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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76화 (976/1,559)

제 976화

“흠…… 이곳이었던 것 같은데…….”

바닥에 쓸려나간 자국을 보며 대족장 쓰가 인상을 찡그렸다.

“한발 늦은 것 같군. 형제여.”

그 말에 금우궁 타우르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의 기운을 쫓아 이곳으로 온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쫓아온 곳에는 무언가가 파괴된 흔적밖에 없었다.

“형제와 같은 존재들의 흔적이 분명한가?”

미스터리에 가까운 대화 법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족장 쓰는 그것을 이뤄내고 있었다.

“음. 그래? 그렇군…….더이상 이곳에서 건질 건 없겠군.”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던 대족장 쓰가 손을 뻗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하인스 영지로!!”

이에 금우궁 타우르스도 만족스레 움직인다.

“한데 형제여! 우리 이상하게 아까부터 계속 빙빙 돌고 있지 않은가?”

“…….”

* * *

상당히 많이 마셨는지 붉어진 뺨. 흐트러진 모습.

“페르…….”

“왜? 이상해?”

복장은 평소 그녀가 즐겨 입는 검은 빛에 굴곡이 잘 사는 드레스지만 묘하게 흐트러진 모습이다.

그녀도 술을 어느 정도 즐기는 편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취한 적이 있던가.

보아하니 떡이 될 때 까지 마시고 대뜸 넘어온 것 같은데…….

“안 입었어?”

눈을 꿈틀거리며 내가 묻자 그녀가 장난기 서린 미소를 지으며 내게 파고들었다.

“보고싶었어어…….”

말끝을 늘어뜨리며 애교를 피우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녀가 깨어났을 때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면 퍽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휘적거렸다.

근처에 놓인 비어있는 영상석을 가동시킨 뒤 내가 어색하게 웃자 그녀가 내 위에 올라탄 채 말했다.

“여기도 없다아?”

그녀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내게 밀린 그녀가 뒤로 넘어가자 그녀의 뒷목을 받쳐 조심스레 받아든 내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페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에이리아의 이야기는 또 뭐고.”

그런 내 물음에 그녀는 내 허벅지 위에 올라앉은 채 내 품에 안겨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야기…… 해줘야 하는 데에…….”

뭔가 상당히 괴로웠던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그녀의 몸에 마나를 불어넣어 취기를 날려준 뒤 조용히 안았다.

…….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아 주고 있자 그녀 또한 조용히 내게 몸을 맡긴 채 머리를 가슴께에 묻고 침묵했다.

그렇게 한참은 있었을까.

술기운이 날아간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족의 특징인 붉은 혈안이 잘게 떨렸다.

“이제 좀 괜찮아?”

다른 이들에겐 전혀 알리지 않고 홀로 돌아왔다.

내가 그들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지만 그녀만 이렇게 온다면 당연히 나머지는 티오니스로 돌아오기 힘들다.

일리나가 차원까지 베어버린다면 그 틈을 타고 올 순 있겠지만 정교한 작업이 아닌 이상 변수는 존재할 수 있으니까.

“읏…….”

그렇게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곧 자신의 상황과 좀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눈을 부릅 떴다.

“아…… 아아…….”

“뭐, 안에 없다고?”

“그, 그만!”

그녀가 나를 밀쳐내며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본녀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하하하하하!”

나는 즐겁다는 듯 웃어넘겼다.

하지만 마냥 웃고 떠들 상황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술에 취했다고 허언을 할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보이는데.”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일리나가 간혹 즐기는 인터넷 게임을 같이 즐기던 에이리아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성격도 잘 맞았던 두 사람은 금방 친해졌고. 지내는 곳도 가까운 터라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며 가까워졌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떠난 후에 벌어졌다.

“같은 아카데미의 생도에게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집단폭행.

페르세르크가 말하는 아카데미는 학교를 말하는 것일 테니 흔히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학급 폭행사건이다.

“설마 친구를 구하겠다고 죽인 건가?”

애초에 나 또한 수많은 인간을 죽인 놈인 만큼 에이리아가 죽였다고 해서 그녀를 경멸할 이유도 자격도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에이리아가 스스로 누군가의 피를 손에 묻힌다는 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데이비. 이곳에도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던데.”

“별거 아냐. 도마뱀 넷 정도가 체류 중이고 별자리 하나가 체류 중인 것 빼고는.”

이 불법체류자 놈들.

그런 내 대답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대도 그대의 일이 바쁜데.”

“에이리아의 일만큼 중요한 게 어딨어. 지금 일은 개인적인 일일 뿐이고, 당자 급한 것도 없어. 자세히 이야기해봐.”

내 말에 그녀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직접 보는 게 좋을 듯해.”

