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2화
미끼를 분명 던졌는데?
정신을 차린 군주가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그의 시선에 보인 것은 드래곤과는 다르나 품고 있는 힘이 드래곤 그 이상에 달하는 두 존재.
그리고 군주의 주인이었던 존재가 데리고 있던 셋과 같이 별을 머금고 있는 자. 별자리!
거기에 가장 큰 변수라고 당부했던 인간까지.
그 외에 온건파 드래곤들이 다수 보이긴 했지만 사실 그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 중요한 것은…….
‘저놈이 왜 이곳에.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굉장히 궁금한가 보네. 솔직히 나도 네가 이곳에 직접 행차할 줄 몰랐는데 잘됐다.”
[……분명 공간 전이를 방해하는 결계가 쳐져 있었을 텐데.]
그것도 그냥 결계가 아니다. 어지간한 고위마법으론 절대 그의 디스펠을 막을 수 없다고 들었기에 아예 다른 방식으로 결계를 쳐두었다.
파괴된 폐허 속에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매개체를 5개나 세워서 말이다.
부하들을 직접 감독하며 그것을 확인까지 했건만. 배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
[설마…….]
“뭐 그건 됐고. 하나만 묻자.”
데이비의 말에 군주가 푸른 안광을 번뜩였다.
[말하라 인간이여.]
“지금 네가 하는 일이 뭔지는 알고 하는 거지?”
그 물음에 군주의 곁에 있던 부하들이 긴장한 채로 소리쳤다.
[이놈! 감히 군주께 불경하다!]
[군주의 숭고한 의지는…….]
[조용히 하라.]
그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인간.]
“그냥 알고 하고 있는 거냐고.”
어째서일까.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데이비의 물음에 군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
서걱!!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온 검기 하나가 군주의 단단한 날개 한 짝을 날려버렸다.
“그럼 더 이야기할 것도 없네. 넌 오늘 여기서 묘비 박자.”
데이비의 말과 함께 타락한 드래곤들과 온건파의 드래곤들이 일제히 브레스를 장전하기 시작했다.
한번 벌어지면 대규모로 지형을 바꿔버릴 존재들이 일제히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초고열의 광선들이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연 온건파 측에서도 저항하지만, 그 수 차이가 아직까지 일방적이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가소롭다!!]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볼 폭풍 용왕이 아니었다.
날아드는 고열의 브레스를 향해 날개를 크게 펄럭인 메가로드리아의 폭풍이 서로 충돌하며 막대한 충격을 만들어냈다.
* * *
“륀느.”
“명령 대기 중.”
“넌 끼어들지 말고 에반젤린을 데리고 하인스 영지로 가. 거기서 보팔레빗과 합류해라.”
내 말에 륀느는 반론하지 않고 스르륵 사라지듯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반격을 가하는 메가로드리아와 샨드라미네아 또한 불렀다.
“너희 둘도 가.”
[뭐라? 이제 좀 재미있어지려던 참에…….]
“닥치고 가.”
싸늘한 말투에 잠시 침묵한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메가로드리아가 샨드라미네아를 집어 들었고 빠르게 날아올랐다.
[놓치지 마라!! 적을 몰살하라!]
타락용 진영의 장로급 드래곤 하나가 격하게 소리친다.
온건파 드래곤과 나만 남은 상황이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전부 보내버렸다.
그리고, 메가로드리아를 향해 날아드는 브레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먹어라.]
콰드드득!!
동시에 무형의 무언가가 움직이더니 브레스의 허리 부분을 콰득! 하며 먹어치워 버렸다.
[겁도 없구나. 네 부하들을 모두 보내고 홀로 저 겁쟁이들과 우리를 막겠다는 것이냐?]
잘려나간 날개를 복구하며 군주가 내게 도발해왔다.
“뭐 문제라도 있나?”
[단순히 미친놈이었군.]
적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로 온건파 측 드래곤들은 상당히 느긋한 모습이었다.
[쟤들 아직 모르는구나?]
[바본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온건파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타락용 진영의 드래곤들이 의아해하던 찰나.
하늘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적들 모두가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다.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언데드 드래곤들이 천천히 내려와 그들을 포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수는 무려 50에 가까운 숫자.
내가 죽인 드래곤의 수를 다 합쳐도 고작 30마리 가까운 숫자였지만 지금은 근 두 배에 가깝게 늘었다.
[저들은…….]
그것을 본 군주의 안광에 이채가 서렸다.
“탑에 있던 네 친구들 쩔더라. 빈집털이 당해본 기분이 어때.”
빈집털이!
내가 보유한 언데드 드래곤의 숫자가 늘어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네놈…… 설마 탑을?!]
“아. 그 탑 쩔더라. 어디서 그렇게 긁어모았냐.”
놀리듯 말한 내 손가락 끝 하나하나에 검은 화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죽여…… 죽여라!! 저놈을 당장 죽여!!]
격분한 군주의 외침에 드래곤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수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던 건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외려 수가 역전당한 모양새였다.
[겁먹지 마라! 언데드 드래곤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인형일 뿐이다.]
