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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42화 (942/1,559)

제 942화

267. 루델라이트

갑작스레 나타난 붉은 머리의 꾀죄죄한 소년과 그 소년을 노리고 모여든 몬스터들.

아니 작은 소년 하나 노리고 몬스터가 이렇게 모여드는 게 가능한가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나는 일단 지켜보았다.

“아빠! 몬스터가!”

“기다려도 될 텐데.”

내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 검을 더 휘두르고 싶어요.”

그녀의 새 대검 트와일라잇.

아무래도 에반젤린은 제 검을 휘두르는 게 굉장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약속하자. 무리하지 말고, 몬스터라도 방심하지 말고 최대한 깔끔하게. 알지?”

“네!”

용족에게 약속은 제법 중요하니까.

아마 자신의 힘에 심취해 흥분한 그녀를 한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으리라.

이윽고 타고 있던 말 위로 일어서듯 몸을 일으킨 그녀가 순식간에 사라지듯 움직이며 소년을 쫓던 몬스터를 향해 육탄 폭격을 가한다.

작은 체구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힘이 근처 지반을 내려앉게 만들며 뒤튼 것이다.

무공에선 천근추를 이용하지만, 티오니스에서는 보통 육체의 중량을 높이는 식으로 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세상에…… 무슨 각력이…….”

“오오…….”

귀환하던 팔란의 조사대원들은 에반젤린의 일격에 몬스터 다수가 곤죽이 되어 튕겨 나가는 걸 보고 놀랐다가 또 한 번 그녀의 검을 보고 놀랐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소드마스터라니…….”

에반젤린이 든 대검. 트와일라잇에 걸린 검붉은 색의 오러 블레이드의 존재가 제대로 실감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익스퍼터도 재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재능이 없는 이들은 평생을 수련해 익스퍼트 초입에 머무르거나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다.

반면 대부분의 기사. 즉 평범한 재능을 지닌 이들은 익스퍼트 최상급까지는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마스터의 벽은 달랐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노화가 멈추고 진짜 초인의 영역에 도달하는 수준.

그것이 바로 마스터라는 존재였다.

게다가 에반젤린은 본인도 모르게 고유의 힘을 사용해 기척을 숨기기도 한다.

실제로 나 또한 에반젤린이 성장한 이후 몇 번이고 녀석을 놓친 적이 있으니 말이다.

보통은 평생을 바쳐도 마스터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게 학교의 점심…… 아니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저렇게 어린 에반젤린이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를 구현해냈으니 마스터 하나만 보고 달리는 기사나 평생을 들여 마스터에 이른 이들의 입장에선 허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초중검]

[태산쪼개기]

콰아아아앙!!

그러거나 말거나. 에반젤린은 몬스터를 일방적으로 찍어누르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말이다.

“재능이 좋은 건 시기의 대상이 되는데. 마냥 좋은 건 아니지…….”

검붉은 검기를 휘날리며 종횡무진하는 에반젤린의 모습은 이전 내가 들었던 몬스터 습격 때와는 달랐다.

마스터의 벽을 넘어서는 것을 넘어 그녀는 한 단계 더 강해진 것이다.

마치…….

“헤라클래스랑 비슷하네…….”

멍한 얼굴로 에반젤린의 무위를 지켜보는 이들을 스윽 훑던 중 내 시선이 붉은 머리의 소년에게 향했다.

그리고 피식 웃어보였다.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한 듯했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은…….

상당한 소유욕.

푸확!!

-끼이이이익!!

트롤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버둥거렸다.

재생력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트롤이지만 에반젤린이 내뿜는 본능적인 피어 때문인지 제대로 재생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부오오오오오!!

-키에에엑!!

이윽고 일행을 습격했던 몬스터들의 기세가 기사들의 합류와 함께 역전되기 시작하자 이내 놈들은 뒤도 보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지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래. 적당히 선은 지켜야지. 선을 넘으면 안 되지.

나는 조용히 웃어 보인 뒤 말에서 내려 폴짝폴짝 뛰어오는 에반젤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칭찬해주었다.

“마스터의 벽. 완전히 넘었구나. 정말 축하한다.”

“헤헤! 아빠가 가르쳐준 덕분인걸요!”

훈련 자체를 굉장히 엄격하게 했었는데 그럼에도 변함없이 따라주는 게 이리 고마울 수가 있을까.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붉은 머리의 소년은 몬스터가 물러간 것을 보고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조사대에게 다가왔다.

“어디서 온 거지? 혼자인가?”

안 그래도 던전 공략 도중 반란군이 습격을 해왔던 참이었다.

그 탓에 예민해져 있던 기사들 중 일부가 소년을 저지했다.

