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3화
우드득!! 우득!!
눈앞에서 거대한 안개 같은 것이 그에게 스며들고, 그의 거대한 갑각이 비틀리기 시작하자 군주는 자신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려 내 힘에 저항했다.
[이깟 저주로!!]
그는 내가 발생시킨 검은 저주의 안개에 저항하며 뒤틀리던 육신을 단단히 보호하기 시작했다.
심연의 공주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단신으로 세상을 뒤집어버릴 힘을 지니고 있다.
베르샤의 물리적인 파괴능력은 다른 심연의 공주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특수성에 한해선 상위 심연의 공주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으리라.
즉, 그녀의 저주는 로 아이아스의 저주와 만나는 바람에 저평가되었을 뿐 그 힘 자체는 상당하다.
콰직…… 콰지지직!!
검은 힘을 끌어내 저항하는 놈을 보니 오딘이 준 힘도 역시는 역시나 라는 생각이 든다.
[군주!]
살아남은 타락용 진영의 몇몇 드래곤이 군주의 상태에 경악하며 다가간다.
그러자 고통스러운 듯 용을 쓰던 군주의 안광이 번뜩이더니 곧 전신에서 검은 기류가 쏟아져 나와 드래곤을 휘감아 삼켜버렸다.
[어어…… 어어어?! 으아아아악!!]
우드득 우드득 소리와 함께 피가 튀기 시작한다.
명백하게 부하 드래곤을 잡아먹은 모양새에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린 찰나.
숨을 크게 들이켠 군주가 천천히 비틀거리더니
이내 스산한 기세를 내뿜었다.
[그 정도 힘으론 나를 죽일 수 없다.]
“말도 안 돼…… 저렇게 어두운 저주라니…….”
[고작 마법 정도로 이 힘을 판단하지 마라.]
오팔 장로의 중얼거림에 군주가 섬뜩하게 눈을 번뜩였다.
그러자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며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내 내가 소환해둔 언데드 드래곤들을 향해 분해 광선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육신이 박살 나도 일어나서 싸우는 언데드 드래곤들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고 놈의 공격에 정면으로 덤벼들었다.
그 결과.
푸화악!!
썩어도 준치라고 군주가 쏘아 보낸 분해 광선이 언데드 드래곤들의 육신을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그들의 드래곤 본은 마치 하늘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처럼 뻥 뚫려 증발해버렸고 다수 노출된 놈들은 나와의 연결이 끊어져 지상에 추락하기도 했다.
언데드라는 게 본래 부서져도 계속해서 만들어내 싸우는 물량전이라지만 군주의 힘은 퍽 재밌는 편이다.
“보통 드래곤하곤 속성이 다른 거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놈을 이리저리 훑어본다.
레드 드래곤의 화염 브레스도, 블루 드래곤의 냉기 브레스도. 블랙 드래곤의 다크 브레스나 그린 드래곤의 브레스와는 조금 많이 다른. 기존의 드래곤과는 다른 방식의 힘이었다.
애초에 생긴 것부터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네놈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였는지 직접 깨달아보아라!]
힘에 자신감이 붙은 듯 놈은 급기야 자신의 부하였던 생존한 타락용 계 드래곤들을 모조리 검은 힘으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단순히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에너지 단위로 분해해서 흡수한다.
이건 오딘의 힘이 아니었다.
저놈 고유의 힘인지. 아니면 그 얼음 같은 머리색을 지니고 있던 놈의 힘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볼 거 다 봤다는 점.
[주…… 죽고 싶지 않습니다. 로드! 살려주세요!]
겁에 질린 이들의 외침도 무시하고 포식을 행하던 놈을 보고 골드 드래곤 호바나와 블랙 드래곤 아르티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잔인해…….]
[어떻게 동족끼리 저럴 수가 있는 거야?!]
잔혹한 행동이지만 군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 나를 한차례 노려본 군주가 눈을 부릅뜨더니 거대한 빛이 놈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놈의 눈이 번뜩이더니 녀석은 우리 모두를 무시한 채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용의 둥지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저놈이 무슨 짓을?!]
[잠깐! 설마?!]
그의 행동에서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건지 오팔이 급히 소리쳤다.
‘이미 늦었네.’
눈치는 빨랐지만. 놈은 자신의 목적을 이미 이루고 말았다.
콰르르르르르르…….
