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8화
삐릭!
[인마궁 사수자리가 육신의 붕괴는 상당히 거슬린다고 불평을 토합니다.]
[다른 별자리와 다르게 육신에 갇히고도 의지를 유지하는 별자리는 자신뿐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설명합니다.]
삐릭!
[인마궁 사수자리가 당신에게 별가루 50,000개를 후원합니다.]
별자리는 자신보다 격이 낮은 존재에게 화신이라는 이름을 주고 힘을 건네줄 수 있다.
하지만 별자리와 나의 격을 비교하면 놈들은 절대 내게 화신을 넘길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놈이 내게 힘을 건네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바로 후원 시스템.
대상이 누구건 자신의 힘, 자신의 권한을 내게 보내주는 것.
녀석이 후원한 별가루는 내게 축적되어 내 앞에 드러난 상태창 같은 반투명 박스에 목록을 출력해줬다.
권능을 쓰지 않아도, 적정선을 유지한 채로 오딘을 제압하는 건 쉽지 않다.
이런 추가 요소가 존재하면 닥치는 대로 파밍해 두어서 나쁠 것도 없다.
근력 증가 1p - 1000별가루.
민첩 증가 1p - 1000별가루.
체력 증가 1p - 1000별가루.
마나 증가 1p - 10000별가루.
놈이 내게 지원한 별가루는 총 15만.
근력 민첩 체력 증가는 150 포인트 정도고…… 마나는 15포인트.
그래서? 이거 얼마나 늘어나는 건데?
[한번 실험해 보는 게 어떻겠냐며 인마궁 사수자리가 제안합니다.]
이에 나는 미련 없이 마나에 1포인트 투자했다.
[인마궁 사수자리가 마나 증가는 효율이 떨어진다고 불평합니다.]
“가장 정교하니까 이걸로 비교하는 거다. 비율은 같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라도 되리라.
이후 내가 사용한 별가루들이 어떤 힘으로 뭉쳐지며 내게 스며들었다.
그 양은 내가 가진 마나에 비하면 극도로 희박한 수준이지만 제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 이건 좀 흥미롭네.”
내 것이 아닌 마나가 마치 내 것처럼 숨어들어 내 몸에 안착한다.
별자리들이 가한 스탯 포인트라는 건 본래의 인간이 가진 힘에 무언가를 덧씌우는 느낌이었다.
“부작용도 없지만 반대로 언제 잃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힘이라는 거네.”
화신이든 후원자든 근본적으로 별자리를 거스를 수 없다.
“스탯은 됐고, 후원은 더 못해?”
[인마궁 사수자리가 지갑이 홀쭉해져 월급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월급은 조디악으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니들은 돈 받아가면서 싸우냐?”
[본래 성운 전쟁은 성운끼리의 싸움이 아닌 화신과 후원자의 싸움이라고 사수자리가 해명합니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글귀가 적힌 박스를 보며 나는 한 손으로 그것들을 걷어 내버렸다.
“이건, 잘 빌리마.”
그가 후원한 별가루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것들 중 흥미로운 것을 눈에 담는다.
죽자고 싸운 별자리가 당분간 동맹 상태에 들어간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리라.
* * *
아트렐리아 왕궁.
왕좌에 앉은 얼음빛 머리칼의 사내. 로키는 자신의 한쪽 눈을 살살 문지르다 천천히 남은 손을 뻗어 안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그것을 매며 말했다.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이제. 시작할 일만 남았네요. 나의 마신이시여.”
그의 말에도 오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제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
“한때 당신을 포함한 동지 모두가 원했던 일 아닌가요?”
“…….”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은 완성이 되고나서 할 일이지요.”
콰앙!!
그때 고요하고 어두운 공동 문안으로 어떤 이들이 무더기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키! 이게 무슨 짓이냐!!”
격분한 이들의 복장은 척 보기에도 나 마법사요 하는 듯한 모습이다.
“고생했습니다.”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콰직!!
로키라 불린 얼음빛 머리칼의 사내가 검을 뽑아 한 사내의 가슴을 찔렀다.
“커헉…… 컥…….”
괴로워하는 사내를 거침없이 해치워버린 로키를 보며 피를 흘리던 사내가 물었다.
“네놈…… 우린 분명 한 배를 탄 사이였다. 네놈의 의지대로 우리는 썩어빠진 원로들을 무너뜨리고 다시 왕정 체제를 되찾았다.”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사내가 이를 빠득 깨물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냐? 네놈…… 대체 네놈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무엇이기에 과거의 수호신까지 깨워내 이런 짓을 하는 거냐는 말이다!!”
그의 외침에 로키는 빙그레 웃으며 쥐고 있던 검을 버리고 손을 펼쳤다.
그러자 기이한 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원소 마나로 만들어졌으나, 원소 마나와는 다른 어떤 두려운 힘이었다.
“네놈 설마…… 벌써 기반을…….”
