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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62화 (962/1,559)

제 962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히…… 히이이익!!”

기겁하며 한 청년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저거 대체 뭔데!!”

대부분의 동족들은 현재 온건파의 성룡급 드래곤들을 제압하러 떠났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남은 이들은 둥지를 돌아다니며 파괴 행각을 하고 있었다.

카이저 장로의 배신 덕분에 전쟁은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절대 온건파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그래야 하는데.

왜…….

왜 인간이 단신으로 드래곤 다섯을 맨손으로 찢어발기고 있는 것인가.

그래. 들키지 않으면 된다.

숨죽이고 숨어있으면 그도 지나칠…….

속으로 그리 생각하던 그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싸늘한 감각에 눈을 부릅떴다.

좀 전까지 동족들을 찢어발기던 괴물 같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불현듯 떠오른 불안한 생각에 뻑뻑하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워져도 닿을 거리까지 고개를 들이민 채 자신을 보고 있는 괴물을 말이다.

“히으아아으악!!”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가 나뒹굴 듯 주저앉았다.

“내가 말했지.”

스산하게 웃는 인간의 붉은 눈동자에 안광이 마치 불꽃처럼 일렁인다.

“머리카락 보이지 말라고.”

극한의 두려움으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과 함께 온몸의 털이 쭈뼛 솟는 감각이 찌릿하게 전해져왔다.

아…… 시초용이시여…….

강대한 힘을 보이던 본체는 그의 강제 폴리모프 마법에 일그러져 멋대로 변해버렸다.

일방적인 힘 차이. 이런 건 장로급에게서도, 그 강한 군주에게서도 본적이 없다.

“대, 대체 너 뭐야, 뭐냐고!”

중간계의 패자, 드래곤을 이토록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존재가 있을까.

두려움에 질린 그의 눈동자가 떨렸다.

처음엔 그가 데리고 다니는 골렘이 강하다고 들었다.

상상 이상의 힘을 지닌 괴이한 골렘을 데리고 다니는 인간.

성흔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드래곤을 압박하기엔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인간 그 자체는 별로 위협적일 리 없고, 상식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지, 디스펠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건 있을 수 없어…… 어떻게 인간이…… 인간이 드래곤의 마법을 디스펠 할 수 있냐고!!”

용언 마법은 그에게서 흘러나온 기이한 힘에 짓눌려버렸고 기존의 마법은 모조리 발현되기도 전에 캔슬당한다.

드래곤 중에서도 이렇게 섬뜩한 마법 실력을 지닌 이가 있던가.

단연코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골렘이 강한 건 사실인 듯했다.

실제로 그녀를 유인한 장로 몇몇이 그녀와 싸우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신경 썼어야 하는 건…….

개혁파 전원이 경계해야 했던 건 온건파의 장로급도, 잠든 드래곤 로드도, 그 괴이한 골렘 소녀도 아닌 바로 그였다.

이건 인간이 아니다.

이건…….

스으으윽…….

괴물. 그 자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인간의 존재가 있음을 알았고, 마린 장로가 그를 극히 두둔했을 때.

어떤 의미로는 오팔 이상으로 고지식한 그가 왜 인간을 이곳에 들였는지 의문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작전 진행은 불가능하며, 당장 철수해야 한다고.

* * *

뻔뻔하게 휴전을 제의해 들어왔다가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자마자 공격을 시작한 타락용들.

온건파의 전투 가능한 드래곤이 장로를 제외하고 고작 다섯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루델이 조금 특수한 드래곤이며 타락용 군세에 카르엘라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도 일방적인 전력이었다.

쾅!! 쾅!!

거대한 둥지 전역으로 다수의 드래곤들이 서로 쫓고 쫓기며 뒤엉키고 브레스를 쏘아댔다.

그들의 마법 한번 브레스 한 번에 어마어마한 격돌이 일어났고, 그 막대한 피해 속에서도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본래 전쟁이란 광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아아아아아!!!]

골드 드래곤 호바나가 거대한 포효를 터뜨리며 발톱을 이용해 타락용 군세의 성룡 하나를 짓밟고 비늘을 찢어발겼다.

[아아아악!!]

하지만 곧 날아든 거대한 화염구에 직격당해 바닥을 나뒹굴었고 이어지는 드래곤들의 브레스에 비명을 질렀다.

하나만 상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둘 이상의 드래곤이 공격을 해오니 그녀라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아 어이없어! 이 개 치사한 새끼들 진짜!]

그 상황은 호바나 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전투가 가능한 성룡급 온건파 드래곤 다섯 중 블랙 드래곤 남매인 실러와 아르티는 이미 날개 한쪽이 넝마가 된 채 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사파이어도 부상이 극심해 보였다.

루델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를 압박하고 있는 펠리우스를 포함한 세 마리의 드래곤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할 상황이었다.

쾅!!

이윽고 버티지 못한 호바나까지 바닥에 쓰러짐으로 인해 상황이 극도로 나쁘게 치닫기 시작했다.

