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5화
들어가지 말라면 좀 들어가지 말았어야지.
“그어어어어…….”
단순한 최면을 넘어 의지 자체를 완전히 다운시켜버린 균열 주변의 현상들을 보며 나는 가볍게 불닭이의 등에서 뛰어내린 뒤 걸어 나갔다.
일대 영역은 각성자를 제외하고 모조리 최면에 노출되어있었다.
일반인은 물론, 주변을 통제하기 위한 미 해병대 또한 마찬가지.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이들의 시선에 띠자 그들이 눈을 번뜩이며 나를 향해 흐느적흐느적 다가오는 게 보였다.
좀비와 흡사하지만, 좀비는 아닌. 단순히 막대한 정신 에너지에 의해 육체제어를 박탈당한 모습이다.
그 원인은…….
상당한 힘을 내뿜고 있는 저 균열 때문이리라.
“으우어어어…….”
나를 향해 양팔을 뻗으며 걸어오는 사내를 이리저리 둘러본 나는 품 안에서 새하얀 인챈트 스크롤을 하나 꺼낸 뒤 손에 상처를 내 그 피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독특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부적이 한 장 만들어진 것이다.
“퇴치다 이놈아!”
철썩!!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의 이마에 부적을 철썩 붙여버렸고 부적은 이내 빛을 발하더니 엄청난 파장을 만들어내며 그에게 스며들었다.
털썩!!
“끄윽…….”
방금전까지 이성을 잃고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던 그가 비틀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상황설명 좀 해주실래요?”
내 물음에 멍하니 있던 그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데…… 데이비 왕자.”
“각성자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 들어갔다고는 하지 마세요.”
분명히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트롤링을 해도 적당히 해야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후우…… 들어갔구만.”
내 중얼거림에 그가 고개를 번뜩 쳐들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게…… 프린스 데이비가 야구장에 있는걸 우연히 알아버린 각성자분들이 분개하면서 기다릴 시간 따위 없다고…….”
“내가 분명 세시간 정도는 앞에서 대기하라고 했을 텐데요.”
“그게…….”
“그게 그냥 당신들 엿이나 먹이자고 한 짓으로 보입니까?”
“…….”
“됐고. 그 이야기는 일단 나중에 합시다. 더 늦으면 대량으로 송장 치우게 생겼으니.”
귀찮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짜증스레 주변에 결계를 쳤다.
“향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는 책임 안 집니다.”
“그것은?!”
“내가 분명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싸늘하게 그를 노려보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이에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균열에 손을 뻗었다.
겉에서 부수기엔 이미 내부에 들어간 인간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다.
“죄송합니다…….”
“기다려보세요.”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낸 뒤 어디론가 연락했다.
드럼퍼 대통령과의 직통 전화였다.
“드럼퍼 대통령님.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아! 프린스 데이비! 균열에서 이상 현상이 목격되었다고…….
“네.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들어갔더군요.”
담담하게 쏘아붙이며 내가 물었다.
“그냥 철수할까요?”
-자…… 잠시만요! 지금 철수하시면……!
“그런데 왜 사람 말을 개무시합니까.”
나는 이 상황을 명백하게 따지고 들어갔다.
“분명 3시간 동안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드렸지요. 이게 단순히 각성자들 엿이나 먹으라고 시킨 줄 아세요?”
이런 변수까지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뭔가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균열이 힘을 크게 얻지 못하는 상황 내에서 그것을 확인하고자 대기를 시켰다.
“균열은 근처에 있는 마나나 각성자들의 힘에 노출되면 변화를 일으킵니다. 특히 저런 큰놈들은 그 빈도가 더 높고요.”
-일단 조금만 진정해주세요. 지금 철수하시면…….
“그래서 각성자들 중에서도 S급 같은 사람들을 일부러 균열 앞에 세워놓고 균열의 변화 여부를 확인하려 한 겁니다. 위험도는 알아야 하니까요. 단순한 균열이 아니라 만약 저게 공간 웜홀 같은 형식이었으면 이 도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그런 형식의 균열을 넬타리드가 가만히 둘리가 없겠지만 그걸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좀 더 일찍…….
“왜 일찍 말해주지 않았느냐고요? 대통령님. 당신은 제게 이 균열의 탐사를 의뢰하셨죠.”
