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3화
261. 심판한다
십수 명의 용병들이 모여 눈동자만 대굴대굴 굴렸다.
“신경 쓰지 말라니까. 그런 거로 쪼잔하게 뒤끝 잡고 그럴 생각 없으니까.”
내 미소에 용병들의 표정이 파랗게 죽는다.
“그…… 그렇다면 사…… 살기 좀.”
“어 이런, 실수했구만.”
명백히 실수가 아니잖아 라는 시선들이 꽂힌다.
아니 뭐, 눈앞에서 내 욕하는 거 보고 참을 인간상도 아닌데 이 정도면 많이 양보한 거지.
“그…… 그래서 어떤 걸 원하시는지요.”
용병 중 하나가 용감하게 팔을 들고 물어왔다.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용병의 세상이다.
이들이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건 알량한 내 지위가 아닌 힘.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피식 웃어보였다.
“의뢰를 세 가지 할 생각이다. 용병들에게 일을 시키고자 한다면 명예니 정의감이니 그딴 건 요구하지 않는 게 맞겠지.”
그 말에 용병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가장 정의로워야 하고 명예가 높은 존재가 성자라는 존재가 아니던가.
실제로 귀족들 중 일부가 용병들을 천하다고 무시하는 게 돈이면 뭐든 다하는 족속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나는 어떤 명예도, 약속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무얼, 용병에게 일을 시키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제시해야지.”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아 보이며 내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특수한 의뢰다. 한번 받아들인다면 거절할 수 없다. 대신 그 조건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의뢰를 받아들인다면 보수로 선금 백금화 한 개. 임무를 완수하면 마저 백금화 한 개를 주도록 하지, 또한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의뢰 기간이 길진 않아. 길어봐야 2주 안에 끝날 의뢰다.”
“2…… 2주에 배…… 백금화 두 개?!”
“세상에!”
경악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물었다.
“물론, 의뢰 중 하나가 굉장히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겠다면.”
위험하다.
즉 백금화 두 개는 생명수당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어떤 생명수당도 백금화 두 개까지 걸리는 경우는 잘 없다.
내 말에 용병들 중 하나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의뢰…… 받아들이는 이는 조건이 없습니까?”
“두 가지 의뢰는 에반젤린과 함께 의뢰를 완수했던 용병에게 해당하지만, 마지막 하나는 아니지. 받겠다면 누구든 받아들일 거다.”
용병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동정입니까? 아니면, 저희가 그런 돈이면 헤벌레 하면서 따라갈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중후한 인상의 한 용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뢰는 받겠습니다. 하지만 성자께선 지금 용병 간에 있을 암묵적인 규율을 어기고 계십니다.”
“규율?”
“의뢰를 하고 받고 하는 것은 용병과 의뢰주간에 당연한 수순입니다. 하지만 지금 왕자께서 내민 보상은 너무 막대합니다.”
“적은 것도 아니고 많은 거로 불만을 품을 줄은 몰랐는데.”
“받는다면 좋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용병업계의 분위기가 흐려진다면 그것은 곧 의뢰주와 용병 간에 충돌로 발생하게 됩니다. 어떤 사례도 남길 수 없지요.”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봐. 이름이 뭐지?”
“뱅크라고 합니다.”
“그래. 뱅크. 당신의 말은 잘 알겠어. 내가 이 같은 사례를 만들어버린다면 다른 용병들이 의뢰주에게 의뢰를 받을 경우 보상을 후려치려들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
“근데 그게 용병이 걱정해야 할 일인가?”
“저희야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의뢰주와 충돌이 생기기 시작할 거라고.”
“……예.”
그의 걱정은 사실 기우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아니라도 이 같은 경우가 없을 순 없으니까.
“사실대로 이야기해봐. 사실 그건 당신도 알겠지만 끼워 맞춘 변명에 불과해. 성인군자도 아니고, 용병업계에 딱히 명예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차가운 질문에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네. 합리적인 의심이야. 인정하지.”
“목숨을 거는 전쟁판에 뛰어들어도 금화 단위의 보상이 있습니다.”
용병 만 명을 동원한다 했을 때 금화 한 개만 쥐여줘도 금화 만 개에 달하는 예산이 소모된다.
하지만 금화 2개에서 3개. 많게는 5개를 넘어가는 보상인 만큼 보통 용병들을 많이 고용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백금화를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이상?
의심스러울 수밖에.
적당한 보상은 몰라도 이런 보상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우선 착각하는 게 있어서 정정하자고.”
“예?”
“당신의 말은 전부 맞아. 일리 있고, 전혀 반박할 거리가 없지. 훌륭해.”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직 언급을 두루뭉술하게 한 탓일 테지.”
