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5화
[변이 마법에 대한 고찰. 저자 세상에서 제일 멋진 레드 드래곤의 쾌남아]
“뭐야 이건. 변이마법에 대한 고찰? 뭔데 이건 여기…… 오호라.”
데이비가 흥미롭다는 듯 마법서를 들여다본다.
“꼴에 드래곤이라고. 주워들은 건 있나 보네.”
아드득…… 빠드드득.
“근데 뭐야 이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취향이 왜 이래. 가슴 커지는 마법?”
그 한마디에 륀느의 눈이 번뜩인다.
“이건 또 뭐야 예쁜 각선미 만드는 마법? 이거 순 변태 새끼 아니야. 여기 레어의 주인이 쓴 글이면 이건 확실하다. 상종 못 할 상변태 자식이야. 만나면 그 자리에서 불태워버려야겠다.”
아드드득 까득.
“그런데 아까부터 뭐 부서지는 소리 안 들리나?”
“네? 저는 잘…….”
주변이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던 에반젤린이 답한다.
“그…… 그러게요. 저도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어색하게 웃으며 루델라이트가 허허 웃어보였다.
‘빌어먹을! 망할! 대체 어떻게 찾아내는 거야!’
드래곤의 방어마법이 레어에 깔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걸 수 킬로미터 바깥에서 추적하는 것도 기가 막히는데 그걸 당연하게 찾아내는 이 인간은 대체…….
‘이대로 가다간 레어가 모조리 털린다!’
다행히 자신의 마나를 필사적으로 억누른 탓에 폴리모프는 들키지 않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가!!
당장 피 같은 보물이 모조리 저 악귀에게 털리게 생겼는데!!
문제는 당장 이것을 도와줄 이도 없거니와 변명거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문득 이 인간이 굉장히 장비가 협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다 챙겨가긴 힘들겠네요. 주인 없는 레어 같은데 일단 몇 개만 챙겨간 다음에…….”
벗어나는 순간 이곳에 돌아와 모든 보물을 빼돌리리라!
내가 구해줄게! 얘들아 조금만 참으렴!
“아공간에 넣으면 돼. 다 들어가고도 한참 남아.
미안하다!!!!!
피눈물을 삼킨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래! 여기 보물은 괜찮다! 미련 없이 포기하자! 하지만 숨겨진 보물고는 아직 들키지 않았으니…….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피눈물을 삼켰다.
덤빌까? 개도 자기 집에선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데 드래곤쯤이야.
문제는…….
‘그때 느낀 마나는 너무 무거웠다. 그 정도 마나를 품으면서 전투능력이 없을 순 없어. 비록 마나량이 전투력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 양이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많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 정도 마나를 보유하고 있다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압박시켜 죽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선다.
제발…… 제발 발견하지 마라…….
이 악마 같은 인간은 레어의 보물이란 보물은 이미 싹 쓸어 아공간에 담았다.
아주 쓸어 담듯 아공간에 보물들을 담아가는 저 악랄한 인간의 행동거지에 루델라이트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괘, 괜찮아. 숨겨진 보물고만 무사하다면…….
“여기 또 뭐가 있는 거 같은데.”
“예 그…… 그냥 조각상인 거 같은데요?”
“나중에 알게 될거다. 뭐, 나름대로 숨기긴 한 모양인데.”
“디스펠.”
짤막하게 마나가 요동친다.
‘디스펠?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의 용언으로 만들어진 보호 마법을…….’
와장창!!!
순식간에 장막이 박살 나고 조각상을 건드리는 데이비를 보며 그가 굳은 얼굴을 했다.
그리고, 서서히 조각상이 움직이며 문이 열렸을 때.
그 내부로 걸어 들어간 데이비가 무언가 행동을 취했을 때.
루델라이트는 저도 모르게 동공을 세로로 찢으며 눈을 부릅떴다.
* * *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내부의 창고는 엉망진창이었다.
“이게 무슨…….”
“누가 선객이 있었나 본데?”
“…….”
나는 조용히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루델라이트 녀석이 한 건 아닌 듯 보였다.
