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5화
[문제. 신검 칼디라스…….]
“오리하르콘”
[통과.]
기계적인 문제가 나오고 얼마 가지 않아 대답이 나온다.
수르트의 미궁은 새 가면의 석상 뒤부터 제대로 된 미궁이 되었다.
미궁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는 미로가 된다는 소리였다.
힌트 따윈 없는 거대한 미궁을 돌파하기 위해서 조사대는 벽면을 함부로 부수면 안 된다고 판단해 긴 실과 우수법이나 좌수법을 이용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부오오오오오!!
이에 조사대는 인원을 분할하여 진입을 시작했다.
미궁 속에선 미노타우로스 형태의 석상 골렘들이 튀어나왔다.
난이도가 제법 높은 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팔란 제국의 기사들이 못 잡을 수준도 아닌 정도였다.
실제로 단순 난이도 자체는 외려 처음 만난 스톤골렘보다 못한 수준.
함정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소드마스터가 둘이나 섞인 지금 상황에 이것은 복잡할 것도 없는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실을 풀며 진입하기를 약 한 시간.
조사대는 미궁의 저편에서 거대한 문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수많은 미노타우로스를 만날 거라 예상한 것과 별개로 생각보다 일이 쉽게 진행되자 외려 조사대는 찝찝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또 문이군요.”
학회장 아인츠 백작이 중얼거리자 간다브가 미리 준비한 아티펙트를 문 앞에 설치한 뒤 마법을 활성화 시켰다.
특수한 함정이 있는지 분석하는 마법 장비였다.
7서클 마법사가 작정하고 만들었다면 저런 건 의미가 없을 텐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이렇다 할 함정은 없었다.
대신 어떤 문구가 보였다.
“여기 문구가 있군요. 잠시 해석해보겠습니다.”
그가 석판에 쓰여진 문자를 천천히 짚으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자여. 그 용기와 지혜에 찬사를 표한다. 이곳은 수르트의 미궁 그 마지막 관문일지니.]
그그그그그그극!!!
거기까지 읽기가 무섭게 벽면에서 멀지 않은 곳의 벽이 갈라지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작업실?”
오래되었으나 먼지 하나 끼지 않은 어떤 작업실이 보였다.
[증명하라. 이곳은 모두의 존경을 받은 야장의 흔적이니. 도전하는 자여, 제단에 손을 올리라. 그대의 기술력으로 만든 최고의 검을 제단에 올려라.]
문제는 그것이 전부였다.
아인츠 백작은 짧게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6개월간 고작 초입을 돌파하는 게 전부였는데. 한 명이 추가되었다고 이렇게 쉽게 뚫려버릴 줄이야…… 허탈할 지경이군요.”
“다행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제국 내에 불손한 세력들 때문에 오래 황궁을 비울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요.”
간다브 경의 첨언에 아인츠 백작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정말 큰 도움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몇 년이 걸렸을지 간담이 서늘하군요.”
실제로 간다브 경과 아인츠 백작이 메인으로 미궁을 돌파했지만, 그들이 놓친 부분.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죄다 내가 짚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이지만 역시 처음에 비하면 난이도가 높다.
“저희들의 할 일은 이제 끝인 듯하군요. 저는 조수들을 데리고 근방을 조사해보겠습니다.”
“나도 마법사들을 데리고 그리하지요.”
간다브 경과 아인츠 백작이 빠져나가고 남은 것은 황실 최고 야장 할파스였다.
“할파스 경. 이제 잘 부탁드립니다.”
“흥. 당연하지. 이제야 내가 나설 때가 온 것이로구먼.”
할파스가 대뜸 다가가 제단에 투박한 손을 올려놓자 빛이 머금어지며 그의 몸에 스며든다.
동시에 옅은 빛이 그를 감돌았다.
“폐하께 받은 은혜를 이제야 갚을 수 있게 됐구먼.”
그렇게 말한 그는 천천히 작업실로 걸어가 그 안에 있는 재료들과 장비들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굉장하군. 가져나갈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그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나는 작업실 내부로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히 함정이나 작업을 방해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집중하게 해주는 묘한 향이 흐른다.
처음엔 접근을 완전히 막은 주제에. 이제는 시험으로 변했다.
즉. 난이도가 [너 나가]. [너 죽어] 에서 [흠. 들어오고 싶으면 시험을 통과해라]로 그 기준이 바뀐 것이다.
