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3화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성룡급, 그것도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한 성룡급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다가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린 것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자살하려고 아주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브레스를 쏘면서 입을 다무는 건 불가능하니 말이다.
인간으로 치면 총을 뽑아서 총구를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쏴버린 것과 같았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도 절대 실수할 리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
“이루……실?”
펠리우스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든 상황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냉정한 판단이 되겠는가.
그것은 펠리우스뿐만이 아니었다.
골드 드래곤 호바나나 블랙 드래곤 남매 실러와 아르티 또한 마찬가지.
아니. 정확히는 루델라이트와 사파이어를 제외한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이……인가아안!!!]
이윽고 이루실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는지 한 드래곤이 격노하며 사방에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하나하나가 막대한 힘이 서린 본래 서클 이상으로 강화된 마법인 아이스 스피어였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얼음의 창들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겨누어지자 나는 느긋하게 측면의 허공을 주먹의 바닥으로 후려쳤다.
쩌적!!
동시에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커다란 장궁이 빠져나왔다.
신궁이라 불린 존재이며, 라스트 위스프의 창시자인 빌어먹을 귀쟁이 아폴론의 신기, 신궁 브류나크였다.
[죽어라!!]
강한 힘을 머금은 마법들이 일순간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내게 방출된다.
하지만 또 한 번 그들을 벙찌게 만드는 상황이 내 손끝에서 펼쳐졌다.
[디스펠]
와장창!!!
수십 개의 아이스 스피어가 그대로 허공에서 부서지며 흩어져 버린 것이다.
[디…… 디스펠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마법이 캔슬되어 당황한 그를 향해 활시위를 당긴 내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놓았다.
[관통살]
[초강사]
쩌엉!!!
[배…… 배리어!!]
와장창!!
단단하기 그지없는 배리어가 순식간에 펼쳐졌지만 내가 쏘아 보낸 빛의 화살은 그것을 허무하게 뚫어버리며 놈의 미간을 관통해버렸다.
그렇게 두 번째 드래곤이 너무도 허무하게 쓰러져 버렸다.
[이게 뭔…….]
호바나는 믿기지가 않는지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륀느가 내 전력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륀느의 존재도 경악스럽긴 하지만 그래 봐야 그게 전부라고.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일뿐이다.
서서히 내 전신에서 막대한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인간형태를 취하고 있던 펠리우스가 눈을 부릅떴다.
“이…… 이 힘은?!”
경악한 그가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럴 수밖에.
륀느와 충돌하려 했을 때 그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던 건 륀느의 힘도 있지만 내 힘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그 힘…… 설마…….”
“그래 내 꺼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활시위를 놓자 섬광이 뇌전을 품으며 날아들었고 이내 펠리우스의 긴 귀 한쪽을 찢어발기고 뒤쪽의 무너진 잔해에 처박혔다.
쩌엉!!
거대한 구름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단단한 잔해가 흔적도 없이 원형으로 사라져버렸다.
마치 소멸시켜버린 것처럼 말이다.
“아…… 빗나갔네. 감이 많이 죽었나…….”
그제야 깨달은 듯 그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이윽고 내 전신에서 막대한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그들의 얼굴에 혼란과 두려움이 서린다.
[말도 안 돼…… 이건 규격이 너무 틀리잖아…….]
[어떻게 인간이…… 이 정도의 마나를 품을 수 있는 거야?!]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 질러 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다시 입을 연다.
“원한은 없다만. 그렇다고 적대시되는 입장에 있는 것들을 살려둘 필요는 없지? 그리고 말이다.”
니들 때문에 내가 약속을 못 지키게 됐다.
싸늘한 중얼거림에 그들이 발작하듯 물러났다.
[비…… 빌어먹을!!]
결국, 그들은 수적으로도 압도적인 주제에 내게서 도망치고 말았다.
사방으로 산개하는 그들을 쫓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나를 향해 호바나가 물었다.
[인간…… 너 정체가 뭐임?]
계속 듣는 것이지만 독특한 말투가 참…….
인간의 형태로 변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물었다.
“몸은?”
“괘…… 괜찮긴 한데…….”
“그래?”
“저하, 도망간 놈들을 잡아야 합니다!”
루델이 호바나가 말하려던 것을 끊고 선수 치듯 소리쳤다.
“안 그래도 잡을 거다. 멀미 좀 날 수 있으니 조심해라.”
그렇게 말하며 내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동시에 거대한 용의 둥지 전역에 수백 수천의 마법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범위가 범위이다 보니 마나의 소모량이 상당하긴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마나의 대부분은 사실 이 용의 둥지에 있는 용맥들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를 강제로 징집한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내 몸 안의 마나를 사용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상에…… 저게 뭐야.”
