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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88화 (988/1,559)

제 988화

275. 개변과 피시즈

왕성의 주변으로 재앙이 터지기 약 10분 전.

기괴한 마나의 비틀림이 느껴진 마법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발단은 중립도시 아트헴에 파견한 집행관 때문이었다.

왕실 측에선 사실 집행관이라는 존재를 강대한 힘을 위주로 선발했다.

인성은 최악이라고 평이 나 있지만, 그 실력 하나만큼은 대단한 6서클 배틀 메이지.

그렇기에 왕실 측에서는 그를 집행관으로 임명하여 임무를 하달했다.

아트헴에 숨어든 저항군의 간부. 통칭 부장이라 불리는 사내를 생포하라.

그 과정에서 저항이 거칠면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린 건 좋았다.

그의 실력이 대단한 탓에 금방 부장을 찾았고 교전에 들어가 치명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그가…….

이름도 모르는 어떤 젊은 청년에게 일격에 당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왕실체제를 밀고 있는 현 국왕이나 그와 함께 일어선 이들의 입장에선 차라리 꺼림칙한 그가 죽어버려도 좋으련만.

그냥 두면 집행관 전체의 위신이 떨어지는 만큼 어쩔 수 없이 그의 휘하에 있는 평화유지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휘관을 공격한 사내를 찾아라.

그리고, 그자를 잡아 와라.

강한 힘을 지닌 이라면…… 회유하고, 그게 안 된다면 죽여서라도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서 평화유지군이 들어간 건 좋은데.

돌아온 답변은 대상을 찾았거나 잡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순순히 전쟁을 멈추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갑작스레 왕실로 연락을 해온 이는 다름 아닌 집행관.

평소 전쟁을 즐기는 성격이던 그는 국왕과의 독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전쟁을 심화시켰으면 심화시켰지 덜하진 않을 텐데.

어쩌다 저 지경이 된 것일까.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찰나.

집행관을 필두로 모인 세력에서 이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며 무시하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 빌어먹을 선거의원제의 기득권층이 노리던 끔찍한 세상을 잊지 못하는 저항군 따위. 절대 그냥 둘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무시하려 했다.

왕성 전체에 깔린 6서클 마법사 40명이 설치한 대규모 전이 방해 마법진이 일순간에 일그러지지만 않았다면.

전이 마법 방해 역장이 사라지면 당연히 전이 마법을 통한 공세가 시작된다.

저항군도 아트렐리아 최대전력인 4명의 7서클 마법사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전설이라 불리는 8서클 워프까진 아니더라도 텔레포트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이 견고한 마법진을 부순단 말인가.

“어떻게 역장이 부서질 수 있단 말인가!”

3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남성이 소리쳤다.

“말해보라! 짐의 말이 틀렸나!”

“그것이…… 저희도 원인을 파악하고는 있습니다만…….”

“저항군 쪽에서 이런 카드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

“폐하. 저항군 쪽이 아닌듯합니다.”

“뭐라?”

“저항군에도 7서클 마법사가 있지만, 무려 6서클 마법사 수십이 모여 만든 마법진입니다. 마법진은 부수는 게 만드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즉. 아무리 7서클 마법사라 해도 이렇게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역장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와이번 마병대를 출병시켜라. 요새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모두 지켜야 할 것이다! 바도프 경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조사를…….”

“폐하아아아아!!!”

누군가가 기겁하면서 소리치고 들어온다.

그 외침에 국왕이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치려 했다.

“또 뭔…….”

쿠우우우웅!!!!

동시에 어마어마한 진동이 일대 전체를 뒤흔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진동과 그 진동을 일으킨 무언가가 내뿜은 마나의 밀도에 모두가 얼어붙어버린 것처럼 침묵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급히 테라스 쪽으로 달려나갔고. 곧이어 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수의 운석들을 말이다.

정확히 요새의 주변만 노리고, 떨어지는 것은 척 봐도 이래도 항복 안 해? 라는 느낌이 강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

누군가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메테오가 무엇인가. 8서클 마법사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극한의 상위 마법이 아닌가.

아트렐리아 역사를 모두 뒤져보아도 메테오를 구현한 이는 단둘밖에 없다.

전설 속에서 마신이라 불리는 마법사의 신 같은 존재.

오딘과.

500여 년 전 8서클의 마법사로 자신의 영혼을 불태워 9서클의 마법을 흉내 내고 마나 고갈로 사망한 대마법사 길버트.

아무리 마법이 발달해도 이제는 멸종해버린 드래곤조차 도달하지 못하는 9서클 마법은 사실상 환상에 가깝다.

그런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한발도 아니고 십여 개가 쏟아지고 있다.

그것도 동시에.

치직…….

[목적은 단 한 번만 전하겠습니다.]

다시금 들려오는 너무도 담담한 목소리에 국왕이 흠칫했다.

“폐하 이건…….”

“메테오를 사용한 마법사…… 그는 저항군이 아니야.”

저항군이라면 전쟁을 멈추라고 하지 않고 항복하라 했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행관을 통해 말하고 있는 이는 자신들이 어찌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사흘 뒤. 고르곤 평원에 있는 버려진 요새에서 종전 협상을 할 겁니다.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전쟁을 계속하겠다면…….]

더 이상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충분히 의견은 전달 되었다.

* * *

“꺄악!!”

거대한 충돌과 함께 대지가 뒤흔들린다.

저항군 사령관인 일레이나는 부관인 노령의 사내의 부축을 받은 채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좀 전 부장의 부하로 추정되는 사내가 부장의 연락 수정구를 통해 연락을 해왔다.

전쟁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지금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슨 헛소리냐 생각했지만, 곧 이어진 재앙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마르칸 님…….”

