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8화
그 이후 놀라울 정도로 몬스터의 습격은 절제된 수준으로 들이닥쳤다.
몬스터가 다수 나타나는 곳 인만큼 이미 대비를 하고 있는 용병들에게 있어서 이 정도 수준의 습격은 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용병단의 분위기가 굉장히 침체되어있다는 점이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용병 몇몇이 살해당했고, 그중 일부는 납치당했다는 정황이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병들의 입맛을 쓰게 하는 것은 마차의 끝에 쪼그려 앉아 몸을 웅크린 채 침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에반젤린 때문이었다.
“에반젤린.”
“…….”
“이거라도 들어.”
용병 중 하나가 조용히 다가와 그녀에게 육포를 내밀며 어렵사리 말했다.
“그…… 뭐냐 네 덕분에 다 살았다. 잡혀간 녀석들이나 죽은 녀석들에겐 미안하지만 네가 없었다면 그 나머지도 다 죽었을 거야.”
“아저씨…….”
“그러니까 침울해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다. 용병들은 언제고 제 목숨 잃을 각오를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끌려간 흔적이 우리가 가는 방향과 같아. 이 이상 속도를 올리는 건 우리 쪽도 위험하고, 학회와 상단 측에서 우리 사정을 이해해주고 같이 수색을 병행해서 진행하고 있으니까.”
상단과 학회가 이토록 용병들을 신경 써주는 건 사실 모두의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한 에반젤린을 돕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선 과감하게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다.
페이가 좋은 만큼 제 목숨은 걸고 일하는 것이 용병이다.
마냥 동화책처럼 희망차고 밝은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저씨…….”
우울하게 있던 에반젤린이 입을 뻐끔거렸다.
“응? 어어 말해봐.”
“……아무것도 아니에요. 좀 쉬고 싶어요.”
에반젤린의 그런 태도에 용병은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순수하고 어리며 정의로운.
현실적인 용병과는 맞지 않은 저렇게 착한 아가씨가 아직도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했구나.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본심은 달랐다.
에반젤린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건 자신이 데이비 올 라운. 즉 아빠의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키리리리릭.
-크에에에에엑!
“몬스터다!!”
물론 강한 몬스터의 습격이 준다고 해도 이토록 몬스터가 많은 숲속에서 습격이 없을 순 없다.
고블린들의 연이은 습격에 용병들이 익숙하게 무기를 든다.
용병들이 고블린을 처리하려던 순간이었다.
스팡!!! 서걱!!
섬광처럼 날아든 에반젤린이 검기가 넘실거리는 홍단이를 휘두르며 고블린 사이로 파고든다.
서걱!!!
동시에 상상도 못할 속도로 뻗어져 나간 검기가 일순간 고블린들을 양단해버렸다.
“에…… 에반젤린?”
“…….”
용병들이 진을 짜고 하나하나 처리해야 하는 고블린들이 너무 한순간에 쓸려나가 버린 것이다.
-키륵!!
키륵!!
“에반젤린 위험해!! 홉이다!!”
그때 나무 위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놀란 용병 하나가 검을 갈무리하는 에반젤린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외침보다 더 빠르게 나무 위에 숨어있던 홉 고블린의 손에서 불덩어리가 생겨난다.
푸콱!!!!
하지만 마법이 에반젤린을 향해 날아가진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들을 보던 에반젤린이 던진 홍단이가 놈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 어어…….”
“볼 때마다 대단하네…….”
이 정도 되면 거의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다.
조용히 검을 거둔 뒤 다시 행렬로 돌아오는 에반젤린 덕분에 사실상 더 이상의 습격은 굉장히 싱겁게 끝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용병들은 동시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홉 고블린은 보통 백여 마리 이상의 고블린 부락에서나 보이는 그런 희귀종입니다. 그런데 고작 열다섯 마리의 습격에 홉이 나타났어요.”
“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본래라면 수십 마리에서 일백에 가까운 숫자가 습격하는 게 보통이라는 소리입니다.”
“적으면 좋은 게 아닌가?”
상단 관리인의 말에 용병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행렬은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서 말입니다. 몬스터의 규모가 이상하거나 고성에서나 볼법한 다크 나이트가 나타나질 않나. 몬스터가 그것도 고블린도 아니고 트롤과 오우거가 협력해서 마법사를 납치해가는 건 이상합니다.”
