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0화
274. 방해되니까 종전해주세요
아트렐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가까운 도시로 갔다.
아트헴은 중규모의 도시였다.
도시 거주 인원은 무려 20만 명.
그 수는 도시라고 하기엔 적지만 아트렐리아의 총인구수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은 곳이기도 하다.
“지구가 유별나게 사람이 많은 게야. 총인구가 60억이 넘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것.
그리고 위협되는 요소가 없을 것.
그런 점에서 지구의 인구는 유별나게 많은 편이다.
물론, 인구수는 그리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도시의 분위기 정도가 신경 쓰이는 수준일까.
척 봐도 마냥 평온해 보이는 도시는 아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트헴에.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트헴의 내부는 확실히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부터 상당히 삶의 질이 높아 보이는 마법 도시였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쌍둥이 탑을 기준으로 수많은 건물이 즐비해 있었고, 하늘에는 독특하게 생긴 것들이 주기적으로 체공한 채 도시 전체를 부유한다.
“마법에 대한 응용범위가 티오니스보다 훨씬 좋구나.”
마나는 티오니스와 비슷하거나 티오니스가 더 풍부한 것 같은데.
정작 검술을 버리고 마법에 올인한 대륙답게 모든 것이 마법의, 마법에 의한, 마법을 위한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트렐리아는 인간의 70퍼센트가 마법사거든.”
“그럼 나머지 30퍼센트는?”
“보통 인간이지.”
그리고, 그 점은 아트렐리아에서 정말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오던 일이기도 하다.
“보통 인간이라…….”
“예전 아트렐리아는 왕정체제였어. 그리고 그 30퍼센트의 인간을 인간 취급도 안 하던 암흑기고.”
오딘은 그런 30퍼센트의 인간도 포용한 하나의 조화 세계를 염원했었다고 했었다.
그녀의 목적은 고작 재능 하나로 카스트 제도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해소하는 것.
그 과정에서 그녀는 수많은 일을 겪었고 영웅이 되었다.
“찾았다.”
나는 마법사로 추정되는 이들이 들락날락하는 어떤 건물을 바라보며 걸음을 내디뎠다.
“데이비. 그럼 약초를 구해서 그대의 몸을 안정시키면? 그땐 어쩔 테야?”
“어쩌긴. 오딘이 도망간 위치 찾았으면 쫓아가서 끝장내야지. 가는 길에 호바나가 보이면 회수해서 탈것으로 써먹고.”
“본녀가 묻는 건 그게 아니야.”
그녀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운 채 내 어깨에 앉아 물었다.
“오딘. 그녀를 죽일 거냐고.”
그녀를 죽인다라…….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녀가 현신해있는 이 상황도 비정상적인 만큼 얼마든지 본래의 그녀와 다른 변수가 존재할 것이다.
그 틈을 파고들면 이길 수단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죽일 수 있느냐.
페르세르크는 내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징그럽다. 아주 신물이 난다.
매번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내가 회랑의 영웅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대체 무슨 약속을 했기에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
오딘은 오래전 한 약속 때문에 자신 스스로가 약속에 속박되었다.
멍청한 일이지만 그만큼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었을 터.
그러니 내가 취할 수단은 하나였다.
그녀를 얽매고 있는 약속의 흔적을 찾아서…….
먹어치우거나.
초단이로 베어버리거나.
금기의 잔해를 일으켜 부숴버린다.
그것 외엔 없다.
그게 쉬울 리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약초의 냄새가 짙게 퍼진다.
끙끙대며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는 이들도 대다수 보였다.
“어서 오세요. 진찰을 받으러 오셨나요?”
아트렐리아는 유별나게 신성 마법에 대해선 발전이 없다.
정확히는 신관이 거의 없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때문에 이들은 육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비슷한 마법을 만들거나. 의학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폴라 약초잎을 좀 사고 싶은데.”
내 제안에 카운터 점원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폴라 약초잎이요? 있긴 합니다만…… 어디에 쓰시려고…….”
“치료제로 쓸 거야.”
“치료제라, 폴라 잎은 연금재료로 쓰일 뿐 사람에겐 아무런 효능도…… 혹시 어떤 증상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증상을 말씀해주시면.”
“그냥 주면 안 되나?”
내 물음에 카운터 직원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시죠?”
그 말에 나는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었다.
아트렐리아 화폐는 없는데 줄 만한 것이라곤……
“이거론 안되나?”
“세상에…….”
내가 그녀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마정석이였다.
단순 마나석이 아닌 마나석 수백 개가 응축된 결정체.