[망할…… 카이저 장로의 결계만 있었어도…….]

배신한 카이저 장로는 본래 용의 둥지의 결계를 전반 하던 장로였다.

그렇기에 그가 사라짐으로써 용의 둥지에서의 메리트가 모조리 사라져버렸고. 그로 인해 일방적인 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오팔 장로나 마린 장로가 남아있으면 모르겠지만 마린 장로는 현재 이곳에 없었다.

타락용의 장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차례 뿔뿔이 흩어지고 돌아왔을 때 장로들의 위치는 어디로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더욱 절망적일 수밖에.

온건파의 성룡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홀로 남은 루델이 거체를 일으켜 마법을 캐스팅하자 다른 몇몇 드래곤이 그를 깔아뭉개듯 달려들어 제압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쾅!!!

루델이 급히 일어나려 하지만 순식간에 치고 들어온 레드 드래곤 펠리우스의 공격에 다시금 제압당했다.

[하하하하!! 기분이 어때, 루델라이트. 사파이어도 그렇지만 네놈도 언제 한번 이렇게 짓밟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루델!!]

[젠장!]

의식을 겨우 차린 블랙 드래곤 남매 실러와 아르티.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호바나의 전신에서 낮은 피어가 흘러나왔지만, 힘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닥쳐라. 배신자. 네놈같이 비열한 놈에게 할 말은 없다.]

[응? 제 심장의 힘을 제어하지도 못하는 반푼이가 하는 말이라 잘 안 들리는데.]

[펠리우스!!]

격분한 루델이 저항하지만 몸 상태가 나빠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다. 네 동생이 널 대신해서 죽은 것도 네가 심장을 제어하지 못한 탓 아니었나?]

그 말에 루델이 거칠게 저항했다.

펠리우스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하!!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군, 살고 싶다고 제 동생을 팔아먹은 주제에.]

[펠리우스! 그 입 닥쳐라! 루델은 루비를 팔아먹은 게 아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지 마라!]

사파이어의 외침에 펠리우스가 천천히 날개를 펄럭였다.

쿵!!

동시에 쓰러진 사파이어의 육신이 다시 지면에 처박혔다.

본래 펠리우스의 힘이 아닌 군주에게서 빌려온 힘이었다.

[포기해 등신들아. 니들은 졌어. 카이저 장로를 믿고 전권을 넘긴 시점에서, 또 너희들의 최종 전력이나 다름없던 로드가 깨어나지 못한 시점부터 이미 끝난 거라고.]

[아직…… 아직 장로님이 계신다.]

비록 카이저 장로가 없어졌지만, 전투능력에 관해선 엄청난 오팔 장로와 마린 장로가 남아있다.

하지만 펠리우스를 포함한 드래곤들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너희들은 진 거라고, 얌전히 죽으면 된다 이거야.]

그 말에 루델이 침묵한다. 그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펠리우스가 그를 강하게 짓밟으며 으르렁거렸다.

[이 상황에서도 여유라니. 머리가 돌아버린 건가?]

[크흐흐흐.]

[두려워서 미친 거겠지.]

다른 이들의 비웃음에 실러와 아르티, 그리고 호바나가 이를 악물었다.

분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루델은 달랐다.

[네놈들은 모르는 모양인데. 이곳에 누가 와있는지.]

[잉? 이건 뭔 소리야.]

[마린 장로님께서 초청한 내 주군이 계신다.]

주군. 그 한마디에 펠리우스를 포함한 타락용들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푸하하하하하하!!]

[설마 그 인간? 아하하하하!]

박장대소하는 그들의 모습에 루델이 조용히 펠리우스를 직시했다.

[아 그래. 솔직히 모르고 당했으면 큰 낭패를 볼뻔했어. 장로급을 제압할 정도의 골렘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거든. 미리 조사해두지 않았다면 곤란할뻔했어.]

펠리우스가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륀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륀느를…… 어떻게 한 거지?!]

호바나의 외침에 펠리우스가 툭 던지듯 대답했다.

[글쎄. 지금쯤이면 장로 두 분께서 아주 조각을 내놨을걸? 솔직히 골렘이 그 정도의 힘을 지녔다는 것도 놀랍지만…… 디버프 마법의 전문가이신 장로님께서 같이 가셨으니 제아무리 잘난 골렘이라도 버틸 재간이 있나.]

[이 개자식!!]

실러가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루델은 격노하지 않았다.

[믿고 있는 게 그 골렘이었던 모양인데. 뭐, 어쩌겠어. 그래 봐야 골렘인 것을. 그리고 루델라이트. 네놈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펠리우스가 천천히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했다.

“우린 선발대에 불과하다. 본대는 우리보다 훨씬 강하며, 수도 많지.”

[그럴 리가…… 이쪽은 대부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됐는데…….]

“애초에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펠리우스의 이죽거림에 세 드래곤은 분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때였다.

[누가 륀느를 두고 말했나?]

“뭐?”

