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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60화 (960/1,559)

제 960화

드래곤은 종족의 존중성이 강하다.

다른 말로 하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부모가 아닌 이상 직접적으로 곁에서 보살펴주는 경우가 잘 없다는 소리였다.

루니아의 부모인 골드 드래곤들은 수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용이 되었지만, 그녀는 온건파 드래곤들이 그녀를 용의 둥지에서 머무르게 해줌으로써 개인성을 보장하고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요 사흘 사이에 그녀가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눈치챈 이가 없는 것이고.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현실로 펼쳐졌다.

“인간!!!”

극도로 분노한 블랙 일족 두 명이 마나를 방출하며 나를 압박한다.

막대한 중력으로 나를 짓누르는 그를 뒤로 금발의 소녀가 뛰어들어왔다.

“이런 X…….”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차갑게 식어있는 소녀, 루니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고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장로님의 보증이 있다곤 해도 감히 헤츨링을 죽여?”

그 말과 함께 블랙 일족의 여성이 피어를 드러냈다.

“죽여버리겠어 인간!”

파앙!!!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뒤따라온 루델이 막았다.

“멈춰. 저하께서 루니아를 헤쳤다는 증거가 어딨다는 거지? 단순히 발견했다고 범인이 되는 건가?”

“너 지금…… 인간을 두둔하겠다는 거야?”

그녀가 루델도 같이 공격할 것처럼 분노를 드러내자 루델이 더욱 힘을 줘 그녀를 압박했다.

“상황을 먼저 분석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드래곤이라면, 중간계의 조화를 지키는 수호자라면 그에 걸맞은 소양을 지녀라.”

차갑게 일갈한 루델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어쩌고 자시고, 륀느.”

조용히 륀느를 부르자 륀느의 전신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며 주변 피어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이에 성룡급 드래곤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감히!”

한낮 골렘이 드래곤의 피어를 저항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블랙 일족의 드래곤 여성이 힘을 더 가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의 기운이 수그러든다.

“피어 치워라. 안 그래도 맥이 약한데 진짜로 죽일 일 있나?”

“뭐라고?”

“비켜.”

겉보기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

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진 않았다.

어지간한 신성 마법으로도, 의술로도 불가능하지만…….

나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이후 주변의 박살 나듯 널브러진 것들 중 부드러운 천을 모조리 찢었다.

그리고는 아이의 몸을 덮은 뒤 마법을 발현했다.

단순한 보온 마법이지만 피가 빠져나가 체온이 떨어진 아이에게 보온은 필수였다.

핏자국을 볼 때 사고를 당한 것은 어림잡아 하루는 더 되어 보인다.

“피습을 당한 지 꽤 된 거 같은데. 우선 목숨줄만이라도 붙여볼 테니 마나가 풍부한 곳으로 안내해.”

내 말에 그는 조용히 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 잠깐! 루델 뭐 하는!”

“비켜. 아직 숨이 붙어 있다고 하시지 않나.”

“뭐? 너 지금 저 인간의 말을 믿는…….”

“믿는다. 그러니까 좀 닥쳐라. 아르티.”

차가운 말투에 블랙 일족의 드래곤 아르티가 놀란 듯 루델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루델은 차갑게 그녀를 무시하며 마법을 일으켰고 이내 텔레포트 마법을 발현했다.

* * *

용의 둥지는 기본적으로 마나가 풍부하지만, 그중에도 몇몇 장소는 유별나게 마나가 많이 흐르는 장소이기도 했다.

블랙 드래곤이자 가장 내 존재를 못마땅해했던 오팔 장로를 찾은 루델은 다짜고짜 이곳에 있는 그의 레어를 열어달라 막무가내로 요구했다.

본인의 초대도 아니고 멋대로 찾아가 레어를 열어달라 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도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내 그는 내 품에 안긴 루니아에게 시선을 보낸 뒤 눈을 부릅떴다.

“인간…… 네놈 설마…….”

“시시비비 따지고 싶으면 나중에 어울려줄 테니 빨리 길이나 안내해.”

“뭐라?”

한치의 존대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내 발언에 그가 분노를 토해내려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그가 멈칫했다.

“지금도 살리는 게 고작이야. 조금만 더 늦으면 정말로 손 못쓴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굴던 그가 이를 악물었다.

“루니아!! 어째서! 이놈! 루니아를 헤친 거냐!”

“두번 말 안 한다. 드래곤.”

“장로님! 저하는 지금 루니아를 살리려 하시는 겁니다! 어서 비켜주십시오!”

“……따라와라.”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나를 노려보던 그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은 용의 둥지의 마나가 모였다가 퍼지는 곳이다. 그만큼 마나도 많…….”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용맥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자 막대한 마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용맥에서 버틴다고?!”

당연히 몸에 부담이 가겠지만 나는 그의 경악을 무시한 채 천천히 루니아를 그곳에 내려놓고 손을 뻗었다.

[먹어라.]

콰득!!

