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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52화 (952/1,559)

제 952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유치장에 갇힌 채 앉아있던 마린과 사파이어는 벙찐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들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밝혔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제법이긴 하지만 드래곤의 입장에선 어차피 미물에 불과한 인간.

하지만 지금 그들은 드래곤이 아닌 인간으로서 조용히 나타나 루델과 접촉하려던 것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파장을 쏘아 보낸 것까진 좋은데…….

“아버지. 어떻게 파장을 느끼는 존재가 용족 이외에 있을 수가 있죠?”

사파이어의 질문에 마린은 조용히 침묵했다.

“거 좀 조용히 하시우. 계속 떠들면 더 오래 있을 테니!!”

“뭐야!”

참다못한 사파이어가 벌떡 일어나 뭐라 외치려던 찰나.

“소란 피우지 마라.”

그들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붉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늘씬한 체격을 가진 청년.

바로 루델라이트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린 님.”

그의 말에 마린 장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잉? 마법사께서 알고 있는 사람이었수?”

“예. 미안하지만 이들을 풀어줄 수 있습니까?”

“뭐…… 큰 사고가 터진 것도 아니고 사실상 피해도 거의 없었으니.”

그렇게 말하며 경비병이 열쇠를 가지고 철창을 열었다.

“나오세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루델라이트…… 너 진짜 루델이냐?”

사파이어는 꽤 장난기 가득하던 루델라이트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가 루델이지 누가 루델이냐.”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맞는 거 같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따라와. 왜 이곳에 왔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니까.”

그렇게 말하며 루델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 * *

루델이 배정받은 개인 마법 연구실에 도달한 사파이어와 마린은 주변에 깔린 수많은 마법서들과 마법진이 그려진 용지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대접해드릴 게 이런 것뿐입니다. 송구합니다. 마린 장로님.”

“신수가 훤해 보이는구나. 수면기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더냐?”

“예. 그렇군요. 다른 장로님들께서도 잘 계십니까.”

“그래…….”

마린 장로는 루델의 미래를 알기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똑똑.

“루델 님. 저하께서 찾으…… 아 손님이 계셨네요.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금방 찾아뵌다고 전해주세요.”

“예.”

담담하게 돌아서는 수인족 시녀를 뒤로한 채 루델을 보던 마린이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예.”

“그래. 네 녀석은 예전부터 유희를 할 땐 진심을 많이 담았지.”

“기억해주시네요.”

“네가 날갯짓 연습을 할 때부터 봐왔으니까.”

쓰게 중얼거린 그가 차를 마셨다.

“음. 이 차는 정말 맛있구나. 무엇인고?”

“아. 그건 엘프 수장인 유리아 헬리샤나 양이 만든 특제 차입니다.”

“엘프가? 호오. 그렇군. 재료는…….”

“귀뚜라미 날개를 우려낸…….”

푸웁!!

사파이어와 마린이 동시에 차를 뿜었다.

“쿨럭…… 쿨럭쿨럭…… 그 엘프 거참 독특하구나…….”

“뭐 맛은 좋으니까요.”

잠시간의 침묵이 있었다.

“왜 하필 유희를 잡아도 이런 곳에 왔는지 쯧…….”

“사파이어.”

짧게 사파이어의 말을 끊은 마린 장로가 조용히 루델을 바라보았다.

“타락용이 알라시스 대륙에서 대규모로 이동해오기 시작했다.”

“…….”

“아마 내전을 끝장내기 위해서겠지.”

“저희 쪽 전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리 좋지 않다. 전투가 가능한 성룡급은 너를 포함해도 다섯이 채 되지 않아. 장로는 셋. 로드께서는 아직까지 눈을 뜨지 못하고 계신다.”

그 말에 루델이 짧게 혀를 찼다.

“봉인을 한 당사자가 봉인 당한 이들보다 더 오랫동안 잠들 줄 몰랐네요.”

“어허. 로드께 그 무슨 불경한 말이냐. 게다가 네 어머니…….”

“제 어머니는 없습니다. 그런 건 몰라요.”

담담하게 말한 루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로님께선 제가 용의 둥지로 돌아오길 바라시는군요.”