“이를 테면요?”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의뢰는 백금화로 보상을 줘도 부족하지 않은 일이니까.”
그 말에 주변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의 보상보다 수십 배는 비싼 보상을 치를 정도라 이 말입니까? 용병에게 제 목숨을 잃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는지 몰랐군요.”
명예나 정의감도 아니다.
돈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목숨값인 금화 몇 개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받을만한 일.
그것은…….
“잘못되면 당신들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
죽음이 끝이 아니다.
그 한마디에 용병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왜 저희입니까.”
“당신들은 이곳을 거점으로 잡고 활동하고 있을 거다. 특히 이 근방 지리나 관련 정보에 관해선 사실 대륙의 정보단체보다 더 빠삭할 테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당신들이 적격이라는 거다. 강요는 하지 않지. 받아들이겠나?”
내 물음에 용병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상에 눈이 돌아갈 법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소리였다.
“그에 따라 나는 위험성을 산출, 합당한 대가를 제시했다. 이 일은 상위 용병이라고 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좋습니다. 나는 받아들이겠습니다.”
뱅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 뱅크?!”
“무슨…….”
“까짓거 한번 해봅시다! 한번 죽으면 끝인데 그 이후에 뭐가 있다고 겁날 게 있나!”
이윽고 뱅크를 필두로 다수의 용병들이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자세한 내용은 내일 정오 내가 머무는 숙박업체의 뒤뜰에서 브리핑하도록 하지. 하고자 하는 이들만 찾아오되. 두 가지를 명심해. 절대 이 일이 새어나가선 곤란하고. 또.”
한번 받아들이면 절대 물리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쪽이든 기밀유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게 말이야…….”
볼을 긁적이며 내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이 아빠 미워를 외치고 도망갔는데 그냥 둘 순 없잖아.”
그 말에 용병들의 표정이 벙찐다.
“정말…… 정말 따님이셨습니까?”
“그래. 문제라도 있나?”
“그게…… 나이 차가…….”
“아. 특수한 사정이 있어. 신경 쓰지 마.”
* * *
“흑…… 흑…… 또 도망쳤어…… 죄송해요. 아빠…….”
마을 외곽의 초원.
그곳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에반젤린이 소매로 눈물을 꾹꾹 닦아냈다.
아빠를 보면 가장 먼저 사과하고 안기려고 했다.
진실이야 어떻든 그녀가 아빠를 사랑해온 건 사실이니까. 그 후 진실을 듣고 싶었다.
자신이 정말 아빠의 딸이 아닌지. 또 그 갑옷의 인영이 말했던…… 그 혼란스러운 진실까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은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에린…….”
그때 그녀를 다독이듯 홍단이와 청단이가 현신하여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에린이 나쁘지 않아. 아빠 사랑하잖아.”
“언니…….”
“괜찮아! 아빠는 에린이 사랑하시는걸?”
“정말…… 내 용서를 받아주실까?”
“응! 응!”
사실 홍단이와 청단이는 이클립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
정확히는 초단이의 의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초단이는 이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는 건 시기상조라 판단. 그것을 꼭꼭 눌러 담았고 그 의지는 홍단이와 청단이로 분리되고 나서도 이어졌다.
“언니이…….”
“헤헤헤 착하지 착하지. 우리 에린이…….”
쿵!!! 까아악! 까아아악!
그때 초원과 멀지 않은 숲속에서 거대한 울림이 퍼졌다.
기이한 공기가 감돈다.
마치 검은 적란운이 숲속에서 성이 있는 마을까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기묘한 악취가 풍긴다. 그것도 한두 종류가 아닌 어마어마한 수와 농도.
에반젤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언니!”
“응!”
“용사가 될 거야. 누가 다치게 두진 않을 거야!”
그 말과 함께 청적색의 빛으로 돌아간 홍단이와 청단이가 그녀의 손에 검의 형태로 안착되었다.
파바바바바박!
몬스터의 습격.
그것도.
대규모다.
* * *
수천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가 진군한다.
대체 어디서 이런 몬스터들을 긁어모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몬스터가 영지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저들끼리 먹어치우는 참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어째서인지 몬스터들은 일사불란하기 그지없었다.
쉬리리릭…… 쿠우우우우웅!!
그때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몬스터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놈들은 볼 수 있었다.
숲 저편에서 다가오는 한 소녀를 말이다.
양손에 검을 하나씩 쥔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할 수 있어. 아빠에게 배웠잖아. 에반젤린.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이 정도 대군, 거기에 마법을 쓰는 몬스터도 섞여 있다. 그것도 강한 몬스터가 섞인 조합은 소드마스터라도 아차! 하는 순간 위험할 수 있다.