그런데 정작 내 의견은 개무시되는 탐사에 내가 가담해야 하나?
“신성 그룹을 지원해달라는 거래. 당장 취소하고 철수할까요?”
-아, 아닙니다! 부디 한 번만 선처를…….
“……운 좋은 줄 알아요. 균열의 주인에게 나도 볼 일이 있으니까.”
삑!
그렇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나는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정부 인사에게 말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균열이 처리되면 알아서 돌아올 겁니다. 이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전부 통제하세요. 할 수 있죠?”
“……네!”
“그럼 부탁드리지요.”
파지지지직!!!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이 망할 트롤러들이 기어들어 간 균열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운 좋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냥 철수하려 했는데 하필 균열의 주인이 그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츠츠츳!! 파앙!!
내가 진입하자 주변의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대한 숲이었다.
“들어간 지 한 시간 정도 됐나?”
제법 많이 진입했는지 여기저기 싸움의 흔적도 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었다.
“작은 도깨비라…….”
설마설마했는데 그게 진짜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묘한 기분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S급 각성자 다섯. 그리고 A급 각성자 서른.
위험한 균열에 진입한 숫자치고 정말 많은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자본으로 밀어붙인 헌터 강국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내부로 걸어 들어갈수록 싸움의 흔적은 더욱 강하게 보였다.
부서진 거목들. 쓰러진 작은 도깨비들.
작은 도깨비는 잘 쳐 줘봐야 레드 트롤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당장 S급들이 작정하고 싸우면 얼마든지 퇴치할 수 있는 수준.
보아하니 점점 수단이 과감해진 것으로 보아 생각보다 몬스터가 약하니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간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 균열이 이 작은 도깨비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놈들의 힘으로 균열의 힘이 그만큼 증폭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이 균열은 도깨비의 아귀나 다름없다.
내부에 각성자가 들어오면 그 힘을 먹어치워 더욱 강해진다.
실제로 내 힘을 실시간으로 탐내는 이 균열의 공간이 나를 압박해오지만, 일정 거리에 닿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는 낌새였다.
“쯧…… 인간이 다섯 모이면 꼭 문제아 하나는 나온다더니.”
흔적을 보니 이들이 어떤 상황이었을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긴장한 채 입장.
생각보다 약한 몬스터의 존재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점차 과감하게 토벌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작은 도깨비와 다른. 본격적인 몬스터의 습격이 시작되자 그들은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느꼈을 땐 이미 괴물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후였고, 머리를 빼기도 전에 물어 뜯겼을 가능성이 높다.
“아우타…….”
도깨비의 하수인. 밴시와 흡사한 물리력을 지닌 망령 [아우타]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우타의 힘은 익스퍼트 최상급에서 강한 놈은 마스터급조차 당황하게 할 놈들이 많다.
아우타의 습격이 시작된다. 그 수는 못 해도 상당했으리라. 생각지도 못한 몬스터의 습격에 당황한 토벌대는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했고, 부상자를 만들어냈다.
물론 반격도 하긴 한 모양이다.
아우타 한 마리의 시체를 발견하고 걸음을 더 옮기자 이내 거대한 거목에 몸을 기댄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한 여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 곳곳에 상처가 가득하고 다리 한쪽은 뭉개진 것처럼 피투성이였다.
고통과 두려움에 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포위하는 작은 도깨비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마치 장난감 가지고 놀 듯 킥킥 웃으며 겁주고 있는 작은 도깨비까지.
낙오된 것일까.
“으…… 으으으…….”
도깨비는 장난기가 강한 [요괴]과의 존재라 할 수 있다.
본래 이렇게 누군가를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그놈이라면.
작은 도깨비들이 이렇게 흉포해진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흉악귀 두억시니.”
내가 조용히 뇌까렸다.
“도깨비의 왕.”
우치의 손에 봉인된 이 싸이코 도깨비 왕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건 그놈이 바로 균열의 점심이라는 점.
-키이이이익!!
이윽고 장난이 지겨워진 작은 도깨비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방망이를 높이 든 순간 나는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가볍게 걷어찼다.
퍼어엉!!!
