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5화
273. 등신들의 연합
뿌드득!!! 콰앙!!!
근육을 꿈틀거리며 천갈궁 스콜피오를 향해 파고들었다.
[터무니없는 괴물 놈이!!]
기겁하며 물러나는 반신급 존재. 천갈궁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보팔레빗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붉은 눈동자를 번쩍거렸다.
[흐음…… 조금 너무 가벼운데.]
뿌드득!!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주먹을 말아쥔 보팔레빗이 한 발 내디뎠다.
[아. 거짓이구나.]
뭔가 이해한 듯 보팔레빗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겉보기엔 근육 도핑에 미친 괴기스러운 토끼지만 놈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대 마수.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 판단되어 봉인된 마수였다.
인상을 찡그린 천갈궁이 다시 한차례 사슬을 뿜어내며 보팔레빗을 포박하려 했다.
그리고, 그중 몇 가닥은 에반젤린을 향해 날아든다.
으드드득 콰창!!!
하지만 보팔레빗은 다시 한번 사슬을 힘으로 끊어버렸고 그대로 천갈궁에게 파고든 뒤 주먹을 주저 없이 내질렀다.
쩡!! 쩌저저저정!!
일순간에 퍼부어지는 엄청난 연타가 시작되고 천갈궁은 반항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연타에 몸을 내주게 되었다.
퍼버버버벙!!
도저히 주먹이 내질러져서 나왔다고 믿기지 않을 굉음이 울려 퍼진다.
치잉!! 쩌어엉!!
마지막으로 내지른 주먹에 의해 공간이 깨지듯 찢겨 나가며 천갈궁의 육신이 찢겨 나갔다.
[휘유~]
느끼한 어조로 말하며 주먹을 회수한 보팔레빗이 당당하게 제 이두박근을 자랑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때 언니, 언니도 나와 같이 근육을…….]
“안 해요.”
단호한 에반젤린의 대답에 보팔레빗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갈은 토끼가 먹어치웠으니 안심해도…….]
촤르르르르륵!!!
순식간에 날아든 사슬이 또다시 보팔레빗을 장악한다.
“아직 살아있어?!”
[근육 펌핑을 더해야겠네.]
육신이 찢겨 나간 천갈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섬뜩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망할. 그냥 죽일까…….]
한치의 걱정도 없는 강자의 고민을 하는 그를 보며 보팔레빗이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
그그그극 콰아앙!!
저 멀리서 거대한 화염 브레스가 날아들어 천갈궁을 공격한다.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 쓰러진 몸 도저히 반항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갈궁의 등 뒤로 거대한 집게발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화염 브레스를 쳐내버렸다.
[죽여야겠군.]
섬뜩한 살기가 서린 목소리에 에반젤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본능적인 두려움을 자아내는 목소리였다.
이윽고 반대쪽에서도 살점이 찢어지며 거대한 집게발이 나타나며 집게발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킨 천갈궁 스콜피오가 기이한 안광을 번뜩였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마치 어느 정도 절제하고 있던 끈을 풀어버린 것처럼.
[언니. 물러나 있어.]
보팔레빗의 목소리에 에반젤린이 트와일라잇을 역수로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한 발, 두 발 물러났다.
보팔레빗의 말에 장난기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것이다.
싸아아아아…….
동시에 천갈궁의 발밑으로 대지가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지독한 독연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주변의 공기를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대기가,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끔찍한 독기에 경악한 에반젤린이 창백하게 질렸다.
“도…… 도망쳐요!”
하지만 보팔레빗은 몸을 포박한 사슬로 인해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팍팍 끊어내던 사슬이었건만. 지금의 사슬은 마치 좀전의 사슬이 장난이었다고 말하듯 너무도 견고했다.
점차 다가오는 독연은 이내 보팔레빗을 완전히 장악할 듯 에워쌌다.
조금만 있으면 그대로 독연에 노출될 상황.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독연에서 무언가를 봤는지 보팔레빗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상성이 최악이구나.]
“근육 토끼 씨!!”
[어서 가. 잠깐이라도 붙들어볼 테니.]
그렇게 말한 보팔레빗이 다시 저항하려 할 때였다.
스스스슥…….
갑작스레 독연들이 일제히 사라진다.