조용히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너희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나가지 못할 거다. 륀느는 일부에 불과해.]

“뭔 소리를 하는거냐 이놈. 돌아버린건가?”

[오셨다.]

그 말과 함께 저 멀리서 모두의 청각을 사로잡는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쿵짝. 쿵짝. 쿵짝…… 쿵짝, 어? 이게 아니었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며 느긋하게 걸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한차례 본적이 있던 인간이었다.

“인간?”

인간형태로 변해있던 펠리우스가 의아한 듯 이곳에 나타난 존재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올 라운.

마린 장로가 뜬금없이 데려온 존재이면서 하찮은 미물.

고작해야 인간에 불과한 존재.

루니아를 치료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신성력만으로 드래곤을 제압하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고위계 성마법으론 가능하지만 그 정도 위치의 성마법에 대해 잘 아는 이는 드래곤 내에서도 잘 없는 수준이었다.

마나와는 다른 성질인 신성력으로 신의 힘을 모방한 마법이 바로 성마법이니 말이다.

“루델. 꼬라지가 뭐냐 그게.”

[저하…….]

데이비가 느긋하게 드래곤들 사이를 걸어오며 말하자 루델이 헛웃음을 냈다.

[도와주시는 겁니까?]

“약속은 지켜야지. 걱정 마라. 넌 유능한 마법사니까 아주 백골이 풍화될 때까지 부려먹을 거다.”

투자비는 회수해야지.

미소지으며 하는 그 말에 루델은 오한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문득 하인스 영지에 있을 때 간혹 눈가에 다크서클을 짙게 깔고 좀비처럼 걸어 다니던 금발의 꼬마 왕녀님이 떠올랐다.

에이, 아니겠지.

아무리 사람이 악마 같아도 심하게 굴리진 않겠지…….

잠시간 이어진 침묵은 골드 드래곤 호바나로 인해 깨졌다.

그녀는 갑작스레 포효를 내지르며 근처의 드래곤들을 밀어내고는 마법을 발현했다.

[인간!! 도망쳐!]

“도망? 도망을 외쳐. 애써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심드렁한 데이비의 말에 그녀가 입을 쩍 벌렸다.

용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고기라니! 겁이 없는 것도 정도껏 이지!

그녀는 필사적으로 마법을 발현했다.

[둥지 바깥으로 내가 텔레포트 시켜줄게! 뒤도 보지 말고 도망쳐! 이놈들의 목적은 어차피 우리니까!]

[그래!! 지금은 널 지켜줄 그 골렘도 없어!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거야!!]

블랙 드래곤 아르티가 호바나의 외침에 덧붙여 소리 질렀다.

하지만, 루델은 담담하게 물을 뿐이었다.

[가능하십니까?]

“가능? 아주 매우, 높게 평가해서 가능.”

장난스런 말투에 루델은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인간에겐 재앙에 가까운 드래곤들의 전쟁인데. 그 한복판에 있으면서 너무 여유롭다.

[……그러네요. 애초에 의미 없는 질문이었네요.]

루델의 대답에 데이비가 피식 웃었다.

이윽고,

“인간. 겁도 없구나. 이놈들이 말한 대로 널 지켜줄 골렘은 이미 조각이 났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홀로 여기 왔지? 설마 그 성흔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만 믿고 온 건가? 아니면 그냥 돌아버린 건가?”

“아니. 멀쩡해. 숨바꼭질하고 있었거든. 내가 술래고, 너희들이 도망가는 입장이고. 다들 어디 갔나 했는데 여기 있었네.”

“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은 펠리우스가 다른 동료들을 바라보자 잠시 침묵하던 그들이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

[미친 인간이 맞네!]

반대로 펠리우스는 뭔가 기분이 상한 듯 이죽거렸다.

“아 뭐 좋아. 어차피 너도 내가 만나면 반드시 죽여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말과 함께 펠리우스의 곁에 있던 드래곤이 천천히 데이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거대한 앞발을 들어 찍어누르듯 내리찍으려 했다.

당연히 호바나는 곧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안돼!!!]

루니아를 살려준 인간의 최후가 그런 최후가 되지 않기를 바랐건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실러와 아르티 남매도 같은 생각인지 분한 감정이 극도로 짙어지고 있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사파이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루델. 결국, 생각을 바꿨냐? 그럼 텄네.]

그의 허탈한 중얼거림에 데이비를 향해 앞발을 휘두른 드래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멈칫했다.

“어? 왜 안 눌…….”

잠시 중얼거린 드래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거대한 체구의 앞발로 짓누르는데 데이비는 멀쩡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성 마법! 건방진 인간이!!]

분노한 드래곤이 브레스를 머금은 순간.

앞발을 지지하고 버티던 데이비가 중얼거렸다.

[입 다물어.]

퍼엉!!!

동시에 브레스를 모으던 드래곤의 입이 강제로 닫혔고…….

그대로 그 머리통이 터져나가 버렸다.

검게 변질된 피가 비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데이비가 스산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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