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7화
유언비어라는 건 말 한마디로 엄청난 여파를 만들곤 한다.
실제로 많은 귀족층은 이 유언비어를 통해 정적을 제거하곤 했으니 말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그 말은 티오니스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샤렌 공작은 절대 무언가 일을 저지를 때 자신이 나선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번만큼은 어리석게도 스스로 나섰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문을 위해서라면 아들이 어찌 되던 알 바가 아닌 그였다.
하지만.
그는 무리하게 자신이 일을 진행한 것이다.
덕분에 꼬리를 남겨버렸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놈은 어떻게 됐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각하…… 탈모와 발기부전은 도저히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
조용히 침묵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보라.”
“하지만 각하.”
“나가라고 했다.”
차갑게 일갈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대륙의 성자. 비록 이번 선택은 내 멍청한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내 이 한 몸 바쳐 자네에게 흠집이라도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지.”
티오니스 성자는 사실상 다양한 뒷배가 존재한다.
그것은 거대한 힘과 신뢰, 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청렴한 그의 성품이 한몫하리라.
솔직히 비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짓밟는 게 좋은 사이코패스는 그리 많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열등감을 느껴 누군가를 음해하는 자는 많아도 처음부터 누군가를 괴롭힐 의도를 지닌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샤렌 공작도 그러했다.
그런 그의 눈에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인간은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면서 압도적인 힘을 지닌 그야말로 본인도 모르게 주변인들의 열등감을 증폭시키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알아보았느냐.”
샤렌 공작이 자신의 심복을 불렀다.
“소문은 퍼졌습니다. 내일이 되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바뀔 것입니다.”
심복의 말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변해있었다.
그 말을 직접 겪은 샤렌 공작은 허탈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지리적 요건 같은 점 때문에 사실 하인스 영지에 매해 입학을 희망하는 귀족자제나 왕족의 수는 많아야 수십 수백이다.
하지만.
“삼천?! 장난하는가!!”
그 수배, 아니 수십 배로 늘어버린 이유를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 유언비어가 효과를 못 봐서 현상유지를 하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수십 배로 늘어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유언비어 때문에 광고효과가 돼서?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건 그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하.”
“말해봐라.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정령의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에 샤렌 공작의 눈이 의문으로 뒤집혔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상급반 생도들이 실습 수련을 받고 난 후 티오니스 성자가 정령계를 열어 그들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 후에 모두 정령의 축복을 받았고요.”
“정령의 축복이라면 그…….”
“각하께서 생각하시는 그것이 맞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그렇게 쉽게 받아지는 것이란 말인가.
과장되게 표현하면 실습수련을 끝내자마자 마스터급 경지를 열어주었다고 할 수준이 아닌가.
물론 그 정도까지는 어림도 없다지만 정령의 축복은 그만큼 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고가치의 축복이다.
죽지 않는 이상 반영구적으로 이어지는 축복은 노화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 몸에 활력이 돋게 만든다.
“게다가…… 수업을 받고 돌아온 생도들의 실력 향상이 타 아카데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단순 재능이라고 하기엔 미심쩍을 정도로 모두 굉장한 결과를 가져왔으니까요.”
데이비 올 라운이 처음부터 노렸던 목표였다.
그리고, 그는 방해에 적절하게 이것을 사용하여 오히려 여론을 역전시켜버렸다.
가서 수업을 받을 수만 있다면 실력향상은 물론 실전 수업을 이수한 자에게 정령의 축복까지.
다른 아카데미에선 흉내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것.
그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이어질 완벽한 메리트였다.
아직 데이비 왕자는 젊다.
아무리 그래도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은 더 살 텐데 하인스 아카데미가 몰락할 때까지 이 시스템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완패로구나…….”
거대한 벽에 금을 내려고 약을 발랐더니 그 약이 오히려 벽을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굳혀준 꼴이다.
“현재 각국 귀족자제들은 하인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지금도 입학 희망서를 제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전쟁고아를 제외하고 귀족들에게 받는 등록금도 굉장히 저렴한 편이니까요.”