그리고, 집게발로 몸을 지탱하던 천갈궁이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무슨?!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누군가와 대화하는 건지 허공에 소리치던 그는 이내 혀를 차며 기세를 완전히 거둬버렸다.
분해된 육신은 빛에 휩싸이며 본래대로 돌아온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짐승.]
싸늘하게 말한 그가 허공 속으로 스르르륵 사라졌다.
동시에 사방에서 들려오던 폭음도 일제히 사라졌다.
“간…… 거에요?”
[나도 모르겠는걸.]
느긋하게 말하며 독연에 잠식된 제 팔을 바라본 보팔레빗은 콩알 같은 눈을 꿈틀거렸다.
[근손실 나는데…….]
아쉬운 듯 중얼거린 그가 제 팔을 뜯어버렸다.
동시에 얼마 가지 않아 보랏빛으로 변색된 팔이 완전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흐읏…….”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 에반젤린이 입을 틀어막았다.
팔을 뜯어내지 않았다면 그는 전신이 보랏빛으로 녹아내렸으리라.
좀 전까지 주변을 잠식시켰던 땅은 무언가에 녹아내린 듯 끈적끈적하게 변해있었다.
[에반젤린!]
“앗…… 메기! 륀느!”
이윽고 먼지가 잔뜩 묻은 몰골로 나타난 륀느와 메가로드리아를 발견한 에반젤린이 크게 소리치자 메가로드리아는 망설임 없이 바람을 일으켜 그녀를 띄운 후 제 등에 태워 날아올랐다.
[놈들이 사라졌다! 빠르게 후퇴할 테니 꽉 잡아라!]
“륀느는 이곳에 남아 추적을 저지. 메가로드리아의 성질, 매우 재수 없지만 비행능력 우수. 륀느가 이 상황을 낮게 평가.”
[흥! 제 할 일이나 똑바로 해라.]
코웃음을 치며 에반젤린을 데리고 날아올라 사라지는 메가로드리아를 보며 륀느와 뒤늦게 합류한 샨드라미네아는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는 이내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일제히 흩어졌다.
[근손실을 보충해야 돼.]
그리고, 홀로 남은 보팔레빗 또한 스르륵 흩어지며 작은 토끼로 변했고 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타락용 군주는 그렇게 사라졌다.
군주의 죽음 이후 나는 사후 처리를 맡겨놓고 하인스 영지로 돌아왔다.
에반젤린에 대한 이야기를 륀느에게 전해 들은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진행되었다.
타락용 군주는 현 드래곤 로드의 힘의 결정을 먹어치우고 신에 가까운 힘을 얻었다 자만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용만 당한 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얼마 남지 않았던 타락용들 대부분은 그에게 잡아먹혔고. 이제 살아남은 타락용이라고 해봐야 골드 드래곤인 카이스 장로와 그 동생인 카이나. 그리고 배신자인 카이저 장로, 내게 정보를 건네준 블루 드래곤 두 마리와 요쉬 대륙의 드래곤 로드 발포르스가 전부였다.
제법 많은 양이지만 그들이 본래 유지하고 있던 수에 비하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인 것은 분명하다.
나를 용의 둥지에 발을 묶어놓은 것이 계략인가.
아니면 그 과정 중 하나일 뿐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놈들이 에반젤린으로 목표를 바꿨다는 점이다.
아마 정확히 말해서 에반젤린의 심장을 노리는 것일 터.
그 예로 하인스 영지로 향하던 에반젤린이 습격을 당했다.
그것도 세 마리의 별자리에게.
“천갈궁 스콜피오. 쌍어궁 피시즈, 보병궁 아퀘리스.”
전갈자리와 물고기자리. 그리고 물병자리.
한번에 셋에 해당하는 별자리가 동시 습격을 가한 것은 조금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대비가 미숙했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현재 대부분의 차원은 본디 차원의 벽을 관리하던 오딘으로 인해 모조리 틀어막힌 상황이다.
그나마 왕래가 가능한 건 지구와 티오니스 정도뿐. 그 외의 세상에서 오고 가는 건 사실상 틀어막힌 꼴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있는 아트렐리아로 진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 여자에게 제압당한 존재다. 그들이 어째서 물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라.]
나타난 침입자는 총 셋.