녀석은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이곳에 모인 멤버 중 그를 제외한 셋 모두가 그를 모를 수가 없다.
에반젤린은 그냥 드래곤도 아닌 드래곤 이상의 존재. 고대룡의 존재인 만큼 그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것을 느꼈고, 륀느 또한 맹탕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도 세피로스 종족의 왕이었다.
생체 골렘화 해도 세피로스의 힘을 각성한 이상 어지간한 진실을 바라보는 데엔 무리가 없으리라.
오죽하면 하프 뱀파이어 밀피유조차 발견했겠는가.
‘생각해보니 밀피유 그 여자 진짜 신기하네. 그냥 일반 상급 뱀파이어인데……’
그 정도 수준이면 드래곤에 감히 비빌 수 없건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루델라이트의 정체를 바라보았다.
“젠장 하나도 없네.”
“흔적을 보니 털어간 지 얼마 안 됐어요. 게다가……”
“그래. 파괴 흔적도 없으니 두 가지 중 하나야. 레어의 주인이 다 가져갔던가.”
아니면…….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들어와서 가져갔던가…… 확률은 전자에 가깝겠죠.”
“그래 보여?”
“네…… 네? 아, 아니 저는 그저 그냥 보이는 대로 이야기하는 거라.”
루델라이트가 황급히 말을 돌리지만 나는 구태여 신경 쓰지 않았다.
놀리는 맛이 제법이거든.
“내가 볼 때 후자에 가까운데.”
“후자요?”
“그래. 어떤 망할 도마뱀이 내가 입찰해놓은 보물에 상회 입찰해?”
스산한 분위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에반젤린.”
“네?”
“오늘 용 고기 한번 먹자.”
내 것을 빼앗아 간 죄는 크다. 빌어먹을 냉기 마나를 두른 용가리야.
애초에 이곳의 물건이 루델라이트의 것이라고? 알 게 뭐야. 저놈의 물건이 내 것이고 내 물건이 내 것인 것을.
이 망할 용은 제 딴엔 확실히 도망쳤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곳에 어떤 놈이 왔는지의 흔적은 남겼다.
물론 이곳에 남은 잔향만으로 쫓기엔 그래도 용의주도했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쫓을 수 없다만…….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나는 조용히 마나석 하나를 꺼내든 뒤 아주 옅게 남은 냉기 마나의 잔향을 담아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어디 가세요?”
“세계수 할머니 보러 가자.”
니들이 오래 살아봐야 세계수 알보다 오래 살았겠냐.
* * *
“할머니라니. 그 주둥아리를 으깨버리고 싶다만 깡패같이 강하니 참는다.”
다리를 꼰 채 나무에 걸터앉은 아름다운 여인이 인상을 곱게 찡그렸다.
“그래요. 뭐.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에반젤린 인사드려.”
내 말에 에반젤린이 귀엽게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오…….”
“그래. 에반젤린. 오랜만이로구나.”
“저를 잘 아시나요?”
“그럼, 네가 태어나고 저놈이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모를 게다.”
“이거나 좀 봐주세요.”
내 말에 그녀가 마나석을 받아든 뒤 눈을 가늘게 떴다.
“……블루드래곤의 마나구나. 이걸 어디서 구했느냐?”
“드래곤 레어에서 찾았습니다. 이 새끼가 내가 입찰해놓은 보물을 상회 입찰해서 싹 쓸어갔어요.”
내 말에 세계수 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언제부터 네 것이었는데.”
“레어 들어간 그 순간부터.”
“후우…… 약탈꾼 놈…… 일단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는 녀석이긴 하구나.”
“그 새끼.”
“…….”
“어디 있습니까.”
세계수의 눈이라면 드래곤 레어 정도는 알겠지.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용족과의 약속 때문에 말해줄 순 없다.”
“아놔. 약속은 무슨 약속.”
“네가 이상한 것이다. 이 정도의 영혼들은 약속하나에 걸리는 게 크다는 걸 모르지 않겠지.”
