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3화
잔뜩 당황한 여성이 버둥거리며 내게서 벗어나려 든다.
방금 전까지 송곳을 가져와 나를 죽이려 한 그녀와 다르게 지금의 그녀는 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이러지 마세요! 경비원을 부르겠어요!”
“미안한데. 잠시만 기절해있어. 단순한 살인 미수범으로 넘어가고 싶지 않으면.”
겁에 질린 듯 소리치는 그녀의 외침에 내가 그대로 그녀의 뒷목을 가볍게 때려 기절시켰다.
그녀가 제정신이 들었건 그렇지 않건 중요한 것은 현재 그녀는 나를 습격한 장본인인 만큼 그냥 놓아줄 수 없었다.
그대로 기절해버린 그녀를 놓아둔 채 나는 곧바로 일리나를 쫓아 나갔다.
동시에 저 멀리 엘리베이터에 홀로 선 채 손바닥을 펼쳐 엄지를 뺨에 대고 혀를 쏙 내미는 그녀가 보였다.
띵! 덜컹!
순식간에 닫히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의 분을 보며 내가 눈을 부릅떴다.
이게?
그녀를 향해 손을 뻗은 내가 눈을 부릅뜨며 한 손을 뻗는다.
[알타이르]
쿠웅!!!
막대한 알타이르의 정령 에너지가 퍼져나간다.
그리고, 알타이르가 만들어낸 찰나의 괴리를 이용해 섬광처럼 파고든 내가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양손으로 틀어잡고 싸늘하게 웃었다.
“어딜 가.”
“치사하게!”
“치사한 게 어딨냐. 뭔가 오해가 있는 건 너도 봐서 알잖냐, 대체 왜 이러는데.”
내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말하자 그녀가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보다 시선을 피한다.
“나도 몰라…… 그냥…….”
내가 그녀를 엘리베이터에서 잡아 끌어내자 그녀는 그대로 내 품에 안기듯 끌려왔다.
그리고는 힘없이 내 가슴께 부분을 툭툭 두드렸다.
“그냥…… 기분이 별로 안 좋아 그런 모습.”
그 말에 나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 맛은, 질투의 맛이로구나.
내가 겪을 땐 기분이 참 더러웠는데.
반대편의 입장이 되니 묘하게…… 기분이 좋다.
“질투해?”
씨익 웃으며 묻자 그녀가 벌게진 얼굴로 나를 퍽퍽 때렸다.
“뭐…… 뭐가 나빠?!”
황급히 소리친 그녀가 한참을 저항하지만 나는 그녀를 그대로 안아 들고 그대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서. 저 사람 뭔데.”
“몰라. 룸서비스라더니 문 열자마자 죽이려 들더라.”
애초에 나는 염소자리 캐프티콘의 힘까지 먹어치웠다.
염소자리 캐프티콘의 힘은 일정 이하의 공격을 원천차단시키는 것.
그녀의 공격은 제법 뜬금없었고 날카로웠지만 결국 내게 닿는 범위는 아니었다.
“너 어디 원한 살 짓 한 거야?”
“원한이야 많이 샀겠지만 이건 좀 뜬금없는데.”
나는 조용히 고민하다 그녀의 손을 묶은 뒤 자리에 앉히고 손가락을 튕겼다.
“흡?!”
동시에 기절해있던 그녀가 다시 눈을 뜬다.
“여…… 여긴…….”
“정신이 드나?”
내 물음에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더니 소리 지르려 했다.
하지만 곧 내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자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가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지금 아가씨는 살인미수를 저지른 거야. 증거는 사방에 충분하고 그쪽이 협조 안 하면 나도 귀찮으니 그냥 경찰에 넘길 거다.”
겉모양새로 보면 내가 납치범이고 그녀가 피해자인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상당히 겁에 질린 그녀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 힘들어 보였다.
“데이비. 내가 말해볼까?”
“아니 됐어.”
차갑게 대답한 내가 허리를 숙인다.
그리고 침대 옆에 기댄 채 앉아있는 그녀의 얼굴 바로 옆으로 손을 뻗었다.
쿵!!!
손바닥으로 침대를 강하게 치며 내가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우우웅…….
동시에 내 눈에서 보랏빛 잔상 같은 것이 일렁였고 그것을 본 그녀가 공허한 얼굴로 추욱 늘어졌다.
“누가 시켰지?”
간단한 최면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쓸데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리라.