“그렇다. 얼마 전 타락용 내에서 성룡급 다섯이 너를 찾아 이곳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벌써 거기까지 알려졌습니까?”

루델의 물음에 마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은밀하게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블랙 일족의 카르엘라를 필두로 다섯이 장로들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으로 움직인 모양이더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곳은 위험하다. 나를 따라오거라. 둥지라면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다. 물론, 난 의식을 거행하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희생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지.”

마린의 말에 루델이 입을 꾹 다물었다.

희생은 약속이었다.

처음은 동생이었고, 이번엔 자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시초용의 흔적을 심장에 품고 태어난 루델라이트와 그 여동생 루비라이트는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희생을 치렀다.

처음엔 동생이 죽었고, 이번엔 그의 차례가 된 것이다.

온건파의 힘이 강했다면 희생 따위 필요 없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과격파, 즉 타락용들의 힘이 더 강한 게 사실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곤 하지만.

루델은 뭔가 마음속에서 울화통이 치솟는 기분도 들었다.

그놈의 종족의 의무가 뭔데. 자신에게 해준 게 뭐라고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지금껏 약속에 따른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의문이나 불만을 품은 적 없건만 이상하게 이제 와서 다른 기분이 들었다.

괜히 투덜거리듯 루델이 입을 뻐끔거리려던 그 순간.

루델은 자신의 어깨에 손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흐음. 미안하게 됐습니다만 그건 안 되겠네요.”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사파이어가 흠칫 놀랐고 마린 장로 또한 눈을 살짝 크게 뜬 채 난입한 불청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루델이 앉은 의자 뒤편에 선 데이비와 그런 데이비의 옆에 무표정한 얼굴로 꼬치를 우물우물 먹고 있는 륀느가 있었다.

“저하…….”

“일단 그런 문제는 상의할 사람을 잘 골랐어야지요.”

사파이어는 데이비와 이미 만난 적이 있기에 긴장한 표정이었고 마린 장로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언제 들어온 것인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데이비가 저벅저벅 걸어와 루델의 옆에 털썩 앉았고, 이내 다리를 꼬며 오만하게 사파이어와 마린 장로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하던 이야기 마저 할까요? 마린 장로님.”

장로.

즉 마린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루델! 네 녀석 설마! 유희 중에 정체를 들킨 게냐?!”

그 말에 루델이 고개를 돌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대답을 회피하는 루델의 모습에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들키지 않았다고 명시. 이것을 명확하게 표현할 것을 요구.”

“들킨 게 아니다?”

무표정한 얼굴의 륀느의 모습에 마린 장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드래곤임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해명해. 륀느가 루델의 바보 같은 위장을 낮게 평가.”

“큭…….”

루델이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들킨 건 사실이니 할 말은 없다. 데이비부터 시작해서 에반젤린 륀느, 그 외에 뱀파이어 로드나 하프 뱀파이어까지도.

다만 이 구성원의 정체에 대해 모르는 마린 장로나 사파이어에겐 기이한 변명에 불과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지금 그쪽 꼬마 아가씨는 루델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가?”

마린의 물음에 륀느가 주머니에서 쿠키 주머니를 꺼내 하나 야금야금 먹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리를 통통 튕기며 의자에 앉아 쿠키를 씹어 넘기는 모습은 단맛에 심취한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헛소리군. 드래곤의 폴리모프를 감히 누가 알아본단 말인가. 아 물론, 가능한 인간도 있겠지. 그것도 극소수. 수백 수천 년에 한 번 정도 꼴로 태어나는 인간에게서!”

사파이어가 데이비의 눈치를 보며 쏘아붙였다.

이에 데이비가 피식 웃음을 흘렸고 륀느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툴툴거리듯 말했다.

“데이비 님. 말이 안 통한다고 평가.”

“뭐?! 이 쥐방울만 한 게 진짜!”

콰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륀느가 그대로 날아들어 그에게 미사일 드롭킥을 꽂아 넣었다.

“커헉?!”

겉보기에 굉장히 어려 보이는 소녀였다.

이에 사파이어는 방심하고 있었고, 그 결과 한방에 치명타를 허용하는 결과를 낳아버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사파이어를 깔아뭉개고 앉은 륀느가 조용히 그를 본다.