박살 나는 용의 둥지 일부분에 거대한 꼬리를 박아넣은 그가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사람의 팔뚝만 한 작은 보석이었다.
[로드의 힘의 결정!!]
골드 드래곤 카이스가 훔쳐 가려 했던 현 드래곤 로드의 힘의 결정. 바로 그것이었다.
[놈이 흡수하려 한다!! 막아라!]
다급해진 오팔이 순식간에 엄청난 밀도의 브레스를 뭉쳐 놈에게 쏘아 보냈지만 무형의 장막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결국, 군주는 힘의 결정을 입에 털어 넣어버렸다.
[크윽…… 비록 약식이긴 하지만 네놈들을 절망에 빠뜨려주지.]
그 말과 함께 녀석의 신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오며 몸이 뒤틀리고 불어나기 시작하는 군주의 육신은 처음보다 수배는 커져 있었고 날개도 늘어나고 있었다.
뿔의 숫자가 늘어나며 거대한 눈동자 위로 두 쌍의 눈이 찢어지듯 더 열렸다.
이제는 온전한 드래곤이라고도 볼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변해버린 놈을 나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약식이라도 우로보로스의 의식을 진행한 건가? 여기선 불가능할 텐데…….”
[이봐! 지금 그렇게 여유롭게 말할 때가 아니지 않나?!]
블랙 드래곤 실러가 급히 외치며 마법을 끌어올리려던 찰나.
군주의 등 뒤로 거대한 달 같은 형상이 떠오르더니 그대로 실러가 피를 뿌리며 몇 번이고 뒹굴었다.
거대한 덩치 덕분에 그의 증상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막대한 타격이었다.
[오…… 오빠!]
깜짝 놀란 여동생 아르티가 제 오빠 실러의 부상에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라 브레스를 충전한다.
콰아앙!!
하지만 군주는 고작 고개를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다시 지상에 처박아 제압해버렸다.
일방적일 정도로 불합리한 힘이 그에게서 쏟아져 나온다.
[크으…… 대단하군…… 불안전한 의식으로도 이 정도의 힘이라니…… 뭐든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구나.]
그의 목소리에 나는 주변을 짓누르는 광범위 중력 마법을 무시하고 한걸음 내디뎠다.
“그게 니가 원한 거냐?”
[신에 다다른 힘이다. 고개를 조아려라.]
콰드드득!!
그가 전개한 광범위 중력 마법이 더욱 강해지자 나를 제외한 드래곤 전원이 지상에 처박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터, 터무니없는 힘?!]
[크으으으!!]
고통스러워하는 온건파의 드래곤들을 향해 비웃음을 던져준 군주가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놈의 뒤편에 떠오른 달이 녹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변하리라. 내 목소리가 곧 법칙이며. 나는 이 세상의 신이 될지니.]
그가 눈을 부릅떴다.
[죽음을…… 맞이하라.]
[마법의 궤를…… 벗어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다…….]
바닥에 쓰러진 채 용을 쓰던 오팔 장로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오팔 장로의 시선에 비친 것은 하늘이 원형으로 찢어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운석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드래곤이라도 9서클은 이르기 쉽지 않은 영역에 있다.
그렇기에 드래곤이라도 8서클 이상의 경지가 어떤 경지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오팔을 포함한 드래곤들은 군주가 가진 힘의 격차에 절망하며 그 과정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8서클부터는 세 단계 단위로 경지가 나뉜다고 할 수 있다.
8서클 인지 동화 구현.
9서클 이해 실현 초월.
메테오를 강제로 끌어오는 놈의 경지는 아무리 봐도 구조를 이해하는 경지를 넘어 실현에 이르러 있다.
고작 드래곤의 힘의 결정을 먹어치웠다고 저렇게 될 리 없다.
즉.
현재 군주는 과거 아트렐리아에서 만들고자 했던 강제 마력 폭주 프로젝트이며, 마법으로 신에 도달하고자 한 어리석은 프로젝트의 부산물을 몸에 담았다는 소리였다.
그래. 아예 불가능한 스토리도 아니면 이런 짓을 할 리가 있나.
온건파 드래곤들을 절망에 빠뜨리게 만드는 운석의 충돌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군주가 내게 물었다.
[독특한 인간이군. 다른 쓰레기들이 몸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홀로 버티고 있는가. 하나 그것이 고작 한계일 테지.]
“…….”