“아…… 아, 저는…….”

우물쭈물하며 중얼거리던 그가 손뼉을 쳤다.

“마법사예요! 용병 마법사죠. 실은 단독 의뢰로 주변을 조사하던 중에 이상한 돌을 채집했는데 그 돌을 보고 몬스터들이 몰려들어서…….”

“돌?”

“네. 아무래도 그게 용의 보석이었던 모양이에요. 이 근방은 용이 살기로 유명한 산맥이니까.”

그 말에 주변이 잠시 고요해졌다.

“푸하하하하하! 이 꼬맹이가 동화책을 너무 많이 봤나 보구만!”

“하하하! 드래곤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가 벌써 몇 년 전인데!”

기사들의 웃음소리에 소년이 멈칫했다.

“네? 그게 무슨…….”

“이봐. 어디 촌구석에서 왔나 본데. 운 좋은 줄 알아. 마을까지 같이 가줄 테니까. 불만 없지?”

“네? 아…… 자, 잠깐만요! 드래곤이 모두 죽었다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수백 년 역사 기록 다 뒤져봐도 멀쩡한 드래곤이 살아난 전례는 없어.”

물론 그 정도면 드래곤은 그냥 전설로 치부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조선왕조만 해도 고작 500년이 아니던가.

50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만큼 까마득히 먼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도 드래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과거 뱀파이어와의 전쟁에서 한차례 마계에 있던 드래곤이 나타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전쟁에서 잠식된 드래곤이 있긴 했지만…… 그건 린디스의 불여우 대공이 해치웠고. 사실상 드래곤은 이 대륙에서 멸종했겠지.”

“그…… 그럴 리가…….”

“헛소리 그만하고 저기 뒤에 마차에 타. 기사들이 길드에서 신원 확인만 하면 풀어줄 테니.”

“이해하라고. 상황이 좀 흉흉해서 확인하는 것뿐이니.”

기사들도 반란분자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하지 않았다.

붉은 머리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루델라이트]라고 했다.

붉은 보석의 이름.

남자의 이름치곤 예쁘장한 편이지만 중요한 건 녀석의 외모에 있었다.

소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옷으로 살짝 가려놓기만 하면 이 녀석을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예쁘장한 걸 넘어서 확실히 발랄하고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이다.

덕분에 몇몇 기사들이 자괴감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에반젤린이 벽을 넘으면서 늘린 대량의 마나를 갈무리할 수 있도록 바로 하인스로 귀환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 주던 나는 곧 근방의 소영지에 도달했을 때 간다브 경에게 말했다.

“간다브 경. 그 문제는 어찌 됩니까?”

“아. 네. 그건…….”

“주변 소리를 물렸으니 이야기해주세요. 일단 당사자니까 어느 정도는 들을 권리가 있겠죠?”

“저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황자는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겠지요. 아마 당분간 팔란 제국 내부에서 피바람이 불 겁니다. 대규모 숙청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남아서 이득 볼 게 없네.”

남의 나라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건 이러나저러나 좋지 않다.

나는 이 이상 팔란 제국에 끼어들기보다 깔끔하게 살리반이 처리하는 쪽을 방관하는 것을 택했다.

“살리반 황제 폐하께 전해주세요.”

“예?”

“뭘 하든 상관없지만 후회할 선택은 내리지 말라고.”

내 충고 아닌 경고에 그는 복잡한 표정을 지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조국의 황제를 향해 이런 말을 하는 인간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물고를 내겠지만 간다브 경은 외려 내게 존경스러운 시선을 보낼 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한데 이제 돌아가십니까?”

“가야죠.”

“하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나 게이트를…….”

“무얼요. 적당히 걸어가면 됩니다.”

내 대답에 그가 허허 웃었다.

그때 일련의 소동 소리가 내 귓가로 들려왔다.

“어허 놓게!”

“아니 스승님!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내 평생을 곁에서 배울 스승을 찾았는데 어찌 그냥 있나! 놓아라. 이놈들아!”

“야 막아! 스승님이 탈주하시면 진짜 난리 난다!”

소동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봇짐을 등에 멘 채 나를 따라오려 드는 이 정신 나간 야장 때문이었다.

황실 최고 야장 할파스 경.

그는 트와일라잇을 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눈물을 흘리더니 급기야 나를 따라오려 들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편이기에 나로서는 인재 영입이 되어서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상도덕이 있지.

현재 하인스 아카데미에 복직 중인 팔란의 소드마스터 올만 경의 경우 사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살리반이 일리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이유를 붙여 장기 복직 명령을 내린 게 사실이다.

“저…… 나으리.”

“음?”

“하인스 영지로 가시나요?”

