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81화 (981/1,559)

제 981화

“헉?! 평화유지집행관!”

“젠장! 은인을 모셔! 그가 끌려가게 두지 마!!”

내게 시비를 걸었던 사내는 어느새 나를 은인이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도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두려움이 서린 표정을 보니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높으신 분인 모양이다.

경악한 외침에 들려왔다.

“알고 있으니 됐어. 이봐 거기. 잠깐 나랑 같이 가줘야겠어. 대역 죄인을 치료하는 건 중죄야. 이방인 같은데 모르고 그런 것 같으니 그 따라와서 조사만 잘해주면 우리도 애꿎은 사람 다치게는…….”

“우…… 웃기지 마!! 그를 데려가면 고문하고 죽일 거잖아!! 이 빌어먹을 왕의 개들!!”

“흐음…….”

그 말에 가면을 쓴 평화유지집행관이 짧게 신음했다.

“왕의 개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하기엔 너무 간이 큰 거 아닌가?”

그 말과 함께 그가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그가 나타난 장소는 나와 시비가 붙었던 대머리 남성의 코앞이었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다가…….”

콱!!!

동시에 집행관의 손이 대머리 남성의 얼굴을 낚아채며 다시 움직인다.

“죽는 수가 있어.”

아니. 정확히는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말했지.”

집행관의 말을 끊은 내 목소리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대머리 남성의 얼굴을 낚아채 집어던지려던 집행관의 팔을 내가 낚아챈 채 잡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접근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가 벙찐 입매를 보여주었다.

“뭘…….”

“절대 안정이라고. 이 말뜻을 이해 못 하나?”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주변을 감싼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사자궁 사자자리에게서 30,000 별가루 후원]

[인마궁 사수자리에게서 5,000 별가루 후원.]

이것들은 반신급 별자리가 맞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경박한지.

물론, 눈에 봐두었던 신물을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이놈들의 퍼주기식 별가루 후원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대체 뭘 사려고?”

“어? 좋은 거.”

그 외에 자잘한 보험 정도.

본래 그들의 후원은 보통 인간에겐 엄청난 힘을 부여해주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내게 스탯같은 추가적인 힘은 외려 방해만 될 뿐이다.

그나마 건진 것이라면 사자자리와 사수자리의 힘을 놈들 몰래 포식으로 날름 먹어치운 정도라고 해야 하리라.

문을 박살 내고 맞은편의 건물에 처박힌 채 추욱 늘어진 그를 보며 손을 툭툭 털어낸 내가 소리쳤다.

“뭘 봐. 구경났어? 먼지 들어오잖아! 환자 안쪽으로 옮겨!”

쓸데없이 다른 곳에 화풀이를 하는 격이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데이비. 먼지는 그대가 일으켰는데?”

“아 몰라.”

전부 다 저 집행관 놈이 잘못한 거다. 즉, 요지는 잘 팼다 이 소리였다.

나는 좀 전 카운터 여성이 배합해준 약초 중 사용하지 않은 단환을 입에 톡 털어 넣었다.

알싸한 맛이 입안에 감돌며 차원이동으로 생긴 부하가 아주 옅게 줄어들었다.

“음…… 배합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나쁘진 않네.”

앞으로 네다섯 번만 복용하면 자체 회복으로 어떻게든 될 듯싶은 느낌이 든다.

생각보다. 효과가 뛰어나다.

이것이 산지 직송! 유기농 약초!

환을 질겅질겅 씹어먹으며 일어서자 멍하니 있던 대머리 남자가 내게 다가와 팔을 잡았다.

“세상에……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왕실 직속 집행관이 단방에.”

경악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좀 전 나가떨어진 놈이 제법 한 가닥 하는 모양이었다.

“가자 페르. 치료 끝났으니까.”

벙찐 그들을 뒤로한 채 길드를 나온 나는 추욱 늘어진 반가면의 사내를 스윽 본 뒤 그놈의 가면을 빼앗아 품에 챙겼다.

야, 네 가면 쩔더라. 좋은 건 나눠쓰자.

