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4화
단단히 겁을 준 것 치고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루델라이트는 결과적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혹시라도 제 정체를 내가 눈치챈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느낌이었다.
대체 왜?
여기서 들키면 좋은 꼴 못 본다는 걸 들었으면서 왜 저렇게 남아있는 것일까.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녀석보다 더 머리 아픈 것과 씨름 중이었으니 말이다.
바로 가장 피하고 싶었던 석판 해석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이놈의 별자리들에 대해 잘 알아두면 여러 방비를 할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금우궁 같은 경우가 있기에 별자리를 모두 적대시하는 건 미련한 짓이지만 금우궁을 제외한 모든 놈들이 나와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다는 건 확실히 기억했다.
과거 천칭궁을 상대할 때 분명 몬스터를 대량으로 이끈 범인이 존재한다.
그 정도 영향력이라면 드래곤, 혹은 별자리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데 내 생각으론 드래곤 쪽에 가깝다는 게 판단이었다.
“역시. 둥지를 좀 털어먹어야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륀느. 네 생각은 어때.”
륀느는 연산 능력만큼은 엄청난 만큼 뭔가 기발한 방법을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품은 내 시선에 무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이비 님. 농땡이를 륀느가 낮게 평가.”
“닥쳐줄래?”
“드래곤 혹은 별자리의 행각으로 추측. 현재 깨어난 별자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면, 확인이 가능한 것부터 확인할 것을 요청해.”
확인 가능한 것이라.
별자리가 깨어나면 내가 눈치챌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확인할 수 없는 건 엄연히 놈이 자신의 각성을 은폐하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
별자리가 아니라면…….
드래곤의 소행.
지금까지 잘만 퍼질러 자다가 이제 와서? 게다가 멸종했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루델라이트라는 레드 드래곤이 존재하는 이상 멸종설은 루머에 불과하리라.
“데이비 님. 드래곤의 레어를 조사해볼 것을 요청. 드래곤을 만난다면 그에 관한 정보 수집 가능. 그 외에 레어의 보물을 강탈.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약탈하라고?”
“드래곤의 보물 또한 대부분 약탈품.”
맞네. 그 말 맞네.
남의 것을 빼앗는 자. 내 것을 빼앗길 각오도 해야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그런 업은 그리 달갑진 않지만.
죽음의 업도 그러하듯 죽지 않고 빼앗기지 않으면 되리라.
때마침 주인 없는 드래곤 레어가 하나 있긴 하다.
나는 루델라이트 녀석이 건네주고 간 드래곤에 관한 간략한 정보가 쓰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주인 없는 드래곤 레어.”
내 입가에서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너 말대로 해보자. 에반젤린을 좀 데려 와줄래?”
“소풍?”
“그래. 둥지 구경 간다.”
내 말에 륀느가 눈을 번뜩였다.
“드래곤 레어. 매우 이색적인 미각 데이터에 관한 것들이 있으리라 판단. 륀느가 이것을 높게 평가.”
“누가 보면 널 굶긴 줄 알겠네.”
생체 골렘인 녀석이 먹을 것을 밝히는 건 대륙 최고 수준이 아닌가.
드래곤 레어를 털어먹는다는 사실이 흥미로운지 륀느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맨발로 도도도 뛰어 사라졌다.
그리고, 에반젤린을 금세 내 앞에 데려왔다.
청단이 홍단이 때도 그랬지만 다리안이나 에반젤린 또한 어릴 때부터 륀느를 참 잘 따랐다.
이상하게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스타일이 바로 저런 케이스 이리라.
내가 볼 땐 그냥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잡아당겨도 전혀 화내지 않고 체격도 워낙에 작아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애들처럼 키가 너무 작아서 인기가 많은 건가.”
“데이비 님 륀느의 감정회로가 매우 빠르게 가열 중 이것을 극대노라고 명시해.”
당장이라도 내게 미사일 드롭킥을 꽂아 넣으려는 지 녀석이 몸을 웅크렸다.
“아. 입 밖으로 나갔냐”
“…….”
륀느가 무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은 흡사 이 새끼를 어떻게 조져버릴 순 없을까 라는 느낌이었다.
다만 변수가 있었다. 어디서 소식을 주워들은 것일까.