“잡아가는 사례가 없진 않을 텐데.”
“트롤과 오거는 식량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먹어치웁니다. 절대 제 둥지로 잡아가지 않습니다.”
“흐음…….”
“당장은 에반젤린 덕분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만약 또다시 그런 습격이 벌어지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의뢰를 취소하고 철수하시지요. 이 이상은 위험할지 모릅니다.”
용병의 요구에 상단관리인과 학회 관련 인물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유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멀리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그 외침에 인상을 찡그린 용병이 말했다.
“도착했으니 조사는 하시되 오래 머물 순 없습니다. 지금 숫자도 적은 편은 아니지만, 이 숲은 정말로 위험한 곳이니까요. 대규모 용병을 끌고 온 게 아닌 이상 길게 잡아도 이틀입니다.”
“알겠네. 고려해두지.”
오래전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문명의 흔적을 보며 학회의 인물들은 눈을 번뜩이며 조사에 들어갔고 용병들은 각기 범위를 나누어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상단은 필요한 물자를 바로바로 공급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야영장을 준비해나갔다.
“언니.”
그렇게 홀로 떨어져 거대 유적의 북쪽을 담당하던 에반젤린은 커다란 유적 건물 위에 앉은 채 웅얼거렸다.
“언니.”
“응응.”
동시에 그녀의 허리춤에 있던 검 홍단이가 현신하며 그녀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언니. 나는 아빠의 딸이지?”
“응응! 맞아! 에린이는 아빠 딸이야!”
“그런데 왜 나는 사람이 아닌 거야?”
“응? 그…… 그건…….”
“나도 알아. 아빠는 인간이고 나는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거.”
“으응…… 하지만 아기는 전설의 학이 물어다 주는걸?”
“학이?”
“응응! 엄마 아빠가 손을 꼭 잡고 서로 사랑하면 전설의 학이 나타나서 아기를 물어다 준데!”
비록 에이리아가 임신까지 했었지만, 홍단이 청단이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홍단이도 사람이 아니야! 홍단이는 검이야!”
“그건…….”
“하지만 아빠의 딸이야! 에린이는 아니야?”
홍단이가 헤헤 웃으며 말하자 에반젤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럴까? 나도 아빠의 소중한 딸이 맞을까?”
“응 맞아!”
홍단이의 말에 뒤이어 푸른 검집에서도 빛이 흘러나오며 청단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맞아. 에린이 아빠 딸! 홍단이 청단이 동생!”
“헤헤. 언니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옅게 웃으며 홍단이와 청단이를 끌어안은 에반젤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심히 하자! 난 용사가 될 거야! 아빠처럼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응응! 에린이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응원해주는 홍단이 청단이 덕분에 그나마 마음이 인지된 그녀였다.
그때 에반젤린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을 볼 수 있었다.
“에린?”
“언니. 잠깐만.”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을 뻗자 청단이와 홍단이는 순식간에 검의 형태로 돌아가며 그녀에게 잡혔다.
이후 그녀는 방금 전 기시감이 느껴지던 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이질적인 유적의 벽을 건드렸을 때.
그녀는 주변이 일순간 검게 변하는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아!”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카만 공간에 갇혀버린 것 같은 이 끔찍한 기척에 에반젤린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어…… 언니!! 홍단이 언니!”
하지만 들려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빛 한점 없는 심연 속에 빠진 그 두려움 속에서 두려움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위험을 겪음으로써 한 차례 각성했던 그녀의 본성이 다시 낮게 울기 시작했다.
“시…… 싫어! 싫어!”
그녀는 자신의 본성을 두려워했다.
본능적으로 인간을 낮게 깔아보는 포식자이자 절대자의 본성.
그녀의 갈무리되지 않은 본성은 급기야 사랑하는 아빠인 데이비까지 한낱 인간이라며 낮춰보았으니 말이다.
“싫어…… 싫어! 들어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본능을 억누른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거대한 심연은 사실 별빛이 비치지 않았던 우주공간과 비슷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늘을 반짝이는 하나의 별자리가 빛을 발한다.
“이제 내가 보이느냐.”
그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든 그녀의 앞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한 인영이 서 있었다.
일전에 만났던 검은 갑주의 다크 나이트와 흡사하지만, 그 형태가 좀 더 달랐으며 위험한 냄새가 났다.
