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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04화 (904/1,559)

제 904화

샤렌 공작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타디아의 암살을 주도한 암살자들에게서 연락이 없다.

모종의 이유로 실패했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프로 중의 프로라곤 하나 하인스 아카데미는 현재 대륙의 성자 데이비 왕자가 있으니까.

“죽이는 게 안된다면…… 사회적으로 추락시키는 수밖에.”

무력 면에선 정말 경이적인 수준이 아닌가.

“아쉽구나…… 아쉬워. 그의 힘을 이쪽으로 포섭할 수 있었다면…….”

애석하게도 그는 힘을 지녔으면서도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게 굉장히 외골수적인 기질이 강했다.

그리고, 과할 정도로 평민을 잘 대우해준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능력 있는 이를 잘 대우한다는 뜻이 맞으리라.

언뜻 보면 좋은 행동 같지만, 그것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계급 체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그런 행동이기도 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반역으로 몰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수준을 말이다.

라운 왕국도 그 사실을 잘 알지만 그를 견제하지 못한다. 그 이유 자체는 간단했다.

데이비 왕자 단 한 명의 위세가 라운 왕국의 국왕 이상으로 강해져 있으니까.

그런 주제에 크리아네스 국왕이나 왕태자 바리스 올 라운은 전혀 그에게 어떤 제재를 가할 생각도 없다.

귀족마저 대부분 그런 식이라면 대체 어떤 짓을 해야 저렇게 되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어차피 10일 이상 피는 꽃 따윈 없다. 벽이 클수록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지.”

그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샤렌 공작은 데이비 왕자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투명하게 공표한다는 이유로 비리사건을 세간에 공표해버린 그의 행동은 파고들 틈을 충분히 만들어주었다.

“아카데미는 학생이 있어야 유지되는 법. 학생이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쯤이야. 게 있느냐.”

그는 자신이 손수 쓴 서신을 심복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은밀하게 퍼뜨려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인스 아카데미는 이름만 무성할 뿐 실상 굉장히 실속 없는 곳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글귀다. 이름값만 보고 입학하는 멍청한 귀족이나 왕족들이 줄어들 터."

"하지만 각하. 하인스 아카데미는 평민들도 다니는 학교입니다만.“

“평민이야. 먹을 것을 하늘처럼 따르는 법이다. 하인스 아카데미에 대한 괴기스러운 소문만 퍼뜨린다면야 문제 될 게 있겠느냐.”

“명 받잡겠습니다.”

그렇게 떠나가는 심복을 보며 샤렌 공작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세상은 마치 데이비 왕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소설에나 나오는 주인공처럼.

실제로 다수의 왕국에서 과거 데이비에게 도움을 받은 전례가 있기에 그에게 호의적이라 여러 조건을 더해 하인스 아카데미에 학생을 입학할 수 있도록 믿고 밀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밝은 곳이 있다면 어두운 곳도 존재한다.

데이비 왕자의 존재 자체가 방해가 되는 이들은 이 대륙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자. 생도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겠소. 데이비 왕자.”

아카데미의 이미지를 강제로 실추시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는 이들을 줄인다.

효과는 충분할 것이고 생도의 숫자가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줄어든다면 결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이비라는 인간의 신뢰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작은 금이 되리라.

* * *

잔뜩 죽어가는 학생들의 표정이 볼만하다.

그럴 수밖에.

이미 한 차례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친 상황에서 죽도록 노력해 거대한 괴물 키클롭스를 해치웠는데 또다시 뭔가가 나온다?

지칠 대로 지친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까.

“아참. 그전에.”

그렇게 말한 내가 손을 벋었다.

우우웅!!!

동시에 학생들 전원의 발밑에 거대한 마법진이 일어난다.

[내가 명한다.]

[내가 부르노라.]

[8위계 성마법]

[하이 리커버리.]

기도에서 명령문으로 바뀌었음에도 신성력들이 움직이며 마법이 발현된다.

내 신력을 신성력으로 바꾼 것이니까.