무형의 이빨이 루니아의 몸 안에 남은 저주의 잔재를 먹어치운다. 저주 때문에 죽어가고 있지만, 저주 때문에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황.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상태라면 살려도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겠군…….”

“무슨…… 정말입니까 장로님?!”

오팔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일반적인 경우라면.”

“인간. 일반적인 경우라고?

“안되는 게 어딨나. 기적이 필요하면 불러내면 되는 일이지.”

단호하게 대답하며 나는 양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화아아아악!!

동시에 새하얀 빛과 깃털이 허공에 흩뿌려지며 막대한 밀도의 신성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빛은 그녀에게 스며든다.

“약속했지? 나중에 보호자로 세상 구경시켜준다고.”

그 약속은 사실 그냥 던진 말이다. 지킬 수도 없고, 지켜볼 의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의식의 끝이 남아있다면, 단단히 목숨줄 붙잡고 버텨라.

막대한 신성력이 그녀의 몸에 스며들며 내 등에 있는 성흔과 손목의 성흔이 동시 공명한다.

그리고, 그 막대한 힘은 이내 루니아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골드 드래곤 피 좀 뽑아와라. 루델. 수혈한다.”

내 말에 루델이 움찔거렸다.

레어에 있는 골드 드래곤이라면…….

“내가 주마.”

그때 뒤따라온 성룡급 드래곤 중 금발을 가진 여성이 자신의 팔뚝을 단검으로 그어 피를 떨어뜨렸다.

이후 나는 그녀에게서 떨어진 피를 받아 아공간에서 꺼낸 주사기와 관에 연결해 그녀의 혈관에 주입했다.

그리고는 다시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침묵 속에서 고요함이 주변을 무겁게 짓누른다.

조용히 수술을 진행한 나는 서서히 신성 마법이 멈추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운에 맡겨라. 너무 늦었어. 애초에 살아있는 게 기적일 정도니까.”

본래라며 죽었어야 할 아이가 저주 때문에 목숨줄을 겨우 붙이고 있었다.

본디 그녀를 살리는 건 신의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하지만.

프리아 여신이 잠든 이 상황에 내가 누구 허락을 받고 움직이랴.

그나마 비슷한 권능을 보유한 존재라면…….

[오딘,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권위 좀 빌립니다.]

츠츠츳…… 파창!!!

하지만 오딘의 권능은 금방 깨지듯 사라져버렸다.

“뭐야 이거…….”

오딘이 프리아 여신에게서 부여받은 권능이 사라졌다.

그녀의 권능이 아예 오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신의 영역에 있다면 이럴 리가 없는데. 자리를 비운 게 아니고서야.

이에 나는 말 없이 손을 내려다보다 다시 힘을 끌어올렸다.

[로 아이아스.]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그녀의 의지가 전해져 오며 막대한 힘이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세상에…… 이토록 막대한 신성력이라니!”

“무슨?! 인간이 이렇게 엄청난 힘을 빌려올 수 있다고?!”

경악하는 외침이 성룡급들 사이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이내 그 기적에 가까운 은총이 완전히 스며든 이후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손 못 대게 해. 응급처치는 끝났지만 여기서 살지 죽을지는 이제 본인 역량이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성룡급 골드 드래곤 호바나가 내게 물었다.

“성흔…… 인간 너 성흔을 가지고 있었구나.”

“…….”

“루니아를 해친 게 정말 네가 아니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답했다.

“말라붙은 핏자국을 봤겠지만, 루니아를 해친 건 내가 아니야.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조용히 말한 내가 고개를 돌렸다.

“눈을 뽑힌 거 보이나?”

“대체 왜 이런 잔인한 짓을…….”

호바나가 이를 악물며 중얼거리자 뒤따라온 블랙 드래곤 남매가 중얼거렸다.

“싸이코 같은 새끼. 잔인하기 그지없구나.”

“그런데 왜 눈만 이렇게 뽑아버린 거야. 루니아의 드래곤 아이는 아직 마법적인 효과도 없을 텐데.”

그 말에 루델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짐작 가시는 게 있습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너희들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

“저하.”

“루델, 내가 분명 말했지. 넌 지금도 나를 하인스 영지민이 아닌 드래곤과 인간의 기준으로 두고 있다.”

내 말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것은…….”

“강요하진 않으마. 네일은 네 일이니, 다만 이번 일은 나도 이 녀석과 약속한 게 있으니 힌트 정도는 줄게.”

내 말에 그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뽑아갔다고 했지. 다른 상처 부위는 언뜻 보면 헤집어놓은 것 같지만 엄연히 깔끔한 상처들이야. 즉,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한 이유는…….”

“위장이지. 눈만 쏙 뽑아가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게끔 잔인하게 보이게끔. 그리고, 너희 온건파 전체가 내게 강한 적대감을 느끼게 할 기폭제.”

그 말에 뒤늦게 들어온 드래곤들이 웅성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인간!”

“말고 대로야. 드래곤은 동족, 그것도 헤츨링을 해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건 스스로 잘 알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맞다. 인간.”