말해줄 수 없다는 알의 대답에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 없어요?”
“글쎄.”
이러면 루델라이트 놈을 잡아 뜯어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였다.
“하나 있구나.”
그녀가 씨익 웃었다.
“드래곤이 직접 찾아오는 경우.”
쾅!!
“세계수!! 가지 하나 달라니까!”
그 말과 함께 세계수 알이 머무는 이공간에 대뜸 찾아온 짧은 푸른 머리의 청년이 나타났다.
“…….”
침묵이 감돈다.
“저놈이구나. 마침 귀찮았는데 잘 됐다. 잠에서 깨더니 아주 귀찮기 그지없구나.”
그녀의 말에 나는 손가락 마디를 뚜둑 소리 내듯 꺾으며 빙그레 웃었다.
“알. 여기 날뛸 곳 있어요?”
“마침 성지의 북쪽에 몬스터가 날뛴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서 정리나 해주거라. 네가 신목의 성지의 권한을 대부분 빼앗아갔으니 그 정도 뒤처리는 해줘야지.”
엘프가 괜히 여러 왕국과 엮여서 복잡해지지 말라고 빼앗긴 했다만. 이쯤 되면 뒤치다꺼리하는 시종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반납하면 안 될까요.”
“어림도 없는 소리.”
[알]은 아주 이 상황을 알차게 굴려 먹을 생각인 듯 보였다.
“응? 뭐야. 인간이 왜 여기에 있어. 세계수. 여기에 아무나 들어올…….”
팍!!
나의 존재를 눈치채자마자 대뜸 물어오는 놈의 멱살을 잡는데 든 시간은 초 단위로 새기에도 민망했다.
스팡!!!
동시에 내 신형에서 마나가 흩어져 나오며 놈과 에반젤린을 포함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츠츳…… 츠츠츠츳!!!
거대한 창공의 공간이 찢어지며 일그러졌다.
츠팡!!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빠르게 팽창했고, 이내 다시 수축하며 빛을 터트린 뒤 세 명의 인영을 불러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한때 신목의 성지와 전쟁을 하면서 와본 적이 있던 북쪽 숲이었다.
물론, 말이 숲이지 거의 평원에 가까운 지형이기도 했다.
멋대로 날뛰면 지형이 파괴되고 이래저래 볼만한 상황이 펼쳐지겠지만 알이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은 아마 내가 문제없이 상황을 끝낼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리라.
휘리리릭!! 쩌어어엉!!
푸른 머리칼의 사내를 붙잡고 공간을 뛰어넘은 채 천천히 하강하던 나는 갑자기 파고든 팔을 가볍게 쳐냈다.
하지만 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몸을 비틀더니 나를 걷어차듯 밀어낸 뒤 허공에 떠올랐다.
[인간. 죽고 싶으냐?]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용한 성량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죽고 싶으냐고.”
[내가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허공에 떠오른 채 눈을 푸르게 빛내며 그가 마나에 휩싸인다.
[하찮은 미물 따위가! 감히 나와 눈을 마주치려 들다니 분수를 알아라. 미천한 미물이여.]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처 잠들어있더니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느낌이 다분하다.
“아빠.”
천천히 지상에 착지한 에반젤린이 움직이려 하자 나는 그녀를 막아섰다.
“안돼. 지금은 다쳐.”
내 말에 에반젤린이 뺨을 부풀렸다.
아무리 에반젤린이 고대룡이라도 아직 드래곤과 싸우기엔 무리가 있다.
“우선, 모른 채 맞으면 억울할 테니까 하나하나 다 말해줄게. 나는 너를 쫓아서 왔고, 네가 빌어먹을 내 보물을 싹쓸이해간 것을 항의할 생각이다.”
[뭐라?]
“네가 누군지 관심 없고, 네가 얼마나 강하던 그것 또한 관심 없는데.”
그의 반응이 어떻듯 나는 내 할 말만을 내뱉었다.
“새끼가 상도덕이 있지 남의 물건에 손을 대?”
내 말에 놈이 허공에 떠오른 채로 양손에 푸른 화염을 피워올렸다.