평범한 인상의 2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의 얼굴이 드러난다.

경악. 두려움. 황당함이 서린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가면을 다시 꺼내 보며 씨익 웃었다.

“오오. 좋은 거 가지고 다니네.”

여기 박힌 보석이 대체 몇 개야.

“페르. 이거 가질래?”

“비취 사파이어? 보석은 본녀의 취향이 아니야.”

“그럼 취향이 뭔데?”

“그대의 당황한 얼굴. 보고 있으면 귀여워서 질리지 않음이니.”

괴이한 취향 다 보겠네.

“그대도 툭하면 일리나와 에이리아를 괴롭히면서 즐기는 주제에 그런 말은 조금 선을 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본녀는 다른 남자가 쓰던 가면에는 흥미가 없어.”

“…….”

단칼에 잘라내는 그녀였다.

그때 저 멀리서 대규모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오와 열을 맞춰 왼발! 왼발! 이라도 외칠 것만 같은 칼 같은 소리를 내며 도시 내부로 행군해 들어오고 있는 이들은 척 봐도 군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묵빛의 군대, 그리 표현하는 게 옳을까.

그들의 복장은 내가 기절시킨 집행관이라는 놈보다는 수수하지만 비슷한 복장이다.

평화유지군이라고 했던가. 평소라면 페르세르크와의 여행으로 이것저것 구경할 테지만 마냥 그렇게 즐기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전이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능한 것이라곤 단거리 블링크 정도일까.

도시의 외벽 북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몇몇의 병사와 그들이 관리하고 있는 제법 튼튼해 보이는 말들이 보였다.

플라이 마법도 방법이지만 나 여기 있소 하며 실시간으로 위치 추적을 시켜줄 필요는 없었다.

“흐음…….”

“데이비?”

“그냥 두기 좀 그렇네.”

“그냥 두기 그렇다고?”

“그런 게 있어. 그보다 방법 찾았다. 굳이 직접 뛰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

홀로 중얼거린 내가 다가간다.

“정지! 누구냐!”

나를 향해 마법 지팡이를 들이미는 병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너희 상사가 좀 민폐를 끼쳐서 보상을 좀 받을까 하는데.”

콰아아앙!!!

그 말과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며 병사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허공을 날았다.

“데이비?!”

“걱정 마 안 죽었어.”

동시에 내부로 진입했던 병사들 쪽에서 소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나를 발견한 병사들 중 일부가 뒤돌아서서 나를 잡기 위해 뛰어오기 시작하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말 한 마리의 고삐를 여유롭게 풀고 마나를 일으켰다.

[블링크]

자. 열심히 따라와 봐라.

순식간에 100여 미터 넘게 이동한 나는 느긋하게 말에 올라탔다.

동시에 몸을 키운 페르세르크가 내 뒤에 안장에 가볍게 내려앉으며 나를 꼬옥 끌어안는다.

“둘이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퍽 낭만이지 않나?”

마법을 지속적으로 쓰면 오딘이 위치를 계속해서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오딘은 마법사지 신관이 아니다.

즉 제아무리 그녀라도 신성 마법에 관해선 이쪽이 더 많이 알 수밖에 없다.

[스트랭스]

[하이퍼 바디]

능숙하게 말에게 버프 마법을 연거푸 씌운 내가 말의 뒷목을 톡톡 두드렸다.

“아주 끝까지 달려보자. 이랴!”

히이이이이잉!!! 투다다다다다다다!!

도저히 말이 달리면서 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를 따라오던 묵빛의 병사들은 벙찐 표정으로 지붕 위의 닭을 쫓는 개마냥 쳐다보는 게 보였다.

“꺅! 데이비! 승차감! 승차감!!”

페르세르크가 비명을 지른다.

말이 빠르게 달릴수록 탄 사람의 승차감은 지옥을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나는 어쩔까 고민하던 중 손가락을 튕겼다.

신성 마법이면 되는 거 아니야.

[9위계 성마법]

[사도의 날개]

화아아아악!!!

