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6화
“어?”
나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내가 보인다.
시우.
현재로서도 쟁쟁하게 나가고 있는 프로게이머이며 일리나가 이곳에 놀러 올 때마다 간혹 연락을 해서 같이 게임을 즐기는 사내이기도 하다.
요즘엔 좀 뜸한 것 같지만.
“이야.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가 내게 아는 척을 해오자 나는 조용히 그에게 손을 잡아주었다.
인식저해를 강하게 건 것이 아니라서 나를 아는 이라면 나를 알아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강한 인식저해도 문제는 없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숨겨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고른 마법이기도 하다.
“시우 형 이분 설마…….”
“어? 아아 맞아.”
그가 빙그레 웃었다.
“세상에……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을 이렇게 보게 되네…….”
“너도 만만찮아 임마.”
키득거리며 그가 말했다.
“또 뵙네요. 왕자비님.”
“아…… 바, 반가워요.”
에이리아가 부끄러운 듯 말했다.
“지구에 공적으로 방문하셨다는 소문이 퍼지던데. 무슨 일이에요?”
제법 스스럼없는 그의 태도에 내가 빙그레 웃었다.
“데이트하러 왔습니다.”
반쯤은 틀린 말도 아니니까.
내 말에 그가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희가 좋은 시간 방해했나 보네요.”
그가 하하 웃었다.
“실은 이걸 어떻게 전해드려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또 뭘. 이놈 수상한데?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보았지만,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에 들고 온 종이백에 든 상자를 4개 내밀었다.
“머플러입니다. 커플 세트로 해서 4개에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좋은 놈이구나.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그냥 제 눈을 치료해주셨는데 아무 보답도 안 할 순 없어서요.”
그의 말을 그의 곁에 있던 이는 이해하지 못한 듯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아. 이 녀석은 제 친척 동생인 시현입니다. 한 살 어리긴 하지만 유명한 아티스트이기도 하죠.”
“유명하긴 무슨 오늘내일 밥그릇 걱정하기 바쁜데, 반갑습니다. 시현이라고 합니다.”
내가 시현에게 손을 내밀자 그가 신기하다는 듯 손을 내밀어 마주 잡았다.
“와…… 이게 세계최강 단일 국가전력의 손이구나…….”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였다.
“그런데 그 피아노는 왜요? 피아노 치시게요?”
“아. 네. 에이리아에게 들려주려고요.”
부드럽게 웃으며 내가 피아노의 건반을 가볍게 쓸어낸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는지 관리 자체는 잘 되고 있다.
이후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건반 하나를 부드럽게 누른 뒤 만족스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주 일부가 고개를 돌려 관심을 표하지만 역시 뭔가를 보여주기 전엔 크게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다.
“어? 저분 피아노 치시는 거야?”
“그러니까 앉았겠지?”
“으흠? 피아노도 치는 분인 줄은 몰랐네.”
시현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내 귓가엔 잘 들려오지 않았다.
어떤 곡으로 할까.
“에이리아. 원하는 게 있어?”
“글쎄요…… 저는 데이비 오라버니가 만드신 곡이 있으면 그걸 듣고 싶어요.”
“내가 작곡한 곡이라…….”
그녀가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유별나게 피아노 음악을 좋아했다.
복잡한 기교가 섞인 클래식이 아닌 듣기 좋은 그런 곡을 말이다.
“잠깐만, 작곡? 형. 저분 작곡도 하셨어?”
“나도 몰라.”
“작곡은 정말 어려운데…… 기대되네.”
아티스트 출신인 시현이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곧 픽 웃음으로 뒤섞였다.
내가 한 손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음악은 작곡한 것도 뭣도 아닌 간단한 비행기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뭐든 처음은 익숙하게.
나는 간단하게 지구에서 유명한. 전생에 많이 들은 기억이 있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띵~띵띵~
도저히 이런 길 한복판에 앉아 연주하기엔 소박하기 그지없는 단조로운, 반주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연주.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에이리아는 그런 나를 그저 말없이 빨개진 얼굴로 바라본다.
주변에선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가 애쓴다는 느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연주가 끝나갈 때 즈음.