그들의 힘은 하나하나가 굉장한 수준으로 에반젤린에게 들은 바로는 그들이 보인 힘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후 보팔레빗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별자리의 위계는 반신급.
하지만 놈들은 기존의 반신 이상의 위계를 가지고 있다.
무려 프리아 여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만들어낸 것들이니까.
하지만 놈들이 지상에 강림해 힘을 발휘하거나 육신을 보유하는 순간 그 힘은 엄청난 절감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게 그들의 조건. 즉 직접 간섭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그게 가능했다.
마치 사람을 화신으로 만들고 그 안에 빙의한 것처럼 말이다.
“네가 본 거, 사실이야?”
영주성의 집무실에서 모두가 침묵하고 있던 차에 내가 한쪽 구석에 앉아 미친 듯이 덤벨을 들었다 놓고 있는 보팔레빗에게 물었다.
[가짜. 육신을 강제로 빌린 것 같았지. 힘의 제어가 똑바로 되지 않았어. 반신급 존재치고는 너무 약했으나 품은 힘은 막대했지. 육신과 빙의한 자아의 링크를 포기하는 순간 그 힘이 늘어났다는 점?]
놀라울 정도로 면밀한 분석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근육밖에 모르는 뇌 근육 덩어리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싶은 표정이었다.
“후우…… 적어도 별자리 셋 이상은 민폐를 끼친다는 거네.”
오딘의 제압에서 도망친 사자자리 레오는 내게 동맹을 요청해왔고 나머지는 현재 침묵 중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교통정리 부분이었다.
“자기 본진은 틀어막고 농성하면서 이쪽으로 습격은 한다라…… 억지도 정도가 있지.”
신격을 가진 나는 현재 얇은 차원의 벽을 뚫고 진입할 수 있다.
아니, 본래는 그래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차원의 벽을 관리하는 권능을 부여받은 오딘이 그 벽을 모조리 틀어막고 자신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신이 살아있는 지구. 즉 넬타리드의 영역까지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지만 나머지는 오딘의 힘으로 제어되고 있다.
“저…… 인간? 그게 무슨 말이야?”
타락용의 괴멸로 전쟁이 순식간에 끝나버린 온건파 드래곤들은 결국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는 핑계로 하인스 영지까지 나를 따라왔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선 은혜를 갚겠다며 뭐라도 도움이 될 것을 찾겠다 했지만 내가 볼 땐 혹여나 무슨 상황이 벌어질까 나와 접촉할 수단을 남겨놓으려는 치밀한 수작이었다.
아마 마린 장로의 행각이리라.
“적이 다른 차원에서 습격을 가하면서 이쪽에선 넘어가지 못하게 틀어막아 놨다는 뜻이다.”
오딘이 날뛰기 시작했는데 다른 영웅들은 대체 뭐 하는 건가 싶지만 애초에 속세를 떠나 세상의 균형 유지에 바쁜 영웅들에게 그런 것까지 맡길 순 없었다.
게다가 현재 그들과 제대로 된 연결 또한 되지 않고 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아트렐리아로 넘어갈 수만 있으면 되겠는데.”
현재 그걸 오딘이 틀어막고 버티고 있으니 이쪽도 쉽지 않다.
권능의 사용도 그녀가 일방적이고, 마법으로 넘어가려 해도 쉽지 않다.
하필 오딘이 마법사라는 점 때문이었다.
“인간. 그게 힘든 거야?”
드래곤이라도 차원 이동 자체에는 굉장히 생소할 수밖에.
“내가 오딘이고, 적의 접근을 막을 생각이면 상대가 이동마법을 펼침과 동시에 차원 사이 틈을 꽈배기처럼 꼬아버릴 거다.”
그렇게 되면 이동을 시도한 이들은 그대로 그 길에 갇혀 영원히 헤매게 된다.
“방법도 알고 막을 줄도 아는데.”
문제는 상대가 오딘이라는 점.
원소 마나를 다루는 마법에 한해서 나를 막을 작자가 없는건 사실이지만 유일하게 내가 손조차 못 대는 괴물 같은 마법사가 바로 오딘이 아니던가.