루델라이트 녀석이 호위 마법사를 핑계로 에반젤린을 구워삶았는지 제대로 달라붙었다.
“넌 왜.”
“아…… 저 그게. 드래곤 레어를 찾아가신다고…….”
“그래. 팔란 제국 쪽에 수르트의 미궁이 있거든, 그곳에서 레어를 하나 발견한 거 같아서, 관심 있나?”
내 물음에 녀석이 우물쭈물한다.
저 저 표정 봐라.
안색이 창백해지는 녀석을 보며 나는 그 강화 샌드웜의 주인이 이 녀석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저는 드래곤에 관한 연구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걸요.”
“그게 아닌 거 같은데……”
내 중얼거림에 녀석이 흠칫 떨었다.
머릿속으론 혹시 자신의 정체가 들킨 게 아닌가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혹시 에반젤린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흡…….”
“뭐. 상관은 없는데. 아비 입장에선 상관이 있을지도 몰라서.”
“아…… 아닙니다! 아가씨께 감히 제가 어떻게…….”
“맞아요! 루델은 제 친구인걸요!”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에반젤린의 대답에 그는 안도의 한숨과 자존심이 박살 나는 심정을 동시에 겪는 듯 보였다.
* * *
드래곤의 레어.
사실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한다.
게다가 이곳은 엄연히 팔란 제국의 영토.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들쑤시고 다니다간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소리 없이 슬쩍 들어가서 털어먹고 나오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굉장히 고까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 내가 드래곤의 레어에 가서 털어먹을 건 사실상 없었다.
‘게다가 온전한 드래곤 레어가 발견되면 여러 파문이 생길 테니…….’
그뿐이 아니었다.
현재 팔란 제국은 내부의 반란 분자를 잡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 이만한 기회도 없다.
인성 나쁘다고 욕하라면 하라지.
어차피 발견해도 문제고 그냥 놔둬도 발견 못 할 거. 내가 살짝 가본다는데.
워프 마법을 이용해 수르트의 미궁에 이른 나는 조사대가 아직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저…… 그런데 이곳은 왜…….”
인비져빌리티 마법을 통해 투명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안절부절못하던 루델라이트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녀석은 확실히 내게 두려움을 품었다.
보통 유희를 하는 드래곤은 정말 자신이 그 인간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녀석은 지금 그런 컨셉 따윈 던져버릴 만큼 표정이 복잡했다.
그럴 수밖에.
내가 찾고 있는 곳이 바로 녀석의 집인데 어찌 불안하지 않을까.
“여긴 아무리 봐도 드래곤 레어가 있는 곳이 아닐 거 같습니다.”
“왜?”
“우선 저길 보세요.”
그가 손가락을 뻗었다.
“주변 지형을 보면 레어가 들어가기엔 그리 적합한 구릉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하를 잡으려 해도 지반이 상당히 약해서 레어가 갑자기 무너질 가능성이 크기에…….”
이 새끼 말이 많네.
“따라오기나 해.”
어떻게든 내 시선을 여기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쓰는 듯 보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자 녀석이 속이 타는지 결국 무리수를 뒀다.
“실은 제게 드래곤에 관한 지식을 전해주신 스승께서 오래전 발견하신 드래곤 레어로 추정되는 장소가 있습니다. 위치는 동부대륙의…….”
“그래? 그거 흥미 돋는데.”
“그럼 그곳으로 바로 가실까요? 제가 안내하겠…….”
“그건 다음에 가고. 일단 여기부터.”
“저…… 저하!”
비명을 애써 참으며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겁날 수밖에. 지금 제 집 빈집털이 당하게 생겼는데 속이 안 타고 배기나.
그렇다고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걸 밝혔다간…….
그도 그렇게 멍청한 존재는 아니었다.
“드래곤이 있으면 좋겠는데.”
소리 없이 조사대를 지나쳐 수르트의 마지막 방에 이른 나는 강화 샌드웜이 튀어나왔던 구멍으로 에반젤린을 안아 든 채 뛰어내렸다.
“저…… 저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냥 샌드웜의 둥지……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륀느가 루델라이트의 뒷덜미를 낚아채 뛰어내렸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샌드웜의 통로일 뿐이며, 이곳은 놈의 둥지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나타났던 샌드웜 말이다. 그냥 샌드웜이면 너 말대로 그냥 땅속을 오가는 놈일 거다.”
