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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26화 (926/1,559)

제 926화

“에반젤린?”

“흐응…… 아빠 x년이 무슨 뜻이에요?”

“어…… 어어? 어 그래. 그건 말이야…….”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가 귀엽게 손뼉을 쳤다.

“아하! 알겠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내게 달려와 폭 안겼다.

주변이 피 냄새로 가득하지만, 그녀는 천진난만했다.

그래 아무리 천진난만해도 어감부터가 거친 단어가 욕설이라는 건 알겠지.

나는 화제를 돌리듯 달려오는 녀석을 안아 들어 올리고는 물었다.

“무섭지는 않고?”

“아빠가 곁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요?”

“그래…….”

교육엔 좋지 않지만.

그래도 딸아이가 이렇게 품에 안겨있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나는 조용히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뒤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래. 아빠가 언제까지고 지켜줄게.”

* * *

“야.”

“죄송합니다.”

담담하게 답한 내가 시선을 피했다.

내 멱살을 잡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페르세르크였다.

조용히 내 멱살을 잡고 있던 그녀는 표정을 풀고 한숨을 내쉰 채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다리를 꼰 채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흡사 여왕님 같은 면모가 보인다.

“그대. 본녀가 분명 그 파멸을 부르는 입을 조심하라 일렀거늘.”

“아니 그게 말이야. 에반젤린은 자꾸 기감에 안 잡힐 때가 많아서.”

“변명치곤 정말 싼 티가 나는구나.”

“나는 얘가 욕이구나 라는 걸 안 줄 알았는데…….”

“아직 상식이 부족한 아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 멍청한 것.”

“으어어억!”

뺨을 꼬집는 그녀의 말에 나는 비명을 지를 뿐 반항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에반젤린은 그 기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 망할 사이비가 그렇게 뒤통수를 칠 줄 알았나. 본능적으로 튀어나간 욕설이 하필이면…….

“한 번만 더 에반젤린이나 애들 입에서 욕설이 나오면…… 그땐 본녀가 그대를 응징할 게야.”

스산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퍽 매력적이다.

그러니 그녀에겐 이길 자신이 없다.

“욕도 자제할게.”

“후우…… 다친 곳은 없어? 요시아를 다치게 할 정도면…….”

“안 그래도 조금 이상하긴 하더라.”

일의 전말은 간단했다.

나를 돕기 위해 일리나를 영지에 두고 홀로 이곳까지 날아온 페르세르크와 재회한 에반젤린은 페르세르크에게 대뜸 잔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죄송하다며 잘못을 빌었다.

이후 그녀를 다독여주며 그녀가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건네주던 페르세르크는 에반젤린이 내게 배웠다며 자랑하듯 욕설을 내뱉어버렸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에반젤린이 다친 곳은 없고?”

“별문제는 없더라. 요시아는 괜찮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긴 했음이야. 그보다 본녀가 필요하다는 게 뭔지 말해주었으면 하는데.”

그녀의 장난스런 미소에 나는 말 없이 그녀를 보다 입을 열었다.

“그냥.”

“그냥?”

“보고 싶어서.”

“…….”

내 말에 그녀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약간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그대는 거짓말이 참…… 잔망스럽구나.”

“아니 뭐…… 네가 그렇게 반응하면…….”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와 혼인을 치르고 벌써 2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와 함께 있다 보면 상당히 두근거릴 때가 많다.

“이 모습을 일리나나 에이리아가 보면 질투할걸. ”

“셋 다 소중해.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너잖아.”

“누가 보면 바람둥이나 할법한 이야기로구나. 그래도 제법 마음에 들었으니 상을 줘야겠지.”

키득거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가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처음엔 상당히 부끄러워하더니 2년간 참 많이도 변했다.

“그래. 장난치지 말고 어서 사실대로 말해봐. 본녀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 게야.”

“…….”

“그리 좋은 일은 아니구나.”

“미안해.”

짧게 일축한 나는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이 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놈들은 절대 내 앞에 나타날 리 없다.