그그극…….
묵직한 망치를 질질 끌 듯 들어 올려 이리저리 둘러보던 나는 갑작스레 후다닥 뛰어와 내게서 망치를 빼앗은 할파스 경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겐가! 어서 나가게!”
“나가라고요?”
“그러네. 경험이 부족한 자가 나서면 위험하고 다칠 수 있으니 어서 나가게!”
“어어?”
내 등을 막무가내로 떠민 그가 내게 삿대질을 했다.
“야장일이 쉬워 보이던가?! 조금만 잘못하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네! 게다가 자네가 실력이 어느 정도 있다 할지라도 십수 년 동안 합을 맞춰온 이 녀석들과 같이 작업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러니 어서 방해하지 말고 나가게!”
그의 말에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으우…….”
할파스의 행동에 에반젤린이 뺨을 잔뜩 부풀리며 뭐라 소리치려 했지만 나는 그녀를 대뜸 안아 들었다.
“으앗! 아빠?”
“쉿.”
그리고는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살리반 황제에게 다가갔다.
“데이비 왕자님?”
“아마 이게 마지막 관문일 겁니다.”
“그렇군요. 이 안에 있는 역작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보다. 주변을 좀 조사해봐도 괜찮을까요?”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아뇨. 놓친 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내 말에 그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말씀 주세요.”
“그냥 이렇게 믿어도 됩니까? 숨겨진 뭔가가 있고 그걸 내가 홀라당 먹을 수도 있는데요.”
내 물음에 그는 조용히 나를 직시했다.
“일리나를 위한 뇌물이라 생각하죠.”
하. 이 지독한 동생 바라기.
그는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담이 큰 건지. 생각보다 호구 기질이 있는 건지.
나는 그렇게 에반젤린을 안아 든 채 바닥을 가볍게 굴렀다.
스팡!!
동시에 공간이 변하며 익숙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 가면의 석상이 있는 곳.
조사 대원이 들어갔던 한 짝만 열린 문이 보인다.
조사 대원이 있어야 하건만 운이 좋은 건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봐.”
[…….]
석상은 답하지 않았다.
“깨어있는 거 다 알아. 대답하지?”
또 한차례 공격에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나는 망설임 없이 아공간 안에서 정과 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럼 별수 없이 부수고 가져가 볼까.
[그만!]
결국, 대답할거면서 버티기는.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기는 마나가 멀쩡하게 유동하고 있는데. 내가 그걸 모를까.”
아무리 7서클 마법사가 만들어낸 자아라 해도 그가 한 것은 마나를 불어넣고 자아의 코어가 움직이게 유도한 것뿐일 것이다.
7서클 마법사 수준으론 제대로 된 자아를 만드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수르트와 무슨 관계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 그냥 자아가 아니잖아. 안 그래?”
내 물음에 녀석의 눈이 번뜩였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몰라? 그럼 반대쪽 문. 열어줄래?”
내 말에 그가 움찔거렸다.
“너, 문 반쪽만 열었지.”
처음 새 가면의 석상은 조사대에게 문을 열어줄 때 왼쪽 한쪽만 열어주었다.
[거대한 문을 여는 게 쉬운 줄 아느냐. 헛소리 말고.]
“그럼 비켜봐. 내가 열 테니까.”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가가자 녀석이 창을 들이밀었다.
[도전자여. 왼쪽 문에 너희가 원하는 야장의 역작이 담겨있다. 시험에 통과한다면 가져갈 수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가져가지 못한다. 그뿐이다.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마라.]
“미안한데. 내가 바라는 건 저런 역작 같은 게 아니야. 그건 나도 만들 수 있어.”
[흠…….]
“네 생각 이상으로 나는 수르트와 연관이 많아. 적어도 수르트 사후에도.”
[거짓이 아니군.]
“엘프의 눈? 가지가지 해놨네 진짜. 그 반대쪽 문안에 수르트가 숨기고 싶은 게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게 위험한 거라면 내가 처분할 거다. 그게 수르트와의 약속이야.”
물론 거짓말이다.
반 정도는.
[들어가라.]
한참을 고민했을까.
놈은 결국 반대쪽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각기 문과 똑같이 나누어진 공간이 보였다.
왼쪽 문이 열렸을 때 보인 곳과는 완전히 다른 작은 복도.