내 말에 루델라이트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근데 말이야. 보통 샌드웜은 화강암을 뚫고 돌아다니진 않아.”
“…….”
“게다가 말이다. 에반젤린?”
“네?”
“샌드웜을 상대해보니 어떻든?”
“단단했어요.”
단순한 답변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변종 샌드웜도 그렇게 단단해지지 않아. 그런데 자연 샌드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피하는 모양새였다.
속으로 아주 그 샌드웜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으리라.
“그러니까. 이놈은 만들어진 생명체. 내가 아는 한 키메라를 그렇게 만드는 존재는 도마뱀뿐이야. 즉, 이놈이 온 통로를 그대로 따라가면 곧바로 드래곤 레어 직행이란 말이지.”
“으우…… 어두워…….”
캄캄한 통로를 횃불 하나에 의존하고 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에반젤린. 야안은 가르쳐줬잖아.”
내 말에 륀느가 자신을 보라고 말하듯 눈을 푸르게 빛낸다.
이에 에반젤린은 눈을 천천히 감았고, 이내 특유의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안처럼 완벽하게 어둠을 볼 순 없지만 저렇게 안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야 확보를 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니까.
“앗! 잘 보인다!”
신이 난 듯 주변을 둘러보던 에반젤린이 방방 뛰다가 발이 걸려 넘어진다.
이에 루델라이트가 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으으…… 고마워. 루델.”
“괜찮아요.”
“넌 앞이 잘 보이나 보다?”
“네?”
“신기하네. 보통 마법사치고는 아는 것도 많고, 마법 숙련도도 그렇고…….”
내 중얼거림에 녀석이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요…… 용병 마법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혀야 하니까요. 아하하하하!”
“진짜로?”
“네! 정말입니다!”
“흠…….”
어색하게 웃는 녀석의 표정은 점점 검게 죽어가고 있었다.
본인도 모르게 안력을 강화하긴 했지만. 저건 서클을 떠나서 굉장히 정교한 숙련도를 요구한다. 6서클 마법사 주제에 저걸 못하는 인간도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가능한 것은 3서클부터 가능하지만. 보통 용병이 저게 가능한가.
라이트 마법을 쓰고 말지.
즉. 이놈은 방금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물론, 내가 놈의 정체를 모를 리 없으니 의미 없는 짓이지만. 결국은 놀릴 거리가 생겨서 즐겁다는 점이 달랐다.
“하…… 하지만 드래곤 레어를 여기서 찾기도 어렵습니다. 실제로 미로같이 얽혀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루델라이트.”
“네?”
“그 입 좀…… 닥치면 안 되나?”
“…….”
이놈 이거 자꾸 귀찮게 구네.
그렇다면 슬슬 차단을 좀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상하네. 마치 내가 여길 못 오게 하려는 것처럼 말이야.”
“…….”
“너 말이야. 4서클 마법사치고 유별나게 실력이 좋고, 지식도 많고 말이야. 특히 여러 요소가 의심스러워.”
“딸꾹! 무…… 무슨 소리를.”
딸꾹질에 이어 바람이 빠지는 듯한 목소리로 그가 당황하여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겁을 먹었나 보다.
마나의 양이 무력의 총평이 되진 않지만, 그것도 적당히 차이가 나야지 그가 느낀 마나 양이면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너 혹시…… 드래곤이냐?”
내 물음에 그가 굳어버렸다.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륀느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번뜩이며 영상을 저장한다.
“그…… 그 무슨…….”
“아니지? 하긴 그럴 리가 없지. 드래곤이 이렇게 허접할 리가 없지.”
“아하하하 그렇죠! 저 같은 팔푼이가 드래곤이라니 말도 안 되죠! 드래곤은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종족인걸요!”
“그럼 좀 닥치고 따라와.”
나는 허공에 마나를 흩뿌린 뒤 그대로 걸어갔다.
“대답부터 해주자면 드래곤은 마법 생물이야.”
“네? 네. 그렇죠.”
“제 레어에 어떤 방어마법도 안 걸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요?”
“그 흔적을 쫓으면 돼.”