차라리 시원하게 선을 넘어버렸다면 찾기가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여자다. 게다가 그녀를 감싸는 힘조차 그녀를 돕고 있다.

이 상황에서 그녀를 찾아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보 길드?

상대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데 그것을 찾는 게 가능할까.

“괜찮아. 본녀가 어디 어린아이도 아니고, 과거의 영광일 뿐이지만 한때 마왕의 위에 올랐을지니.”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예쁘게 웃어보였다.

이에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끌어안은 채 머리를 묻었다.

“최대한 빨리 매듭지을게.”

“그대…… 평소와 많이 다르구나.”

“그냥…… 좀.”

그래 이런 문제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방식만 다르지 결국은 똑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굉장히 심란한 상태였다.

그들이 요시아를 노렸기 때문에?

아니.

그들이 이유를 알 수 없게 백작가를 노렸기에?

그 또한 아니다.

지금 나를 가장 착잡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그들 같은 괴물을 만들어낸 원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상황보다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네가 여왕이 되어줘야 할 거 같아.”

* * *

그들은 내게 복수심을 품고 있었다.

단순한 분노나 장애물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최종목표 중 하나로 잡고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어리석게 정면 승부를 걸어오지 않았다.

철저히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일을 치고 도망친다.

그들의 목적은 정면승부로 나를 죽이는 게 아닌 나의 파멸을 노리는 것.

그래. 싸움이야 늘 있었던 일이고,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가 이번엔 달랐다.

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나와 충돌한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주객이 뒤바뀌었다.

“그들의 목표가 그대를 파멸시키는 것.”

“…….”

“그리고 그대가 예상하기에 그 결과를 위해 행하는 대가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이비 이단심판이라. 이 뜻인 게지.”

오로지 나를 죽이기 위해 다수의 존재가 모였고 움직인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었지.”

그렇기에 내가 죽인 모든 인간들에게도 각자의 가족이 존재한다.

그들 중 내게 증오를 품은 이 들이 모인 것이다.

전부 내가 지고 가야 할 업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죽이는 자는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면.

죽인 이들을 벤 업을 스스로 지고 가야 한다.

철학적인 의미로 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테라리아의 왕자이자 태극공을 사용하는 막시모스 같은 업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것.

전체적으로 업의 한 갈래라는 건 변함이 없다.

죽여야 할 놈들을 죽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을 이해시킬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졌고 절망했을 것이다.

그 가족이 어떤 짓을 했건 결과적으로 소중한 가족을 내 손에 잃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논리. 이치 이런 잡스러운 것들을 떠나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일념만으로 모인 자들.

그자들을 뒤에서 돕는 건 천칭궁 리브라겠지만 리브라는 거헤궁이나 금우궁과는 다르게 자아가 있는 반신급 존재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시스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들에게 죽어주려고?”

페르세르크가 차갑게 물어왔다.

조용히 침묵하던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 * *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조사단 때문에?”

백작가에서 그만한 대참사가 벌어졌는데 왕국 조사대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

이 빌어먹을 사이비 놈이 마지막에 터뜨린 폭발은 사실 시작 버튼이나 다름없었다.

나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그들이 준비한 계획의 시초를 말이다

그 첫 목표는 바로 이간질.

소국이 거대 성국을 어찌할 순 없다. 하지만 빌미를 만든 것은 거대했다.

세상에 숨기지 못하는 진실로 드러나듯 말이다.

그 외에도 인간의 영혼을 재료 삼아 폭발을 일으킨 아주 악질적인 방법을 썼다는 점에서 이놈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나와 정면 승부를 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놈들이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할 방법은 두 가지지.”

내 말에 힐데스노바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첫 번째가 명예실추. 신뢰의 하락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아닌 내 영역 안에 있는 것을 파괴하는 것.”

사이비 이단 심문관의 수장으로 추측되는 여성은 두 가지 계략을 준비 중이다.

숨길 것도 없다는 듯 움직였다.

이단 심문관이 죄 없는 소왕국의 백작가를 잔인하게 참살했다라는 소식이 퍼졌다.