에반젤린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나는 말 없이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갔을까.
나는 작은 복도를 기준으로 2열로 나열해있는 수많은 석상기사를 볼 수 있었다.
“흠…….”
다행이라고 할까. 움직이진 않지만, 괜히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아빠. 여기 막 보물 있는 거예요?”
“아니. 보물은 없을 거야.”
보물은 조사 대원이 있는 곳에 있을 것이고.
이곳에 있는 건 수르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것이 위험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이곳에 있는 것을 세상에 알려선 이쪽도 곤란했다.
이윽고 사람 하나 들어갈 법한 작은 나무문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 걸린 락 마법을 디스펠 한 뒤 들어갔다.
“와아…… 책과 보석이…….”
그냥 보석이 아니라 특수가공 처리된 마석들이다.
“와아…… 와아!”
신기한 듯 오래전의 흔적들을 돌아보는 에반젤린을 뒤로한 채 나는 손을 싹싹 비비며 스산하게 웃었다.
무언가를 기록해놓은 책이었다.
그의 기술은 거의 소실되었다.
본래 야장 기술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당연 진화하는 게 맞지만 3천 년 전 마계와의 전쟁으로 어마어마한 기록이 불타고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수르트의 기술에 대한 기록 대부분이 소실되기도 했다.
많은 기술자가 죽고 그 기록이나 비법이 사라진 탓에 3천 년 동안 기술력은 역으로 쇠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수르트는 시대를 넘은 장인이기도 하니까.”
수르트가 숨겨놓은 책을 한 권 들어 펼친 내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첫 번째 장을 펼쳤다.
이거, 단순한 책이 아니라…… 편지를 꽂아놓은 거구나.
자. 그럼 뭘 숨겨놨는지 한번…….
[아아. 루시드여. 그대는 저 위짝에 있는 달의 여신. 내는 그대를 향해 사다리를 기 올라가는 나무꾼. 그대는 어찌하여 루시드인가. 나는 어찌하여 수르트인가! 아아. 아름다운 나의 피앙세. 내 앞을 막아서는 신분의 벽 앞에. 이 오색찬란한 세상은 겉보기와 다르게 참 고달…….]
텁.
그만 알아보자.
“설마. 이 인간.”
나는 홀린 것처럼 쥐고 있던 책을 던져버리고 다른 책을 꺼내 들었다.
[XXX년 XX ]
[망치질하던 중 새로운 힘에 눈을 뜨는 느낌이 든다. 그래. 오른손의 망치와 함께 동화되는 나의 팔은 신께서 감동하여 검은 용을 내려주시는구나. 날뛰지 마라. 검은 용이여. 나의 팔에 봉인된 너를 봉인하는 건 나의 사명이니. 그래. 네 이름을 지어주마. 너의 이름은 태초의 약속에 따라 흑염룡…….]
텁.
“쿱…….”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영상석을 펼쳤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내는 자유다!! 하레스 이 빌어먹을 짝궁둥이 놈!! X벌 그 누구도 날 막을 순 없다!!
반라의 몸으로 숲을 질주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를 말이다.
다른 보석에는 그거 기괴한 웃음을 보이며 쇳덩이를 품에 안고 뺨을 비비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영상도 있었다.
[들어봐레이. 엘리자베스. 루시드가 말이다. 오늘 각방을 쓰자면서 내를 거부했다 이 말이다. 고마 내 사랑이 식은기가? 아아 엘리자베스. 닌 나를 버리지 말그레이!]
철괴가 엘리자베스?
“……아빠…… 이게 뭐야? 무서워…….”
“나도 무섭다.”
내가 지금 뭘 본 것일까.
그것을 보던 중 나는 문득 영상 속에 있는 수르트가 모두 동일한 상황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인간…… 약에 취했구나.”
천재와 싸이코는 종이 한 장 차이라 했던가.
“나야 천재 쪽이지만…… 이 인간은…….”
명백한 싸이코였구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쩌다가 이런 기록들이 남은 건지. 나는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부에 굳게 잠긴 문을 보며 스산하게 웃었다.
“뭐야. 이것보다 더 심한 게 저 안에 있는 거야?”
이것을 수르트에게 보여줬을 때. 이걸 회랑의 영웅들이 봤을 때. 그의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스승님. 제가 곧 찾아갑니다.”
내 입을 틀어막고 싶으면, 상응하는 대가를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