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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995화 (995/1,559)

제 995화

공돌이든 공순이든 갈아 넣어서 안 되는 것 따윈 없다.

에오니샤와 티아라는 여러 의미로 상성이 극과 극이지만 반대로 굉장히 사이가 좋은 편이기도 했다.

아마 이번 합동연구는 두 사람에게 큰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리라.

“그러니까 이렇게 융해된 블루스크린 금속은 주로 상온에서 특수한 성질을…….”

“아니 그러니까요. 이게 이거 아니에요?”

“후우. 아니 그러니까 티아라 언니! 이건 가설 면에서 볼 때 이쪽을 좀 더 손보는 편이…….”

엄청난 속도로 친화력을 보이며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에오니샤와 티아라를 본 교수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경악스러울 정도의 천재들.

티오니스 대륙에 대해서 막연히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크게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티오니스 대륙이라는 곳 말입니다. 박 교수님.”

“예.”

“티오니스 성자도 그렇고, 저 두 사람도 그렇고 엄청난 곳 같네요.”

“마침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기가 막히네요.”

한국 최고봉의 연구원들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다.

학회에서도, 국제적인 네임드 격인 그들이다.

실제로 외국의 수많은 대학에서도 그들에게 러브콜을 던진 적이 있을 정도로 실력은 확실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모아놓고 묻는다면.

저 나이 때에 당신들은 어땠냐 묻는다면 모두가 단호하게 답할 것이다.

저렇게는 안 된다고.

단순히 지식의 폭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여러 면에서 두 사람의 방식은 극과 극이었다.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티아라의 경우 굉장히 거침없은 실험파였다.

뭐든 일단 실험을 해봐야 데이터가 쌓인다는 쪽이었고 반대로 에오니샤의 경우 무엇을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신중하게 검토를 마친 후에야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편이었다.

양쪽 모두 자신의 생각에 확고한 계산이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행동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처음엔 애들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서로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 알았다.

분야만 다를 뿐 이 두 아이는 이미 어지간한 교수 이상급의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저 애들이 나중에 크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될지 궁금하네요.”

박 교수의 중얼거림에 윤 교수가 킥킥 웃었다.

“마음 같아선 제자로 대학원생에 들이고 싶은데 그러기엔 너무 뛰어나지요. 어디 누구 밑에서 배울 수준이 아니에요. 당장 이름만 달고 있는 교수랑은 격이 다르죠.”

기본적으로 학문을 이해하는 방식부터가 다르다.

경악스러운 천재!

교수들이 두 사람을 두고 판단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어린아이라고 무시했던 것과 다르게 그들은 고작 사흘 만에 두 사람의 엄청난 연구진행 속도를 보여주었다.

그 때문일까 그녀들의 그런 행동에 교수들도 외려 의욕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실험 시작할게요. 실험번호 0204 금속 가공 코팅 처리. 0.03mm 실험 진행합니다.

우우웅…… 우웅…….

푸른 금속이 내부 코팅된 케이스가 놓이고 그 케이스 안으로 작게 잘려나간 어떤 봉이 천천히 삽입되었다.

그리고…….

푸쉬이이이이익!!!

기다렸다는 듯 실패를 상징하는 연기가 터져나온다.

“후우…… 또 실패군…….”

뭔가 보일것같은데.

단순 이론만으로 계산하면 분명 방사능을 중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길이 쉬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중화가 아니었다.

이게 성공하는 순간 인류는 우라늄이라는 방사능 가득한 자원을 무해한 에너지로 바꿔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후우…… 다음 실험 준비할게요. 박상철 교수님. 이론 검토 피드백 부탁드려요.”

“후우. 에오니샤 왕녀님. 조금 쉬어가면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반면 교수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의욕이 생긴 건 좋다.

국가에서 아주 작정하고 지원을 해주고 있으니 그들도 새로운 논문을 찍어내기 위해서라도 이걸 연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할 정도로 갈려 나가고 있다.

어른인 그들조차 체력에 달려 지쳐가고 있는데 정작 두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모습이다.

마치 무언가가 결여된 것처럼.

이에 서울대의 엄 교수가 코코아를 종이컵에 담아 가져와 그녀들에게 내밀었다.

“방사선이 계속해서 차단되니까 신기하긴 하네.”