“컥!! 무슨 힘이?!”

“풉. 약골. 매우 약골. 륀느가 우습게 평가.”

표정은 무표정이다.

하지만. 명백한 비웃음이 서린 말투였다.

“이…… 이이익!!”

“그만해라. 사파이어!”

“아버지!”

격하게 소리치는 사파이어를 무시한 채 마린 장로가 조용히 운을 뗐다.

“인간이 아니군. 저 꼬마 아가씨.”

“눈썰미는 좋으시네.”

“하나 물어도 되겠는가.”

“편한 대로.”

“얼마 전 이 땅에 성룡급 드래곤 다섯이 나타났다가 행방불명되었네.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앞일에 방해가 되는 루델의 사살이었지.”

“그것도 알고는 있습니다.”

“그들이 어찌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그 물음에 데이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답했다.

“다 죽었다고 하면 믿을래요?”

고요한 침묵이 인다.

다 죽었다. 지금 데이비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메인 전력이나 다름없는 성룡급 드래곤 다섯 마리. 그중에서 하나는 장로급이 내정될 정도로 유망한 드래곤이다.

그런 다섯 드래곤을 저항할 새도 없이 제거해버렸다는 뜻이었다.

저항할 새도 없이 제거했다라는 점은 그들이 죽음이 아니라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점에서 꼽을 수 있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오래 살았다면, 조금이라도 발버둥 쳤다면 단순히 행방불명으로 치부되지 않았을 일.

너무 순식간이라 행방불명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일의 전말이…….

인간에 의해 모조리 참살당했다는 진실이었다.

마린 장로의 표정은 굳었고 사파이어는 이전 자신이 본 괴물 같던 데이비가 정말로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린 장로가 사파이어의 어깨를 눌렀다. 대충 이해했지만 나서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루델은 이곳보단 용의 둥지가 안전할 테지. 인간, 당신이 루델을 부하로서 거두는 건 본인들의 자유지만 현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네. 그러니…….”

그때였다.

덜컥!!

“선생님!! 피 주세요!!”

당당하게 찾아와 피를 요구하는 소녀를 보며 사파이어와 마린 장로는 눈을 부릅떴다.

뱀파이어 로드!

일인 재앙에 가까운 절대적인 힘이라 불리는 뱀파이어 로드가 왜 여기 있는 것인가!

“얼씨구? 드래곤이 둘이나 늘었네요? 웬일이래?”

자신은 관심 없다는 듯 데이비의 팔을 물고 피를 빠는 요시아를 보며 사파이어와 마린 장로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로드라면…….

그래. 뱀파이어 로드 정도면 성룡급 드래곤 다섯 마리를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흔적도 없이 일방적으로 짓밟는 게 가능한가.

보아하니 아직 완전 각성한 로드는 아닌 것 같으니 그건 불가능할 텐데.

후웅!!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창밖에 검게 변하더니 이내 거대한 눈동자가 천천히 뜨여졌다.

[계약자. 나는 당분간 휴가…… 얼씨구? 도마뱀이 왜 둘이나 늘었지?]

할 말을 잃은 마린 장로와 사파이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과 흡사하지만, 드래곤이 아니다.

하지만 저 존재가 품은 힘은 성룡급 드래곤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별거 아니야. 휴가 쓰고 싶으면 써. 어디로 가려고.”

[서대륙으로 갈 생각이다. 그곳 해안에 거대한 오징어가 그렇게 별미라고 하더군.]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날아서 사라져버리는 검은 흑룡에 이어…….

이번엔 전신이 붉은 화염을 머금은 듯한 지룡이 모습을 드러내 창밖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지폭룡…… 샨드라미네아.

두 번째 환수왕이며, 현재 가진 힘은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해져 마린 장로조차 온몸이 경직되게 만들 정도였다.

[이봐. 계약자. 베헤모스를 만나…… 얼씨구? 웬 도마뱀이 둘이나 늘었지?]

너무 허무할 정도로 바로 바로 눈치채는 모습을 보니 좀 전 처음부터 알았다고 하던 말이 거짓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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