나는 손을 데지 않고 있던, 나머지 왼손을 건반에 올려놓았다.
동시에 내 몸에서 마나가 흘러나오며 악기와 동화되기 시작했고.
변화를 일으킨다.
음유시인 영웅. 뮤트에게 배운.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는 음악이 펼쳐진다.
컨셉은…… 그래. 슬픈 거로 가보자.
에이리아는 미묘하게 이런 곡을 좋아했으니.
가볍게 건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경쾌하던 음악의 분위기가 변한다. 장난스레 치던 곡이 내 손을 통해 빠르게 변하기 시작하며 원형은 남아있되, 전혀 다른 곡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비행기 노래를 칠 때 귀엽다는 듯 피식 웃으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선 채 이쪽을 바라본다.
나는 마나를 통해 내 감정의 파동을 담아 퍼뜨려나갔다.
음유시인의 힘은 학문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계산적으로 목매는 사람들이 닿지 못하는 것이고.
건반 하나하나가 눌릴 때마다 무형의 파장이 퍼져나 오듯 주변을 자극하자 지구에 퍼지기 시작한 자연 정령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옅은 빛의 가루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도 멍하니 연주를 바라본다.
그것을 촬영하는 이는 오히려 생각보다 적은 편이었다.
멍한 얼굴로 바라볼 뿐.
같은 음악이라도 내가 만들어낸 음악 파장은 내가 음악에 담은 감정을 튕겨내는 것.
그것은 현대인들이 지금껏 들어온 것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최면 같은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이 늘 말하는 그것. 바로 혼을 담고 감정을 담아라.
그것을 조금 더 심화하여 충실할 뿐이다.
물론, 아주 조금의 미스만 생겨도 그 흐름이 끊어지겠지만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든 듯 건반을 두드렸다.
이윽고 음악이 점차 고조되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음악 마법의 파장으로 인해 내가 걸어둔 인식 저해마법이 약해졌다.
나를 인지한 사람이 많아진 탓에 슬슬 나를 알아보는 인간도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연주가 마지막이 되어 속도가 천천히 떨어졌을 때.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이리아를 향해 웃어주며 마지막 건반과 발판을 땠다.
“데이비 오라버니가 처음, 제게 빛을 보여주셨을 때. 그때도 그랬죠.”
그녀가 예쁘게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너무 행복한 듯 웃으며 내 품에 안겼다.
“사랑해요. 오라버니. 평생을 바랐던 소박한 행복을 느끼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 한마디는 그동안 그녀가 친구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것들이 어느 정도 덜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묻어났다.
“형…… 나 저 사람…… 지금 즉흥 작곡한 거 맞지?”
“어? 나야 음악은 잘 모르니까. 그런데 즉흥 작곡이라는 거 같던데.”
“…….”
멀리서 다른 이야기가 들려온다.
“형! 나 저 사람하고 작업 하나만 하게 해줘!”
화들짝 놀라 소리치는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에이리아의 손을 잡고 마치 춤을 추듯 그녀를 품에 안았다.
스르륵-
동시에 내 주변으로 푸른빛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곳에서 우리는 사라졌다.
대체 어떤 걸 들려줬기에 자랑을 안 하던 애가 이렇게까지 자랑하는 거냐.
자신들도 들려달라며 일리나와 페르세르크가 내 뺨을 쿡쿡 찔러댄다.
아빠의 연주를 듣고 싶다며 청단이 홍단이와 에반젤린이 칭얼거린 것은 평소 자랑을 잘 하지 않던 에이리아가 한참 자랑하고 난 후인 저녁이었다.
-티오니스 성자. 성자비를 위한 길거리 공연.
그리고, 지구에서 어떤 동영상이 누군가에 의해 그런 제목으로 올라왔으며 그 조회수가 경악스러운 수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 * *
“와아아아아아아!!!”
수많은 기사단원들의 환호를 받으며 거대한 연무장으로 새하얀 토끼가 저벅저벅 걸어 올라온다.