“네. 사령관.”

“메테오…… 맞죠?”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저항군 요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쏟아진다.

마법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았고, 저게 말로만 듣던,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마법인 메테오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머리가 이해해도 논리가 이해를 못 했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하고 말이다.

“맞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수십번에 걸친 마법…….”

“가능한가요?”

“제가 말입니까? 은둔한 대륙 최고의 마법사들도 단 한 개 소환하고는 미라가 되어버릴 겁니다. 아니. 소환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요. 멸종한 드래곤도 9서클에 도달한 존재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마법 같지만 자연재해…….”

“아니.”

그때였다.

한 손에 닭꼬치를 들고 오물거리며 금발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호바나 씨!”

“저거, 마법 맞아.”

“당신은…… 드래곤이라고 했던가요.”

일레이나의 물음에 호바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드래곤.”

“당신이…….”

“아니. 드래곤이라고 9서클이 쉽게 되는 줄 알아? 역사 다 뒤져도 몇 안 돼.”

“하지만 당신은 저것에 대해 잘 아는 듯이 말했죠.”

“맞아. 잘 알지.”

모를 수가 없다.

골드 드래곤 호바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드래곤이라고 한 적 없어. 인간일 뿐이지.”

“네?”

“메테오. 그것도 수십번을 쏟아내는 괴물. 그건 내가 아는 한에서 이 대륙엔 단 하나뿐이야.”

정확히는 오딘의 존재를 모르는 호바나이기에 한 말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당신이 아는…….”

“그리고, 내가 찾는 인간.”

저항군 사령관 일레이나가 호바나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길거리 노점에서 무전취식을 하다가 잡힌 그녀는 대가로써 헤실헤실 웃으며 보석을 내밀려 했다.

하지만 아공간이 열리지 않는다며 허둥거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아공간에서 보석을 꺼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리저리 엮인 게 사실이었다.

일레이나는 그런 그녀가 품고 있는 힘을 눈여겨보았고, 그녀가 찾는 이를 찾게끔 도와줄 테니 조력해달라 말했다.

호바나는 8서클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성룡급 드래곤.

당연히 저항군의 입장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전력이다.

그래서 호바나가 그녀의 곁에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호바나 씨.”

“좀 전에 연락이 왔다고 했지? 전쟁을 멈추라고.”

“네.”

“다른 말은 없었어? 그 인간이 괴짜이긴 하지만 정말 좋은 녀석이야. 이유 없이 너희를 공격할 리는 없을걸?”

“당신이 뭘 알고!”

저항군 중 하나가 패닉에 빠져 소리치자 호바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말이야. 그 인간이 너희를 처단할 생각이었다면 저렇게 안 해.”

그녀가 피식 웃었다.

“이 요새에 직경으로 떨어뜨렸지.”

인간 단신으로 역장을 부수고 메테오를 떨어뜨린다.

그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다른 말은?”

“사흘 후에…… 고르곤 평원에 있는 버려진 요새에서 종전 협상을 할 거라고 하네요. 왕실 측도 나올 테니 나오라고…….”

“흐음…….”

고민하던 호바나가 빙그레 웃었다.

“나가봐.”

“이봐!! 함정일 수도 있다!!”

몇몇이 황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호바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택은 본인 자유지만. 불참하고 소통을 안 하면 다음번엔 메테오가 요새로 떨어질 거야. 설마. 저 메테오가 괜히 구경하라고 떨어뜨린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저건, 엄연히 무력시위야.

“그리고, 비록 거래 관계이긴 하지만 나는 그 인간의 편이고, 너희가 그와 반목하겠다면…… 난 여기서 당당 현신하는 수밖에.”

씨익 웃는 호바나의 말에 일레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 * *

양측 진영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일단은 그 협상이라는 자리에 응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고르곤 평원으로 가보면 답이 나오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국왕을 필두로 여덟 집행관, 그리고 수백의 호위병력을 대동한 왕실파와.

사령관 일레이나를 필두로 7서클 마법사 마르칸을 포함한 호바나 그 외에 다수의 6서클 마법사가 포함된 저항군 세력이 당도한 것이다.

당연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들은 상대측 진영을 보자마자 싸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무슨 내막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서, 전쟁을 며칠 만에 끝내겠다더니…… 협상이랍시고 메테오 몇 발 떨어뜨리고 강제로 불러들인 거야?”

“말 안 들으면 직격타를 날려준다고 하니 바로 오네요.”

“후우, 누가 헤라클래스 제자 아니랄까 봐. 정말 무식하네.”

“제일 효율적이니까요.”

내 말에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현재 그녀는 겉보기만 멀쩡할 뿐 속은 의식으로 인해 엉망진창이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못 하는 터라 내게 안겨있는 꼴이다.

“알았으니까 이제 내려놔.”

“네.”

등과 허벅지를 받치고 안아 들고 있던 오딘이 제 다리를 오므렸다가 뻗으며 내 얼굴을 퍽퍽 걷어찼다.

다만 거칠게 행동하는 것치고 그녀의 싸늘한 표정은 상당히 누그러져 있었다.

“넌 전쟁만 막아. 나머지는 내가 할 일이니까.”

“내게 말하지 않은 게 있는 건 압니다만. 괜히 무리하지 마세요.”

내 말에 그녀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당신 사라지면 그 애물단지 차원관리 권능은 아무도 해결 못 하니까.”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팍 식었다.

“당신들 보고 배우면서 내가 헛물만 켠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릴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두 진영이 모인 요새 내부의 광장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거대한 첨탑에서 지상에 착지할 때까지 그 누구도 내 접근을 눈치챈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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