경악한 블랙 드래곤 아르티가 주저앉으며 하늘에 뜬 보랏빛의 마법진들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건 장로님들도 못…… 우욱!”
“미쳤어! 마나 농도가 왜 이래?!”
급기야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조차 멀미를 할 정도로 대규모의 마나 파장이 주변을 잠식하며 뒤흔들기 시작했다.
타락용들의 습격이 시작되면서 이곳의 마나는 막대한 마나를 머금은 드래곤들의 충돌로 폭주하고 있다.
당연히 드래곤이라도 제어하기 힘든 대기의 마나가 일순간 폭풍처럼 제어되며 휘몰아치니 멀미가 날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막대한 마나의 흐름은 이내 멈추며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출]
이윽고 보랏빛 마법진들을 바라본 내가 조용히 입을 뻐끔거렸다.
동시에 보랏빛 마법진들에서 진한 자주색의 벼락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위력에 나는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용맥의 마나가 대단하긴 하네.
드래곤들이 괜히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 * *
용의 둥지에 남은 성룡들은 좀 전 낙하한 거대한 벼락에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폭주하는 용맥의 마나로 인해 더 강해져 버린 마법으로 인해 허겁지겁 도망쳐 이 상황을 알리려던 펠리우스를 포함한 드래곤들이 모조리 직격을 당한 것이다.
마법저항력이 굉장히 높은 그들이지만 관통력을 기본 패시브로 깔고 있는 마법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 마법은 엄연히 티오니스의 마법이 아닌 마법의 대륙, 아트렐리아의 마법이니까.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드래곤과 인간이 작정하고 마법을 발달시켰던 아트렐리아의 마법을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데이비가 그렇게 한쪽을 정리한 시점.
용의 둥지 하층에서는 또 다른 현상이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었다.
“륀느가 함정을 낮게 평가.”
피투성이가 된 장로급 드래곤을 몰아붙이고 있는 륀느의 저력은 엄연히 타락용들의 계산 이상의 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비라는 존재에게서 힘을 빌려 쓰고 있는 륀느이기에 데이비가 용맥의 마나를 멋대로 제어해 그녀에게 부여해버리니 그녀의 육신 전체에 과출력, 즉 오버드라이브가 걸려버린 것이다.
상상 이상의 출력에 본인도 놀라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놀라는 건 당연히 그녀를 상대하고 있는 타락용의 장로였다.
오팔 장로 이상으로 직접 부딪혀보고 경악한 그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전신을 어떻게든 제어하려 힘쓰며 반격을 가했다.
치이이잉…….
그의 전신에서 독특한 형태의 천 같은 마법이 줄기처럼 뻗어 나와 륀느를 요격하듯 공격했고 륀느는 세 쌍의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을 빠르게 누비고 공격을 이리저리 피했다.
[죽어라!! 죽어!! 죽어!!]
자신이 한낱 골렘에게 밀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장로는 점차 이성을 잃어가며 격분했고 그 대상은 주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그런 행동은.
[헛?!]
곧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졌다.
콰르르르릉!!!
거대한 파편들이 쏟아지며 그의 전신을 강타하려 들자 그는 반사적으로 공격을 멈추고 베리어를 펼쳤다.
하지만 륀느에게 정신을 팔려있었기에 오팔 장로를 생각지 못했고.
이내 오팔 장로의 마법들이 그에게 직격하며 강제로 틈을 만들어냈다.
공격의 흐름을 빼앗긴 장로는 다급히 그 장소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륀느가 허공에 팔을 휘젓기가 무섭게 그녀가 만들어낸 입자들이 거대한 포신의 형태가 되었고.
[아…….]
투쾅!!
오팔 장로의 다크 브레스와 륀느의 주포가 양측에서 그를 공격하며 거대한 장로의 거체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렸다.
자신이 해치우고도 쉬이 믿기지가 않는지 멍한 얼굴로 시체가 되어버린 타락용 장로를 바라보았다.
“허……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아주 기가 막힐 지경이야.”
“다친 곳에 대해 분석할 것을 요청.”
“뭐…… 뭐? 아…… 괜찮다. 이깟 몸. 조금 지나면 낫겠지.”
“데이비 님께 회복마법을 받을 것을 추천해.”
“인간? 아…….”
잠시 중얼거리던 그가 화들짝 놀랐다.
“이런! 이럴 때가 아니군! 빨리 움직여야 하네! 따라오게!”