8서클 마법 프로메테우스.
[하찮은 미물이 감히 세계수와 안면이 있다고 겁이 없구나! 내 오늘 너를…….]
“됐고.”
짧게 그의 말을 끊어버린 내가 허공에 뜬 그를 향해 팔을 들어 올렸다.
[8서클]
[프로메테우스]
화르르륵!!
콰아앙!!!
선빵필승이라고, 그의 말을 개무시한 채 그대로 마법을 쏟아부었다.
순식간에 8서클 마법 프로메테우스에 적중당한 놈이 연기에 휩싸인다.
“도둑놈은 매가 약이지.”
“데이비 님. 데이비 님도 마찬가지로 약탈자. 게다가 자기합리화가 경악스러운 수준, 더욱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륀느의 딴죽에 나는 괜히 찔리는 기분을 애써 무시했다.
“시끄러워.”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곧 연기가 걷히고 나타난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150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체구. 길이는 300미터는 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존재.
푸른 비늘과 얼음 같은 뿔. 뭉툭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발까지.
놈의 세로로 찢어진 파충류 동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에 절게 만들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같잖은 흉내로 마법을 구현하는 것과 마법의 종주가 가진 진짜 마법의 격차를 보여주마. 운 좋은 줄 알아라. 미물. 네놈이 세계수와 친분이 있는 게 아니었다면 당장에 죽였을 것이다.]
이미 드래곤이라는 거 알고 있으니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놈은 현신한 채로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놈의 입으로 냉기의 기운이 모여든다.
드래곤의 전유물. 파괴의 상징.
바로 브레스였다.
브레스는 마법이면서도 마법이 아닌 것.
바로 마법의 시초가 되는 용언 마법이다.
그리고, 그런 놈을 보며 나도 입을 작게 벌렸다.
“야 너도? 나도.”
과거 이클립스에게서 빼앗았던 고대룡의 용언이 움직인다.
지금이야 가장 말단에 있는 힘이지만 그거야 서열 관계일 뿐이고.
실제로 힘의 위력만 따지면 당연히 마왕의 권능 이상으로 막대한 힘에 해당한다.
이거 다루는데 무려 2년이나 걸렸다는 점만 봐도…….
나는 그대로 벌린 입에 검은 기운을 모았다.
그리고.
[무슨?!]
바닥을 단단하게 지탱하기가 무섭게 내 입에서 수십 미터 두께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검은 브레스가 놈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어마어마한 반발력이 터져 나오며 주변에 엄청난 풍압이 일어났고, 지반을 지탱한 내 발이 대지를 일그러뜨렸다.
브레스가 드래곤의 전유물이라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다. 브레스 자체가 용언 마법이니까. 용언을 쓰는 드래곤을 제외하곤 사용하지 못하는 게 맞다.
하지만. 다른 존재라도 용언을 쓸 수 있다면?
한차례 고대룡에게서 용언의 힘을 뜯어먹은 전적이 있다면?
갑작스런 브레스에 놈이 거대한 두 쌍의 날개를 펄럭여 몸을 비틀 듯 피해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뒤 눈을 부릅떴다.
브레스가 닿은 하늘이.
찢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조용히 침묵한 채 허공에 떠 있던 빙룡이 천천히 그리고 뻑뻑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묻는다.
[저…… 혹시 블랙 드래곤 장로님이십니까?]
“장로는 얼어 뒤질. 한 번 더 간다!”
입가에 검은 입자가 모여든다.
동시에 녀석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인간이라고?! 말도 안 돼!! 워…… 워프!!]
황급히 전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녀석을 향해 나는 브레스를 모으다 말고 손을 뻗었다.
“가긴 어디를 가. 뱉을 건 뱉고 가셔야지. 륀느. 솥단지 불붙여라, 간만에 몸보신 좀 하자. 드래곤의 육질이 정력에 그렇게 좋다더라.”
일리나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기 시작하던데. 다리안 동생을 만들어줄 때도 됐다.
입가에서 스산한 웃음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