디셉티콘 편대 골렘들에게 박힌 다수의 핵 중 하나이며 기존의 마나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보관할 수 있는 보물이나 다름없다.
제아무리 마법이 뛰어난 아트렐리아라도 마정석은 극도로 귀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자…… 잠시만요! 이게 정말 마정석이라면!”
마정석이라는 외침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환자들을 제외한 다른 마법사들의 눈이 번들거렸다.
의학 창구이기도 하지만 제법 거친 일을 하는 마법사도 제법 보이는 것으로 보아 길드의 역할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세상에…… 마정석 진품이군요! 그것도 엄청난 상등품…… 죄송합니다. 현재 이 지부에선 이런 물건을 계산해 거슬러드릴 수 있는 자금이…….”
“그럼 처음 요구한 폴라 잎. 그리고…… 혹시 종이 있나?”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에 나는 근처에 있던 깃펜으로 무언가를 빠르게 써 내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아…… 이 정도도 아직 계산이…….”
“거스름돈은 됐어.”
마정석이 아깝긴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직빵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다.
보석을 내밀어봐야 시간이 한참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
마정석이야 과거와 다르게 조금 편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만큼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럼…… 예 알겠습니다.”
그녀가 필요물건을 건네주기 위해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어이 이봐.”
누군가가 다가온다.
“어디서 오신 귀하신 도련님인가? 얼씨구? 허리춤에 검도 찼네? 어디서 겉멋이 잔뜩 든 도련님…….”
거구의 사내가 내 허리춤에 있던 홍단이의 검집을 빼앗을 것처럼 잡았다.
주변에서 낄낄대는 걸 보니 딱히 나설 인간은 없어 보인다.
이윽고 홍단이를 빼앗아 들려던 찰나였다.
“억?!”
검을 들어 올리려던 그가 움찔거리며 멈춰섰다.
“야.”
짧게 일축한 내가 돌아선다.
그리고 거구의 사내를 보며 말했다.
“놔라.”
홍단이를 쥔 그는 허리를 엉거주춤 숙인 채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섬뜩한 공기가 오간다.
그가 홍단이를 검집째로 들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순진무구한 아이라도 홍단이가 자신을 남이 만지게 둘리가 없다.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그는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보다 움직이려 했다.
홍단이가 무겁게 느껴진 것이지 그가 약해진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털썩…….
마치 다리가 풀려버린 것처럼 그가 주저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챙!! 챙챙!!
동시에 사방에서 검을 뽑아 드는 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검을 뽑기가 무섭게 주변 마나를 모조리 재밍당하며 바닥에 처박혔다.
“여기 환자 돌보는 곳 아닌가?”
조용하고, 단조로운 목소리지만 너무도 섬뜩했다.
“환자가 있는 곳에서 그러면 쓰나. 이봐. 아가씨. 빨리 줘. 이쪽도 바쁜 입장이야.”
그 말에 멍하니 있던 카운터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며 뛰어들어갔다.
고요한 침묵이 감돈다.
어떤 캐스팅도, 어떤 마나의 유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들 모두가 짓눌린 것이다.
이곳에서 검을 들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마법사가 되지 못한 30퍼센트.
쉽게 말해 낙오자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라도 체내의 마나는 존재한다.
그 마나가 제압당한 것이다.
“여, 여기 있습니다!!”
이윽고 창고에서 커다란 나무상자를 가져나온 카운터 여성이 내 앞에 상자를 내밀었다.
필요하신 약재와 소재들을 모두 담았습니다!“
그녀는 조금만 늦어도 사고가 벌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다급한 표정이었다.
이에 나는 그 상자를 받아든 뒤 허공에 휙 던져버렸다.
콰작!!
동시에 상자와 부딪힌 허공이 깨지며 마치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다.
“또…… 무영창…….”
경악하는 그들을 뒤로한 채 길드를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있는 이들은 나를 막지 못했다.
덜컹!!!
그때였다.
“긴급환자야!! 평화유지군에게 당했어!! 의원! 의원과 약사가 필요해!!”
다급한 사내들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심각한 상처를 입은 한 사내가 들것에 실려 들어오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게 어지간한 처치로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상처였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부장님!!”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모두 당황하며 소리치고 그에게 달려갔다.
“젠장! 대체 누가 부장님을!?”
“말했잖아! 평화유지군에게 당했다고!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거야!!”
다급한 그 외침에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말했다.
“데이비?”
“…….”
굳이 내가 나서도 치료할 이는 많다.
괜스레 소란을 피울 시간도 이쪽엔 많지 않다.