황급히 이동하는 오팔을 따라 쪼르르 날아오른 륀느가 물었다.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해명을 요구해.”
“무슨 이유이긴! 지금 적이 저 망할 놈 하나 뿐인 줄 아는가! 다른 장로급 드래곤과 성룡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습격을 감행했네! 자네가 따르는 인간도 자칫 휘말릴 수도 있다 이 말이라는 소리일세!”
과정이 어떻든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다.
오팔 장로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인간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렇게 죽게 둘 순 없겠지! 어서 따라오게!”
“굳이 갈 필요 없다고 판단.”
그때 륀느가 그를 제지시켰다.
“무슨 소리인가! 지금 제 주인을 죽게 두겠다는…… 어?”
황급히 소리치던 그는 거대한 잔해 속에 파묻힌 다수의 드래곤들을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잔해 속에 파묻힌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적출당해있었다.
물론 그게 그를 놀라게 한 요소는 아니었다.
그를 정말로 놀라게 만든 것은 그 드래곤들이 자신이 이끄는 온건파의 드래곤이 아닌…….
모두 타락용들의 성룡급 드래곤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대체…… 대체 누가…….”
카이저 장로가 없는 시점에서 전력은 일방적으로 기울게 된다. 이곳에서의 메리트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고 당연히 수가 적은 온건파의 성룡급 젊은이들은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리라.
그게 정상이건만.
왜 시신은 적들의 것밖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때였다.
“아! 오팔 장로님!”
저 멀리서 금발을 흩날리는 골드 일족의 여성 호바나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 계셨네요!”
“호바나! 다른 이들은 어찌 되었는가!”
그 외침에 호바나가 움찔거렸다.
“아…… 그게 말이죠.”
떨떠름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에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빨리 빨리 움직여. 굼벵이를 삶아 먹었나 왜 이렇게 더뎌.”
그그그극!! 쿵!!
거대한 드래곤의 사체를 끌고 오고 있는 실러와 아르티. 그리고 사파이어와 루델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편으로 드래곤의 거대한 머리 하나를 한 손으로 집어 쓰레기 버리듯 휙 던져버린 뒤 손을 툭툭 털고 있는 인간, 데이비 올 라운이 보였다.
“정리는 끝났나? 륀느. 보고해.”
마치 륀느가 다 처리하고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오팔 장로는 잠시 멍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대체…….”
“장로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를 향해 호바나가 조심스레 귓속말했다.
“그냥 받아들이세요. 밖에 있던 드래곤 전원을 저 인간 혼자서 다 때려잡았으니까…… 저도 직접 봤지만, 도저히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다 때려잡았다고 한다.
그 한마디에 오팔 장로는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를 돕는 인공 자아가 꼭 이렇게 외칠 것만 같았다.
[오팔 님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라고.
“그런데 마린 장로님은…….”
호바나의 물음에 상념에 빠져있던 오팔이 눈을 크게 떴다.
“추격하던 카이스에게 역으로 당한 탓에 부상을 입고 복귀 중이라고 하더구나.”
“장로님은 괜찮은 거 맞아요?”
“일단은. 이 골렘 덕분에 목숨은 건졌다. 빌어먹을 아주 철저하게 준비해왔더구나. 너무 안일했어.”
“그러게요.”
“그나저나 지금 저 인간이 이 많은 성룡급 들을 다 처리했다고?”
“네. 그것도 마법 하나로요.”
“마법 하나로?”
기이한 대답에 오팔이 인상을 찡그렸다.
장로급도, 아니 드래곤 로드조차도 마법 하나로 다수의 드래곤을 격살시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했다고 하니 이것들이 나를 가지고 장난치나 하는 심정이 드는 오팔이었다.
아니. 륀느의 경우를 생각하면 혹 자신이 모르는 어떤 마법을 저 인간이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드래곤들도 몰랐던 마법이라면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의 그런 예상은 대번에 다른 방향으로 뒤틀려버렸다.
“대체 무슨 마법이기에?”
“6서클 썬더 스트라이크요.”
“뭐?”
6서클 썬더 스트라이크.
그도 알고 있는 마법이다.
그리고. 그런 마법 하나로는 드래곤을 헤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드래곤에게 5서클 이하의 마법은 거의 먹히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이겠는가.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도, 6서클 마법으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 오팔의 심정을 아는지 호바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 수가 말이에요.”
“음?”
“드래곤 하나당 수백에서 수천 발이 꽂히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더라구요. 오금이 저려서 어휴…….”
…….
호바나의 첨언에 할 말을 잃어버린 오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