검은 바지 하나만 입고 터질듯한 근육을 꿈틀대는 새하얀 토끼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풀더니 이내 연무장의 중앙에 있는 탁자에 몸을 걸친 채 팔꿈치를 대고 손을 올렸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온몸에 밤의 별빛을 담은 거대한 미노타우로스 형태의 존재. 금우궁 타우르스가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보여주게 형제들이여!! 단련된 근육으로 만들어진 그 힘과 멋짐을!”
대족장 쓰의 외침에 두 근육 덩어리들은 쾅!! 소리를 내며 서로의 오른팔을 마주 잡았고 나머지 팔로 테이블을 잡았다.
“가공 합금이라 어지간해선 부서지지 않겠지만…….”
그 꼴을 보던 골다와 골고다 장로 형제가 혀를 쯧쯧 찼다.
“하인스 영지에 멀쩡한 놈이 없구먼.”
“네놈도 똑같다 이놈아.”
“그래서, 형님은 누가 이길 것 같소.”
“음…… 거기 있는 엘프 아가씨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머나. 저는 흰색을 좋아하니 보팔레빗 씨에게 걸게요.”
“그럼 나는 저기 별빛 같은 소 형씨에게 걸지.”
그 말과 함께.
쿠웅!!!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둘의 팔씨름이 시작된다.
“와우! 끝내주는구만!”
극도의 연구 스트레스에 쌓여있던 에디손 기술고문이 화끈하게 맥주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소리친다.
“다들 마시라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놀겠나!”
그 말에 축제에 모인 영지민들이 하나같이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흐흐흐. 질 수 없는 싸움인데?]
느끼한 말투로 보팔레빗이 붉은 눈동자를 번득인다.
부우우우…….
동시에 타우르스가 팔뚝에 두꺼운 핏줄을 돋우며 전의를 내세웠다.
“나 몬미더는 기사단원들에게 실망했다! 이런 날일수록 경계를 게을리해선 안 되거늘!”
한쪽에는 오래전부터 하인스 영지를 지켜온 몬미더가 눈을 부릅뜨며 기사단원들을 다그치는 모습도 보였다.
콰아앙!!!
이윽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두 근육 덩어리들의 전신이 터질 것처럼 부풀며 핏줄이 돋아난다.
동글동글한 얼굴을 지닌 새하얀 토끼와 이목구비도 없고 전신이 밤하늘의 별을 담아놓은 것 같은 별자리의 팔씨름에 축제가 무르익는다.
“…….”
말없이 축제 장면을 보던 시종장 베르닐은 멀찍이서 축제를 바라보고 있는 이를 발견했다.
영주대리 에이미.
시녀가 된 후로 귀족위를 얻은 그녀는 단순한 남작가 출신의 영애와는 다르게 정말로 귀족이다.
실제로 따지면 20살이 넘어 완전히 대공의 칭호가 안착될 데이비의 가신이 된다고 보면 무방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데이비를 돌봐왔고. 그런 만큼 데이비는 그녀를 정말로 굳게 믿고 있는 편이니까.
“뭐하느냐.”
그때 베르닐 시종장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형님?”
“오랜만이구나 베르닐.”
수염이 지긋하며 엄한 표정이 굳어있는 노인.
바로 국왕의 시종장인 베스퍼스 시종장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여러 이유가 있어서 후임자 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휴가를 받았구나.”
“몸이 안 좋으십니까?”
“세월을 이길 순 없는 게지.”
그가 끌끌 웃었다.
이 인간이 라운 왕성에서 극도로 무서운 시종장이라 하면 누가 믿을까.
“그래. 내가 추천한 시종장의 자리는 할 만하더냐.”
베르닐 시종장도 본래엔 왕실의 시종이었다.
하지만 어떤 일로 인해 한직으로 물러나 있었지만, 자신의 형인 베스퍼스 시종장이 찾아와 그를 두들겨 깨워서 보낸 곳이 이곳이었다.
“처음엔 의무만 다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바뀌기 시작했다.