대체 어디서 저런 돈이 나온다는 말인가.
“이야기 못 들으셨습니까?”
“이야기?”
“하인스 영지에서 의안 이식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부작용도 없고, 시력을 잃거나 눈이 많이 나빠진 이들이 수술을 받으면 반영구적으로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니 수술을 받기 위해 너도나도 돈을 싸 들고 찾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그게 돈이 되는 걸 몰라서 안 하던가.
불가능하니까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이뤄내 버렸다.
“…………나가…….보라.”
“예. 각하.”
심복이 사라진 후 샤렌 공작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흠집을 내보려 했다. 틈을 보고 약점을 쥐려 했으나 그 어떤 면에서도 그가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대체 라운 왕국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토록 소름 끼치는 괴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일 지경이었다.
단순 성자는 칭호일 뿐이지만 그 본인의 능력 자체만으로도 이미 대륙을 뒤흔들고 있다.
개인 무력, 군사 무력. 재력. 기술력.
모든 점에서 타국들이 수십 년 걸쳐 겨우 발전한 것을 우습게 짓밟아버릴 만큼 엄청난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삼제국과 성국이 왜 그렇게 그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는지 알겠군…….”
적당히 간이 보여야 견제를 하지. 이 정도면 견제고 뭐고 편승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릴 정도가 아닌가.
게다가 그는 국가의 영토확장이나 영향력 확장 자체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일방적으로 타국이 그 작은 소국인 라운 왕국의 흐름에 따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표정으로 앓는 소리를 내던 그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냐!!”
이에 그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창밖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새하얀 무언가를 말이다.
붉은 콩알 같은 눈동자. 새하얀 머리. 수인족과는 다른 동글동글한 인형 같은 토끼의 얼굴. 그리고.
터질 것 같은 근육을 말이다.
* * *
전갈의 제국. 콘타스 제국의 대제 콘타스 대제는 거대한 옥좌에 깔린 맹수의 가죽을 깔고 드러누운 채 근처의 무희들이 나눠주는 과일을 받아먹으며 껄껄 웃어보였다.
“껄껄껄! 산 왕국의 늙은 여우가 일방적으로 패배했구만. 완벽할 정도야! 푸하하하하하!!”
손뼉까지 치며 즐거워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이렇게 되면 모르지아나의 혼담이 성사될 확률이 너무 낮은데…….”
애초에 반쯤 찔러본다는 식으로 내건 혼약이었다.
어차피 가능할 것 같지도 않지만 팔란 제국과 린디스 제국이 그와 사돈 관계를 맺은 입장에서 이대로 가다간 콘타스 제국이 뒤처질 거라는 판단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사실 제국의 안위뿐만이 아니었다.
“모르지아나 그년은 자기가 주둥이만 닥치면 정말 최고의 신붓감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놈의 주둥이에 거대함선의 격꾼이 수십 명은 있는지 쉬지 않고 노를 저어대는 꼴이다.
소중한 동생이지만 정말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대륙 6대 미녀라 불리는 미녀이면서. 그녀 자체의 능력도 출중한 주제에.
그 수다 때문에 혼담이란 혼담은 다 말아먹었으니 오라버니로서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혼인을 시켜야 할 텐데…… 어찌한다…….”
데이비 왕자가 안 되면…….
“바리스…… 바리스 올 라운. 그를 노려야겠군.”
국왕이야 부인을 두 명 세 명 두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다.
“여봐라.”
“예 대제.”
“라운 왕국에 서신과 선물을 보낼 것이다. 마나 게이트를 준비해라.”
“선물이라 하심은…….”
“뭐, 콘타스 제국의 특산품인 사막 산양의 뿔과 가죽, 그리고 샤벨라이온의 상아와 가죽을 보내도록 하지. 그 외에 토기도 다수 준비해라.”
“명 받잡겠습니다.”
“그를 견제하는 건 불가능하고,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다만…… 국가를 위해서라면 우리만 뒤처질 순 없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 동생을 향한 걱정과 이 사태의 유쾌함에 낄낄 웃어보였다.