* * *

곤히 잠든 에반젤린은 현재 최우선 보호대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륀느나 환수왕 녀석들을 이용해 그녀를 보호하게 만든 뒤 페르세르크를 데리고 공간을 넘었다.

“그런데 열쇠를 쓴 거야?”

“아니. 현재 열쇠는 에이리아가 가지고 있어.”

그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리나가 무리하게 공간을 찢었을 리는 없을 테고.

“그럼 어떻게?”

페르세르크의 마법으로는 넘어오기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열어준 틈은 오딘으로 인해 막힌 상황.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넘어온 것인가.

“협조하는 이가 있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협조? 발키리아도 아닐 테고, 넬타리드가 마냥 그리 편애가 가능한 상황도 아니라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가보면 알게 될거야.”

공간을 뛰어넘어 현아의 도움으로 우리가 지구에서 머무를 때 지내는 거처에 도착하자 묘한 적막감이 감돈다.

“일리나.”

“데이비!!”

이윽고 방에 들어가자 피곤한 표정으로 흔들의자에 늘어져 있던 일리나가 급히 달려왔다.

“괜찮아? 네 일은 어쩌고.”

이미 내가 티오니스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걱정하는 그 모습에 내가 고개를 돌려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았다.

“좀 전에 본녀가 어떻게 차원을 넘었는지 물었지.”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손짓을 했다.

“현재 협조를 해주고 있는 이야.”

그녀가 손을 뻗자 그곳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미남형의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내 눈이 크게 뜨여진다.

“놀라는 것도 이해한다. 인간. 별을 침묵시킨 자여.”

손이 떨리고 시야가 혼미해진다.

“너…… 너너…….”

놈을 본 내가 혼란을 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가 쓰게 웃었다.

“비록 사이가 좋다곤 할 수 없겠지만…….”

“지금…….”

그런 그의 말을 끊은 내가 그를 향해 다가갔다.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듯 다가간 내가 놈의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렸다.

“니가 왜 여기 있어.”

“…….”

“대답 안 해?”

“이봐.”

그의 부름에 내가 눈을 부릅 떴다.

“남자 새끼가 여자만 사적으로 지내는 집에 불쑥 찾아와? 너 이 새끼. 아주 간이 부었구나?”

별자리? 아 몰라. 지금 페르와 일리나 그리고 에이리아가 지내는 이 집에 대뜸 찾아온 이놈의 행동이 더 문제다 이 말이야.

* * *

눈이 밤탱이가 되어버린 채 주저앉아 있는 사내는 겉보기엔 20대 초중반 정도의 호남형 외모를 가진 인간이다.

하지만 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중앙별 조디악에 의해 파생된 별자리.

사수자리, 인마궁이자 세지테리우스.

그게 바로 놈의 정체였다.

“하나하나 이야기하자고. 그리고,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이곳에 대뜸 공간 넘어서 나타나 봐. 그땐 아주 뼈도 못 추릴 거다.”

공적으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독단으로 이렇게 불쑥 찾아오다니. 아무래도 이곳의 방비를 강화해야 할 듯싶다.

“끄응…….”

끙끙거리는 인마궁 놈을 무시한 채 내가 고개를 돌렸다.

“너희도 좀 조심히 다녀라. 아무리 그래도 걱정하는 사람도 생각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너희 몸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땐 진짜 내가 도는 꼴을 보는 거야.”

“미안해 데이비.”

일리나가 시선을 피하며 빨개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가 부끄러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에이리아는.”

“미안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아직…….”

“데이비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해주어야겠지.”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운을 떼었다.

“데이비. 에이리아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했었지?”

“그래.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들리는데.”

“맞아. 에이리아는 현재 한국 경찰 쪽에서 비공식적으로 쫓고는 있을 뿐 제대로 된 단서가 나오지 않았어.”

그녀가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싶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 별자리가 왜 여기 있고.”

내 물음에 일리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도망쳤대. 네게 도움을 요청하고 정식 동맹을 요청한다고.”

그 말에 내가 놈을 보자 놈이 뭐라 뭐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잔뜩 부풀어 오른 뺨 때문에 발음이 뭉개진다.

“아트렐리아에서 제압당할 뻔했다가 도망친 거라고 하더라. 저 몸도 그때 생긴 거라고. 어쨌거나.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널 꼭 만나야 한다고 해서.”

“레오와 비슷한 상황인가?”

“사자궁을 만났나?! 그럼 이야기가 편하겠군!”

이놈은 지금까지 본 다른 별자리와 다르게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가만. 륀느가 싸웠던 천갈궁이나 쌍어궁 보병궁 놈들도 다 이런 상태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사자궁 레오와 나는 그 괴물 같은 여자의 손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나는 빠져나오는 게 늦어서 이 육신에 갇혀있지만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지! 나를 도와…….”