순식간에 소닉붐을 일으키며 날아든 돌멩이는 그대로 작은 도깨비의 머리통을 터뜨리며 날아가 버렸고 이내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모두의 시선을 받았다.
순식간에 시선이 모여든다.
스무 마리는 되어 보이는 작은 도깨비.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오만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망령 도깨비 아우타의 기척이 확실히 느껴졌다.
“다…… 당신은?!”
겁에 질려있던 여성은 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인간들은.”
“…….”
“어디 있냐고.”
내 물음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경직된 어조로 말했다.
“저…… 저쪽으로 흩어졌어요…….”
본래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택했다.
이미 두억시니의 함정에 빠진 꼴이다.
“내가 분명 입장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사람 말이 우스웠나?”
내 물음에 그녀가 시선을 피하며 파르르 떨었다.
“됐고. 조금 아플 테니 이 악물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녀의 어긋난 다리뼈를 강제로 끼워 맞췄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상상 이상의 고통에 그녀가 당황하며 몸을 비튼다. 신성 마법을 잘 사용한다면 이런 문제도 단번에 해결할 수 있겠지만 이 인간들이 뭐가 예쁘다고 내가 그런 수고를 들여주겠는가.
강제로 뼈를 끼워 맞춘 뒤 간단한 회복 마법을 쏟아부은 나는 조용히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말했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이곳은 단순한 몬스터와는 다른 도깨비의 터.
이에 나는 품 안에서 부적 석 장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운 뒤 허공에 흩뿌렸다.
도깨비와 마침 사이가 좋지 않은 신수가 한 놈이 있다.
“나와라.”
[황룡]
미치광이 결벽증 신수가 내 손을 타고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거대한 빛과 함께 황금빛의 비늘이 덮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렇게 나타나는 놈을 향해 말했다.
“도깨비만 다 처리해. 인간 건드리면 뒤진다.”
-크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포효를 터뜨리며 놈이 날아오른다.
동시에 황룡의 존재를 눈치채고 겁에 질린 듯 주춤거리던 도깨비들을 향해 황금빛 섬광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아아아아아악!!!”
한 손에 머리가 잡힌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각성자를 따분하게 바라보던 거대한 도깨비가 짧게 투레질을 하는듯한 소리를 냈다.
-하찮다. 인간은 역시 갈수록 퇴화를 반복하는구나.
인간들이 사용하는 힘은 조금 신기하지만, 그 힘은 과거 그를 봉인했던 한 인간에 비하면 너무도 미약했다.
-나를 즐겁게 해보란 말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무기를 들고 벌벌 떨고 있는 이들을 향해 거대한 도깨비가 말했다.
-역시 인간은 기대할 가치가 없는 존재일 뿐이지.
싸늘하게 말한 그가 천천히 일어났다.
-약속대로 나는 이 세상을 삼키고 인간을 지배하겠다.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찮은 인간들아. 수천 년 동안 곱씹어온 도깨비들의 원한을 갚아주마.
거대한 갈색 피부의 도깨비.
두억시니가 안광을 번뜩였다.
“괴…… 괴물…….”
한쪽 팔을 잃은 흑인 사내 더스크가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너희 인간들은 약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이상 너희들은 절대 나를 죽이지 못한다.
그가 차갑게 일갈했다.
-우치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콰앙!!
멀리서 큰 폭음이 들려온다.
-흐음? 아우타가 당했나? 뭐, 아우타야 다시 보충하면 그만이지. 그나마 구르는 재주라도 있는 놈이 있나 보군.
그의 중얼거림에 각성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전력은 이곳에 있다. 다른 곳에 있는 각성자라고 해봐야 낙오된 A급 각성자 두어 명뿐.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각성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의 괴물은 정말로 불사 그 자체며, 절대적인 폭압이다.
이건…… 데이비 왕자가 와도 절대 이기지 못한다.
전 세계의 모든 S급 각성자와 티오니스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양 세계의 대규모 레이드라도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방 흥미를 잃은 듯 두억시니가 섬뜩하게 웃었다.
“나를 봉인한 우치는 이제 없다. 고로 나를 죽이거나 봉인할 수 있는 이는 없을 테니 나는 불사 그 자체니라.”
그는 몰랐다. 그의 존재를 눈치챈 한 인간이 그를 향해 직선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