“고생하셨습니다. 그동안 나를 따라와주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검을 빙그르르 돌렸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생하셨습니다.”
“네놈 설마!!”
“그동안 강자의 힘을 휘둘러 왔으니 말입니다.”
“이 미친놈!! 네놈은 고대의 다크 위저드들 이상으로 미친놈이구나!!”
콰직!!!
비명을 지르는 이들을 손수 모조리 베어 지워버린 그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검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주변에서 경악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로키는 담담하게 명령할 뿐이었다.
“뭐합니까. 치우지 않고.”
싸늘하게 말한 그가 돌아섰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세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쌍어궁. 시킨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함부로 명령하지 마라. 내가 모시는 건 네가 아니다.”
“대답.”
그 말에 오딘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 발 내딛었다.
그러자 연미복을 입은…… 생선 머리 사내가 뻐끔거렸다.
“수호자가 있더군. 인어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 알들을 모조리 부숴버렸다.”
“실패…… 했다는 거군요.”
“아니. 수호자 놈은 바다에 영역을 두고 있다. 게다가 딱히 인간 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이더군.”
“그거면 됐습니다. 평온은 제 계획을 방해할 수 없다고 들었지만 변수는 차단하는 게 좋겠지요. 그리고 당장 그자가 이곳으로 넘어오는 것도 곤란합니다.”
그의 말에 어둠속에서 갈색 피부를 지닌 사내가 걸어 나왔다.
“어차피 저 여자의 벽이 있으면 그놈은 절대 이곳으로 못 넘어 오는 거 아니었나? 애초에 뭐 하러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하는 건지. 내가 가서 그놈을 한번 찔러주면 알아서 끝나줄 텐데.”
천갈궁. 스콜피오의 투덜거림에 로키가 피식 웃었다.
“당신이요? 최근 들은 이야기 중에 제일 웃긴 이야기네요.”
“뭐라?”
별자리의 분노가 주변을 감싸기 시작하자 로키가 미소를 지웠다.
“둘이나 당했는데 아직 그런 속편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전갈자리가 단 한 번도 중앙별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이 개자식이 감히 신을 우롱해?!”
“신이 아니라 반신이겠지!”
쾅!!
순식간에 스콜피오의 육신이 튕겨져 나갔다.
“커헉…….”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오딘이었다.
무형의 탄환에 맞아 쓰러진 스콜피오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크으…… 빌어먹을, 죽겠군.”
로키는 조용히 오딘의 뺨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비록 견고한 벽을 친 건 사실이지만 유지할수록 부담이 강해질 겁니다. 게다가 당신들 별자리는 독특한 차원문을 열 수 있을 텐데요.”
“사자궁이든 인마궁이든 그놈들은 무리하게 차원을 넘었으니 다시 차원을 열 힘 따윈 없을 거다.”
“확신할 수 없으니 대비를 해야겠지요.”
그가 그렇게 말하던 찰나.
빠직!!!
멀지 않은 곳에서 유지되던 수정에 금이 간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네요. 시간이 부족한데…….”
그렇게 말한 그가 스콜피오를 노려본다.
“이래도 못 넘어온다고 단언합니까?”
“고작 인간에게 빌붙다니 배알도 없는 놈들…….”
사자궁과 인마궁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그였다.
“이상하군.”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귀를 지닌 푸른 비부의 여성이 중얼거렸다.
“보병궁.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사자궁과 인마궁은 저 인간에게 원한이 깊지. 그 인간에게 달려가서 조력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 둘의 힘으론 차원벽을 뚫는 게 불가능할 텐데.”
“힘을 많이 축적해놓고 있던 누군가가 더 조력했다고 봐야하나?”
쌍어궁의 질문에 보병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라 인간. 네 목적이 어떻든 그 인간이 데리고 다니던 존재들은 하나같이 극도로 위험하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쌍어궁의 힘으로 그를 지구에 묶어두려고 했는데 이걸 실패하네요.”
“멍청한 어류에게 뭘 바란 내가 바보지.”
차갑게 일갈하며 나가버리는 보병궁을 보며 쌍어궁이 짧게 혀를 찼다.
“내가 나가서 치우고 오지. 그놈…… 지금 이곳에 온 거 아닌가?”
“예. 그럴 겁니다. 당장 마신님을 보내면 그를 정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의식 진행에 차질이 생길 터.
“이곳, 아트렐리아는 넓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있지요. 이곳에서 우리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주세요.”
“좋다. 너도 약속은 절대 잊지 마라.”
“별자리를 속일 정도로 간이 크진 않습니다.”
* * *
사람 두엇 정도 들어갈 균열이 영지 지하 작업실 중앙에서 열렸다.
굳이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 봐야 이득이 될 게 전혀 없기에 나는 사자궁 레오와 인마궁 세지테리우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금우궁 타우르스를 모았다.