오딘을 하루빨리 찾아야 하니 말이다.
“거…… 거품?! 젠장! 빨리 응급처치해!!”
“안돼! 늦었어! 마검에 당한 거잖아! 이건 못살려!”
“제발!! 의사 양반! 살려줘! 부장님이 있어서 이 도시가 유지되고 있는 거잖아!”
그들은 좀 전까지 굉장히 양아치같이 보이던 모습을 내팽개치고 필사적으로 의원들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부장이라 불린 사내의 부상을 본 이들은 모두가 침묵했다.
“이건 치료할 수 없어…… 나로선. 그리고 이곳의 장비로는…….”
참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의사를 흘끗 본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약속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보아하니 좀 전까지 내게 시비를 걸던 작자들과 한통속인 것 같은데.
환자이기에 살리는 내가 전설이로구나.
“비켜봐.”
나는 좀 전 아공간에 넣었던 상자를 꺼낸 뒤 몇몇 약초와 폴라 잎사귀를 꺼냈다.
그리고는 카운터 여성에게 말했다.
“종이 가져와.”
“당신…… 무슨…….”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담담하지만 차가운 내 목소리에 그녀가 황급히 쪽지를 가져왔다.
이에 나는 몇 가지를 아트렐리아 어로 적어준 뒤 건넸다.
“10분 정도면 되지? 더 늦으면 이 사람 죽어.”
“네? 이게 무슨 조합…….”
“뭐해. 이 인간 죽게 둘 거야?”
내 말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나는 쓰러진 채 거품을 물고 있는 사내의 흉부 쪽을 가볍게 한 손으로 압박한 뒤 아공간에서 침통을 꺼냈다.
“약이 있었으면 쓸데없이 이렇게 복잡할 것도 없잖아.”
푸욱!!
망설임 없이 대뇌 전두엽과 목의 측부. 그리고 허파와 간을 찌르자 그곳에 있던 사내들이 기겁한다.
“이……이봐 뭐 하는 거야!!”
경악하는 이들이 나를 말리려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을 말렸다.
“잠깐만!!”
바로 홍단이를 잡고 내게 시비를 걸었다가 쓰러진 사내였다.
“사…… 살릴 수 있소?”
“나는 못 살리는 인간은 진료 안 해.”
그래. 이를테면…….
이미 죽어서 도저히 살릴 수 없는 인간.
“쿨럭!!”
“미안한데 페르세르크. 거품 좀 걷어줄래?”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어깨에서 내려와 몸을 키운 뒤 곧바로 사내의 입가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옅은 빛이 마치 그녀의 손을 대신하듯 움직이며 사내의 입에 쌓인 거품을 빠르게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정교하게 침을 찔렀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사내의 상처는 심각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생명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마치 중독 증세처럼 퍼진 독특한 마나 파장.
마검이라고 했던가.
검안에 있는 독 같은 어떤 마나가 그의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게 보였다.
몇 차례 침을 찔렀을까. 사내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뿌리처럼 퍼진 검은 줄기들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마검에 당했는데 어떻게…….”
모두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경악한 채 중얼거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일진도 사납지.
“쿨럭!!”
이윽고 그가 서서히 안정되었고, 내 부탁을 받아 황급히 내부로 들어갔던 여성이 절구로 빻아서 비율을 맞춰 배합해온 약초들을 가져왔다.
“임시방편이야. 나머지는 종이에 적어준 대로 달여서 하루에 2번. 정오와 22시에 먹여.”
“쓰읍…… 하아…….”
눈을 감은 채 호흡이 안정되는 그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사내가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사…… 산 거요?”
“약 제때 먹이면 나흘이면 털고 일어날 거다. 마검이 아니라 저주 같은데. 이런 건 마법으로 마냥 해주하기가 쉽지 않지.”
저주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마법 계통이니까.
다만 저주의 방식이 워낙에 독특해서 의술로 살릴 수 있었다.
그뿐이었다.
“어라? 그놈 살리면 안 되는데?”
그때 누군가가 내부로 들어오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새까만 로브에 금장식이 박힌 장신의 사내였다.
하지만 사내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독특한 보석이 박힌 새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말하는 반가면이었다.
“그는 왕국법 제7항을 어긴 대죄인인데. 그를 살리다니 이거 곤란해.”
그가 내게 말했다.
“이 환자는 절대안정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물러나 있어.”
돌아보지도 않은 채 상처에 약초를 바르는 내 도발에 그의 입매가 비뚜름하게 올라간다.
마치 사디스트의 스위치를 올려버린 듯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