“기억이…… 안 나요……. 그냥 당신을 본 이후로 아무 기억도 안 나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말은 아마 거짓이 아니리라.
“사람 죽이려 해놓고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이 참 웃기는데 거짓말도 아니라서 참 그렇네…….”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어떤 겁 없는 놈이 그녀를 세뇌시켜서 시비를 걸어왔는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데이비. 이 사람 최근에 어딜 다녀왔는지 물어봐 줘.”
“최근에 어딜 다녀왔지?”
내 물음에 그녀는 공허한 얼굴로 답했다.
“마이애미…… 본가…… 부모님의 집…… 휴가.”
떠듬떠듬 답하는 그녀의 대답에 일리나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뭐 알아낸 게 있어?”
“현아 아가씨가 기밀이라면서 내게 보여준 게 있거든.”
그것은 어떤 균열에 대한 사진이었다.
“마이애미 주에서 생겨나서 아직까지 조용히 있는 균열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균열이 사람을 최면에 빠지게 하나 봐.”
“그런데 최면에 빠졌다고 여기까지 와서 나를 죽이려 든다고?”
“글쎄 그건 모르지. 중요한 건 그녀가 너와 초면이라는 거 아냐.”
“그렇지.”
살인청부업자도 아니고 내게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그녀는 나와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을 뿐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지금 모든 일을 잊으라는 말을 남긴 뒤 그녀의 최면을 해제하고 돌려보냈다.
그녀가 나를 습격하던 영상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건 천천히 하나씩 지우는 수밖에.
“균열 찾아보게?”
“보아하니 기밀이라며. 기왕이면 뜯어내야지. 미 대통령에게 화신을 보낼 거야.”
아마 그는 이번 일에 관해서 언급을 할 가능성이 높다.
직접 도와달라는 언급은 하지 않더라도 상황을 지켜봐 달라거나 혹은 자문을 구할 가능성도 제법 있다.
“괜히 문제 생기지 말고 깔끔하게 협조 유도해서 확인해보자고.”
이제 와서 지구에 괜한 짓을 저지르는 겁 없는 조직이나 생명체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균열 자체가 특수한 경우이거나 혹은 지금의 모든 사태가 그냥 우연일 가능성도 생각해두어야 했다.
“아참 너 주려고 사 온 건데.”
일리나가 봉지를 꺼내 들며 내게 소시지 핫도그를 내밀었다.
“나도 먹을 거니까 한 입만 먹어.”
그 말에 나는 조용히 소시지 핫도그를 바라본다.
기다란 소시지를 중간에 끼운 긴 빵 형태의 핫도그.
나는 조용히 그것을 보당 입을 벌린 뒤……
“어? 어어어!?”
소시지를 냉큼 물고 쏙 빼내 버렸다.
핫도그의 메인인 소시지를 내가 쏙 빼 가 버리자 그녀가 당황한 듯 내가 베어 문 소시지를 잡으려 들었지만, 그녀의 손이 닿기도 전에 나는 그것을 순식간에 흡입하듯 먹어치워 버렸다.
“이, 이 나쁜 새끼야!!!”
비명 같은 일리나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시지는 이미 내 뱃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한입만 먹으라며.”
* * *
미국을 이리저리 관광하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미국 당국은 어느 정도 시간의 간을 본 뒤에 내게 다시 접근을 시도해왔다.
마침 일리나가 미국 프로야구 시즌의 시구를 하기로 약속한 그날이었다.
“프린스 데이비. 만나서 반갑습니다. 화이트하우스 경호팀장. 릭 바스텀입니다.”
이전 나를 찾아왔었던 이들이 다시 나를 마중하러 나왔다.
크리스 마텐. 그 쫄쫄이를 입은 인간보다 더 강한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내의 이름은 릭 바스텀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나머지 둘 또한 같은 인물이다.
다만 이전과 다르게 그중 한 명은 내게 상당한 적의를 보내고 있었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이전엔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만.”
빙그레 웃으며 나는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노려보는 그를 향해 말했다.
“살기는 좀 치우는 게 좋지 않겠나?”
그 말에 나머지 두 명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노려본다.
이에 그가 움찔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무…… 례를 용서하시지요.”
“수하의 무례는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화이트 하우스에 방문하신다고 화신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경호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유롭게 웃으며 그들이 대동해온 리무진에 오른다.