“…….”
경계하듯 한발 물러난 에반젤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째서 너처럼 대단한 존재가 하찮은 인간의 딸 행세를 하고 있는 거지?”
“뭐…… 뭐라고요?”
“내 눈엔 보인다. 위대한 별. 검신 거헤궁의 화신인 내게는 네 본질이 보인다. 포식자이자 절대자여.”
그녀를 향해 갑옷의 기사가 한 발 더 다가왔다.
“네 아버지라는 인간은 널 속였다. 네 힘을 손쉽게 다루기 위해 널 딸이라며 속이고 데려왔지.”
“아니야!! 나는 아빠 딸이야! 에반젤린 올 라운이라고!”
“흥! 웃기지도 않는군. 인간이 용족. 그것도 고대룡을 낳는 경우는 없다.”
“아……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가 울먹거렸다.
홍단이와 청단이도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둘 다 데이비를 아빠라 부르고 거기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홍단이와 청단이는 데이비가 직접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었으니까.
즉.
에반젤린만이 유일하게 데이비에 의해 태어난 게 아니라 그저 데이비가 딸로서 데리고 있는 것이다.
평소라며 그녀를 다잡아줄 홍단이도 청단이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꺼내줘! 여기 있기 싫어!”
“흐음.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다. 난 나의 별자리께서 명령하신 대로 널 만나고 제안하기 위해 온 것이니까.”
“싫어…… 싫어!”
“물론 이제 와서 데이비 올 라운이 널 구해줄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일이지. 검신이자 검의 별인 거헤궁께서는 신적인 존재. 그 어떤 존재도 이길 수 없다.”
그의 말에 에반젤린이 이를 악물었다.
“바라는 게 뭐야…… 에반젤린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 나는 아빠의…….”
“아니. 그건 네가 그렇게 바라는 거겠지. 네가 가지고 있던 검도, 다른 녀석도 모두 데이비 올 라운이 만들고 직접 태어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넌 아니야.”
“아니야!!!”
결국, 울음을 터뜨린 에반젤린이 엉엉 울었다.
아무리 빨리 배우는 그녀라 할지라도 그녀의 정신은 아직 성장이 미숙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넌 네 부모님의 자식이 아니다 라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그는 너를 속이고 있다.”
그렇게 말하며 검은 갑옷을 입은 이가 손을 뻗어 보였다.
그러자 아름다운 별의 힘이 모여든다.
“거헤궁께서는 네 친모가 네 아빠라 불리던 데이비 올 라운의 손에 죽었다고 하셨다.”
동시에 에반젤린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또한. 네 아비도 같이 살해당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그는 살려내지 않았다. 다른 이들 모두 살릴 수 있었음에도 네 친아비만큼은 살려내지 않았다.”
“아냐…… 아냐…….”
“넌 그에게 속고 있다.”
그 말에 에반젤린의 짙은자색으로 변한 눈동자가 더욱 거세게 떨렸다.
* * *
별의 화신.
본디 인간, 혹은 이종족이었으나 별의 힘을 받아들여 별의 하수인이 되면서 생겨난 존재.
단순 농사꾼이라도 별의 화신이 된다면 그 힘이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에 닿는다.
그것이 프리아 여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인 황도 12궁이 가진 기본적인 힘과 시스템이었다.
현재 거헤궁의 화신인 사내는 눈앞의 아름다운 소녀를 보며 안광을 번뜩였다.
자신의 주인을 위해 이토록 강한 씨앗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방해가 되는 그를 처리하기 위해선 그만큼 강한 존재가 필요하니까.
물론 그의 입장에선 세상을 단숨에 불태워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왜 인간 하나를 신경 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아빠가 날 속였어…… 진짜 엄마아빠를 죽였어……?”
그녀가 공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에 검은 갑옷기사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 네 힘이 탐이 나서 널 가로채기 위해 네 부모를 죽였다. 그리고 널 속여서 마치 제 자식인양 굴었지.”
“…….”
반쯤은 거짓말. 아니 대부분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자, 내 손을 잡아라. 나와 함께 거헤궁의 화신이 되면 된다. 비록 네 부모를 되살려줄 순 없지만 네게 위선만 가득한 가짜 가족이 아닌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
“진짜 가족…….”
“화신이 되어라. 그리되면 너도나도 모두 거헤궁의 힘과 피를 이어받은 진짜를!”