본디 막대한 광역 회복능력을 부여하는 날개다.

후웅!! 후우우우웅!!

미친 듯이 달리지만, 귀에 올라탄 나와 페르세르크에겐 이제 그 어떤 진동도 전해지지 않았다.

“세상에…… 저 고위 성마법을 고작 이런 곳에다가…….”

“페가수스는 로망이지.”

처녀만 밝힌다는 신수인 유니콘은 생각할 가치도 없지만.

그제야 지옥 같은 승차감에서 해방된 페르세르크가 한숨을 내쉬며 뒤에서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순식간에 멀어지는 도시의 외벽을 바라본다.

“그대. 일부러 저 평화유지군이라는 군대에게 신경을 끌었구나.”

“괜히 엄한 사람 다치게 할 순 없잖아.”

이렇게 되면 놈들은 도시의 주민에게 화풀이하기보다는 나를 쫓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내달리는 말의 속도를 계산해보면…….

“회복이 끝나면 바로 오딘이 있는 곳에 도달하겠네.”

그 말과 함께 나를 뒤에서 소중하게 끌어안은 페르세르크의 마기가 서서히 내게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마기는 마왕의 위를 지니고 있는 내게 스며들며 몸 안에 퍼진 환을 더욱 빠르게 안정화시켜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내달리는 말은 본래 자신의 페이스를 이미 아득히 뛰어넘은 수준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마치 시속 150km가 넘는 초고속 주행을 하는 것처럼 주변의 환경이 휙휙 변하는데에도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헤에…… 헤엑!

말이 지친 낌새를 보였다 하면…….

[하이 리커버리]

[스트랭스]

[어질리티]

[하이퍼 바디]

[세인트 오브 글로리아]

[큐어 오브 마인드]

저단계 버프 마법부터 초고위 버프 마법까지 무자비하게 쏟아 부어버렸기 때문이다.

육신의 피로는 일순간 씻겨져 나가고 정신 피로도 순식간에 해결되니 말의 입장에선 내가 이렇게 잘 달렸던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도저히 말이 낼 수 있는 속도와 스태미너라고 볼 수 없는 엄청난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데이비. 말에게 버프 마법을 걸지 말라는 건 상식이야.”

자신의 한계를 착각한 말의 최후는 뻔한 법이니까.

이에 내가 슬쩍 고개를 넘기듯 돌리며 말했다.

“괜찮아. 다 달리고 나면 이놈은 지가 어디서부터 쉬지도 않고 달려왔는지…….”

싹 다 잊을 테니까.

나는 아공간에서 가벼운 짱돌 하나를 꺼내 들며 환하게 웃었다.

고통도 없어, 효과도 좋아.

얼마나 좋아.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은 아주 신이 난 듯 허공을 밟으며 점차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비록 골드 드래곤 호바나에 비하면 굉장히 느린 속도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도착시각이 수배 이상 차이 날 뿐이다.

* * *

“사령관! 날이 찹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트렐리아 저항군 총 본대. 사령관 일레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공기가 차가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의원 선거제를 유지하던 아트렐리아의 통치체제가 폭군의 왕정체제로 바뀐 지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그 짧은 시간에 처형당한 인간의 수만 헤아리기가 힘든 수준.

소수의 인간들이 믿는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이런 처참한 현실은 좀 아니지 않냐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마법사. 신을 배척하진 않지만 신보다는 마법 술식을 더 믿는 이들이었다.

“평화유지군이 걱정이십니까?”

“걱정이 안 되면 거짓말이겠죠. 당장 12집행관 중 절반만 출전해도 저희는 버티지 못할 테니…….”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레이나가 씁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서 날개 달린 말을 탄 신의 사자라도 나타났으면 좋으련만…….”

마법사가 신을 부르짖다니 멍청한 노릇이지만 현실은 그런 기적에라도 기대고 싶은 그녀였다.

그때였다.

후우우웅!!!

깎아지른 절벽 아래부터 이어지는 성벽 너머로 무언가가 훅!! 하고 지나갔다.

“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