은총을 빌려오는 거야 이제는 프리아 여신의 허락을 크기 필요로 하지 않는 만큼 사용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저…… 학장님.”

그때 학생회장 듀크가 소신 발언을 위해 팔을 들었다.

“뭐지? 듀크 생도.”

“전부 지쳤습니다. 이 이상 실습수업은 외려 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모두의 눈이 필사적인 것으로 보아 이 이상 실습수업은 지쳐서 안 된다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해주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이에 내가 조용히 물었다.

“선물을 준다고 했지 내가 언제 추가로 괴롭힌다고 말했나?”

내 물음에 듀크가 움찔거렸다.

“방금…… 괴롭힌다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 거야?”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으흠! 이래서 귀 밝은 것들이란.

“따라오기나 해.”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아래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이에 듀크는 한숨을 내쉰다.

“가자.”

저항해본들 달라지는 게 없다 판단했는지 그들은 조용히 내부로 걸어들어왔다.

겁에 질린 얼굴, 혹은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나를 따라오던 학생들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지하로 내려간 나는 수십 미터 높이의 천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복도로 나왔다.

“세상에 여긴…….”

사람 대여섯 명을 뭉쳐놓은 것보다 더 두꺼운 기둥으로 만들어진 자연 석실을 보며 학생들이 신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여긴…….”

“깊이로 따지면 지하 10층 정도 될 거다. 원래 이 정도 깊이에 건물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만. 큰 공간이 좀 필요했거든.”

미궁이 가진 지하는 약 지하 3~5층 정도이지만 실질적으로 그 아래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간이 존재한다.

“걱정하지 마. 크게 별건 없으니까. 난 약속은 지킨다.”

“그런 분이 저희를 사나흘에서 일주일간 가둬놓으려 하셨습니까?”

듀크의 빈정거림에 나는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 사과하지.”

“사과하면 세계에 자경단과 군대가 왜 있겠습니까.”

“거 말 많네. 후회 안 할 거다. 따라와.”

담담하게 말한 내가 어느덧 일정 공간에 이르렀다.

그리고,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문을 가리켰다.

“이 너머에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다.

“이번엔 안에 드래곤이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 끔찍한 토끼가 싫다곤 하지만…….”

“아니 애초에 그 토끼들 대체 뭐죠?! 워낙에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묻는 거지만 그건…….”

“너희들의 수업을 도와줄 고대 마수야. 그나마 말이 통하는 놈이라 나와 손을 잡고 있거든.”

고대 마수라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핼쑥하게 질렸다.

“세상에…… 고대 마수라는 건 그렇게 무서운 거야?”

“난 다시는 보기 싫어…… 근육만 보면 트라우마가 도질 것 같아.”

겁에 질린 학생 질려서 울먹거리는 학생까지 보인다.

보팔레빗이 학생들에게 상상 이상의 트라우마를 심겨준 모양이다.

나는 조용히 석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거대한 문이지만 자동으로 움직이듯 내 손끝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 너머를 본 학생들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세상에…….”

“저게 무슨…….”

문 너머엔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또 하나의 세상이 존재했다.

지하에 있다곤 믿을 수 없는 끝이 없는 거대한 초록 들판과 거대한 은하수, 수많은 별로 가득한 환한 밤하늘엔 유성우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며 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도저히 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몽환적인 이 들판의 바닥에는 가지각색의 꽃이 펼쳐져 있다.

우우웅!!!

이윽고 하늘 위로 빛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빛들은 빠르게 모여들어 내 앞으로 오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학장님…… 대체 여긴…….”

“축하한다. 인간 최초로…… 아니 최초는 아닌가? 뭐 어쨌든. 아카데미 최초로 너희들은 정령계에 발을 디딘 거다.”

정령계.

그 한마디에 정령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눈에 상상 이상의 경악이 서린다.

그 외의 학생들도 꽤 놀란 표정이었다.

“저…… 정령…… 정령계…… 끄륵…….”

“앗! 리미엘 부학생회장님!”

“부학생회장이 쓰러졌다! 어서 들 것을!”