에반젤린이 천천히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충격. 그리고 데이비가 저지른 충격적인 사건이 그녀의 정신을 헤집어 놓아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게 만들었다.
“또한, 거헤궁께서 모든 세상의 패권을 쥐게 되면 그땐 정말로 죽은 네 친부모를 되살릴 수 있다. 원하지 않느냐. 진짜 부모와 행복하게 사는 삶을.”
그 말에 에반젤린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다.
그녀의 정신이 끝도 없이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화신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제 자신의 주인이신 별자리 거헤궁께서 은총을 내리면 된다.
이제 와서 데이비 올 라운이 방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무리 그가 강해도 자신의 주인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이곳을 찾아도 당장 파고들어 오는 건 무리가 있으리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에반젤린을 보호하던 데이비 올 라운의 앞에는 이미 자신과 같은 동족들이 가 있다. 다섯의 화신.
하나하나가 강렬한 힘을 품은 화신은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나 다름없고 거헤궁의 힘을 받으면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즉. 거헤궁이 살아있는 한 그들은 절대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소리였다.
이윽고 에반젤린의 손을 잡고 거헤궁의 힘을 밀어 넣으려던 찰나였다.
치직…….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음?!”
갑작스런 사태에 화신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헤궁의 힘이…….
약해진다.
아니. 사라져 가고 있다. 마치 거헤궁이라는 절대 적인 존재가 소멸하는 것처럼 말이다.
* * *
거대한 공동.
거대한 별자리가 화신을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터를 잡은 세상에 자신의 근본이나 다름없는 분신을 현신시켜야 한다.
거헤궁 캔서가 자신의 근본을 놔둔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위치는 상당히 잘 숨겨져 있었지만 그건 상관없는 문제였다.
겁도 없이 나대는 별자리와 다르게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인간에게는 수십의 신격을 지닌 조력자가 존재했으니 말이다.
“반년 후엔 싫어도 엮이게 될 거라고.”
반년 전 초대 성녀 다프네가 데이비에게 했던 말이었다.
“난의 상을 겪을 운명이라고.”
회랑의 최고 사고뭉치 도사 [우치]가 운명의 끈이 생긴 에반젤린을 두고 했던 말이다.
그 말과 함께 거헤궁의 힘 그 자체를 지키던 그의 피조물과 화신들이 움직인다.
“놈은 고작 한 명이다. 검의 신의 은총을 받은 우리를 죽일 방법은 검뿐이다만 그 누구도 우리를 검으로 이길 수 없다.”
“게다가 놈은 맨손이지 않나.”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를 공격하려는 화신들.
정보가 없기에 상대가 얼마나 무식하게 강한지 모르고 있었다.
이에 데이비는 빙그레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고 어떤 전자장비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작동되나?”
그렇게 말하며 장치를 건드리길 잠시.
곧이어 신명 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쿵작쿵작…….
갑작스레 노래를 트는 데이비를 보며 화신과 피조물들은 감히 신적인 존재인 별자리의 힘을 받은 피조물의 앞에서 여유를 부리는 한낱 인간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검도 없이 검으로밖에 죽일 수 없는 존재들을 찾아온 겁 없는 인간이라니.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노래를 작동시킨 데이비가 그 장치를 근처에 내려놓았다.
치지지지직!!
동시에 상상도 못할 정도의 밀도를 지닌 신력이 뭉쳐 들며 한 자루의 검이 되어 데이비의 손에 쥐어졌다.
분위기가 역변하기 시작하자 화신과 피조물은 자신들이 느끼는 상대의 힘이 어쩌면 좀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은 결국 입증되지 못했다.
쿵작쿵작 거리는 노래가 끝이 났을 때.
공동에는 살아있는 피조물이나 화신이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나하나가 마스터급은 우습게 여길 정도의 강한 존재들이었다.
대체 언제 이만한 숫자를 모았는가 싶을 정도로 강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깨를 들썩거리며 느긋하게 검을 붕붕 돌리는 데이비는 그들이 예상한 상상 그 이상의 괴물이었다.
“에반젤린은 잘 하고 있으려나…….”
지금이야 느긋하게 굴고 있지만, 만약 에반젤린이 지금 겪고 있는 혼란에 대해서 데이비가 알았다면.
그때 벌어질 일은 사실 상상하기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