당연히 소왕국은 반발하겠지만 그것만으론 성국을 어찌할 수 없다.

다만.

그게 소왕국 하나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라면?

앞으로 이들은 대륙 전역으로 퍼져 이 난동을 부릴 것이고 이 사태는 곧 수많은 국가가 이 사실에 대해 알게 되며 성국에 정식 항의를 하게 된다는 소리다.

내가 말려도 증거는 이단심문회를 가리키니까. 자칫…….

대륙의 국가들이 성국을 적대국으로 인식. 대륙 연합에 지원하여 성국을 공격하거나 엄청난 페널티를 먹이게 될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번 주먹이 오간 이상 누가 먼저 쳤는지는 그들에게 중요치 않으니까.

당연히 성국이 힘을 잃으면 성국 공인인 대륙의 성자라는 이름도 퇴색된다.

거기에 여러 의미로 문제가 될 수밖에.

“죄송합니다. 당장 도와드린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 봐선 당장 조사대에게 저희 성국의 결백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애매할 땐 했다는 증거보다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게 어 어려 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볼티즈 왕가의 외곽 귀족인 파르네스 백작가.

팔란 제국의 샨디안 자작가.

린디스 제국의 에이리얼 백작가와 샨티스 후작가.

콘타스 제국의 데비아 후작가.

청의 신 가문.

현국의 공 가문 등등.

대륙 각지의 귀족가에서 지금 같은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 먹었네.”

나는 대륙의 정보들을 종합하며 이를 조용히 갈았다.

그리고는 주먹에 핏줄이 돋을 만큼 강하게 틀어쥐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상당수의 국가가 당했다.

이제는 시간문제.

성국이 기간 안에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지 못한다면 이는 엄청난 페널티로 이어질 것이다.

그들의 암중 계략이 서서히 내 발목부터 잠기듯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익명의 서신을 받을 수 있었다.

-쉽게 빠져나갈 생각하지 마라. 대륙의 성자. 네 신성 마법으론 절대 우리의 신앙을 막을 수 없다.

이년 봐라? 어디 신성력으로 한판 해보자고.

“페르. 미안한데. 계획 좀 앞당기자. 바로 시작해야 할 거 같다.

전략이고 신성력의 사용처고 감히 싸움을 걸었다면 절대 피하지 않으리라.

지금처럼 성국에 다수의 국가가 쳐들어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라면 말이다.

성국을 자극하고 내가 나서기도 전에 그 공격 대상을 바꾸어 내가 성국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내가 성국을 방치한다면 성국은 막대한 이미지 실추와 억울하게 뒤집어쓴 누명으로 자칫 전쟁까지 선포 당할 가능성이 높다.

한번 커진 분노와 증오를 머금은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변한다.

시간도 없는 와중에 그놈들을 찾아 박멸한다? 설사 찾아낸다 해도 놈들은 한 개의 불화라도 더 일으키려 들 것이다.

전력보다는 머리를 이용한 치졸한 방식.

나는 인상을 쓴 채 집무실의 책상에 앉아 이를 까득 깨물었다.

“이런 타입이 제일 귀찮은데.”

“저하!! 팔란 제국에서 공식 항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을 말리는 서신은 소용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만 날것이다. 다수의 존재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이번 사건을 대륙에서는 피의 안식일이라 부르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근본이라 추측되는 성국이 이것을 인정. 사정설명을 하고 막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 입을 모아 외쳤다.

그렇게 약 이틀이 더 흘렀을까.

북부 소왕국의 용병들이 가져다줄 소식만 기다리고 있던 내게 소식이 들려왔다.

나흘.

나흘 안에 진상을 규명하지 못한다면 린디스 제국과 팔란 제국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들이 성국 발샤스를 공격한다는 이야기였다.

전쟁 억제? 세계 연합?

인간은 공통의 적이 확실하다고 판단했을 때 멈추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즉.

이 사이비 놈들. 내가 했던 짓을 그대로 갚듯이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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