“그런데?”

그때 붉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루델라이트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하면 저도 합류해도 괜찮을는지요.”

“뭐?”

“제가 이래 봬도 용병이라 자잘한 일을 할 줄 압니다. 다만 길을 잘 모르는 바람에…….”

“굳이 내가 그래야 하나?”

내 물음에 루델라이트는 손사래를 쳤다.

“대신 불침번이나 자잘한 건 전부 제가 다하겠습니다!”

그의 외침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에반젤린과 비슷한 나잇대로 보이는 탓인지 에반젤린이 상당히 그에게 호의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감사합니다! 실은 하인스 영지에 볼일이 있었거든요!”

그의 외침에 간다브 경이 조용히 귀띔을 해주었다.

“실은 신원확인을 해봤습니다만 문제가 없었습니다. 늘 이곳에서 활동하던 소년이라고 하더군요. 실력도 제법이라 합니다.”

용병들이야 수많은 국가들을 오가는 게 일상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뭐. 알겠습니다.”

“이거 놔라!! 이보시오. 데이비 왕자! 내 스승이 되어주오!! 내 발닦개가 되어도 좋으니 혼을 담는 일말의 가르침이라도!!”

마치 이산가족과 분단된 것처럼 처절하게 외치는 그를 보며 간다브가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라면 황궁에 초대해 제대로 대접을 해드려야 하지만…….”

“제국 상태가 이러니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이쪽도 이쪽대로 바쁘니 여기서 물러나겠습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하면 저희는 폐하를 보필하기 위해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팔란 제국의 조사대와 떨어진 나는 에반젤린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저…… 나으…… 아니 왕자님? 여긴 왜…….”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루델라이트를 향해 내가 손을 뻗었다.

“준비해라.”

“네?”

“멀미 좀 심할 거다.”

우우웅!!!!

동시에 내 발을 기준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악!!”

루델라이트의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내 시야가 바뀌었고 이내 하인스 영지의 성 공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웨에에에엑 우웩!”

속에 든 것을 그대로 게워내는 루델라이트를 보며 내가 물었다.

“말했잖아. 멀미 심할 거라고.”

“우욱…… 이게 무슨…….”

“환영한다. 하인스 영지에 온걸.”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을 데리고 들어가던 나를 그가 허겁지겁 뒤따라왔다.

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멈칫했다.

“세상에…….”

하늘에 뜬 거대한 물줄기들. 하인스 영지를 아름다운 마법 도시처럼 보이게 하며 최근 들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게 만든 하늘 수로와 물 구슬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 궁금한 것도 많네. 마치 인간 아닌 것처럼 말이야. 어디 수백 년간 잠이라도 자다 왔나.”

내 말에 그가 움찔거렸다.

“예…… 예? 그게 무슨…….”

“그냥 헛소리야. 하인스 영지 도착했으니 볼일 없지? 갈 길 가자고, 하인스 영지에 온걸 환영한다.”

내 물음에 그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다급히 내게 머리를 숙였다.

“저…… 저를 고용해주십시오! 당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의 외침에 내 표정이 조용히 식었다. 숲속에서 나타난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추격하는 몬스터들.

드래곤의 유희방식이야 여럿 들어봐 알지만 사실 좀 신기한 감이 없잖아 있다.

아직 살아있는 도마뱀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

이놈이 어째서 나를, 아니 정확히는 에반젤린을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보기 힘든 도마뱀이 아닌가!

“좋아.”

“기회만 주신…… 예?”

“따라와. 상세면접은 직접 할 테니까.”

“옙! 그럼…… 우와아악!!”

그때 나를 따라 문을 지나치려던 그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어라 이게 또 고장 났네.”

나는 영주성 곳곳에 비치된 특이한 장치가 달린 문을 툭툭 두드렸다.

“이…… 이게 뭡니까?”

“아 인외의 존재가 인간의 탈을 쓰고 침입할 때를 대비해서 만든 거야. 화력이 좀 강해서 말이지. 그런데 가끔씩 이러더라고.”

내 말에 그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걸 만든 것은 놀랍게도 에반젤린과 하프 뱀파이어 밀피유였다.

사실 잘 쓰지 않는 것이지만 괜히 장난기가 솟으니 써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장비 자체는 온전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역시 화력이 조금 부족한 모양이었다.

“미안하게 됐다. 걱정 마. 채용에는 이일을 참고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줄 테니.”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일이 생각대로 풀렸다 생각했는지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 도마뱀들은 유희를 할 때 아예 하나의 인간을 완전히 흉내 내니까.

저 감정들이 전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나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도마뱀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조만간 정체 까뒤집고 메가로드리아에게 서열정리 한번 하라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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