데이비에게 받았다는 어떤 아티펙트를 작용하면 방사능이 몸에 적용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보호복 하나 없이 폐기물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그게 자신들이 바라는 원전 폐기물 처리방법이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걸 만들 수 있는 건 한 인간뿐이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그건 성과물이 아니었다.

그저 과정일 뿐.

어찌 되었건 며칠간의 철야로 어른들도 지쳐가는데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엄 교수는 두 소녀가 혹시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서렸다.

“저…… 왕녀님? 안 힘들어?”

“힘들어요.”

그녀가 담담하게 말하며 현미경을 통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관찰했다.

반대로 티아라는 수많은 시험관을 놓은 채 그 안에 든 시약을 빙글빙글 돌리고는 원심분리기에 익숙하게 꽂아 넣고 다음 작업을 준비한다.

“힘들면 쉬어가면서 하면…….”

“힘든 건 맞지만 쉬기엔 좀…….”

“응?”

“이 정도로 쉬면 너무 노는 것 아닌가요?”

그 말에 엄 교수가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왕녀님?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요. 말 그대로죠. 쉬기엔 너무 이르지 않냐는 거죠. 저는 반응 값 실험을 조금만 더 할게요. 먼저 쉬세요.”

지금 이게?

며칠 밤낮 쉬지 않고 연구하고 있는데 이게 쉬기에 이르다고?

눈을 붙일 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에 엄 교수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상하다? 보통 오라버니가 프로젝트를 지시할 때는 못 해도 한 달 정도는 이렇게 진행하는걸요.”

그 말에 엄 교수를 포함한 교수들은 알 수 있었다.

아, 이 아이들은 뭔가 결여되거나 잘못된 게 아니다.

그저…… 악마 같은 인간에게 걸려서 이쯤 되면 쉬어야 한다는 몸의 명령체계가 망가졌을 뿐.

극소량의 방사능을 내뿜고 있는 유독물질을 마법으로 코팅된 장비로 보호받으며 텁! 하고 집어 드는 에오니샤였다.

“엄 교수님. 나는요 내가 대학원생들을 막 굴리는 악마 새낀 줄 알았어요.”

“박 교수님. 그건 박 교수님만 그런 게 아닐걸요?”

“사람 쉽게 안 죽네요.”

교수들은 이날 모두 대학원생들을 갈아 넣는 강도를 올려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고, 그만 쉬렵니다. 저 어린것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연구하는데 언제까지고 구경할 순 없지요…….”

박 교수가 몸을 일으키며 커피가 담겨있었던 종이컵을 구긴 뒤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저 아이들은 천재라는 말도 아까워요. 악마에 가까운 재능을 지니고 있지.”

실질적으로 저들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경지에 있는 데이비 올 라운에 대해 잘 모르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눈엔 에오니샤 같은 어린아이가 교수급의, 세계급 연구원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부터 경악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연구의 테마는 간단했다.

원전 폐기물. 즉 방사능이 가득한 폐기물을 중화시켜서 원전 자체의 막대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재활용하는 것.

단순 테마 자체만으로도 비웃음을 살 일이며, 만약에라도 성공하기라도 하는 날엔…….

전 세계, 즉 원전을 보유하고 있거나 방사능에 관련한 문제와 직면하고 있는 국가들에겐 눈이 돌아가게 만들만한 결과물이 될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이게 시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물론, 현대 과학으론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분명하다.

실제로 에오니샤와 티아라도 단순과학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장이었고.

하지만. 거기에 타세계의 소재와. 마법이 가미되는 순간.

그 불가능이라는 답안은 가능으로 바뀐다.

아직 완성하진 못했지만, 교수들의 연구욕을 극도로 자극시키고 있었다.

그저 아이들 두 명이 과학자놀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싶었던 교수들은 어느새 두사람을 하나의 연구원으로서 받아들이며 가감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 * *

에오니샤와 티아라가 갈려 나가고 있을 무렵. 나는 에이리아와 일리나. 그리고 페르세르크를 데리고 서울 시내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티오니스가 지구의 과학을 받아들이면 그로 인해 생길 엄청난 파급은 어찌할 게야.”

내 어깨에 페르세르크의 타박이 들려온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보는 것과 직접 파고드는 것은 다르다.

티오니스 대륙은 과학과 마법의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기에 둘 다 마냥 극한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세계의 리미트가 걸려있다.

티오니스의 과학발전은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소리였다.

그런 마당에 차원을 넘어 에오니샤와 티아라가 일방적으로 높은 과학기술인 지구의 기술을 배웠다?