꺄르르륵!!

그때 푸른빛가루들이 리미엘에게 모여들더니 그녀에게 내려앉았다.

[인간이 아픈가 봐. 우리가 돕자.]

[그러자.]

저들끼리 재잘거리며 힘을 발현한다.

쓰러진 리미엘의 몸에 스며들자 기절한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내가 지금 기적을 보고 있는 걸까…….”

“다들 그만 놀라고 따라와. 진짜 정령계 내부까진 아니지만, 정령계의 외곽과 이곳을 이어붙인 곳이다. 지금이야 몰라도 길게는 체류할 수 없으니 어서 움직여.”

내 말에 학생들은 신기해하면서 아름다워하면서 지금의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정령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거대한 공터였다.

수백 수천의 정령들이 나를 향해 모여들며 재잘거린다.

[인간!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 정령계를 구한 인간!]

[타락한 친구를 구한 인간!]

“그동안 잘 지냈나 보네.”

내 물음에 정령들이 재잘거리며 꺄르륵 웃기 시작했다.

“정령왕이 있을 텐데?”

[정령왕님들은 오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가 왔어!]

“약속 파투냈다고? 이것들이 죽고 싶은 건가?”

[하지만 곧 오실 거야! 엘라임 님이 오시기로 했어!]

그 말과 함께 사방에서 물줄기들이 모여들며 한점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몽환적인 모습인데 물줄기가 그리 모이니 학생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낸다.

[어서 오…….]

“연출 그만해 물라임. 시간 없다.”

[내가 물라임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죠?!]

빼액 소리친 그녀가 순식간에 형체를 만들며 내게 투정을 부렸다.

“가능하지?”

[당신을 돕고 싶어 하는 하급정령은 많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정령계의 외곽. 그것도 중간계와 이어붙였다곤 하지만 정말 많네요. 축하해요. 정령계에 발을 디딘 인간이여.]

학생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정령왕과 대면하고 정령계에 발을 디딘 것 자체로도 다시는 못할 경험이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본론은 지금부터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줄 선물은 이거다. 실습수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학생들은 정령계의 정령들이 각각 한 명에게 정령의 축복을 내려줄 거다.”

그 한마디에 정령사들이 벌떡 일어나며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너희뿐만 아니라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앞으로 실습수업을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그것을 무사히 마친 생도들에게 전부 해줄 거다. 그래서 정령들과 거래하고 만든 공간이 바로 여기니까.”

비록 그 대가가 싸진 않았다곤 하지만.

정령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에 정령사 생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정령사가 아닌 이들은 그게 뭔지 몰랐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정령의 축복이 뭐길래…….”

듀크의 질문에 리미엘 부학생회장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좋은 거예요! 엄청!! 정령사가 평생을 걸쳐도 얻을 수 없는 절대 기연이라고요! 그걸 이렇게 임의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그녀의 외침을 제지한 채 나는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아 정령들이 가져다주는 꽃다발을 받아들고는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러니까 선물이지. 어디 가서 이런 경험 하기 쉽지 않을 거다. 너흰 복 받은 거야.”

그래. 정말로 복 받은 거다. 다른 아카데미에선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정령계에서 받는 정령의 축복과 일반적으로 소환된 정령이 주는 축복은 다르다. 그것도 알고 있으면 좋겠네.”

“오메 나 죽어!”

“억! 부학생회장님이 다시 쓰러지셨다!”

정령사뿐만 아니라. 기존의 다른 인간이라 할지라도.

정령이 직접 축복을 내려주는 건 단순 미신의 경향을 넘어선 인간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것을 아는 이들은 마치 신이라도 영접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같은 시각.

샤렌 공작의 밀명을 받은 그의 심복은 대륙 곳곳으로 퍼지는 소식통을 전하는 상단을 통해 하인스 아카데미에 대한 문제를 고발하는 문서를 넘겨 퍼뜨리기 시작했다.

하인스 아카데미는 실속 없는 아카데미이며 그곳에서 얻을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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