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2화
“일레이나 님?”
방금 날아간 무언가를 제대로 못 본 것인가.
분명 그것은 평범한 말이었다.
다만 날개가 달린.
그리고 그 말 위로 두 명의 남녀가 타고 있었던 게 아주 잠깐 보였었다.
인간의 시력이란 참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일레이나 님!! 평화유지군입니다!!”
“젠장! 이럴 때가 아니군! 수성을 준비해라!! 그리고 감옥에 가둬놨던 무전취식범!! 그 금발 아가씨도 불러!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해!”
비틀린 톱니들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전 차원, 전 세상으로 파장이 되어 퍼져나간다.
* * *
“시작하지.”
얼마 안 되는 인원에게 명령을 내린 로키 데반은 평소의 느긋한 미소도 지운 채 긴장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8명의 마법사가 거대한 탑의 각 끝을 원형태로 둘러싸며 마법진을 구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앙엔 다름 아닌 오딘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이질적인 힘이 퍼져나간다.
발동하는 마법진은 이내 서서히 스파크를 일으키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마법진의 일부가 입체 모형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 모든 피스가 거의 모였으니 시작합시다. 진리의 열쇠를 여는 겁니다.”
그의 말에 마법진들이 더욱 빠르게 공명한다.
동시에 수백만이 싸워도 늘 그렇듯 고요해야 할 대륙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미 수많은 세상에 뿌리를 두었다. 그중 두 개 이상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의식이 실패할 리 없다.
물론 중요한 피스 중 하나였던 용의 심장을 구하는 데엔 시간이 더 걸리지만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계획의 최대 변수가 이 차원에 묶인 이상 별자리를 방해할 존재는 없다.
쾅!!!
“크, 큰일났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의식장에 난입했다.
* * *
거대한 탑.
척 봐도 나 위험하오! 라는 느낌을 풀풀 풍기는 탑이 보인다.
익숙한 탑이기도 했다.
타락용 군주를 뭉개버릴 때 놈의 부하를 모조리 언데드 드래곤으로 만들던 과정에서 나는 이미 티오니스에 있는 탑을 한 차례 부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본 탑과 흡사했다.
의식의 주체.
아트렐리아 대륙에서 남아있는 고대의 유적지이며.
오래전 오딘을 포함한 다수의 존재들이 우로보로스 계획을 준비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놈의 신격이 뭐라고.”
그 말과 함께 나는 페르세르크에게 손을 내밀어 초월의 종언을 받아들었다.
동시에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수많은 골렘과 마법 생명체 그리고 못 해도 6서클은 되어 보이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나를 포위한다.
이만큼 탑 안에 숨겨놓고 있었구나.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더니.
나는 조금만 움직여도 당장 공격해올 것처럼 마법을 캐스팅하는 이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방해자여! 목숨이 아깝다면 물러가라!”
나를 향해 수염이 지긋한 노인이 외친다. 그 목소리가 마치 음향장비를 붙인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럴 수 있나. 그러면 안 되지.”
이에 내가 담담하게 반박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내가 선 바닥으로 특이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특정 존재의 마나를 억제하는 마법진. 내 발을 묶기에 최적의 마법진이기도 하다.
[디스펠]
이후 내가 가볍게 디스펠 마법을 발현한다.
와장창!!
무언가 깨지는 소리는 울려 퍼졌다.
하지만. 마법진은 부서지지 않았다.
“오딘…….”
마법진 자체는 얼마든지 부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곳의 마법사들은 불가능하지만, 오딘에겐 숨 쉬듯 가볍게 칠 수 있는 9서클 초반대의 마법 수준이니까.
다만 나에 대해 잘 아는 오딘인지라 단순 원소 마나에 그치지 않고 신성력이나 사령 마나 쪽도 상당량 제약하고 있다.
보통 어지간한 강자라면 손도 못쓰고 일반인처럼 허약해질 정도로.
하지만 그런 마법이 디스펠에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더미 데이터.
마법진 위에 더미 마법을 깔아 디스펠을 유도하고 서로 자폭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디스펠의 방식은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히 서클의 수준을 넘어 굉장히 복잡한 마법적 지식이 들어가는 만큼 이 또한 오딘이 해놓은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부수면 새로이 보충되는 더미 마법들이 계속해서 마법을 틀어막는다.
“놈이 마법을 봉인 당했다! 일제 포격 준비!!”
동시에 나를 포위한 수많은 마법사들이 제각각 다른 마법들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 생명체들이 마치 포격을 가할 것처럼 마나 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좋네.
마치 사형을 선고하듯 근엄한 얼굴로 선 채 나를 내려다보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이곳이 오딘과 그놈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죽여라!!!”
그 말과 함께 입자 광선과 마법들이 일제히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소를 반응시켜서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것까지 봐서는 오로지 나를 상대하기 위해 이미 합을 맞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정도로 애썼는데.