“아니 그건 나중에 하고. 일단은 에이리아가 더 중요하지. 네 이야기는 나중에 들을 테니 일단 닥치고 있어.”

“…….”

내 말에 눈에 띄게 쭈그러드는 놈을 무시한다.

그리고는 다시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았다.

“설명.”

“간단하게 설명해줘? 아니면 복잡하게?”

“일단 결론부터.”

“친구가 무참하게 살해당한 에이리아의 내면에서 뭔가가 튀어나왔어.”

그 말에 나는 오래전 봤던 인격을 떠올렸다.

유약한 에이리아와 다르게 거침없던 하나의 인격을 말이다.

“나인테일…….”

…….

잠시 침묵하다 내가 입을 다시 열었다.

“자세하게.”

“나랑 같이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한 친구를 사귀었거든. 그러다가 친해져서 직접 만나 노는 상황까지 갔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학급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나 봐. 그걸 정령을 써서 그들을 몰아냈는데…….”

친구를 구했다.

하지만 그 후에 문제가 생겼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학생들은 그 이후 그 친구를 더욱 철저히 괴롭혔고, 보다 못한 일리나가 그들을 찾아가 모조리 팔을 꺾어버렸다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이 나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걸 알렸다면 큰 문제로 번질 일도 없지만, 이들은 내가 지구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아는 만큼 자신들의 진짜 소속을 철저하게 숨겼다.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

여느 때처럼 친구와 약속을 위해 외출을 나간 에이리아가 약속장소에 다다랐을 때.

피 냄새가 그녀를 이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친구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현재 그녀는 일리나와 본녀의 추적도 따돌린 채 움직이고 있어.”

“그럼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건가?”

“아니. 처음 경찰이 에이리아를 쫓고 있다고 했었지?”

“그랬지.”

“현재 경찰은 그 친구를 죽인 살인범으로 에이리아를 쫓고 있는 거야. 시신이 발견된 곳에 에이리아가 있었거든. 그리고 에이리아가 사용하는 핸드폰 번호로 그 친구를 부른 흔적도 나왔다는 모양이야. 괜히 문제가 커지면 자연스레 네 위치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은 우선 에이리아를 찾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에이리아는 그런 경찰의 추적을 피해 홀로 진범을 찾고 있는 것이고.

아마 페르세르크와 일리나에게 접촉하지 않는 건 그 괴짜 같은 다른 인격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고 반대로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

“자세한 건 그녀를 만나봐야 해. 일단 내가 그녀의 흔적을 쫓고는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바닥에 추욱 늘어진 인마궁 사수자리 녀석을 툭툭 걷어찼다.

“야. 나중에 다시 찾아와. 오딘과 사자자리 문제는 그때 가서 들어줄 테니.”

내 말에 인마궁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정말인가?! 정말 동맹을!”

“그 사자 놈하고 이미 손을 잡은 이상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어. 다만 지금은 에이리아가 더 중요해.”

오딘의 일도 개인적인 일로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홀로 움직이고 있는 에이리아를 찾는 것이었다.

그녀를 살인범으로 추적하는 경찰이 있다.

숨어든 진범이야 뻔하건만 누군가를 찾아 홀로 움직이고 있는 에이리아는 아마 이 일을 뒤에서 도와주고 함정을 판 자들을 모조리 찾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내면 인격은 에이리아 본인과 다르게 상당히 가차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에이리아를 찾고 있는 이 두 사람까지.

힘들 때 정작 내가 도와준 것이 없다는 게 기분이 상하는 느낌이다.

“겁대가리 없는 새끼들.”

경찰도 웃기네. 고작 에이리아가 부른 문자 하나 때문에 그녀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다는 것인가.

물론 수사에 불응하고 홀로 움직이고 있는 에이리아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한국의 법은 생각보다 느슨하거나 구멍이 많으니까.

이대로 경찰에게 협조하여 넘기는 순간 일은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당연히 수사에 불응하고 자취를 감춰버리니 경찰 쪽도 그녀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머리가 돌아가는 경찰이 있다면 이 사건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도 알 텐데.”

“그렇지 않아도 현아 아가씨가 관련 정보를 좀 구해줬어. 에이리아가 추적할 수단을 모조리 파괴해버린 탓에 경찰의 정보를 좀 얻어보려 했거든. 그중에 이 사람.”

일리나가 한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서울 강력계 1팀 반장 오형만. 이 사람이 이 사건에서 에이리아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들쑤시고 다녔다가 어느 날 정직 당했다고 해.”

큰놈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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