한 장로급 드래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타락용 진영의 드래곤들이 브레스를 다시 충전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데드 드래곤이 잘나 봐야 살아있는 드래곤에 절대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잉…….
부욱!!
검은 화염이 머금어진 가느다란 브레스 한차례 지상부터 창공까지 훑듯 지나가 버리자 모두의 표정이 얼빠진 듯 변해버렸다.
[크아아아악!!! 내 날개!!]
[아아!! 내 눈!! 아아악! 내 눈!!]
반응도 못할 속도로 날아든 브레스가 그들의 방어 장막을 펼치고 여유를 부리던 드래곤 두엇을 치명상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언데드 드래곤이 본래 가지는 출력과는 격이 다른 수준.
드래곤들은 이해 못 할 언데드 드래곤의 힘에 패닉에 빠진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반대로 온건파는 이리될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모습이다.
[중간계 수호자고 나발이고 그냥 다 관둘래.]
[저 인간이 다 해 먹고 있잖아. 그냥 레어에 처박혀서 취미생활이나 할까.]
물론, 다른 이유로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윽고 언데드 드래곤들이 하나둘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담가 저것들.”
-크아아아아아아아!!!
일렁이는 안광을 번뜩이고 거대한 포효를 쏟아내며 드래곤들이 마치 비 내리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위협수준을 넘어선 재앙이었다.
일방적인 싸움이 지속된다.
설마 자신들의 동족이 언데드가 되어 자신들과 싸우게 될거라곤 생각지 못한 타락용 진영의 드래곤들은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데드 드래곤들은 집요하게 그들을 쫓기 시작했고 하나둘 치명상을 입히며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저들을 죽이지 말고 제어권을 흐트러트려라!!]
급기야 치명상을 입은 언데드 드래곤이 스스로 회복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제는 언데드 드래곤을 처리하기보다는 제어권을 상실하게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 그거 누구 마음대로.
순식간에 손을 휘저은 내가 힘을 끌어낸다.
[9위계 최후 성마법]
[신의 성역(Saint Sanctuary)]
화아아아악!!
내 몸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새하얀 깃털이 되어 사방에 흩날리며 그들의 언데드 드래곤의 제어가 흩어지지 않게끔 틀어막아 버렸다.
[말도 안 돼!! 사령 마법에 신성 마법이라니!]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들로썬 기가 막힐 뿐이었다.
사령 마법과 신성 마법 그리고 원소 마법은 보통 동시 사용이 불가능하다.
아니 한 명이 세 가지 힘을 나눠서 담는 것조차 본래엔 불가능하다.
그것은 드래곤 또한 마찬가지로,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한쪽이 고서클에 이르면 나머지 하나는 그저 겉핥기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자신의 몸에 부하를 가해가면서.
하지만 내가 사용한 것은 초고위 신성 마법이었고.
언데드 드래곤에게조차 고위 사령 마법을 사용했다.
그들로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리라.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이런 망할!! 언데드 드래곤이 왜 신성력에 영향을 받아 더 강해지는 건데?!]
비명 섞인 젊은 드래곤의 외침도 마찬가지였다.
하나하나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반격하지만, 버프까지 받아버린 이 별종 언데드 드래곤들은 가차 없었다.
그 주요한 이유에는 사령 마나와 신성력 그리고 원소 마나가 가지는 본래의 고유속성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포식의 권능으로 먹어치운 힘이라는 점이었다.
기존의 규칙을 개무시하는 포식의 권능으로 뒤바뀐 힘은 이미 일반적인 경우와는 케이스가 달랐다.
아비규환.
이건 더 이상 대등한 전쟁이나 토벌, 혹은 레이드 같은 게 아니었다.
[죽여버리겠다.]
서슬 퍼런 안광을 번뜩이는 군주의 몸에서 검은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딘에게서 받은 힘이라 하였던가.
그래, 확실히 보통 드래곤과 다르게 숨겨둔 수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놈의 힘은 위험천만하다.
이윽고 놈의 힘이 유형화되며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네놈은 절대 내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감각을 잃고 영혼이 균형을 잃을 것이다. 네 영혼은 억겁의 고통을 겪으리라!!]
그의 힘이 나를 장악한다. 일반적인 힘으로 나를 어찌하기 힘들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군주가 오딘이 준 힘을 사용한 것이다.
검은 기운이 나를 대부분 감싸자 참전할 기회를 찾지 못해 늘어져 있던 온건파 드래곤들이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저항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오딘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지 인간? 죽게 되니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렇지않고서야 그 여자가 나를 막을 수단으로 저주의 힘을 줄 리가 없지 않냐?”
화아아아악!!!!
내 몸에 스며든 저주의 힘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과거 로 아이아스가 걸어준 흐름 거부는 과거 여러 요소로 인해 대부분 중화되듯 비틀렸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도 저주에 관해선 거의 면역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저주는 너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내 손으로 오랜만에 익숙한 힘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변형 베르샤의 저주.]
[육체 붕괴. 강(强)]
저주의 힘을 머금으며 더욱 강해지고 단단해진 그의 육신이 더 강한 저주에 의해 비틀리기 시작했다.
“알고도 저지르건 모르고 저지르건 귀찮은 짓 좀 벌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