“그러니까 이걸 해칠 수 있는 건 오로지 인간인 나라는 거다. 그런 상황에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했으니 그 분노는 더하겠지. 전후 사정 따위 들을 생각도 안 하고 공격하면 그게 가장 좋을 거다.”

“그럼 당신을 공격하게 하기 위해서?”

“그건 부가적인 이유일 거다, 진짜 이유는 이거겠지.”

나는 루니아의 감긴 눈을 가리켰다.

뽑혀 나간 눈.

“조사해봤는데. 반점이 보이더라, 의식이 있는데 눈을 뽑힌 거다.”

“…….”

“왜 눈을 뽑아가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게 육체를 훼손시켜서 내게 덮어씌웠을까.”

“…….”

“이유는 간단하지? 루니아가 봐선 안 될걸 봐버린 거야.”

내 말에 그들이 움찔거렸다.

“그 새끼들 조사해봐.”

“그 새끼들이라면…… 설마, 타락용?!”

온건파도, 나도 아니면 남은 범인은 하나뿐이다.

“사실상 가장 유력한 범인 후보 아니었나?”

온건파도 아니고, 나도 아니면 가능한 건 단 하나. 적대세력인 타락용뿐이다.

내 물음에 그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하지만 말도 안 돼! 그들은 모두 우리의 감시하에 있었어! 그들이 루니아를 헤칠 알리바이는…….”

“그럼 역으로 생각하지.”

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인 드래곤 들을 보았다. 장로 드래곤 셋. 마린 장로, 오팔 장로, 그리고 카이저 장로.

성룡급 드래곤인 루델과 사파이어, 골드 드래곤 호바나, 블랙 드래곤인 아르티와 실러.

성룡급 드래곤은 잘 모르지만, 장로급에 대해선 파악이 끝났다.

마린 장로야 말할 것도 없고, 불같은 성정을 지닌 오팔 장로. 그리고 그린 드래곤답게 온순하며 침착한 카이저 장로까지.

“전에도 들었다만 너희 정보가 전부 새어나갔다면서.”

“……설마.”

“배신자도 빼먹으면 안 되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아, 이거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짧게 중얼거린 내가 손을 뻗었다.

“범인. 이 안에 있다는 뜻이다.”

내 말에 술렁거리는 소리가 커져 나가기 시작했다.

“범인이…… 이 안에?”

그렇게 말하며 나는 오팔 장로를 스윽 바라보았다.

“대충 누가 범인인지 알 거 같은데.”

내 중얼거림에 루델이 허겁지겁 내게 매달렸다.

“그…… 그럼! 누가 범인인지!”

“루델.”

“…….”

내 말에 그가 움찔거렸다.

“후우…… 서비스 정도는 해줄게.”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에 륀느가 내 곁으로 걸어오며 새하얀 날개 세 쌍을 펼쳤다.

금빛의 창

제 키보다 큰 천칭을 녹여낸 창을 휘두르며 그녀가 오팔을 겨누었다.

이에 모든 장로들이 오팔을 노려보는 그 순간.

그가 부들부들 떨었다.

“나…… 난 아니다!! 아니라고!!! 이건 인간의 음모다! 내가 왜!”

“하긴…… 장로님 보면 처음부터…… 인간을 굉장히 적대시하긴 했지……”

오팔 장로의 외침에 다른 드래곤들이 상당히 동요한다. 보아하니 엄한 포지션만 유지해서 그리 인정을 받고 있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후 나는 조용히 선고했다.

“륀느.”

“명령 인수.”

그 말과 함께.

륀느가 오팔 장로를 향해 날아든다.

이에 블랙 드래곤 오팔 장로가 눈을 부릅뜨며 그녀에게 반격하려 하지만.

애초에 세피로스화 한 그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있다.

푸콱!!!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악!”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섬광처럼 날아들어 오팔 장로의 검은 마법을 갈라버린 륀느가.

정확히 오팔 장로에게 파고들었고, 그의 뒤에 있던, 카이저 장로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사람을 너무 쉽게 보면 쓰나. 인간이건 드래곤이건, 같은 동족인데. 설마 저렇게 어린아이를 저 지경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크윽?! 이게 무슨?!”

벽에 처박힌 카이저 장로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는 인정 많은 모습으로 드래곤들의 지지를 꽤 받는다. 오팔 장로와 다르게.

“하지만 영화든 소설이든. 꼭 이런 놈이 범인이더라.”

“뭐? 지금 그런 거로 배신자를 파악…….”

“설마 그럴 리가.”

싸늘하게 웃으며 내가 손을 뻗었다.

“선택 잘하는 게 좋을 걸 장로. 타락용들이 품고 있는 힘은 조금 생소하지만, 응용이 가능하거든.”

신력으로 이곳에 있는 드래곤 전부의 몸을 한번 훑었다.

그리고, 타락용과 같은 힘을 몸에 숨긴 단 한 명이 바로.

“당신이 범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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