내 말에 그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그…… 그런 터무니없는 추적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응. 돼.”
“어떻게요?!”
“열심히. 잘. 노력해서.”
내 성의 없는 대답에 그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표정을 지으며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그의 우려대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앙큼한 샌드웜이 뚫어놓은 길 끝에서 거대한 레어의 벽이라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다.
콰아앙!!
아무렇지도 않게 방어마법을 깨버리고 벽을 뚫어버린 나는 곧 신묘한 공간을 발견했다.
도저히 자연경관이라곤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지하 공동.
최상급 발광석들이 반짝거리며 레어 안을 환하게 비추고 고급스러운 물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당첨이네. 레드 드래곤의 둥지인가? 불의 정령이 많구만.”
“…….”
이젠 놀랄 기운도 없다는 듯 그가 나를 따라왔다.
설마 유희를 나와서 자신이 모신 주인이 자기 레어를 털 거라곤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놈이 유희를 끝내고 현신한다 할지라도.
바뀌는 건 없다.
-침입자…… 침입자. 제거한다. 제…….
“가…… 가디언!! 조심하세요! 저하 드래곤의 가디언은 정말 위험합니다!! 마법은 통하지도 않고 오러 블레이드도 먹히지 않아요! 당장 후퇴한 뒤에 다시 나중에 오시는 게!!”
콰직!!!!
“되는데?”
오러 블레이드를 끌어내 순식간에 골렘을 동강 내버린 에반젤린이나 맨주먹에 마나를 얇게 깐 뒤 골렘을 때려 부숴버리는 나를 보며 그가 입을 다물었다.
“대…… 대단하네요! 역시 저하십니다! 그럼 제가 드래곤의 보물창고를 찾아서 안내해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주세요. 드래곤의 레어는 여러 함정들이 있으니 함부로 움직였다간 보물고가 모조리 매장되는…….”
“보석에 미친 도마뱀이 그런 짓을 한다고? 빼앗기면 되찾아오지 그런 짓을 할 놈들이 아니야.”
미안하지만 드래곤의 습성 정도는 이미 나도 자알~ 알고 있다.
나는 녀석의 필사적인 저지를 무시한 채 벽면으로 위장된 문을 가볍게 밀어 열었다.
“라…… 락마법이 걸려있을 텐데…….”
락마법이 걸려있긴 하지만…….
“디스펠은 뒀다가 어디다 써먹을래. 스튜 해 먹을 거냐?”
“……드래곤의 마법인데요?”
“그래 봐야 드래곤이지.”
“8서클이 넘을 텐데요?”
“허접하네.”
내 말에 녀석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드래곤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이리라.
나를 뒤따라오던 그가 손톱을 잘게 물어뜯었다.
표정은 초조해 보이기 그지없지만 내가 그의 그런 표정을 봤다는 것조차 그는 인지하지 못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것이다.
드래곤에게 보물은 그야말로 목숨과도 같은 수집품이다.
주인이 없는 드래곤 레어이니 그걸 털어간다 하면 누가 막을 존재도 없다.
가디언?
방금 전 모조리 박살 나버리지 않았던가.
루델라이트의 입장에선 아주 잠깐이라도 나를 멈춰 세우고 자신이 먼저 진입하면 된다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자신의 보물을 지킬 텐데. 내가 틈을 안 주니 속으로 아주 미쳐 펄쩍 뛸 수밖에.
이윽고 보물고를 찾아 문을 연 내가 그 안에 쌓인 것들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와. 이건 대박이다.”
“와아! 반짝반짝!”
“에반젤린! 다 챙기자! 아공간 주머니 꺼내!”
“네 아빠!!”
“드래곤이 돌아오면…….”
“돌아오면 드래곤도 포획해서 돌아가야지. 그런데 보니까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보물만 챙겨가는 거야. 참 자비롭지 않냐.”
내 미소에 루델라이트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자신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나와 맞설 것인가.
아니면 입 다물고 목숨을 보전할 것인가.
그에겐 아무래도 큰 고행이었던 모양이다.
나를 말릴 어떤 변명거리도 찾지 못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녀석을 무시한 채 보물을 훑어보던 나는 문득 보물 사이에 끼인 어떤 마법서를 보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건…….”
책의 표지엔 그렇게 쓰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