그냥 깨버릴 수야 있나.
나는 맹렬하게 쏟아지는 마법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쿠우우우웅!!!
그리고, 엄청난 빛과 함께 내가 있던 공간이 일소했다.
* * *
“해…… 해치웠나?!”
긴장한 얼굴로 서 있던 한 마법사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멍청한 놈! 상대는 인지를 초월한 괴물이다!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제2군 준비!!”
노인의 외침에 다시금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슬 움직여 보자.
나는 오른손에 모여든 무언가를 가볍게 회전시켰다.
스스스스스스슥!!
동시에 대량의 흡입력이 발생하며 먼지구름을 순식간에 빨아먹었다.
“무슨?!”
“말도 안 돼!!”
경악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왼손은 바닥으로. 오른손은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하여 편안하게 들고 있다.
바닥을 향하게 한 손에서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색무취, 무형의 포악한 맹수가 마법진을 거칠게 물어뜯고 그 형태를 일그러뜨려 내 제압을 풀어버렸다.
그들이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생겨난 검은 구체가 내 손위에서 그들의 마법을 모조리 빨아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니들. 시간 벌이구나?”
그래. 우로보로스가 어디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만들어지나.
“소…… 속임수가 분명하다! 두 번은 없을 테니 어서 공격해라!!”
그 말과 함께 마법사들이 마법을 던지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오딘이 이곳에 있는 만큼 내가 준비를 더디게 할 리가 없다.
삐릭!
프리아 여신의 파편.
별자리들이 내게 후원하는 힘은 그놈들이 가진 힘이 아니다.
더욱이 조디악의 힘도 아니다.
정확히는 스탯 부분은 그놈들의 힘이 맞지만…….
신물은 별개에 속한다.
[[잔불]을 구매한다.]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내 손위로 모든 별가루를 대신해 어떤 돌멩이가 손에 쥐어졌다.
황색의 돌멩이 안에 어떤 작은 불씨가 일렁이는 형태.
몇 번이고 썼지만 참 좋은 아이템이기도 하다.
잔불이라는 건 어떤 의미로는 여분의 목숨이다.
그것도, 어떤 페널티도 없이 온전하게 부활시켜주는 내가 아는 최고의 사기 신물.
단순히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모조리 투자해서 다른 것도 아닌 잔불을 산 게 아니었다.
오딘을 구하는 건 좋지만 그렇게 했다가 내가 살아갈 세상이 망가지면 본말전도였으니까.
“그사이에 감이 죽었나. 조절이 안 되네.”
내 흰자에 핏줄이 살짝 돋으며 재워둔 신력을 모조리 깨워낸다.
신의 영역과 회랑에 소속된 영혼인 영웅들과 다르게 나는 살아있는 신격을 지닌 인간.
그런 인간이 신격을, 그것도 이토록 방대한 고유 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그에 따른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된다.
억지로 살려놓은 세상이 다시 죽게 둘 수야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평소 이상으로 신력을 소수만 남기고 억누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걸 전부 풀어버린 것이다.
세상의 대기가 요동치며 내 의지에 따라 모든 마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말도 안 돼!!”
마법을 캐스팅하던 이들이 경악하며 주춤거렸다.
그들의 마법이 강제로 마나 입자로 분해되며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마법 생명체들은 마나를 빼앗기고 모조리 가동을 중지해버렸다.
오딘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제압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밑천 다 안 드러내면 시체가 되는 건 그놈이 아니라 내가 될 테니.
쩌억!!!!
“오…… 맙소사…….”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주저앉아버리는 그들이 두려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원형으로 찢어지며 회전한다.
마치 블랙홀 주변에 있는 빛의 테두리를 보는 것처럼 마나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균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렇게 전의를 상실하고 굳어버린 이들을 향해 내가 손을 뻗는다.
“자. 봐. 니들이 바라던 신의 영역이 뭔지.”
[신격 활성화]
[중력 붕괴]
단순히 중력 마법을 흉내 내는 것과 다르게 이것은 태초신 프리아 여신이 발현할 수 있는 기적과 흡사하다.
그런데 신격 없이 이걸 단순 마법으로 구현하던 오딘은 대체…….
격이야 다르지만 일단 나도 신격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세상의 근본 중 하나인 블랙홀 하나를 간섭하지 못할까.
그그그그극!! 그그그극!
실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블랙홀을 아주 살짝 떼어 오는 것만으로도 대기가 뒤틀린다.
당연히 기존의 법칙을 무시한 기적류의 마법이기에 그에 따른 페널티는 고스란히 내가 지게 된다.
“끄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내가 선정한 영역 내의 모든 인간, 가동을 정지한 마나 생명체들이 마치 스파게티 면처럼 일그러지며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가면 시간이동을 한다는 학설이 있지?”
“괴……괴 물…….”