거 모르지아나의 수다에 고생 좀 하겠군. 데이비 왕자.
사실 모르지아나의 수다에 적중당한 피해자는 페르세르크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그였다.
실제로 페르세르크가 이 일의 원흉인 콘타스 대제를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다는 사실도.
* * *
[인간은 참 복잡하구나?]
이제는 말을 제법 편하게 하는 인드라였다.
처음 봤을 땐 그렇게 겁이 많더니 본성이 나오는 건지.
나는 하인스 영지를 인드라에게 구경시켜주며 물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틀만 더 있다가 정령계로 돌아가. 문 열어줄 테니까.”
[시…… 싫다! 여기 정말 재밌다! 더 놀고 싶단 말이다!]
“그러다가 사고 나면, 네 휘하의 윌 오브 위스프들은 어떻게 되는데.”
[그…… 그건…….]
우물쭈물하는 그녀가 책임과 욕망 속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앞에 있는 자루로 머리를 덮은 인간을 쿡쿡 찔렀다.
[그런데 이 인간은 뭔데?]
“실습수업 당시에 쳐들어왔던 암살자.”
[암살자?]
“그런 게 있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자루를 휙 들춰내고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드나?”
“…….”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결할 생각하지 마. 사람이 보통 혀 깨문다고 쉽게 죽는 것도 아니고, 니가 죽기 전에 내가 되살리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망설임 없이 의자에 묶여 앉아있는 그의 복부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커헉!”
그리고 퉁겨져 날아가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고 순식간에 염동력을 발현해 다시 본래 자리로 끌고 왔다.
“복잡하게 캐낼 생각은 없고, 지금부터 예 아니오로만 답하면 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다.”
“그래? 대답 안 할래? 진짜로?”
“어떤 고문을 해도 내 입을 열 수 없을 거다.”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인드라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어린 정령왕에게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긴 좀 그렇고…….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 그럼 반나절 후에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생각해봐.”
그렇게 말하며 내가 몸을 돌리자 인드라가 의아한 듯 나를 따라왔다.
끼이이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손에 수많은 덤벨과 운동기구를 들고 감옥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가 보였다.
“흡?!”
그 존재를 본 암살자의 표정에 경악이 서린다.
“저…… 저것들은!”
“구면이지? 니들 싸그리 잡아 족친 보팔레빗.”
“……데이비 왕자…… 네놈은 겉으론 깨끗한 척하면서 음지 속에서 이런 끔찍한 괴물을 길들였나?!”
“말은 똑바로 하자. 적어도 이놈들이 너희들보다는 깨끗해. 그리고, 길들이기는 나도 이놈들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내 말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토끼들은 뀨? 뀨. 거리며 그를 향해 다가간다.
“오…… 오지마! 오지 말라고!”
“죽이지만 말고 적당히 니들 원하는 대로 해. 학생하고 다르게 힘 조절은 필요 없으니까. 심문은 반나절 후에 와서 하자.”
내 말에 토끼 중 하나가 긍정을 표시하듯 가슴께 근육을 번갈아 퉁퉁 튕겼다.
“어휴 미친.”
그 꼴을 보자니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라 냉큼 벗어났지만 말이다.
[바…… 방금 그것들은…… 좀…… 두렵다.]
“그럴 수밖에. 본체의 힘은 정령왕보다 강한 놈이니까.”
[나…… 나는 저걸 보고 싶지 않아!]
“나도 그래.”
아무리 강한 힘을 얻어도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보팔레빗은 그런 놈이었다.
“저하. 아카데미의 입학 희망자가 굉장히 많이 늘었습니다.”
“그럴 거 같긴 했지. 얼만데?”
보통 평균 수십에서 수백.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그게…… 삼천입니다.”
“실화냐?”
살짝 건드린 게 아주 대규모 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너무 많은데…….”
“어찌할까요. 시험이라도 치를까요?”
“이렇게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