엄청난 파급을 만들어내는 건 물론이요 리미트 자체가 흔들려서 자칫 두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세상의 시스템은 그런 두사람을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운명을 조정하여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슬아슬한 선까지만 유지할 거야.”

담담하게 말한 내가 한 노점으로 향한다.

“아저씨. 4개 주세요.”

“어이구. 2천 원입니다.”

“여기요.”

“감사…… 어? 잠깐만, 형씨 어디서 많이 본 사람…….”

의아해하는 노점주인을 뒤로한 채 페르세르크와 일리나 그리고 에이리아에게 노점에서 산 과자를 건네주자 세 사람은 신기한 듯 그것을 받아 야금야금 먹으며 눈을 반짝였다.

“와. 맛있다.”

“와플이라는 거야. 언제 하인스 영지 식도락에 추가해볼까 하는데.”

“이거……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에이리아였다.

에이리아는 신중한 얼굴로 야금야금 와플 과자를 씹으며 말했다.

“나중에 만들어드릴게요!”

“와. 벌써 알아낸 거야?”

수인이라 그런지 미각이 굉장히 예민한 그녀다웠다.

아니 애초에 나와 결혼한 뒤로 에이리아는 무언가 먹을 것을 만드는 데에 많은 취미시간을 쏟고 있는 게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같을 순 없지만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애초에 맛만 보고 바로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기대할게.”

“네!”

환하게 웃으며 에이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무언가를 눈치챈 페르세르크가 일리나의 팔을 잡아당긴다.

“일리나. 이리로 와보렴.”

“으악?! 언니?”

“본녀와 잠시.”

페르세르크가 일리나를 데리고 사라져버리자 에이리아와 나만 남게 된다.

괜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약한 인식저해를 걸어둔 덕분에 마냥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데이비 오라버니.”

“음?”

“이번일…….저 때문에 생긴 거겠죠?”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되물었다.

“이번 일이라면 그 일이지?”

“네.”

그녀가 침울하게 중얼거린다.

“저 때문에 일이 이토록 심각해진 건가 싶어서요. 저 때문에 서나가 죽고…… 저 때문에 두 사람의 인생이 파멸로…….”

우울해하는 그녀의 손을 내가 꼭 잡는다.

인식저해는 걸려있지만 내가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것만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길 한복판에서 내가 그런 짓을 하자 시선이 모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잘못한 놈은 따로 있는데 피해자가 왜 우울해해.”

“네?”

“네 눈에서 눈물이 흘렀으니까 그 인간들 눈에서 피눈물을 흐르게 해준 것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빨개진 얼굴로 그녀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다.

“저…… 이렇게 길 한복판에서…….”

숨겨놓은 귀와 꼬리가 맹렬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지만 나는 천천히 그녀를 놓았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너무 우울해하지 마. 네 친구의 혼은 윤회의 고리에 잘 올라갔으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수 없을까 생각하던 중 길 한복판에 놓인 피아노를 발견했다.

“저기요.”

“읏 네?”

길 가던 여성에게 말을 걸자 여성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본다.

약간 붉어진 얼굴에 무언가를 기대하는듯한 얼굴이다.

“저기 피아노 말이에요. 써도 되는 거예요?”

길거리 한복판에 놓인 피아노를 가리키자 그녀는 잠시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영상 못 봤어요? 가끔가다가 정말 잘 치는 사람들이 길거리 공연하고 그래요.”

그 말에 내가 빙그레 웃었다.

“고맙습니다.”

“아…… 벼, 별말씀을.”

그녀를 보내준 뒤 에이리아에게 다가간 내가 말했다.

“이리와.”

그리고는 그녀의 팔을 잡아 피아노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갔고 그녀를 세웠다.

“이거 하나만 기억해 에이리아.”

네가 그러하듯. 나머지 모두 네가 힘들어하면 널 걱정하고 도울 것이며, 만약 세상이 너를 내동댕이친다면, 그 세상 전체와 적대하는 것도 불사할 것이다.

이후 나는 장난스레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연주라도 들려줄까?”

“아…… 하지만 페르 언니와 일리나 언니가…….”

“자리를 비켜준 모양이야.”

에이리아를 배려한 페르세르크가 틀림없다. 그녀가 이번 일로 침울해할 것 같으니까 알아서 풀어주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마음껏 놀면 돼.”

내 말에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내가 다시 피아노를 향해 다가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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