.
콩알만 한 빨란 눈이 이글거리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토끼의 움직임이 좀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터어어엉!!!!!
동시에 암살자 중 하나가 순식간에 맞고 벽면으로 튕겨 나갔고 그대로 내장이 파열된 듯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였다.
뀨?
하지만 토끼는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이래도 안 죽네? 그럼 더 올려볼까? 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후…… 후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암살자 수장은 상대가 자신들을 가지고 놀면서 천천히 힘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고, 필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사방으로 흩어지는 건 기본 소양이다.
‘저런 괴물은 듣도 보도 못했다. 설마 고서에나 나오는 전설의 괴물인가?!’
적이 하나라면 도망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암살자의 수장이 산개를 명령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쾅!! 쾅쾅!!!
단단해서 검기로도 잘리지 않던 석벽을 무식하게 맨몸으로 박살 내며 똑같이 생긴 기괴 근육 토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쾅!! 쾅!!
하나둘, 이내 수십 마리로 불어난 토끼들이 일순간 포위한다.
암살자들의 표정이 퍼렇게 질렸다.
“말도 안 돼…….”
“대체 여기 뭐야…….”
절망한 그들을 향해 토끼들이 하나둘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 미궁 속에 대체 어떤 존재가 있는지 모른 자들의 최후였다.
* * *
“꺄아아아아아악!!!”
“안돼! 마리벨 양!”
“늦었어! 도망쳐!!”
학생회장은 거대한 근육 토끼의 옆구리에 붙들린 채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마리벨을 보며 피눈물을 삼켰다.
미친 학장.
데이비 올 라운!!
대체 미궁에 무슨 괴물을 넣어놓은 건가!
죽지 않는다고? 조금 힘들 거라고?
이건 오랜 시간 잔뼈가 굵은 몬스터 전문가인 기사들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달려!! 뒤돌아보지 마!!”
자신의 옆구리에 의학부 학생 하나를 낀 채 필사적으로 달리던 그는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 토끼를 보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덤벨을 쥐고 마리벨을 몰아붙인 채 그녀의 앞에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토끼를 말이다.
“마리벨 양! 희생은 잊지 않을게!”
“돌아와 이 개자식아!!!”
마리벨의 외침은 처절했지만, 그 누구도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저건 해도 해도 너무했으니까.
순식간에 도망친 듀크 일행을 보며 마리벨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무섭다. 이 괴물은 생리적인 혐오를 넘어 존재적인 혐오를 내비쳤다.
뀨?
귀여운 목소리로 울며 자신의 얼굴 바로 근처까지 제 얼굴을 들이미는 토끼를 보며 고개를 돌리고 와들와들 떨던 그녀가 천천히 토끼를 직시했다.
그러자 토끼는 그녀의 얼굴만 한 거대한 팔뚝을 그녀의 앞에 들이밀며 꿈틀꿈틀 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한발 물러나더니 이내 양손을 복부 쪽에 모아 힘을 빡 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토끼의 왼쪽 가슴근육이 꿈틀거린다.
뀨?
이번엔 오른쪽 가슴이 꿈틀거린다.
그러더니 토끼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양쪽 가슴 근육을 번갈아 꿈틀거렸다.
“꺄아아아아아악!! 싫어!!!”
처참한 비명이 다시 울려 퍼졌다.
이미 사방에선 처절한 비명이 가득 찬 후였다.
이건 마왕의 성이 아니다.
지옥, 고서에서나 등장할법한 악마의 소굴 그 자체였다.
뀨!!
이윽고 가슴근육을 번갈아 튕기며 자랑하던 토끼가 덤벨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에 쥐여준다.
묵직한 감각에 그녀가 덤벨을 놓치려 하자 토끼의 얼굴에 분노를 상징하는 실핏줄이 돋아났다.
“들게요!! 들게요!! 살려주세요!!”
눈물 콧물 다 짜며 필사적으로 소리친 그녀가 바들바들 떨며 덤벨을 들어 올리자 근육 토끼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따라 하라는 듯 나머지 덤벨을 들고 자세를 보여준다.
[자! 따라 해라!]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몸짓과 분위기가 마치 대화를 이어주는 느낌이었다.
“흑…… 흐흑…….”
천천히 아주 천천히 토끼의 강요에 따라 덤벨을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기 시작하자 토끼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의 앞에서 다시 근육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터질듯한 팔근육이 번갈아 꿈틀거리고 가슴근육이 팔과는 반대편으로 꿈틀거린다.
마리벨은 당장 이 악마의 지옥에서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 * *
“벌써 절반 이상이 체류를 포기했는데. 토끼는 좀 너무하지 않았을까?”
일리나가 수정구를 들여다보며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저 보팔레빗의 존재가 두렵기 그지없었다.
“저놈들은 살육을 저지르진 않으니까.”
엘프들이 생도들의 목숨을 지켜주지만 사실 가장 학생들의 목숨을 많이 지켜주고 있는 건 저 미치광이 근육 토끼들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엄청난 시련을 부여하긴 하지만 말이다.
잡히면 지옥의 벌크업을 시키고, 저항하면 그 수준에 맞춰서 상대를 공격한다.
다만 외관이 너무 끔찍해 저항하는 생도보다 도망치고 절규하는 생도가 더 많을 따름이었다.
“실습수련은 실전처럼 해야지. 앞으로 약 사흘은 더 있어야 하는데.”
“뭐야 포기하면 빼주는 거 아니었어?”
“빼주긴 하겠지. 다시 집어넣겠지만.”
…….
나는 완전히 빼준다고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포기하면 다시 시도하게 만든다.
그것이 이 하인스 미궁의 전통이 되리라.
마계 공주 알리타가 저 근육 토끼들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해서 데려오긴 했는데.
제법 괜찮다.
앞으로 사흘.
근육 토끼들은 잡힌 학생들을 한참 동안 괴롭힌 뒤 그들을 놓아주고 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옥의 술래잡기를 시작할 것이고.
저항하면 버틸 것이고.
도망치면 언젠가는 잡힌다.
그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이후 나는 미궁에 설치해둔 마법진을 발현했다.
막대한 공포, 저항심. 분노, 슬픔.
어마어마한 양의 부적 감정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미궁을 보며 나는 그것을 천천히 내 힘으로 정화시켜나갔다.
순수하게 정화되기 시작한 감정에너지는 처음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지만 깨끗하게 모였다.
“이만한 감정에너지 구하기 쉽지 않지.”
“그건 어디다 쓰려고?”
“에반젤린은 정신계통의 힘을 쓰는 고대룡이니까. 성장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말하며 나는 순수하게 정제된 깨끗한 감정 에너지를 추출해 페르세르크의 품에 안긴 에반젤린에게 넣어주었다.
그러자 에반젤린의 힘이 일순간 증폭된다.
성장통을 겪는 아이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실된 목적은 학생의 성적 증진이지만 일석이조라고 건질 수 있으면 더 건지는 게 좋은 법이다.
“그리고 부적 감정에너지가 넘치면 학생들에게도 안 좋아. 그러니까 주기적으로 이렇게 빼내 줘야 버틸 수 있지.”
식량과 물은 충분하고 세이프 하우스도 멀쩡하다.
나는 미궁 전체를 돌아다니는 몬스터들과 그런 몬스터들을 주기적으로 유도하고 청소하며 학생들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 토끼를 보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이거 괜찮다. 주기적으로 학생들 밀어 넣어야겠네.”
미궁 속에 있는 학생들이 들었다면 피거품을 물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옥 같은 사나흘이 흘렀을 때.
나는 놀라운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