금우궁 타우르스와 대족장 쓰는 이 도시에 있는 보팔레빗을 찾아 헤맸지만 보팔레빗은 무슨 생각인건지 그날 이후로 종적을 감춰버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났다. 내 힘은 여기까지. 이 이상 현신할 수가 없다.]
삐릭.
[사자궁 사자자리가 당신을 후원하고자 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N]
먼저 힘을 다하고 사라진 사수자리와 똑같은 제안.
나는 망설임 없이 Y버튼을 가볍게 두드렸다.
삐릭!
[인마궁 사수자리가 당신에게 5000별가루를 후원합니다.]
[사자궁 사자자리가 당신에게 50,000별가루를 후원합니다.]
[인마궁 사수자리가 그놈은 이제 X됐다고 낄낄거립니다.]
[사자궁 사자자리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됐고. 후원할거면 팍팍 해. 내가 바라는 걸 사려면 좀 더 필요하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 인마궁 사수자리가 투덜거립니다.]
나는 시끄러운 두 별자리의 의지를 가볍게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
“데이비. 오딘이 적으로 돌아섰고, 그대와 싸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건…….”
“심각한 일이지. 그래도 괜찮아. 생각해둔 수가 있으니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은 타나토스와 붉은 공허 이후로 없어졌다.
“넘어가는 건 페르세르크와 나 그리고…….”
“갈래! 같이 가자. 인간!”
골드 드래곤 호바나가 눈을 반짝거리며 손을 번쩍 들었다.
“루니아의 일로 아직 제대로 보답도 하지 못했어!”
눈을 잃은 어린 헤츨링, 루니아의 일로 호바나는 내게 상당히 살갑게 대해왔다.
그녀의 상태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만약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그녀에게 의안 이식 수술을 해줄 생각이기도 했다.
물론, 드래곤 하트가 망가져서 그녀는 드래곤의 힘을 제대로 내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넌 루니아와 혈육도 아닌 걸로 아는데.”
“같은 골드 일족이니 애착이 갈 수밖에. 살아남은 골드 드래곤은 그 아이와 나를 제외하곤 한 명이 전부야.”
결국 페르세르크와 나, 그리고 의외의 변수를 생각한 자가용으로 골드 드래곤 호바나가 선택되었다.
“타우르스.”
보팔레빗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탓에 침울해져 있던 타우르스가 고개를 든다.
그의 몸에서 빛나는 밤하늘의 별이 번쩍거렸다.
“거래를 하지.”
부우우우…….
“당분간 이곳을 떠나지 말고 지켜주면 이걸 주마.”
내 말에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건넨 것은 엄청난 중량으로 이루어진 소형 덤벨이었다.
“할래? 말래?”
잽싸게 덤벨을 받아드는 녀석을 보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파지지직!!
한 번 열리면 일을 끝마치기 전까지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아트렐리아에 오래 체류할 생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순식간에 공간이 뒤틀리며 거대한 웜홀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페르세르크를 낚아채 주머니 속에 숨겼다.
“우아아아아아악!!”
그때 호바나가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더니 어디론가로 휩쓸려 사라진다.
“데이비!”
“괜찮아. 목적지는 같으니까 멀지 않은 곳에 널브러져 있을 거다.”
본래 인간이 넘을 수 있는 균열이 아니다. 오로지 별자리의 이동만 허락되는 균열에 별자리가 아닌 것이 떨어졌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이윽고 공간이 뒤틀리며 일순간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엄청난 속도로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일순간 속도를 줄였을 때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하늘에서 추락하는 육신을 천천히 제어한 뒤 역중력 마법을 가하려던 찰나였다.
[디스펠]
들리지 않는 목소리. 무형의 마나가 내 마법을 강제로 비틀어버린다.
“우억?!”
순식간에 마법을 캔슬당한 내가 강제로 신력을 끌어냈다.
9서클 마법사의 방비가 있는데 디스펠을 한다? 그것도 마법을 발현한 지 몇 초도 안 되는 상황에?
나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으며 내 앞에 나타난 이를 바라보았다.
검은 로브에 제 머리보다 큰 챙이 달린 마녀모자, 그리고 한쪽 눈을 가린 안대.
겉보기엔 평범한 나무 지팡이 같지만, 그 속에 담긴 폭풍이 느껴질 정도로 힘이 제대로 서린 스태프까지.
쾅!!!!
“굳이 찾으러 갈 수고를 덜었네.”
나는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하늘에 떠있는 그녀를 보며 홍단이와 청단이를 뽑아들고 검끝을 내려세웠다.
지이이잉!!!
동시에 그녀의 뒤편으로 원형의 공간이 열리며 수천 개의 푸른 화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전부 다 8서클의 프로메테우스 마법이다.
8서클 고위마법을 초단기간에 수천 개 이상 캐스팅하는 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괴물인지 알 수 있었다.
“꼴이 그게 뭡니까.”
오딘.
쩌억!!
나를 향해 쏟아지는 8서클 프로메테우스를 향해 나는 청단이를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