그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인이 벌벌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거 사실…….”
아니야.
“끄아아아아아악!!”
콰드드드득!!
맹렬하게 일렁이던 블랙홀이 이내 그를 집어삼킨다.
빛조차 집어삼키는 블랙홀은 당연히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주변의 마나 입자가 마치 빛처럼 이끌려 테두리를 만들기에 보통사람도 저기에 뭔가 있구나. 라고 인지하는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나를 저지하려던 마법사들을 모조리 지워버린 내가 고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페르.”
“맡겨두시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게서 초월의 종언을 받아들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나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스르륵 뽑으며 조용히 말했다.
“감이 안 죽었어야 하는데.”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얼음빛 머리칼의 사내와 그를 보좌하듯 나타난 세 명의 강인한 힘을 지닌 존재.
둘에 대해선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쌍어궁, 피시즈.
물병자리 보병궁.
물고기 머리를 한 피시즈와 지느러미 같은 귀를 지닌 여성인 보병궁이다.
그 외에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보는 놈인데. 사자자리에게 듣기로 저놈이 아니라 전갈이라 하지 않았나.
염소의 머리에 거대한 체격을 지닌 핼버드를 든 악귀의 형상.
염소자리. 캐프티톤.
다른 이름으로 마갈궁.
틈틈이 석판을 조사해본 결과 이놈에 대해서도 확인한 바 있다.
“조디악이 힘을 잃으니 다급하게 다음 대의 중앙별을 노리려고 그쪽에 붙었나? 상관은 없는데.”
“반갑습니다. 데이비 올 라운. 아직 제대로 된 소개가 없었군요. 나는 로키 데반이라고 합니다. 이제 당신은 저를 만날…….”
“야.”
짧게 일갈한 내가 그를 담담하게 올려다보았다.
“도발은 그만해도 되지 않나? 서로 갈 데까지 간 사이에.”
안대를 쓴 그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대로 물러나 줄 순 없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
“당신은 세상을 구한 존재라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행동에 이 땅 아트렐리아 대륙 또한 구원받았지요.”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인상을 찡그린 채 물었다.
마냥 금기를 어긴 놈이면 차라리 쉬울 텐데 저 우로보로스는 미묘하게 선을 밟고 있는 느낌이다.
애초에 오딘이 미치지 않고서야 금기를 어기는 의식을 만들 리가 없다. 정말 그랬다면 그녀는 영웅이 아니라 소멸의 길을 걸었을 테니까.
“이번엔 제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은퇴했다며 평온하게 살고 싶어 하셨지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쓸데없이 말빨 조지다가 협상 말아먹지 말고.”
내가 차가운 음성으로 그를 향해 말하자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 차원에 대해 들었습니다. 인구가 무려 수십억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하지만 그 지구의 인구도 많이 줄었습니다. 어째서라고 생각하십니까.”
왜긴 위험요소가 생겼으니까지.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그를 보자 그가 조용히 말했다.
“모든 것은 비물리 계통의 힘 때문입니다. 비물리 계통의 힘. 신의 힘. 그 모든 것이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차원도 안전했을 겁니다.”
그의 말에 내가 허탈하게 웃었다.
“설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그뿐만 아닙니다. 모든 차별은 힘에서 나옵니다. 힘이 강한 자는 대우받고, 힘이 약한 자는 나락에 처박힌 영원한 계급제도. 그것은 때때로 사람을 광기에 몰아넣습니다.”
세상엔 여러 미친놈이 있다.
그리고 이놈은…… 단단히 미친놈이 분명하다.
“맞습니다. 저는 당신처럼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신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런 제가 신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지요.”
그건 단 하나. 바로 우로보로스. 인공신 프로젝트다.
“저는 모든 차원에서 마나를 포함한 모든 힘을 지워버릴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재능으로 멸시받는 이는 영원히 나옵니다. 나는 그 굴레를 끊어버릴 겁니다.”
그의 결연한 외침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은 로키를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는 놈들에게 향한다.
“너희들은 머릿속에 뭘 넣고 다니길래 저런 걸 찬동하고 있나.”
내 물음에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쯤 되니 모를 수가 있나.
로키 데반. 이놈이 내게 말빨 조지지 않은 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시선에 보병궁 아퀘리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동시에 초고밀도로 압축된 수압의 구체가 생겨난다.
내가 공격하면 당장이라도 요격할 기세였다.
“저는 세상을 구할 것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이 와중 에도 오딘이 나오지 않는 건 저놈이 여유를 부려서가 아닐 것이다.
나올 수 없는 것일 터.
지지지지직!!!
초단이를 한 손에 쥐고 검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단단히 양손으로 쥔다.
동시에 로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꿈은 자면서 꿔라.”
“막으세요!!”
“널 위해서 내가 목숨 담보 걸고 잔불까지 준비했다.”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