방어능력으로 인해 한두 번의 공격으론 죽지 않겠지만 저들의 진군을 막으면서 버텨내는 건 게릴라전과 완전히 다르니까.
하물며 에반젤린은 아직 마스터에도 이르지 못한 익스퍼터.
수천의 몬스터 군세를 상대로 정면싸움을 하기 위해선 지금의 수준으로는…….
“아냐. 할 수 있어! 언니가 있으니까!”
[울어라!! 파이어 볼트!]
검을 양쪽으로 내리 세운 채 정면에 선 에반젤린의 입에서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녀의 사방으로 아주 작은 불씨들이 생겨난다.
하급마법인 파이어 볼트. 그 효과는 고블린들에겐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 정도 화력으로 트롤이나 오거, 사이클롭스 같은 몬스터나 대 마력 몬스터인 가고일을 처리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준비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우웅!! 치지지지직!!
순식간에 그녀의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진다.
동시에 그녀의 앞으로 나타난 스태프가 찬란하게 빛을 뿜었다.
‘절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겠어! 내 손으로 최대한 지켜낼 거야!’
성벽에 둘러싸인 작은 영지다. 하지만 고작 몇 주. 그동안 에반젤린은 이곳의 사람들과 정이 들었다. 그런 정이든 이들을 죽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바란. 용사.
바로 그녀의 아버지인 데이비 올 라운에게서 배운 후광이니까.
“커져라!!”
치이이이잉!!
“뚝딱!”
불씨 같은 파이어 볼트가 재앙에 가까운 거대한 파이어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쾅!!! 쾅! 쾅!!
폭격이 시작된다.
부족한 실력은 아이템으로 메꾼다.
홍단이와 청단이 그리고 초월의 종언. 그 어느 것 하나도 대륙의 어떤 비보나 무기보다 강렬한 아티펙트이며 신적인 무구들이다.
실제로 초월의 종언은 아트렐리아 대륙의 절대 비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종말의 스태프라 불리는 초월의 종언은 자격이 없는 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에반젤린은 그것을 몰랐다.
* * *
쾅!! 쾅!!
어마어마한 폭음이 계속된다.
에반젤린의 숨은 턱 끝까지 차고 올랐다.
하지만 적들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말도 안 돼…….”
홍단이로 베어내고 청단이로 끊어버리지만, 적들의 수는 끝이 없었다.
청단이와 홍단이는 사용자의 능력을 끌어 올려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토록 지쳐가는 이유는 몬스터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좀 전부터 이상해…… 몸이…… 몸이 무거워…….’
몬스터와 격돌한 이후 그녀가 베어 넘기고 태워버린 몬스터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도저히 익스퍼트 한 명이 이뤄냈다곤 믿기지 않을 만큼.
하지만 어째서인지 몬스터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마치 계속해서 누군가가 몬스터를 증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아…… 하아…….”
쉬리리릭 쩌어어엉!!!
반사적으로 빈손을 교차시키듯 옆구리로 날아드는 철구를 막아냈지만 지칠 대로 지친 그녀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꺅!”
치명상은 피했으나 옆구리에 알싸한 통증이 그녀를 움직이기도 힘들게 만들었다.
손은 다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고 충격에 못이긴 홍단이와 청단이는 이미 멀찍이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아빠한테 사과도 못 했는데…… 아직 적이 이만큼이나 남았는데…….”
피를 보고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다.
검을 배우겠다 했을 때 그녀의 아빠인 데이비 올 라운은 몇 번이고 그것을 다시 물었고, 그녀가 확고해졌을 때.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엄하게 검술에 대한 환상을 깨고 그 진리를 가르쳤으니까.
말로만 떠드는 이상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자신은 힘을 얻고자 한 것이다.
아빠가 지켜준 세상을 위해서.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보기 위해.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검을 배운지 고작 반년 그것도 굉장히 빠르지만 지금 그녀에겐 부족했다.
그때 그녀는 멀찍이서 느껴지는 어떤 시선을 볼 수 있었다.
이에 급히 고개를 든 그녀는 그 자색으로 반쯤 물든 시야에 그들을 담았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존재.
인간이었다.
‘인간이 어째서…….’
그들은 에반젤린을 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입모양을 볼 때 그들이 하는 단어는…….
[이…… 단…… 이…… 다. 심판…… 하라.]
“꺄악!!”
동시에 그녀를 압박하는 무형의 힘이 더욱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그녀는 다시금 본성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괴물이 되어버리면 아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기정사실이 될까 두려웠으니까.
그렇게.
몬스터가 에반젤린을 향해 다가와 무기를 든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