“왕자 저하는 왕족답지 않은 분입니다. 좋게 말하면 정말 사교성이 좋은 분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래. 귀족답지 않게 너무 경박하다는 것이겠지.”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 현재 라운 왕국은 더없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볼티즈 왕가와의 싸움으로 인해 생겨났던 막대한 재화손실을 틀어막은 것도 모자라 기본적으로 다국 교역을 열어버려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그걸 세금으로 왕실에 보내고 있다.
이제는 그를 견제했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얻는 손해가 더 커서 그를 직접 건드리는 이조차 없는 게 현실.
감히 국가 왕실의 안위를 그깟 돈으로 사려는 것이냐!!
라는 귀족들도,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 왕실로 들어오고 있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한데 시간이 지나니 조금 다르더군요.”
에이미를 가르치고, 그를 도와 이상적이진 않아도 이상을 목표로 하는 영지를 향해 나아갈 때.
부하들의 실수를 덮어놓고 화내지 않고 몇 번의 기회를 더 주고 피드백을 함으로써 바꿔나가는 모습을 봤을 때.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런 사람을 모시는 시종장이 되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그렇구나. 저하께선 혼수상태 이후 정말 많이 변하셨지. 마치 수백 년은 다른 곳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베스퍼스 시종장이 껄껄 웃었다.
“그보다 네 마음을 풀어낸 건 그 아이가 아니더냐.”
너무도 순수한 아이.
에이미.
“그 아이가 좌천되어서 저하의 궁에 6년 동안 지냈던 건 알고 있느냐.”
“예 형님.”
“그 아이가 홀로 왕자저하를 보필한 게 무려 5년하고도 8개월이다.”
고작 4개월만 다른 시종 시녀들, 그리고 하인들과 하녀가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 아이는 이제 제 손녀와 같은 아이입니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녀를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있었다.
“그 아이도 이제 혼약자를 찾을 때가 되었습니다만. 아직 전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더군요.”
“인륜사의 중대한 일이니 마냥 밀순 없겠지.”
“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르닐 시종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아이가. 혹 저하께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에이미가 데이비를 그토록 따르고, 그의 밑에서 노력하며, 결혼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정말로 저하께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느냐.”
“제 머리로는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비록 에이미가 오랜 시간을 저하의 곁을 지켜왔지요. 애초에 신분을 신경 쓰지 않는 저하께서 그녀를 받아들인다면 전혀 문제 될 것도 없을 겁니다.”
누가 딴지를 걸지도 못할 것이고.
하지만.
그건 과거에나 가능했지. 이제는 다르다.
“너무 늦었어요.”
페르세르크는 데이비가 한때 마음을 주었었던 여인들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그녀의 배려를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그래서 데이비가 그 이후로 확실하게 누군가와의 관계에 선을 긋고 있는 것이고.
“만약 그 아이가 정말로 저하께…….”
“베르닐.”
저 멀리 커플들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드레스 차림의 에이미를 보며 베스퍼스가 말한다.
“틀렸다.”
“예?”
“에이미는 말이다.”
베스퍼스 시종장이 처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는 저하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게 아니다.”
그 말에 베르닐의 눈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왜? 대체 무엇이 저 아이를 저토록 충실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든다.
그때, 그런 베르닐의 의문을 한번에 종식시킬 폭탄이 베스퍼스 시종장의 입에서 나왔다.
“속죄. 혹은 참회겠지.”
참회라니. 그 참회라는 단어는 잘못을 저질러서 곁에서 속죄한다는 뜻이 아니던가.
그 의문에 베르닐 시종장이 그를 보았을 때. 베스퍼스 시종장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나도 몰랐다. 그걸 안건 3년 정도가 지나서였지. 저 아이는…….”
처음부터 데이비의 곁을 노리고 좌천된 것이니까.
베스퍼스 시종장의 말에 베르닐 시종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 어린 소녀가 무엇 때문에?
“대체 왜…….”
그 물음에 그가 쓰게 웃었다.
“에이미의 어미인 남작부인이 시녀출신인 건 알고 있더냐.”
“왜 모르겠습니까. 어느새 손녀처럼 소중해진 아이입니다. 저는 그 아이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알고 있느냐. 저 아이의 어미가 오래전 모시던 이의 찻잔에 독을 탄 적이 있다고.”
베르닐 시종장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