내가 놈의 경지나 우로보로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느라 대답을 하지 않자 놈은 자신의 말이 맞았다고 판단한 듯 내게 말했다.
[나는 너를 고평가한다 인간. 비록 하찮은 미물이지만 네놈의 힘은 제법 재능이 있다.]
“음? 뭐라고?”
상념에서 빠져나온 내가 그에게 묻자 놈의 세 쌍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새로운 신에게 조아려라. 내가 완벽한 신이 되는 날. 너를 나의 사자로 만들어 이 세상의 조화를 유지하겠다.]
놈은 변태가 틀림없다.
목적은 사실 온건파와 다를 바가 없이 중간계의 수호, 그리고 조화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과격하다.
뭐 그가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됐는지는 알바가 아니지만 나는 놈이 사용하고 있는 우로보로스 프로젝트. 즉 세계의 규칙에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를 그냥 두고 보기 애매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본래 놈이 하려고 했던 경지는 이것보다 더한 경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약식으로 급하게 의식을 진행하고 성공시킨 결과가 저것이다.
“신에 다다른 다라…… 좀 그렇네.”
담담하게 대답한 내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동시에 어떤 빛의 입자들이 모여들며 내 손에 스태프가 쥐어진다.
페르세르크에게 맡겨놓긴 했지만 필요할 땐 써야지 않겠는가.
다 쓰고 다시 그녀의 아공간 좌표로 보내놓으면 되겠지.
기묘한 힘이 서린 지팡이를 손에 든 내가 스태프를 빙그르르 돌리며 바닥에 찍었다.
타앙!!
동시에 빛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저항하겠다는 것인가 인간. 애꿎은 목숨을 날리지 마라.]
“나는 내 목숨 걸거나 버린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나는 하늘에서 천천히 추락하고 있는 거대한 운석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재워놓은 어떤 힘을 깨워냈다.
2년도 전에 나는 세계 전체의 뒤틀림을 조율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했다.
세상에 반신은 제법 존재한다.
당장 별자리만 해도 반신급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반신과 이쪽은 그 밀도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반신이라고 다 같은 반신일 리가 없으니 말이다.
스태프의 끝에 마법을 끌어모으기 시작하자 독특한 마나가 신격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묶어둔 사슬이 모조리 풀리기 시작하며 내 등 뒤로 새하얀 빛덩어리들이 마치 뭉개진 날개처럼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거…… 되어봐야 하나도 좋은 게 없는데.”
[말도 안 돼…… 그…… 그건 뭐냐!]
“뭐긴, 보면 몰라?”
[그럴 리가! 지금의 내 힘은 신에 다다른 힘! 같은 신이 아니고서야 내 힘을 밀어낼 리가…….]
이에 그가 경악한 듯 나를 향해 소리쳤다.
우로보로스 프로젝트로 힘을 얻은 그는 정확하게 내게서 흘러넘치는 게 뭔지를 깨달은 것이다.
힘을 얻었기에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정확하게 본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직도 이런게 전부긴 하다만.”
이윽고 내 손에 새하얀 빛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그가 버둥거리며 포효를 내질렀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고!!]
치지지직……
눈을 부릅 뜬 그가 마치 단말마를 터뜨리듯 중얼거렸다.
[네놈…… 정말…… 인간이냐.]
두려움을 담은 채 나를 향해 묻는 그를 보며 나는 빛을 허공에 던지고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그의 가짜 신력이 모조리 증발하듯 사라진다.
9서클 상위 경지를 신의 영역으로 착각한 자의 말로는 참담했다.
드래곤들을 피바람 속에 몰아넣었던 군주의 죽음은 너무도 가벼웠고, 고요했다.
군주의 죽음과 동시에 중력 마법이 해제되고 나는 조용히 그가 죽은 곳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설마…… 당신이 프리아 여신이었습니까?]
오팔의 두려움 섞인 물음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제법 남자답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페스리사 대륙도 그렇고 왜 자꾸 사람을 여신으로 못 만들어 안달인지 의문이 선다.
[위…… 위대한 창조자에게 경배를…….]
그러거나 말거나 드래곤들은 좀 전 군주가 했던 말. 자신의 힘을 막기 위해선 진짜 신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막아낼 수 없다던 말에 근거하여 거대한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단순 군주의 허세라고 하기엔 그가 만들어낸 힘은 가히 신을 연상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모르니까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아, 나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