사실 그녀의 이번 행동에 대해선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그녀가 어쩌다가 그 꼴이 된 건지.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된 건지도 알 길이 없고 이미 실패했다는 결론이 난 우로보로스 프로젝트를 왜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애초에 그 프로젝트는 성공해도 파멸. 실패해도 파멸밖에 없을 텐데 말이다.
“차원을 넘는다라…… 우리 종족이 마법의 종주라곤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네. 이론상으론 가능해도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루델의 중얼거림에 골드 드래곤 호바나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차원이동이라니.”
드래곤들의 지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듯 보였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골키퍼가 너무 잘 막고 있는 것이니까.
[방법은 있다.]
그때 내게 동맹을 제안해왔던 별자리. 사자자리 레오가 나를 향해 의지를 보내왔다.
“방법?”
[별의 시선에선 어떤 행성이든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이동 자체에 고유적인 독립성을 지닌다.]
놈의 말을 해석하면 이렇다.
자신들은 독특한 차원이동 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
그들의 힘은 마법과는 다른 또 다른 무언가로 현재 오딘이 관장하는 차원의 벽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다.
즉, 이놈들이 자신들의 이동에 사용하는 고유 이동 능력이 현재 내가 오딘을 만나러 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소리였다.
방법에 간섭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조건이 있지만 반대로 보면 완벽하게 독립적인 통로를 얻는 셈이니까.
“조건이 있나?”
이윽고 내가 아트렐리아로 향하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녀석에게 묻자 놈은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힘을 많이 소모했다. 다른 별자리 또한 마찬가지. 그런 만큼 독자적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적어도 나와 같은 존재가 셋 이상 모여야 한다.]
그의 설명에 나는 천천히 계산을 돌렷다.
제법 내게 호의적인 또라이. 금우궁 타우르스 하나.
그리고 직접 동맹을 요청한 사자자리 레오 하나.
“……하나 모자라네.”
결국, 원점이다.
“하…… 이거 쓸모없네.”
내 중얼거림에 사자자리 레오가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얼굴로 나를 향해 항의하듯 바라본다.
회의에서 결국 크게 건진 것은 없었다.
현재로서 하인스 영지는 오딘이 직접 습격하지 않는 이상 가장 안전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저쪽은 언제 공격을 가해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쪽은 넘어갈 수단도 없다.
타락용의 수장인 군주를 처리하는 데엔 성공했으나 문제의 근원은 그대로 남아있다.
은퇴했으니 세상 어찌 되건 나는 나서지 않겠다고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는가.
그리 생각하면 참 나도 입이 가벼운 놈이지만 그 전제조건이 이번엔 달랐다.
세상이 어찌 되건 그건 내 알바가 아니되 지금 나는 오로지 개인 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 데나 기웃거리며 오지랖 부리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닌데…….”
한숨을 내쉬며 상의를 휙 벗어 던지고는 침대에 털썩 드러누운 내가 눈을 감았다.
“페르세르크 보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으려던 찰나.
무언가가 스르르륵 하며 나타나 내 배 위에 올라앉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복부를 통해 느껴진다.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이 살과 살끼리 부딪히는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
이에 눈을 부릅 뜬 내가 고개를 들어 침입자를 확인했다.
“아…….”
“데이비이이이?”
어두운 방 안.
내 배 위에 올라탄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페르?”
술에 잔뜩 취한 페르세르크였다.
“데이비이? 본녀가 차암 그대를 보고 싶어서 이렇게 넘어왔단 말이야.”
그녀가 뇌쇄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이게 꿈인가.
지구로 여행 간 건 기억하는데 아직 예정했던 여행기간이 다 되지 않았다.
요염하게 손을 뻗어 내 가슴팍을 쓸 듯 손을 끌어올린 그녀가 예쁘게,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눈을 부릅 뜨더니 이내 내 목을 콱 잡았다.
“초월의 종언을 하필 그때 가져가서 아주 그냥!!”
그녀가 악악거리며 덤벼들자 나는 당황한 듯 버둥거렸고 이내 균형이 풀린 그녀가 내 가슴팍에 머리를 묻으며 쓰러졌다.
독하면서도 감미로운, 정체 모를 어떤 와인의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찔렀다.
그런 내게 엎어진 채 그녀가 뭔가를 말했다.
그리고 내가 움직임을 멈췄다.
-에이리아가…….
그녀의 말은 내게 충격을 가져다줬다.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