미국의 드럼퍼 대통령은 과거의 일이 있었다곤 하나 지속되는 정책 실패로 인해 현재 여론이 좋지 않다.
그런 탓일까.
그는 나와의 회담을 통해 무언가를 건질 수 있게끔 최대한 나에 대한 소문을 흘린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내 존재를 매체에 담음으로써 나와의 회담 자체를 공식화시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미국 내의 일이기에 나는 상관이 없지만.
“각하. 프린스 데이비를 모셔왔습니다.”
“크흠!”
그 말과 함께 내부 문이 열리며 매체에서나 보던 드럼퍼 미 대통령이 양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웰컴, 웰컴. 어서 오십시오 데이비 왕자.”
그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아 악수를 해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자자 어서 앉으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고갯짓하자 릭을 포함한 세 명의 수행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밖으로 나간다.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서로 좋은 연결점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낸 나는 허공에 손을 뻗어 아공간으로 밀어 넣었고 그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우선 간단한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내가 건넨 상자를 받아 든 그가 흥미 어린 표정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내부에 작은 넥타이핀 같은 게 그의 시야에 비쳤다.
“오…… 정교한 문양이군요. 티오니스에서 만든 것입니까?”
“네. 일단 그 넥타이핀 안에 고위방어마법을 넣어두었으니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내 말에 그가 눈에 띄게 반색했다.
“호오…… 이런 귀한 것을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저희 미합중국과 티오니스는 과거 끈끈한 혈맹으로써 싸운 바가 있지요.”
정확히는 그런 게 아니지만 그는 말 한마디를 이용해 쐐기를 박아넣으려 했다.
“흠…… 뭐 일단은 그렇다고 합시다.”
내 대답에 내게 살기를 보냈었던 그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크게 티를 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다 멀쩡한데 저놈은 자꾸 왜 저러는 거야.
“실은 이번에 한국에 원전 폐기물 중화와 재활용에 필요한 특수한 타 세계 소재를 교역하기로 하셨다고요.”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한국이 아니라 신성 그룹으로 넘기고 신성 그룹이 독점으로 한국과 거래하고 있는 것이지만요.”
국제기업인 이상 독점은 많은 불만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스템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본제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제안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미합중국은 티오니스와 끈끈한 혈맹 사이로써 좀 더 폭넓은 교류를 원합니다.”
“이를 테면요?”
“음. 현재 신성 그룹에서 한국에 독점 무역하고 있는 특수 소재를 저희 미합중국에도 물량이 넘어올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그에 따른 충분하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대가가 무엇인지는 아십니까?”
“기본적으로 식량으로 알고 있습니다. 데이비 왕자. 우리 미합중국은 그보다 더 큰 대가를 내어줄 수 있습니다. 한국과의 거래를 끊고 미국과 독점하면 더 좋겠지만 형식상으로나마 동맹국의 뒤통수를 대놓고 칠순 없겠지요. 저희와도 거래를 하신다면 한국이 내어주는 식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그리고 지하자원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석유, 광물자원. 그 외에 천연자원들 상당량을 말입니다.”
그는 간을 보듯 내게 제안해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본제를 얼른 꺼내게 만들기 위해 먼저 손을 썼다.
“우선 그 점은 죄송하지만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경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보답에 가까운 교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특수한 사정에 따라 이 이상 같은 품목의 교역을 키울 순 없습니다.”
“안타깝군요. 어떻게 조율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당장 원전의 폐기물을 중화시킬 수만 있다면 미국에서 일어난 원전 폭파사고로 잃어버린 장소 또한 되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몬스터가 출몰하는 현 시기에서 원전의 존재는 자칫하면 문제가 크게 발생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이 문제만 해결해도 그로서는 엄청난 지지율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포기하기 어려웠겠지.
“특수소재에 관해선 따로 계획이 없습니다. 저도 밑천은 남아야 하니까요.”
그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인즉슨. 앞으로도 이런 특수한 무언가를 주기적으로 지구와 교역하겠다. 뭐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다면 다음 물품을 저희 미합중국과 거래하는…….”
“그건 그때 가봐야 알겠죠?”
주기적으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들을 교역한다.
지구의 국가들은 티오니스의 힘에 의존한 경향이 있었지만, 흉신도 타나토스도 다 뒈져버린 이 시점에서 무력적인 면은 크게 의존도가 떨어진다.
그렇다면 내 입장에서 지구의 국가들이 우호적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주기적으로 거부하기 힘든 사료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